조선잡(Job)사: 조선시대를 살아간 선조들의 직업과 삶에 대한 이야기. 양반이나 선비 말고 보통사람들이 먹고 살았던 67가지의 직업을 중심으로 그 당시 사람들의 삶을 재구성하고 있다.
[1부 일하는 여성]에서는 남여구분이 엄격한 조선사회였지만, 삶을 책임지고 살아가야 하는 가난한 여성들의 생존수단인 삯바느질, 신부 도우미이자 주례 역할을 하던 수모, 염색을 하던 염모, 변방 군관의 가사 도우미 방직기, 화장품 판매원, 바닷가에서 삶을 살아가던 해녀(잠녀), 그리고 채소 장수 등 조선시대 여성들의 삶을 들여다 본다.
[2부 극한직업]에서는 조선의 3D 업종에 종사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흔히 망나니라고 불리는 사형집행인 회자수, 소를 잡고 해체하는 도축업자 백정, 험한 산을 헤매며 약초를 캐는 약초꾼, 사낭꾼인 산척, 호랑이를 잡던 특수부대 착호갑사, 사람을 업어 강을 건네준 월천꾼, 분뇨 처리업자 똥장수(일명 예덕선생), 소방수인 금화군, 연고 없는 시체를 묻어준 매골승 등... 위험하고 힘들고 더러운 일로 모두들 꺼려하지만 누군가는 해야하는 일을 묵묵히 해낸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3부 예술의 세계]에서는 조선의 직업적 예능인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노래하는 가객, 조선의 대표적 현악기인 해금을 연주하는 맹인 연주자 관현맹, 전국을 유랑하던 사당패, 뛰어난 화술을 밑천으로 삼은 전기수와 재담꾼, 마술공연자 환술사, 원숭이를 데리고 시장이나 길거리에서 공연을 하던 농후자, 프로 바둑기사인 기객 등 조선의 대중문화와 예능인들이 살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4부 기술자들]에서는 농업위주의 사회인 조선에서 힘든 삶의 무게를 짊어졌던 조선의 기술자들을 다룬다; 조화를 만드는 화장, 헤어 디자이너 가체장, 거울을 가는 마경장, 글씨 새기는 각수, 글을 대신 써주는 서수, 활과 화살을 만드는 궁인, 그릇을 만드는 사기장, 종이를 만드는 지장 등...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각종 전문 기술을 지닌 이들이 사회에서 인정을 받기는 커녕 고된 노역에 도망가거나 일을 잘 할 수록 고생이 심해지기 일쑤였다.
[5부 불법과 합법 사이]에서는 소매치기 표냥도, 모조품 유통업자 안화상, 남을 속여 이득을 보는 사기꾼 편사, 기생 관리자 조방꾼, 매를 대신 맞는 매품팔이, 군역을 대신해 주는 대립군, 고금리 사채업자 식리인, 위조 화폐 제조범 도주자, 과거 시험 대리꾼 거벽 등 생계를 위해 불법과 합법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 준다.
[6부 조선의 전문직]에서는 입주가정교사인 숙사, 수학자이자 회계사인 산원, 외국어 전문가인 역관, 죽은 사람의 사인을 규명하는 오작인, 서민들의 변호사 외지부, 한 집안의 집사인 겸인, 시각 장애인 역술가 판수, 매 사냥꾼이자 사육사인 응사까지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을 필요로 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어도 그에 값 하는 대우를 받지 못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7부 사농공'상']에서는 상업과 관련된 직업들; 책 거간꾼 책쾌, 책 대여점 세책점, 부동산 중개인 집주름, 우체부인 전인, 운수업 종사자인 차부와 세마꾼, 소금장수 염상, 보따리 장수 보부상 등 재주나 힘, 시간 등 무언가를 '팔아서' 먹고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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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직업과 관련된 이야기를 읽다가 알게 된 새로운 사실들
1. 조선시대 혼례나 환갑 등에 필요한 물자는 대체로 구매가 아닌 대여 하였다는 사실: 조신시대 신부 도우미 이자 주례역할을 하던 여성의 직업 수모 관련 이야기 중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혼인과 회갑 잔치에 쓰는 병풍, 탁자, 자리, 향촉 따위는 관청에서 빌리고 그 밖의 골동품은 상점에서 빌린다. 머리장식, 가체, 비녀, 떨잠, 귀걸이, 가락지, 보배, 비단, 예복, 스란치마 등 꾸미는 물건은 장파에게 빌린다. 속칭 수모(首母)라고 한다 - 이규경, 「오주연문장전산고」 중". 당시 서민들은 관청과 민간에서 행사에 필요한 물건을 빌려서 잔치를 치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2. "백의민족"의 이면: "흰옷은 원래 상복이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상복을 자주 입었다. 팔촌이내 친척이 죽으면 상복을 입었고, 왕실에 상이 있으면 전 국민이 상복을 입어야 했다. 가난한 사람은 대부분 단벌이었다. 경조사에도 입고 평상시에도 입을 수 있는 옷은 흰옷밖에 없다. 그래서 흰옷을 자주 입었다. 나라에서는 흰옷 입는 풍습을 골치 아파 했다. 평상복과 상복의 구분이 없으면 예법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상례에서 흰옷을 입는 당시 풍습과, 백성들은 가난하고 물자가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단벌밖에 없으니 흰옷을 입을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
3. 채소가 귀했던 조선: "내가 오랬동안 민간에 있으면서 보니, 농가에서는 채소를 전혀 심지 않아 파 한 포기, 부추 한 단도 사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 - 정약용, 『목민심서』 중".. 조선시대에 아무리 먹을 것이 귀했다지만 채소 정도는 실컷 먹었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조선 시대 농부들은 채소를 심지 않았다. 채소를 심을 땅도 없고 재배할 겨를도 없었기 때문이다. 벼농사와 채소농사를 병행하기 어렵고, 또 채소 심을 땅이 있으면 곡식을 심는게 나았기 때문이다. 한양 도성내에서는 원칙적으로 농사를 금했고, 게다가 한양 인근 산은 마구잡이 벌채로 민둥산이 되었으니 산나물 따위가 남아 있을리 만무 했다는 사실.
4. 호환, 호랑이와 관련된 이야기로 아라비안나이트를 쓸 정도로 호랑이 관련 이야기가 많은 호담국 조선: "호랑이 관련한 이야기는 하도 많아 육당 최남선은 호랑이 이야기를 모아 아라비안아이트를 만들 곳은 우리뿐이라며, 우리나라를 호담국이라고 했다". 고종때까지도 서울 인근에서 호랑이가 출몰했다. 1868년 북악산 봉우리에서 세마리, 홍은동에서 두마리 잡았다는 기록도 있다. 호랑이에게 물려 죽는 사람도 부지기 수라 호랑이를 잡기 위한 특수부대인 착호갑사라는 부대가 설립될 정도였다.
5. 떼돈의 유래: 조선시대 강원도와 충청도에서는 목재를 공물로 바쳤는데 이때 한강 물길로 떼(목재)를 옮기는 일을 했다. 벌목한 소나무등을 일정한 크기로 잘라 묶어 뗏목을 만들어 나른 것이다. 물길을 따라 떼를 옮기는 작업은 상당히 위함하고 고난이도의 일이라서 당시 떼꾼들은 뗏목을 옮기면 상당한 보수를 받을 수 있었다. 그야말로 떼돈을 벌 수 있었던 것이다. 떼를 옮겨 받게 된 떼돈은 조선후기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던 당시 동강에서 한강까지 옮기는 비용으로 군수월급(5월)의 세배이상이었기에 일년에 대여섯번만 옮겨도 60~80원을 벌 수 있으니 그야 말로 대박 기회었던 것이다.
6. 한반도의 원숭이: 한반도에 서식하지 않은 원숭이가 조선의 길거리나 시장에서 공연을 하게 된 사연. 조선은 명나라와 일본으로 부터 원숭이를 외교선물로 받았는데, 특히 일본은 원숭이를 많이 보내왔다. 원숭이는 사복시에서 맡아 키웠는데, 시간이 지날 수록 그 숫자가 크게 늘어 궁중 밖으로 분양하게 되면서 민간에까지 퍼져 나가게 된 것이다. 그런 원숭이를 길들이고 원숭이 공연으로 돈을 버는 농후자라는 직업도 생겨나게 된 것.
7. 조선시대 과거 시험장의 풍경: 조선시대 과거시험 합격은 출세의 지름길이라 당시에도 입시/고시를 위한 생태계가 잘(?) 구축되어 있었다. 조선 후기 과거 시험에 응시하는 사람은 좋은 자리를 잡아 주는 선접군, 답안지를 대신 작성해 주는 거벽, 작성된 답지를 깔끔하게 필사해 주는 서수 등과 한 팀을 이루어 시험을 치뤘다하니, 그 난맥상이 눈에 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