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겨울. 서울의 밤이 되면 거리에 나타나는, 얼어붙은 거리를 휩쓸며 차가운 바람이 펄럭거리게 하는 포장마차를 들치고 안에 들어가 술을 따르며 우연히 만난 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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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 꿈틀거리는 것을 사랑하십니까?” 하고 안(安)이 내게 물었다.
“사랑하구말구요” 나는 갑자기 의기양양해져서 대답했다.
추억이란 그것이 슬픈 것이든지 기쁜 것이든지 그것을 생각하는 사람을 의기양양하게 한다. 슬픈 추억일 때는 고즈너기 의기양양해지고 기쁜 추억일 때는 소란스럽게 의기양양해진다.
“사관학교 시험에서 미역국을 먹고 나서도 얼마 동안, 나는 나처럼 대학 입학 시험에 실패한 친구 하나와 미아리에서 하숙하고 있었습니다. 서울엔 그때가 처음이었죠. 그 무렵 재미를 붙인게 아침의 만원된 버스칸이었습니다. 함께 있는 친구와 나는 하숙집의 아침 밥상을 밀어 놓기가 바쁘게 미아리 고개 위에 있는 버스정류장으로 달려 갑니다. 개처럼 숨을 헐떡거리면서 말입니다. 그 친구와 나는 출근 시간의 만원 버스 속을 쓰리꾼처럼 안으로 비집고 들어갑니다. 그리고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젊은 여자 앞에 섭니다. 나는 한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나서, 달려오느라 좀 멍해진 머리를 올리고 있는 손에 기댑니다. 그리고 내 앞에 앉아 있는 여자의 아랫배 쪽으로 천천히 시선을 보냅니다. 그러면 처음엔 얼른 눈에 뜨이지 않지만 시간이 조금 가고 내 시선이 투명해지면 서부터는 나는 그 여자의 아랫배가 조용히 오르내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나는 그 아침의 만원 버스칸 속에서 보는 젊은 여자 아랫배의 조용한 움직임을 보고 있으면 왜 그렇게 마음이 편해지고 맑아지는지 모르겠읍니다. 나는 그 움직임을 지독하게 사랑합니다.”
“안형은 어떤 꿈틀거림을 사랑합니까?”
“어떤 꿈틀거림이 아닙니다. 그냥 꿈틀거리는 거죠. 그냥 말입니다. 예를 들면…. 데모도…”
우리의 대화는 또 끊어 졌다. 이번엔 침묵이 오래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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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낮에 제 아내가 죽었습니다.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하고 있었는데… 급성 뇌막염이라고 의사가 그랬습니다. 아내는 옛날에 급성 맹장염 수술을 받은 적도 있고, 급성 폐렴을 앓은 적도 있다고 했습니다만 모두 괜찮았었는데 이번의 급성엔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 아내와 재작년에 결혼했습니다. 우연히 알게 됐습니다. 친정이 대구근처에 있다는 얘기만 했지 한 번도 친정과는 내왕이 없었습니다. 난 처가집이 어딘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할 수 없었어요.”
“뭘 할 수 없었다는 말입니까?”
“아내의 시체를 병원에 팔았습니다. 할 수 없었습니다. 돈 사천원을 주더군요. 난 두 분을 만나기 얼마전까지도 세브란스 병원 울타리 곁에 있었습니다…. 기분 나쁜 얘길 해서 미안합니다. 다만 누구에게라도 얘기를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습니다. 한 가지만 의논해 보고 싶은데, 이 돈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저는 오늘 저녁에 다 써버리고 싶은데요.”
“쓰십시요” 안이 얼른 대답했다.
“이 돈이 다 없어질 때까지 함께 있어 주시겠어요?... 함께 있어 주십시오.”
우리는 승낙했다.
- 『서울∙1964년 겨울』, 김승옥, 1965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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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부 서적 외판원...
그 밤의 몸부림은 삶에의 충동이 아니라 그 끈을 놓으려는 꿈틀거림이었던가?
| 2009-02-10 22: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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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July 06, 2013
『역사속의 매춘부들』 Whores in History by Nickie Roberts
사회적 필요악으로서의 매춘.
성에 대한 혐오감과 금욕의 주창자들인 기독교의 교부들...
* 성 아우구스티누스 : "매춘을 억압하면 변덕스러운 욕정이 사회를 전복할 것이다"
* 성 토마스 아퀴나스 : "도시에서 매춘은 왕궁의 시궁창과 같다. 시궁창을 없애버리면 궁에는 더럽고 역겨운 냄새가 날 것이다"
>>>>>
기독교 교부들은, 이렇듯 욕정에 찬 남자들이 내 아내와 딸을 둘러싸고 있는 비극을 해결하기 위한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결론으로 사회적 필요악으로 규정한 것이다. "성(性)"이 신의 수준으로 격상되는 것을 가로막는 성적 배설물을 흡수하기 위해 존재하는 시궁창과 같은 존재로 매춘부를 자리매김한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역사적인 직업에 대해 기독교 교회법에서는 종교적, 도덕적 매도 대신에 보다 현실적이고 도전적인 정책을 취하게 된다. 바로 성(性) 산업/노동으로 부터 비롯되는 "이윤"의 문제이다. 자본주의적인 (직업)윤리가 적용되어야 한다라는 것이다.
13세기 Thomas de Chobham은,
"매춘부는 노동자로 분류되어야 한다. 자기 몸을 임대하는 형태로 노동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다른 직업 종사자나 노동자와 동일하다. 이는 합법적인 직업이고 창녀가 세속적인 기준으로 정당한 화대를 받으면 문제될게 없다. 만일 그들이 회개한다면 자선의 목적으로 매춘에서 계속 이윤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쾌락을 위해 윤락을 하고 즐거움을 얻기 위해 몸을 파는 것이라면 그것은 노동이 아니므로 그 댓가로 임금을 받는일은 그 행위 만큼이나 수치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성병에 걸린 교황 식스투스 4세가 1471년 도입한 매춘부의 면허와 직접과세에 의한 세금이 로마의 성베드로 성당 건립에 필요한 재원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
깊이 고뇌하는 그들에게는,
삶 자체가 하나의 엄청난 오류이다.
| 2006-03-29 22:51
성에 대한 혐오감과 금욕의 주창자들인 기독교의 교부들...
* 성 아우구스티누스 : "매춘을 억압하면 변덕스러운 욕정이 사회를 전복할 것이다"
* 성 토마스 아퀴나스 : "도시에서 매춘은 왕궁의 시궁창과 같다. 시궁창을 없애버리면 궁에는 더럽고 역겨운 냄새가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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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교부들은, 이렇듯 욕정에 찬 남자들이 내 아내와 딸을 둘러싸고 있는 비극을 해결하기 위한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결론으로 사회적 필요악으로 규정한 것이다. "성(性)"이 신의 수준으로 격상되는 것을 가로막는 성적 배설물을 흡수하기 위해 존재하는 시궁창과 같은 존재로 매춘부를 자리매김한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역사적인 직업에 대해 기독교 교회법에서는 종교적, 도덕적 매도 대신에 보다 현실적이고 도전적인 정책을 취하게 된다. 바로 성(性) 산업/노동으로 부터 비롯되는 "이윤"의 문제이다. 자본주의적인 (직업)윤리가 적용되어야 한다라는 것이다.
13세기 Thomas de Chobham은,
"매춘부는 노동자로 분류되어야 한다. 자기 몸을 임대하는 형태로 노동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다른 직업 종사자나 노동자와 동일하다. 이는 합법적인 직업이고 창녀가 세속적인 기준으로 정당한 화대를 받으면 문제될게 없다. 만일 그들이 회개한다면 자선의 목적으로 매춘에서 계속 이윤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쾌락을 위해 윤락을 하고 즐거움을 얻기 위해 몸을 파는 것이라면 그것은 노동이 아니므로 그 댓가로 임금을 받는일은 그 행위 만큼이나 수치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성병에 걸린 교황 식스투스 4세가 1471년 도입한 매춘부의 면허와 직접과세에 의한 세금이 로마의 성베드로 성당 건립에 필요한 재원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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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고뇌하는 그들에게는,
삶 자체가 하나의 엄청난 오류이다.
| 2006-03-29 22:51
Thursday, July 04, 2013
라이프니츠라는 어느 한 '미치광이'에 대한 발견??
[Scrap] 움베르토 에코, [문학의 광인들], 『미네르바 성냥갑』
한 달쯤 전에 나는 어느 유명한 수학자와 이야기하게 되었는데,
그는 놀란 표정으로 라이프니츠가 미치광이었다는 사실을 나에게 폭로하였다.
"세상에, 내가 발견했는데 말이야,
수학과 논리학에 대해 정말로 천재적인 글을 쓴 이 사람이
정신착란과도 같은 상상력으로 단자(單子)와 예정조화에 대한
작은 저술들도 했더군!"
Transferred from NAVER Blog | 2007.07.15 22:34
Our electrically-configured whirl.. Surfing...
[The Medium is the Massage] by Marshall McLuhan, 1967
Anyway...this is strongly reminiscent of G. Deleuze's words..
"All the new sports-surfing, windsurfing,
hang-gliding-take the form of entering into an existing wave.
There's no longer an origin as starting point,
but a sort of putting-into-orbit.
The key thing is how to get taken up in the motion of a big wave,
a column of rising air, to "get into something" i
nstead of being the origin of an effort"
- G. Deleze,
"이미 존재하는 파동 위로 개입 하는 것.
출발점으로서의 기원이 있는 것이 아니라,
궤도 진입방식이 있을 뿐이다.
거대한 파도나 상승기류의 운동 속에 어떻게 스스로를 밀어 넣는가,
힘쓰기의 기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이에 들어가는가' 하는 것이 중요.."
- 들뢰즈(G. Deleuze)
죽음은 정해진 운명이 아니라 만남, 마주침이다
Death is a rendez-vous, not an objective destiny….
At the same time, Death is an innocent player in the game.
This is what gives the story its secret irony,
whose resolution appears as a stroke of wit,
and provides us with such sublime pleasure -
and distinguishes it from a moral fable or a vulgar tale about the death instinct.
This is what gives the story its secret irony,
whose resolution appears as a stroke of wit,
and provides us with such sublime pleasure -
and distinguishes it from a moral fable or a vulgar tale about the death instinct.
죽음은 정해진 운명이 아니라 만남, 마주침이다.
랑데뷰(rendez vous).. 회합, 약속된 만남…
혹은 조우(遭遇)
- 쟝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의 『유혹(Seduction)』 중
Friday, August 31, 2012
내맘 대로 읽는 중용(中庸) 시리즈
July 28, 2010
내맘 대로 읽는 중용(中庸) 시리즈...(I)
스승께서 현세에서는 중용의 도가 실천되고 있지 못함에 탄식하다. 세상이 자꾸 혼탁해지고 아래로 일반백성으로 부터 위로 제후에 이르기 까지 이익과 욕망을 추구하고 중용에 역행하는 것에 대한 탄식...
그 이면에는 한편으로 과거 요순(堯舜) 시절의 이상향에 대한 향수가 있다. 문제는 그런 좋았던 옛 시절에의 향수는 종종 반동(反動)을 꿈꾼다. 마치 한국사회에서의 "잃어버린 10년"을 회복하고자 하는 프로파갠더 처럼..
子曰(자왈), 中庸其至矣乎(중용기지의호), 民鮮能(민선능), 久矣(구의)
우리시대의 스승들(!) 또한 가히 오래전의 스승(공자) 못지 않게 정직하지 못하고, 도를 실천하지 못하는 무지몽매한 민초의 빰을 친다.
- 국회의원 안상수曰 : ”우리 사회는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 삼성회장 이건희曰 : "모든 국민이 정직했으면 좋겠습니다. 거짓말 없는 세상이 되길 바랍니다”
July 28, 2010
내맘 대로 읽는 중용(中庸) 시리즈...(II)
군자의 중용이란 현실의 진면목에서 시중(時中)을 행 함이라. 그러기 위해서는 도덕 ; 현실에 대한 인식과 판단의 준거(道)와 삶의 기예(德)를 구비하여 작은 돌부리에도 걸려 넘어지지 않는 균형 감각을 길러야 한다 (中庸 - 2장)
君子之中庸也(군자지중용야)
君子而時中(군자이시중)...
군자의 삼위일체 ;
- 일위관지(一爲貫之)의 도(道)
- 사회.정치적 권력장내에서의 때와 역학관계/현실상황/세력지형도에 대한 이해(知時識勢),
- 그리고 그것에 대한 대처 능력, 삶의 기예(德)가 필요하다.
July 28, 2010
내맘 대로 읽는 중용(中庸) 시리즈...(III)
순왕이 우왕에게 권력을 넘겨주면서 한마디 하다; 권력이란 사람의 마음을 위태롭게 하고 道란 눈을 씻고 찾아보기 힘드니, Blade Runner 혹은 작두타는 무당처럼 조심하고 조심해야 그 중심을 잡을 수 있다
인심유위(人心惟危), 도심유미(道心惟微), 유정유일(惟精惟一), 윤집궐중(允執厥中) - 中庸章句 序
July 28, 2010
내맘 대로 읽는 중용(中庸) 시리즈...(IV)
伐柯如何(벌가여하), 非斧不克(비부불극)...
伐柯伐柯(벌가벌가), 其則不遠(기칙불원)
- 시경, 벌가(伐柯)
도끼자루 만들 땐 도끼로 나무를 찍어 자르듯, 그 해법을 먼 곳에서 찾지 말고 주변에서 구하라. 道 혹은 사물의 방식은 그다지 먼 곳에 있지 않으니.... (中庸 13장)
July 28, 2010
내맘 대로 읽는 중용(中庸) 시리즈...(V)
군자의 道를 말하다 :
"자고로 나라에 도가 있으면 목소리를 높여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려고 노력하고, 나라에 도가 없으면 침묵으로 보신하라"는 명철보신(明哲保身)의 '곤란한' 처세술을 논하다 (중용 聖人之道) #Confucius
- 지금은 곤란하다, 조금만 기다려보자??
...국유도(國有道), 기언족이흥(其言足而興), 국무도(國無道), 기묵언이용(其墨言而容) 시왈(詩曰), 기명차철(旣明且哲), 이보기신(以保其身), 기차지위여(其此之謂與)...
July 28, 2010
내맘 대로 읽는 중용(中庸) 시리즈...(VI)
신독(愼獨) ;
"미세한 마음의 떨림"에 귀기울이고, 자신을 속이는 것을 가장 두려워 하라... 중용의 도는 남에게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자기내면의 어둠과 상념을 두려워하고 바로 세우는 것에 있다 (中庸1장)
是故君子(시고군자)
戒愼乎其所不睹(계신호기소부도)
恐懼乎其所不聞(공구호기소불문)
莫見乎隱(막현호은)
莫顯乎微(막현호미)
君子愼其獨也(군자신기독야)
요즘 세간, 특히나 권력의 행태를 보면 자신을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이념과 신념, 신앙만이 100% 옳다는 무서운 독단과 아집이다. 어떤 면에서 나 자신도 그런 것으로 부터 자유롭지는 못하고...
Transferred from NAVER Blog | 2010-05-03 22:09:38
내맘 대로 읽는 중용(中庸) 시리즈...(I)
스승께서 현세에서는 중용의 도가 실천되고 있지 못함에 탄식하다. 세상이 자꾸 혼탁해지고 아래로 일반백성으로 부터 위로 제후에 이르기 까지 이익과 욕망을 추구하고 중용에 역행하는 것에 대한 탄식...
그 이면에는 한편으로 과거 요순(堯舜) 시절의 이상향에 대한 향수가 있다. 문제는 그런 좋았던 옛 시절에의 향수는 종종 반동(反動)을 꿈꾼다. 마치 한국사회에서의 "잃어버린 10년"을 회복하고자 하는 프로파갠더 처럼..
子曰(자왈), 中庸其至矣乎(중용기지의호), 民鮮能(민선능), 久矣(구의)
우리시대의 스승들(!) 또한 가히 오래전의 스승(공자) 못지 않게 정직하지 못하고, 도를 실천하지 못하는 무지몽매한 민초의 빰을 친다.
- 국회의원 안상수曰 : ”우리 사회는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 삼성회장 이건희曰 : "모든 국민이 정직했으면 좋겠습니다. 거짓말 없는 세상이 되길 바랍니다”
July 28, 2010
내맘 대로 읽는 중용(中庸) 시리즈...(II)
군자의 중용이란 현실의 진면목에서 시중(時中)을 행 함이라. 그러기 위해서는 도덕 ; 현실에 대한 인식과 판단의 준거(道)와 삶의 기예(德)를 구비하여 작은 돌부리에도 걸려 넘어지지 않는 균형 감각을 길러야 한다 (中庸 - 2장)
君子之中庸也(군자지중용야)
君子而時中(군자이시중)...
군자의 삼위일체 ;
- 일위관지(一爲貫之)의 도(道)
- 사회.정치적 권력장내에서의 때와 역학관계/현실상황/세력지형도에 대한 이해(知時識勢),
- 그리고 그것에 대한 대처 능력, 삶의 기예(德)가 필요하다.
July 28, 2010
내맘 대로 읽는 중용(中庸) 시리즈...(III)
순왕이 우왕에게 권력을 넘겨주면서 한마디 하다; 권력이란 사람의 마음을 위태롭게 하고 道란 눈을 씻고 찾아보기 힘드니, Blade Runner 혹은 작두타는 무당처럼 조심하고 조심해야 그 중심을 잡을 수 있다
인심유위(人心惟危), 도심유미(道心惟微), 유정유일(惟精惟一), 윤집궐중(允執厥中) - 中庸章句 序
July 28, 2010
내맘 대로 읽는 중용(中庸) 시리즈...(IV)
伐柯如何(벌가여하), 非斧不克(비부불극)...
伐柯伐柯(벌가벌가), 其則不遠(기칙불원)
- 시경, 벌가(伐柯)
도끼자루 만들 땐 도끼로 나무를 찍어 자르듯, 그 해법을 먼 곳에서 찾지 말고 주변에서 구하라. 道 혹은 사물의 방식은 그다지 먼 곳에 있지 않으니.... (中庸 13장)
July 28, 2010
내맘 대로 읽는 중용(中庸) 시리즈...(V)
군자의 道를 말하다 :
"자고로 나라에 도가 있으면 목소리를 높여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려고 노력하고, 나라에 도가 없으면 침묵으로 보신하라"는 명철보신(明哲保身)의 '곤란한' 처세술을 논하다 (중용 聖人之道) #Confucius
- 지금은 곤란하다, 조금만 기다려보자??
...국유도(國有道), 기언족이흥(其言足而興), 국무도(國無道), 기묵언이용(其墨言而容) 시왈(詩曰), 기명차철(旣明且哲), 이보기신(以保其身), 기차지위여(其此之謂與)...
July 28, 2010
내맘 대로 읽는 중용(中庸) 시리즈...(VI)
신독(愼獨) ;
"미세한 마음의 떨림"에 귀기울이고, 자신을 속이는 것을 가장 두려워 하라... 중용의 도는 남에게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자기내면의 어둠과 상념을 두려워하고 바로 세우는 것에 있다 (中庸1장)
是故君子(시고군자)
戒愼乎其所不睹(계신호기소부도)
恐懼乎其所不聞(공구호기소불문)
莫見乎隱(막현호은)
莫顯乎微(막현호미)
君子愼其獨也(군자신기독야)
요즘 세간, 특히나 권력의 행태를 보면 자신을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이념과 신념, 신앙만이 100% 옳다는 무서운 독단과 아집이다. 어떤 면에서 나 자신도 그런 것으로 부터 자유롭지는 못하고...
Transferred from NAVER Blog | 2010-05-03 22:09:38
『나라야마부시고(楢山節考)』
『나라야마부시고(楢山節考)』 - 첫번째 | 2007/08/22 01:55
근 10 여년 만인가? 나라야마부시고(楢山節考)를 다시 읽게 되었다... 어찌어찌 버려지지 않고 책장 한켠을 지켜온 "이문열 세계명작 산책 2(죽음의 미학)"을 10 년이 지나 다시금 손에 쥐었다. 오늘 다시 읽는, 예전의 그 이야기는 젊은시절의 감흥과는 다른 또다른 감회이다.
나라야마(楢山)-졸참나무산, 그 곳은 자연적, 생물학적 죽음이 아닌, '사회적 죽음'을 맞이하는 공간으로 그려진다. 경제적 빈궁에 대처하기 위해 자연스레 형성된 일상의 삶의 결과-사회적 관습-이 강제하는 죽음은 가히 먼 옛날이나 가상의 세계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리라..
고도문명사회(!)인 "선진국"을 향해 매진하는 오늘날 그 동안 겪은 우리 사회의 경험들-"퇴출"-과 무에 그리 차이가 있겠는가? 오히려, 오린 할머니의 "기꺼이" 받아들이는 죽음은 더욱 치열해진 현대적 삶의 참혹한 현실에 비하면 가히 목가적이고 철학적이다.
"고려장"... 아마도 그것은 후대에 씌워진 과거에 대한 오만한 폄하이리라. 그나저나 MC Sniper의 "고려장"이라는 노래를 듣노라면 가슴을 파고 헤집는 통한을 느끼게 되지만... 실상은 멀리 떨어져 계신 부모, 조부모님께 따뜻한 전화 한 통 드리지 못하는 내 모습은 가히 졸참나무산으로 늙은 부모를 모시는 닷뻬이 보다 무에 그리 낫다 하겠는가...
『나라야마부시고(楢山節考)』 - 두번째 | 2009-02-03 02:45:29
문화-사회적 풍습, 또는 근본적으로는 경제적 이유로 인한 삶으로부터의 강제적 퇴출.
이 소설은 이상하게도 그 묘한 매력에 자꾸 읽게 된다. 뭐 작가와의 정신적 감응성 파동이 일치하거나, 또는 소설이 나타내주는 이미지에 대한 정서적 함몰성이 강해서 그럴 수도…
오린 할머니는 자신의 죽음을 회피하거나 비껴서지 않으며 오히려 정성껏, 기쁜 마음으로 준비한다. 홀아비가 된 아들의 며느리도 들이고, 졸참나무산으로 가는 날 손님들에게 대접 할 음식이며 술도 준비하고, 나이 칠십이 가까왔음에도 부끄럽게도 튼튼한 이빨을 부싯돌로 깨뜨리기도 하며…
오린은 오래 전부터 졸참나무산으로 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터였다. 갈 때에 한 잔씩 대접할 술도 미리 장만하지 않으면 안되었고, 산으로 가서 깔고 앉을 깔개 같은 것은 벌써 3년 전부터 만들어 두고 있었던 것이다.
오린은 주위에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자 부싯돌을 집어 들었다. 입을 벌리고 아래위 앞니를 부싯돌로 딱딱 쪼아 댔다. 단단한 생 이빨을 두들겨서 망가뜨리려 하는 것 이었다. 쿵 쿵 하고 머리가 울려서 기분 나쁘게 아팠다. 하지만 참고 계속해서 두드려 대면 언젠가는 이가 빠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빠지는 것이 하나의 낙처럼 되어 있어, 요즘은 그 아픔마저 차라리 기분이 좋아질 정도가 되어 있었다.
졸참나무산으로 들어갈 때까지 이 이빨 만은 어떤 수를 써서라도 빼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졸참나무산으로 갈 때에는 닷뻬이 등의 등판대기에 얹혀서, 이도 빠진 얌전한 늙은이가 되어서 가고 싶었다. 그래서 아무도 모르게 이가 빠지도록 부싯돌로 쪼아서 망가뜨리려고 했던 것이다.
척박한 현실의 삶이 가하는 고통과 경제적 제약은 늙은이를 잉여인간으로 만들내며 그 잉여인간로 하여금 사회와 삶으로 부터의 퇴출을 최촉한다.
육근 육근 육근이여
수행은 편할 것 같지만
편하질 않지
어깨는 무겁고
짐은 괴롭고
아 육근청정 육근청정
나라야마(楢山) ; 졸참나무산으로 갈때 부르는 노래이다.
장송곡이라 함이 옳겠다.
오린 할머니가 그 졸참나무산으로 가던 날, 그녀의 소원대로 하얀 함박눈이 내려 그녀의 죽음을 축복한다...
오린은 꺼림칙해하는 닷뻬이를 한바탕 꾸짖듯이 채근해서 졸참나무산으로 떠나게 되었던 것이다. 한밤중에 그 다음날 온 가족이 먹을 흰 밥도 지어놓았고 표고도 송어도 다마에게 미리 잘 알려 주었다. 온 가족이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뒷문을 살그머니 열었다. 그리고 거기서 닷뻬이가 둘러멘 등판때기에 올라탄 것이다. 바람은 그다지 불지 않았지만 꽤나 추운 밤이었고, 하늘은 잔뜩 흐려서 달빛마저 없는 칠흑같이 어두운 길을 닷뻬이는 장님 걷듯이 더듬거리며 걸어 갔다. 오린과 닷뻬이가 나간 뒤에 다미는 이불을 들치고 일어났다. 그리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루터기에다 두 손을 짚고 칠흑 어둠 속을 뚫어 보며 그녀대로 전송을 하였다.
닷뻬이는 바위 그늘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거기에는 눈앞에 오린이 앉아 있었다. 등에서 머리 위로 깔개를 짊어지다시피 올려놓고 눈을 피하고 있었으나, 앞머리에도 가슴에도 무릎에도 눈은 덮여 있어, 마치 흰 여우마냥 한 곳만을 뚫어 지게 바라보면서 염불을 외고 있었다.
닷뻬이는 커다란 목소리로, “어머니, 눈이 와요” 오린은 조용히 손을 내밀어 닷뻬이 쪽으로 흔들었다. 그건 돌아가거라, 돌아가거라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어머니, 꽤나 춥지요 잉”
오린은 몇 번 거푸 머리를 모로 저었다. “어머니 눈이 와서 운이 좋으시겠구먼요” 그리곤 다시 “산으로 가는 날에…” 하고 노래가락 문구를 덧 붙였다.
눈송이는 더욱 굵어져 탐스러운 함박눈이었다. 닷뻬이가 마을로 돌아왔을 때는 벌써 해가 지고 어두워져 있었다.
게사요시는 간밤에 치르고 남은 술을 마시고 취한 모양으로 몽롱한 눈으로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운이 좋아, 눈이 와서 할매는 엄청나게 운이 좋아. 야아 정말로 눈이 왔군” 하고 신이나서 감격하고 있었다.
죽음이라기 보단 자살이다. 강제된 그러나 기꺼이 받아들이는 그런 자살.
이 소설은 오래전에 영화로도 만들어져 개봉되기도 하였다. 영화 또한 소설의 텍스트적 이미지를 시각적 이미지로 잘 표현한 것 같다.
근 10 여년 만인가? 나라야마부시고(楢山節考)를 다시 읽게 되었다... 어찌어찌 버려지지 않고 책장 한켠을 지켜온 "이문열 세계명작 산책 2(죽음의 미학)"을 10 년이 지나 다시금 손에 쥐었다. 오늘 다시 읽는, 예전의 그 이야기는 젊은시절의 감흥과는 다른 또다른 감회이다.
나라야마(楢山)-졸참나무산, 그 곳은 자연적, 생물학적 죽음이 아닌, '사회적 죽음'을 맞이하는 공간으로 그려진다. 경제적 빈궁에 대처하기 위해 자연스레 형성된 일상의 삶의 결과-사회적 관습-이 강제하는 죽음은 가히 먼 옛날이나 가상의 세계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리라..
고도문명사회(!)인 "선진국"을 향해 매진하는 오늘날 그 동안 겪은 우리 사회의 경험들-"퇴출"-과 무에 그리 차이가 있겠는가? 오히려, 오린 할머니의 "기꺼이" 받아들이는 죽음은 더욱 치열해진 현대적 삶의 참혹한 현실에 비하면 가히 목가적이고 철학적이다.
"고려장"... 아마도 그것은 후대에 씌워진 과거에 대한 오만한 폄하이리라. 그나저나 MC Sniper의 "고려장"이라는 노래를 듣노라면 가슴을 파고 헤집는 통한을 느끼게 되지만... 실상은 멀리 떨어져 계신 부모, 조부모님께 따뜻한 전화 한 통 드리지 못하는 내 모습은 가히 졸참나무산으로 늙은 부모를 모시는 닷뻬이 보다 무에 그리 낫다 하겠는가...
『나라야마부시고(楢山節考)』 - 두번째 | 2009-02-03 02:45:29
문화-사회적 풍습, 또는 근본적으로는 경제적 이유로 인한 삶으로부터의 강제적 퇴출.
이 소설은 이상하게도 그 묘한 매력에 자꾸 읽게 된다. 뭐 작가와의 정신적 감응성 파동이 일치하거나, 또는 소설이 나타내주는 이미지에 대한 정서적 함몰성이 강해서 그럴 수도…
오린 할머니는 자신의 죽음을 회피하거나 비껴서지 않으며 오히려 정성껏, 기쁜 마음으로 준비한다. 홀아비가 된 아들의 며느리도 들이고, 졸참나무산으로 가는 날 손님들에게 대접 할 음식이며 술도 준비하고, 나이 칠십이 가까왔음에도 부끄럽게도 튼튼한 이빨을 부싯돌로 깨뜨리기도 하며…
오린은 오래 전부터 졸참나무산으로 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터였다. 갈 때에 한 잔씩 대접할 술도 미리 장만하지 않으면 안되었고, 산으로 가서 깔고 앉을 깔개 같은 것은 벌써 3년 전부터 만들어 두고 있었던 것이다.
오린은 주위에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자 부싯돌을 집어 들었다. 입을 벌리고 아래위 앞니를 부싯돌로 딱딱 쪼아 댔다. 단단한 생 이빨을 두들겨서 망가뜨리려 하는 것 이었다. 쿵 쿵 하고 머리가 울려서 기분 나쁘게 아팠다. 하지만 참고 계속해서 두드려 대면 언젠가는 이가 빠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빠지는 것이 하나의 낙처럼 되어 있어, 요즘은 그 아픔마저 차라리 기분이 좋아질 정도가 되어 있었다.
졸참나무산으로 들어갈 때까지 이 이빨 만은 어떤 수를 써서라도 빼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졸참나무산으로 갈 때에는 닷뻬이 등의 등판대기에 얹혀서, 이도 빠진 얌전한 늙은이가 되어서 가고 싶었다. 그래서 아무도 모르게 이가 빠지도록 부싯돌로 쪼아서 망가뜨리려고 했던 것이다.
척박한 현실의 삶이 가하는 고통과 경제적 제약은 늙은이를 잉여인간으로 만들내며 그 잉여인간로 하여금 사회와 삶으로 부터의 퇴출을 최촉한다.
육근 육근 육근이여
수행은 편할 것 같지만
편하질 않지
어깨는 무겁고
짐은 괴롭고
아 육근청정 육근청정
나라야마(楢山) ; 졸참나무산으로 갈때 부르는 노래이다.
장송곡이라 함이 옳겠다.
오린 할머니가 그 졸참나무산으로 가던 날, 그녀의 소원대로 하얀 함박눈이 내려 그녀의 죽음을 축복한다...
오린은 꺼림칙해하는 닷뻬이를 한바탕 꾸짖듯이 채근해서 졸참나무산으로 떠나게 되었던 것이다. 한밤중에 그 다음날 온 가족이 먹을 흰 밥도 지어놓았고 표고도 송어도 다마에게 미리 잘 알려 주었다. 온 가족이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뒷문을 살그머니 열었다. 그리고 거기서 닷뻬이가 둘러멘 등판때기에 올라탄 것이다. 바람은 그다지 불지 않았지만 꽤나 추운 밤이었고, 하늘은 잔뜩 흐려서 달빛마저 없는 칠흑같이 어두운 길을 닷뻬이는 장님 걷듯이 더듬거리며 걸어 갔다. 오린과 닷뻬이가 나간 뒤에 다미는 이불을 들치고 일어났다. 그리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루터기에다 두 손을 짚고 칠흑 어둠 속을 뚫어 보며 그녀대로 전송을 하였다.
닷뻬이는 바위 그늘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거기에는 눈앞에 오린이 앉아 있었다. 등에서 머리 위로 깔개를 짊어지다시피 올려놓고 눈을 피하고 있었으나, 앞머리에도 가슴에도 무릎에도 눈은 덮여 있어, 마치 흰 여우마냥 한 곳만을 뚫어 지게 바라보면서 염불을 외고 있었다.
닷뻬이는 커다란 목소리로, “어머니, 눈이 와요” 오린은 조용히 손을 내밀어 닷뻬이 쪽으로 흔들었다. 그건 돌아가거라, 돌아가거라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어머니, 꽤나 춥지요 잉”
오린은 몇 번 거푸 머리를 모로 저었다. “어머니 눈이 와서 운이 좋으시겠구먼요” 그리곤 다시 “산으로 가는 날에…” 하고 노래가락 문구를 덧 붙였다.
눈송이는 더욱 굵어져 탐스러운 함박눈이었다. 닷뻬이가 마을로 돌아왔을 때는 벌써 해가 지고 어두워져 있었다.
게사요시는 간밤에 치르고 남은 술을 마시고 취한 모양으로 몽롱한 눈으로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운이 좋아, 눈이 와서 할매는 엄청나게 운이 좋아. 야아 정말로 눈이 왔군” 하고 신이나서 감격하고 있었다.
죽음이라기 보단 자살이다. 강제된 그러나 기꺼이 받아들이는 그런 자살.
이 소설은 오래전에 영화로도 만들어져 개봉되기도 하였다. 영화 또한 소설의 텍스트적 이미지를 시각적 이미지로 잘 표현한 것 같다.
푸코(Foucault)에 대한 철학적 초상화(肖像畵)
『푸코의 초상화』, 질 들뢰즈(Gilles Deleuze), 1986년 클레르 파르네(Claire Parnet)와의 회견
- 【대담 1972~1990】 김종호 옮김, 솔, 1995 中
푸코의 죽음을 통해서만 오는 것, ‘바로 그’ 라고 말할 수 있게 하는 그 최후의 초상을 위해서 『푸코(Foucault)』(Minuit, 1986)라는 책을 썼다라는 들뢰즈.
푸코의 초상화는 어찌보면 들뢰즈 자신의 초상화인지도 모른다.
푸코에 대한 들뢰즈의 이야기는 꼭 자신의 삶과 철학, 그리고 죽음을 그대로 이야기 하고 있다. 그의 말대로 죽음과 자살을 구분 못하게 만드는 일종의 가속 위에서 그의 사유-철학의 잠수질은 위기를 통해 진행되었고, 궁극에는 ‘전 인생을 사로잡는 하나의 예술’이라는 자살로 막을 내리게 된다.
들뢰즈와 처음 인연은 강원도 동송읍 오지리라는 곳에서 군 생활을 하고 있을 때, 우연히 읽었던 일간지 신문에 실렸던 그의 죽음의 소식을 통해서였다. 부고(訃告)를 통한 조우(遭遇).
| 2009-02-06 00:02:22
- 【대담 1972~1990】 김종호 옮김, 솔, 1995 中
푸코의 죽음을 통해서만 오는 것, ‘바로 그’ 라고 말할 수 있게 하는 그 최후의 초상을 위해서 『푸코(Foucault)』(Minuit, 1986)라는 책을 썼다라는 들뢰즈.
푸코적 폭력, 그에게는 극도의 맹렬성, 억제되고 용기로 화한 맹렬성이 있었지요. (그는) ‘정열’이라는 단어에 아주 정확한 의미를 부여한 사람, 정열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정열적인 인간은 마치 에이합 선장처럼 고래를 쫓다가 죽는 것과 같습니다. 그는 선을 넘어갑니다. 푸코의 죽음에는 그같은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죽음과 자살을 구분 못하게 만드는 일종의 가속(加速) 같은 것이 있는지…
정열, 그는 그것을 고전작가들 처럼 하나의 점으로 삼지 않고, 우리가 끊임없이 마주치고 그것이 끝날 때까지 양쪽으로 넘나들어야 하는 하나의 선으로 취급했습니다.
멜빌(Melville)도 얘기한 바 있지요 “나는 잠수하는 사람은 다 좋아한다. 수면가까이에서는 어떤 고기든 헤엄칠 수 있지만, 5해리 이상 내려갈 수 있는 것은 큰 고래뿐이다… 태초부터 사유의 잠수자들은 충혈된 눈을 하고 수면으로 돌아 왔다”. 극도의 육체적 훈련되 위험이 있지만 사유 역시 극단적이고 숨가뿐 훈련입니다. 사유를 하게 되면 삶과 죽음, 이성과 광기가 한데 어우러지고 있는 하나의 선(線)과 마주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선이 사유자를 끌어갑니다. 사유는 그 마녀적 선 위에서만 이루어 집니다.
그 선은 윤곽이라곤 없지만 그렇다고 추상적인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사유속에 있다기 보다 사물속에 있는 것이지만, 사유가 광기 같은 것과 마주치는 곳, 그리고 삶이 죽음 같은 것과 마주치는 곳이면 어디든지 있습니다.
그 선은 치명적인 것입니다. 너무나도 난폭하고 너무도 급하게 우리를 숨쉴 수 없는 곳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그것은 에이합선장의 편집광에서 보듯이 착란과 광기가 되고 맙니다. 그 선은 건너야 할 것일 뿐만 아니라 살만한 것, 실행하고 사유할 만한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위에 살기 위하여 선을 구부리는 것… 선의 접힘, 바로 그 자체가 푸코가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그것을 “주관화 과정” 이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굴곡 속의 삶.
주관화, 즉 외부의 선을 굴곡짓는 작업, 그것은 선과 대면하고 선에 올라타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이렇게 되면 아마도 죽음-자살로 향하게 되겠지만, 자살은 전 인생을 사로잡는 하나의 예술이 되는 것이지요.
푸코의 초상화는 어찌보면 들뢰즈 자신의 초상화인지도 모른다.
푸코에 대한 들뢰즈의 이야기는 꼭 자신의 삶과 철학, 그리고 죽음을 그대로 이야기 하고 있다. 그의 말대로 죽음과 자살을 구분 못하게 만드는 일종의 가속 위에서 그의 사유-철학의 잠수질은 위기를 통해 진행되었고, 궁극에는 ‘전 인생을 사로잡는 하나의 예술’이라는 자살로 막을 내리게 된다.
들뢰즈와 처음 인연은 강원도 동송읍 오지리라는 곳에서 군 생활을 하고 있을 때, 우연히 읽었던 일간지 신문에 실렸던 그의 죽음의 소식을 통해서였다. 부고(訃告)를 통한 조우(遭遇).
| 2009-02-06 00:02:22
Tuesday, August 28, 2012
감히 박근혜가 전태일을 모욕하려 하는가?
전태일을 기억하며,,,
MC Sniper가 부르는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살기 위해 허리띠를 조인 작업장안의 꼬마는
너무나도 훌쩍 커버린 지금 우리네 아버지,
무엇이 이들의 영혼을 분노케 했는지..."
Saturday, August 25, 2012
조선시대 온실
조선시대 온실에 대해 최초로 기록된 세종실록에 의하면, 1438년경 강화도에 옮겨 심은 귤나무가 겨울을 날 수 있는지 시험하기 위해 온돌난방을 이용하여 감귤재배 온실을 제작, 활용하였다고 한다.
또한 1450년대에 편찬된 산가요록(山家要錄)의 동절양채(冬節養蔡)편에는 겨울철에 난방시설을 갖춘 과학적 온실에서 채소와 과일을 재배, 관리하는 요령을 자세하게 소개하였다. 이는 기존 과학적 난방온실의 시초로 알려져 왔던 1619년 독일 하이델베르크의 난로를 이용한 단순난방온실보다 180년이나 앞선 것으로, 조선시대의 온실이 세계최초의 과학적 난방온실임이 확인되었다. 조선의 온실이 세계최초의 과학영농온실로 부각될 수 있는 이유는 온실이 갖추어야 할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1450년대에 편찬된 산가요록(山家要錄)의 동절양채(冬節養蔡)편에는 겨울철에 난방시설을 갖춘 과학적 온실에서 채소와 과일을 재배, 관리하는 요령을 자세하게 소개하였다. 이는 기존 과학적 난방온실의 시초로 알려져 왔던 1619년 독일 하이델베르크의 난로를 이용한 단순난방온실보다 180년이나 앞선 것으로, 조선시대의 온실이 세계최초의 과학적 난방온실임이 확인되었다. 조선의 온실이 세계최초의 과학영농온실로 부각될 수 있는 이유는 온실이 갖추어야 할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산가요록』의 기록에 따르면 조선 온실의 특징은,,,
첫째, 지중난방을 위하여 구들이라는 특수한 기법 도입
둘째, 황토 흙벽을 통하여 단열과 보온의 효과를 극대화
셋째, 한지에 기름을 발라서 채광을 통해 실내온도를 높이고 보습통풍의 장점을 살림
넷째, 가마솥에 가열된 수증기를 실내에 넣어 온도와 습도를 동시에 높여주는 복합난방 도입
<강화도 농경문화원에 조성된 조선시대 온실 모형>
Friday, August 24, 2012
Rolling in the Deep :: Vazquez, Maddi Jane and Marina
어린 아이들이 소름 끼칠 정도로 노래를 잘 한다...
[ Vazquez - Rolling In The Deep ]
[ Maddi Jane - Rolling in the Deep ]
[ Marina - Rolling in the Deep ]
Thursday, August 23, 2012
소리꾼, 장사익의 노래... 귀가 (歸家)
"기진한 몸
텅 빈 가슴으로
돌아와 문을 열면
부시시 잠 깨어
강아지들 처럼
기어 나오는
아이들을 보고야
텅 빈 가슴이
출~렁 채워집니다
아~~~"
- 정성균 詩
Monday, August 06, 2012
하룻밤의 지식여행 『이슬람』, 김영사
하룻밤의 지식여행 『이슬람』, 김영사…. 와는 무관한 각주(脚註)
1. 변방 : 역사적으로 '변방'은 쫓겨난 지식과 종교의 자궁이었다; 인도에서 일어난 불교의 씨앗은 힌두교의 그늘에 쫓겨 중국에서 자랐으며,예루살렘에서 일어난 기독교의 씨앗은 유대교의 그늘에 쫓겨 근동과 로마에서 자랐으며, 그리스의 고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중세 기독교의 그늘에 쫓겨 아랍에서 그 생명을 유지하고 번창하였다
2. 원리주의 : 하나의 신, 하나의 진리, 하나의 종교, 하나의 교단... 문제는 그런 원리주의가 세상(전 우주)에 오직 '하나"만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가공스러운 사실이다.
3. 피를 먹고 자라는 종교 : 피는 희생의 제의로 합리화 된다. 그 희생 제의의 형태는 다양하다 ; - 개인적 차원에서의 은밀한 의식. 고난/고통의 내면화, 혹은 외면화 과정에서의 인내와 참회. - 기도와 집회에서의 신의 노여움을 풀거나 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 바치는 제물. - 공개적이고 적대적인 집단행동. -이교도/마녀사냥, 사악한 무리를 제거하기 위한 종교 전쟁, 성전 등…
4. "신은 죽었다"라는 말... 그것의 또 다른 의미는 (이교도의) 신들은 제거, 말살되어져야 했고, 오직 하나의 신 만이 그 패권적 지위를 차지해야 하는 신들의 전쟁에서 지워져 버린 잡신들에 대한 조사(弔辭)이다.
5. 이슬람 신앙고백(샤하다, Shahaadah) ; 신앙고백은 부정(否定)과 단언(斷言)으로 구성된다 ; - 부정(타우히드, Tawheed) : "알라 외에는 신은 없다" - 단언/확언 : "마호메트는 알라의 사도(使徒)이다" ; 무슬림이 된다라는 것은 위의 '신앙고백'을 통해서 이다.
6. 서양이 아랍(이슬람)으로부터 표절한 목록들
. 그리스 철학 :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신플라톤주의 …
. 대학시스템(의자까지 포함하여 모조리)
. 수학 : 0, 아라비아 숫자, 대수학, 다차원 방정식
. 시험관 플라스크
. 광학
. 병원, 수술도구
. 도서관, 카달로그, 분류학
. 출판산업 - 서점 시스템
. 항해술, 지도
. 천문학
. 의학, 특히 이븐 시나와 알 라지의 "의학대전"
7. 아랍의 대표적인 고대 그리스 철학 대가들 ;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고대 그리스 철학은 아랍의 철학자들에 의해 부활되고 주석되며 육성되다. - 알파라비(10세기)의 "철학의 거미발", "이상국가", 그의 이상국가(Utopia)를 토마스 무어가 도용/표절 - 이븐시나(11세기 초) - 이븐루슈드(12세기)
8. 철학 이외에도 수학, 천문학, 광학에서의 지적자산들은 유럽 르네상스의 원류가 되었다. 알 파르가니(870사망)의 <천문학의 원리> 단테가 '비타 누우바", "콘비비오', '희곡'에서 도용. 아븐 알 하이삼의 <<광학의 서>> 베이컨, 다빈치, 케플러, 뉴턴이 표절
| 2009-04-08 23:54:52
1. 변방 : 역사적으로 '변방'은 쫓겨난 지식과 종교의 자궁이었다; 인도에서 일어난 불교의 씨앗은 힌두교의 그늘에 쫓겨 중국에서 자랐으며,예루살렘에서 일어난 기독교의 씨앗은 유대교의 그늘에 쫓겨 근동과 로마에서 자랐으며, 그리스의 고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중세 기독교의 그늘에 쫓겨 아랍에서 그 생명을 유지하고 번창하였다
2. 원리주의 : 하나의 신, 하나의 진리, 하나의 종교, 하나의 교단... 문제는 그런 원리주의가 세상(전 우주)에 오직 '하나"만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가공스러운 사실이다.
3. 피를 먹고 자라는 종교 : 피는 희생의 제의로 합리화 된다. 그 희생 제의의 형태는 다양하다 ; - 개인적 차원에서의 은밀한 의식. 고난/고통의 내면화, 혹은 외면화 과정에서의 인내와 참회. - 기도와 집회에서의 신의 노여움을 풀거나 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 바치는 제물. - 공개적이고 적대적인 집단행동. -이교도/마녀사냥, 사악한 무리를 제거하기 위한 종교 전쟁, 성전 등…
4. "신은 죽었다"라는 말... 그것의 또 다른 의미는 (이교도의) 신들은 제거, 말살되어져야 했고, 오직 하나의 신 만이 그 패권적 지위를 차지해야 하는 신들의 전쟁에서 지워져 버린 잡신들에 대한 조사(弔辭)이다.
5. 이슬람 신앙고백(샤하다, Shahaadah) ; 신앙고백은 부정(否定)과 단언(斷言)으로 구성된다 ; - 부정(타우히드, Tawheed) : "알라 외에는 신은 없다" - 단언/확언 : "마호메트는 알라의 사도(使徒)이다" ; 무슬림이 된다라는 것은 위의 '신앙고백'을 통해서 이다.
6. 서양이 아랍(이슬람)으로부터 표절한 목록들
. 그리스 철학 :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신플라톤주의 …
. 대학시스템(의자까지 포함하여 모조리)
. 수학 : 0, 아라비아 숫자, 대수학, 다차원 방정식
. 시험관 플라스크
. 광학
. 병원, 수술도구
. 도서관, 카달로그, 분류학
. 출판산업 - 서점 시스템
. 항해술, 지도
. 천문학
. 의학, 특히 이븐 시나와 알 라지의 "의학대전"
7. 아랍의 대표적인 고대 그리스 철학 대가들 ;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고대 그리스 철학은 아랍의 철학자들에 의해 부활되고 주석되며 육성되다. - 알파라비(10세기)의 "철학의 거미발", "이상국가", 그의 이상국가(Utopia)를 토마스 무어가 도용/표절 - 이븐시나(11세기 초) - 이븐루슈드(12세기)
8. 철학 이외에도 수학, 천문학, 광학에서의 지적자산들은 유럽 르네상스의 원류가 되었다. 알 파르가니(870사망)의 <천문학의 원리> 단테가 '비타 누우바", "콘비비오', '희곡'에서 도용. 아븐 알 하이삼의 <<광학의 서>> 베이컨, 다빈치, 케플러, 뉴턴이 표절
| 2009-04-08 23:54:52
Saturday, August 04, 2012
Photo Diary_July, 2012
201207032336 로렌의 미술작품들...
201207071309 진천 크리스탈 카운티...
201207281801 집 마당에서 감자튀김을 만드는..
201207281904 오늘 분양 받아온 진도개 한별이.
생후 1.5개월
201207281923 한상 가득 고수(Coriander, 향채라고 불리는).
간만에 고향집에서 맘껏 먹어본다
201207282252 고향의 밤 풍경
201207291131 진도개 한별이가 틈새에 들어가 숨어버렸다.
불러도 나오질 않아..
201207291210 고향집 마당의 꽃...
201207291212 뜨거운 햇살아래 마당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
201207291418 장수목장...
201207301116 빨간 반바지에 쎅쉬한 엉덩이.
마흔다섯의 중년 아저씨,,, 오랜 친구 James君.
열심히 설악산을 오르고 있다.
201207301138 바위의 모습이 특이하다 @설악산
201207301513 저 멀리 중청대피소와 대청봉이 보인다
201207301516 중청대피소에서 바라다 본 속초방향
201207301650 설악산 대청봉에서 살고 있는 다람쥐...
201207310522 저 멀리 산 너머 속초바다위로
수줍게 올라오던 불그레한 불덩이를
자욱한 산 안개가 훔쳐가 버린다
201207311052 대전에 사시는 산똘뱅이 부부님,,,
님들의 자취를 설악산에서 봤습니다...
백두대간 2차 종주를 축하드립니다!!
Friday, August 03, 2012
권태 vs. 정열
끝없는 권태가 사람을 엄습(掩襲) 하였을 때, 그의 동공(瞳孔)은 내부를 향하여 열리리라. 그리하여, 망쇄(忙殺)할 때보다도 몇 배나 더 자신의 내면을 성찰 할 수 있을 것이다.
불나비가 달려들어 불을 끈다. 불나비는 죽었든지 화상을 입었으리라. 그러나 불나비라는 놈은 사는 방법을 아는 놈이다. 불을 보면 뛰어들 줄도 알고… 평상(平常)에 불을 초조히 찾아 다닐 줄도 아는 정열의 생물이니 말이다.
그러나 여기 어디 불을 찾으려는 정열이 있으며, 뛰어들 불이 있느냐? 없다.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암흑은 암흑인 이상, 이 방 좁은 것이나 우주에 꽉찬 것이나 분량상 차이가 없으리라, 나는 이 대소(大小) 없는 암흑 가운데 누워서 숨쉴 것도, 어루만질 것도, 또 욕심나는 것도, 아무것도 없다. 다만 어디까지 가야 끝이 날지 모르는 내일, 그것이 또 창밖에 등대(等待)하고 있는 것을 느끼면서 오들오들 떨고 있을 뿐이다.
- 『권태』, 이상, 1936 中 -
창(窓)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내일'이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
참으로 권태(倦怠)의 궁극이리라…
그 권태속에서 정열을 태우는 것 또한 얼마나 비극적인가를 보여준다.
| 2009-03-05 23:17:31
불 지피기(To Build a Fire)
불 지피기(To Build a Fire) - 잭 런던(Jack London)
-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2. 죽음의 미학】 살림, 1996 中
가혹한 자연 앞에 내던져진 나약한 인간의 죽음에 대한 담담한 이야기
작가의 말처럼 우주공간의 한기(寒氣)가 무방비 상태로 있던 이 지구라는 위성의 끄트머리 부분을 내리쳤고, 때 마침 그 위성의 끄트머리 부분에 있었던 한 사나이에게 그 한기의 엄청난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지면서 얼어 죽어가는 과정을 마치 기록영상처럼 감정이입 없이 보여준다. 소설을 통해서 작가는 자연 앞에 선 인간의 한계에 대한 상상력의 결핍을 역설적으로 보충해 주는 듯 하다.
『숲 속의 죽음』이라는 소설에서 처럼 여기에서도 개가 등장한다.
인간과 함께 하면서 죽음의 과정을 지켜보는 증언자이자, 죽음의 의식을 집행하는 사도처럼...
| 2009-01-31 16:22:49
-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2. 죽음의 미학】 살림, 1996 中
가혹한 자연 앞에 내던져진 나약한 인간의 죽음에 대한 담담한 이야기
동이 텄을 때, 날은 추웠고 하늘은 잿빛이었다. 사나이가 유콘 강가의 주도로를 벗어나 흙으로 된 높은 기슭에 올랐을 때는 지독하게 춥고 잿빛도 더 했다. 맑은 날씨였지만 사물의 위에는 아침을 어둡게 하는 미묘한 우울함 같은 것이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관 보자기 처럼 덮여 있었다.
이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상상력 결핍이었다. 그는 세상 일에 재빠르고 빈틈이 없었다. 하지만 그저 세상 일의 겉에 대해서만 그렇지 그것의 깊은 뜻에 대해서는 무지하였다. 화씨로 마이너스 50도의 온도이니, 물이 어는 온도인 32도에서 부터 따지자면 영하 80도 정도가 되는 셈이다. 이런 기온을 불편할 정도의 취위를 나타내는 것으로만 받아 들였을 뿐, 어떤 한계내의 열과 추위에서만 살 수 있는 온혈 동물로서의 자신의 나약함과 인간 전체의 나약함에 대해 생각하지 못했고, 더 나아가 영생불멸이라는 추측의 차원이라든가 우주에서의 인간의 위치 등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못했다.
사나이의 뒤에는 그 지방 고유의 에스키모 개인 늑대개 한 마리가 따라오고 있었는데, 잿빛 털로 뒤덮여 있고, 사촌격인 야생늑대와 겉으로나 기질로나 거의 다르지 않았다. 개도 이 혹한에 기가 꺽여 있었다. 개는 지금이 길을 나설때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개의 입김이 얼어붙어 털 위에 고운 서리가루처럼 달여 있었는데, 얼어붙은 입김 때문에 개의 빰, 주둥이, 눈썹 부분이 특히 하얗게 보였다. 사나이의 붉은 턱수염과 콧수염에도 마찬가지로 서리가 내렸는데 개의 것 보다 더 단단했다. 이렇듯 쌓이는 모든 것은 고드름 처럼 얼어붙었고, 고드름은 사나이가 따뜻하고 김이 서린 입김을 내 쉴때 마다 점점 길어 졌다.
그는 얼마나 추운지 알아보기 위해 침을 뱉았다. 침이 날카로운 파열음을 내며 얼어 붙어 그를 놀라게 했다. 다시 침을 뱉았다. 그러자 채 눈에 떨어지기도 전에 침이 공중에서 얼어 붙었다.
이미 두 발의 감각은 완전히 사라졌다. 불을 피우기 위해 그는 장갑을 빼야 했기 때문에 손가락도 빠르게 마비되어 갔다. 한 시간에 4마일 정도의 속도로 걸을 때 그의 심장은 피를 몸과 손발 구석구석까지 뿜어 냈다. 그러나 멈추자마자 심장의 고동도 약해졌다. 말하자면, 우주공간의 한기(寒氣)가 무방비 상태로 있던 이 지구라는 위성의 끄트머리 부분을 내리쳤던 것이다. 그리고 사나이는 마침 그 위성의 끄트머리 부분에 있었기 때문에 한기가 내리칠 때 따라오는 엄청난 충격을 고스란히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몸의 피는 그 충격에 뒤로 물러났던 것이다.
불타는 성냥은 피시식하며 눈 속으로 떨어졌지만, 자작나무 껍질에는 불이 붙었다. 마른풀과 아주 작은 나뭇가지를 불 위에 놓기 시작했다. 꽤 큰 새파란 이끼덩어리가 작은 불 바로 위로 떨어졌다. 손가락으로 이끼를 꺼내려고 했으나, 몸은 떨렸기 때문에 이끼에서 빗나갔고, 그 결과 그나마 작은 불 한가운데를 헤집어 놓았다. 아무리 애를 써도 나뭇가지들은 다시 모을 가망이 없을 정도로 산산히 흩어졌다. 하나씩 연기를 피식내고는 나뭇가지의 불이 꺼졌다.
희미하긴 했지만 죽음에 대한 중압적인 공포가 사나이에게 다가왔다. 이번 일이 단순히 손가락과 발가락이 언다든지 혹은 손발을 잃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죽을 가능성이 높은 생사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 때, 공포감은 더욱 커져 갔다.
두 발이 너무 얼어서, 달리다가 땅을 쳐서 몸의 무게를 받을 때에도 느낄 수 없는 정도인데다가 그가 달릴 수 있다는 사실은 너무 신기하였다. 땅 표면 위를 스치듯 지나가는 것 같았고, 땅과는 아무 연관이 없는 것 같았다. 어디선가 날개 달린 머큐리 신의 그림을 본 적이 있는데, 아마도 그 신이 땅을 스치며 다닐때 지금의 자기가 느끼는 것과 같은 기분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도 해 보았다.
그러다가 사나이는 평생 맛본 가운데 가장 편안하고 달콤한 잠에 빠져 들었다. 개는 그를 쳐다보면서 앉아 기다렸다. 짧은 낫이 거의 끝나면서, 긴 황혼이 서서히 다가왔다. 개가 보기에는 불을 피울 기미 같은 것이 없었다. 게대가 개의 경험으로도 눈 속에 이렇듯 앉아서 불을 지피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황혼이 짙어지자 불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억제할 수 없어, 개는 앞발을 높이 쳐들기도 하고 흔들어 대기도 하면서 작은 소리로 낑낑댔다. 잠시 후 개는 큰 소리로 낑낑댔다. 조금더 시간이 흐른 후에 사람 곁으로 바싹 기어들어가 죽음의 냄새를 맡았다. 이 냄새 때문에 개는 털을 꼿꼿이 세우고는 물러 났다. 개는 얼마 동안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가, 차가운 하늘에 높이 솟아 춤추듯 반짝이며 밝게 빛나는 별들 아래서 길게 울부짖었다.
작가의 말처럼 우주공간의 한기(寒氣)가 무방비 상태로 있던 이 지구라는 위성의 끄트머리 부분을 내리쳤고, 때 마침 그 위성의 끄트머리 부분에 있었던 한 사나이에게 그 한기의 엄청난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지면서 얼어 죽어가는 과정을 마치 기록영상처럼 감정이입 없이 보여준다. 소설을 통해서 작가는 자연 앞에 선 인간의 한계에 대한 상상력의 결핍을 역설적으로 보충해 주는 듯 하다.
『숲 속의 죽음』이라는 소설에서 처럼 여기에서도 개가 등장한다.
인간과 함께 하면서 죽음의 과정을 지켜보는 증언자이자, 죽음의 의식을 집행하는 사도처럼...
| 2009-01-31 16:22:49
대도무문(大道無門)...
같이 일하는 분의 추천을 받고는 최인호의 “길 없는 길”을 읽다.
아직 다 읽지는 못하고 쉬엄쉬엄 2권째 읽고 있는데 “대도무문”을 접하게 되었다. YS의 좌우명(?) 이라고 알려져 더욱 귀에 익은 대도무문(大道無門). 누구는 대도무문(大盜無門) 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사실 YS의 좌우명의 핵심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후자의 대도무문(大盜無門)은 그래도 나름 철학적 견지를 유지하는 것 같다. 결국 도의 궁극적 견지는 같다라고 해야 하나? 진리를 훔치는 궁극적 도에 통하면 그 행함에 거리낌이 없다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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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님의 소설에 따르면 무문 혜개(無門 慧開)란 스님이 쓴 무문관(無門關)이란 책에 “대도무문”의 게송이 실려 있다고 한다.
중국 마조선맥을 잇는 고불(古佛) 조주(趙州) 선사의 구자무불성(狗者無佛性)과 관련된 화두라던가? 어쨋든 마조(馬祖)선사의 즉심즐불(卽心卽佛), 무심시도(無心是道)에 대한 조주(趙州)의 Version 이라고나 해야 하나..
어느 날 한 중이 마조에게 물었다. “마음이 곧 부처란 뜻이 무엇입니까?” 마조가 답하였다. “우는 아이를 달래는 말이다” “울음을 그치면 그땐 뭐라고 합니까”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 라고 할 것이다”
어린아이 울며 보채는 소리를 위해 잠재우기 위해서라는 절묘함이란… 천재의 위대한 사기극이거나 번뜩이는 통찰력, 둘 중의 하나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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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에 이르기 위해서는 무(無)의 관문을 거쳐야 한다라고, 무와 유의 경계를 벗어나야 한다라고 작가는 이야기 하고 있지만… 나의 좁은 소견으로는-게송에서 이야기 하는 것은-, 도(道), 또는 궁극의 진리에 이르기 위해 공식적으로 거쳐야하는 문은 없음이라. 그 도에 이르 길은 천변만화의 길이 있음이라. 어떤 경로를 거치든 그 관문을 초월하고 나면(혹은, 공자의 말씀처럼 도를 깨우쳐 일위관지(一爲貫之) 하고 나면) 유유히 행하리라는 말씀… 이지 않을까?
선지자들은 다양한 언설의 도구들…. 공자의 직설법이건, 노장의 약간의 허풍에 찬 과장법이건, 또는 예수나 붓다의 비유와 은유의 메타포이건, 자기가 체득한 진리의 핵심에 대한 교육적 견지에서의 언설에는 결국 말로써의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라는… 뭐 그런 것 ?
| 2008-11-17 23:52:16
아직 다 읽지는 못하고 쉬엄쉬엄 2권째 읽고 있는데 “대도무문”을 접하게 되었다. YS의 좌우명(?) 이라고 알려져 더욱 귀에 익은 대도무문(大道無門). 누구는 대도무문(大盜無門) 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사실 YS의 좌우명의 핵심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후자의 대도무문(大盜無門)은 그래도 나름 철학적 견지를 유지하는 것 같다. 결국 도의 궁극적 견지는 같다라고 해야 하나? 진리를 훔치는 궁극적 도에 통하면 그 행함에 거리낌이 없다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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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님의 소설에 따르면 무문 혜개(無門 慧開)란 스님이 쓴 무문관(無門關)이란 책에 “대도무문”의 게송이 실려 있다고 한다.
대도무문 大道無門
천차유로 千差有路
투득차관 透得此關
건곤독보 乾坤獨步
중국 마조선맥을 잇는 고불(古佛) 조주(趙州) 선사의 구자무불성(狗者無佛性)과 관련된 화두라던가? 어쨋든 마조(馬祖)선사의 즉심즐불(卽心卽佛), 무심시도(無心是道)에 대한 조주(趙州)의 Version 이라고나 해야 하나..
어느 날 한 중이 마조에게 물었다. “마음이 곧 부처란 뜻이 무엇입니까?” 마조가 답하였다. “우는 아이를 달래는 말이다” “울음을 그치면 그땐 뭐라고 합니까”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 라고 할 것이다”
어린아이 울며 보채는 소리를 위해 잠재우기 위해서라는 절묘함이란… 천재의 위대한 사기극이거나 번뜩이는 통찰력, 둘 중의 하나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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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에 이르기 위해서는 무(無)의 관문을 거쳐야 한다라고, 무와 유의 경계를 벗어나야 한다라고 작가는 이야기 하고 있지만… 나의 좁은 소견으로는-게송에서 이야기 하는 것은-, 도(道), 또는 궁극의 진리에 이르기 위해 공식적으로 거쳐야하는 문은 없음이라. 그 도에 이르 길은 천변만화의 길이 있음이라. 어떤 경로를 거치든 그 관문을 초월하고 나면(혹은, 공자의 말씀처럼 도를 깨우쳐 일위관지(一爲貫之) 하고 나면) 유유히 행하리라는 말씀… 이지 않을까?
선지자들은 다양한 언설의 도구들…. 공자의 직설법이건, 노장의 약간의 허풍에 찬 과장법이건, 또는 예수나 붓다의 비유와 은유의 메타포이건, 자기가 체득한 진리의 핵심에 대한 교육적 견지에서의 언설에는 결국 말로써의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라는… 뭐 그런 것 ?
| 2008-11-17 23:52:16
꽃상여... 멀어져가는 기억들
출근을 하다보면 가끔 도로를 달리는 장례 운구차를 보게 된다. 그런 날은 '상여를 보면 그날 운이 좋다'라는 옛말을 상기해 보지만, 실상은 운수가 좋은지 여부는 별로 실감 못하겠다..
오늘도 아침 출근길에 운구 행렬 차량을 보았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 죽음에 대한 우리의 의식(儀式, Ritual)도 많은 변화가 있던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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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상여를 좇아 뛰어 다니던 어린시절의 풍경들이 이제는 현대적인 죽음의 "의식"에 밀려 기억 저편 너머로 사라져 가는것 같다.
병원 장례식장의, 칸막이로 채워진 큐빅의 공간에서 조문을 하고 장례버스로 관을 옮겨 장지로 떠나고 나면 바쁜 일상에서의 망자와 상주에 대한 의례는 "효율적"으로 정리된다.
어릴적 시절의 기억에 남아 있는 죽음의 의식은 느릿한 꽃상여의 움직임과 시끌벅적한 축제의 이미지였다면 오늘날의 죽음의 의식은 운구차의 신속함과 검은색의 우울한 무거움의 이미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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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였던가? 아마 햇살좋은 어느 봄 오전이었던 것 같다. 조그마한 산골 중학교... 운동장 너머 마을 앞길로 상여 행렬이 지나갔다.
선창자가 요령을 흘들며 구성지게 소리를 메기면 나머지 상여꾼들이 소리를 받는 풍경이 따사로운 햇살을 타고 창문 너머로 부드럽게 흘러 들어왔다...
구슬픈 북망가(北邙哥)가 역설적이게도 따사롭고 평화롭게 느껴지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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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특별히 이벤트화되지 않는 한 일상에서는 사라져버린 이제는 상여를 탈 사람도, 또 상여를 짊어질 사람도 점차 사라져 버린 현실속에서 자꾸만 멀어져가는 기억속의 꽃상여 풍경이 그리워 진다.
오늘도 아침 출근길에 운구 행렬 차량을 보았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 죽음에 대한 우리의 의식(儀式, Ritual)도 많은 변화가 있던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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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상여를 좇아 뛰어 다니던 어린시절의 풍경들이 이제는 현대적인 죽음의 "의식"에 밀려 기억 저편 너머로 사라져 가는것 같다.
병원 장례식장의, 칸막이로 채워진 큐빅의 공간에서 조문을 하고 장례버스로 관을 옮겨 장지로 떠나고 나면 바쁜 일상에서의 망자와 상주에 대한 의례는 "효율적"으로 정리된다.
어릴적 시절의 기억에 남아 있는 죽음의 의식은 느릿한 꽃상여의 움직임과 시끌벅적한 축제의 이미지였다면 오늘날의 죽음의 의식은 운구차의 신속함과 검은색의 우울한 무거움의 이미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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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였던가? 아마 햇살좋은 어느 봄 오전이었던 것 같다. 조그마한 산골 중학교... 운동장 너머 마을 앞길로 상여 행렬이 지나갔다.
선창자가 요령을 흘들며 구성지게 소리를 메기면 나머지 상여꾼들이 소리를 받는 풍경이 따사로운 햇살을 타고 창문 너머로 부드럽게 흘러 들어왔다...
구슬픈 북망가(北邙哥)가 역설적이게도 따사롭고 평화롭게 느껴지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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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특별히 이벤트화되지 않는 한 일상에서는 사라져버린 이제는 상여를 탈 사람도, 또 상여를 짊어질 사람도 점차 사라져 버린 현실속에서 자꾸만 멀어져가는 기억속의 꽃상여 풍경이 그리워 진다.
| 2007.05.09 14:22
Debt Planet & SkyNet - the money network of financial engineering...
같이 일하시는 분이 읽어보라고 준, 이외수 선생의"글쓰기의 공중부양"이라는 책. 책을 받아 펼쳐보니 작품 목록에 92년도의 [벽오금학도]라는 소설이 리스트 되어 있었다. "벽오금학도"... 강산이 변한다는10년을 넘겨, 꽤 오래전에 읽었던 지라 책의 자세한 내용은 기억이 나질 않지만, 벽오금학도를 읽고 강하게 뇌리에 박힌 단어는 바로 "편재(遍在)"이다.
편재(遍在). Ubiquity... 그리스도/신의 편재(성)... 그리고 자본의 전 지구적 편재.
Financial Engineering… Toxic debt everywhere…
금융과 공학이라는 오묘한 조합의 테크놀로지는 전 세계적으로 빚의 편재를 실현한다.
* * * * * * * * * *
1996년, 폴 비릴리오(Paul Virilio)...
한꺼번에 동시적으로 발생할 “Global accident"에 대해 말하다.
금융자본의 사도들은 “부채는 곧 선이다(Debt is good)”라며,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정보시스템을 통해 MBS, Credit swaps 등 다양한 파생상품이라는 금융공학의 복음(=빚)를 전파하였으나… 현실의 폭정(Tyranny of real time)에 그 발목이 붙잡혀 버렸다.
빛의 속도를 타고 움직이는 Fast Technology의 “Remembrance” vs. 느릿한 사회(Slow Society)의 “Cataclysm” 의 이중적 의미의 묵시록으로서의 Global Accident ?
1996년, 쟝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
현세의 주위를 맴돌고 있는.. 미래를 저당으로 무기한 이연되고 무한증식하는, 全 우주적인 부채에 대해 말하다.
Time Square 광장의 전광판에 표시되는, 일초에 2만 달러씩 누적되면서 무한을 향해 치닺는, 그러나 어느 누구도 갚지 않을 미래의 저당. 성층권 위의 우주 궤도에서 돌고 있는 인공위성처럼, 무한의 속도로 자신의 궤도를 가지고 현세의 주위를 돌고 있는 “전 우주적인 부채”...
“무기한 이연된 부채는 미래를 저당으로 무한 증식한다”
* * * * * * * * * *
City of Transformation by Arthur and Marilouise Kroker (www.ctheory.net/articles.aspx?id=597)
…as Jean Baudrillard long ago warned, the hyper-real, simulational world of derivatives, credit swaps, and mortgage backed securities long ago blasted off from material reality, reaching escape velocity, and then orbiting the world as star-like high finance satellites -- purely virtual satellites which have no real meaning for the rest of us as long as they stay in space as part of the alienated, recursive loops of advanced capitalism. But when the meltdown suddenly happens, when that immense weight of over-indebtedness and toxic mortgages and credit derivates plunge back into the gravitational weight of real politics and real economy, we finally know what it is to live within trajectories of the catastrophic… - From “City of Transformation” by Arthur and Marilouise Kroker. www.ctheory.net
12년 전의 쟝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 글을 다시 찾아 본다.
“Global Debt and Parallel Universe” by Jean Baudrillard (www.ctheory.net/articles.aspx?id=164)
- Exported from naver blog... written 2008-12-05 17:43:44
- Updated 2011-10-07 14:39
편재(遍在). Ubiquity... 그리스도/신의 편재(성)... 그리고 자본의 전 지구적 편재.
Financial Engineering… Toxic debt everywhere…
금융과 공학이라는 오묘한 조합의 테크놀로지는 전 세계적으로 빚의 편재를 실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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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폴 비릴리오(Paul Virilio)...
한꺼번에 동시적으로 발생할 “Global accident"에 대해 말하다.
금융자본의 사도들은 “부채는 곧 선이다(Debt is good)”라며,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정보시스템을 통해 MBS, Credit swaps 등 다양한 파생상품이라는 금융공학의 복음(=빚)를 전파하였으나… 현실의 폭정(Tyranny of real time)에 그 발목이 붙잡혀 버렸다.
빛의 속도를 타고 움직이는 Fast Technology의 “Remembrance” vs. 느릿한 사회(Slow Society)의 “Cataclysm” 의 이중적 의미의 묵시록으로서의 Global Accident ?
1996년, 쟝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
현세의 주위를 맴돌고 있는.. 미래를 저당으로 무기한 이연되고 무한증식하는, 全 우주적인 부채에 대해 말하다.
Time Square 광장의 전광판에 표시되는, 일초에 2만 달러씩 누적되면서 무한을 향해 치닺는, 그러나 어느 누구도 갚지 않을 미래의 저당. 성층권 위의 우주 궤도에서 돌고 있는 인공위성처럼, 무한의 속도로 자신의 궤도를 가지고 현세의 주위를 돌고 있는 “전 우주적인 부채”...
“무기한 이연된 부채는 미래를 저당으로 무한 증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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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y of Transformation by Arthur and Marilouise Kroker (www.ctheory.net/articles.aspx?id=597)
…as Jean Baudrillard long ago warned, the hyper-real, simulational world of derivatives, credit swaps, and mortgage backed securities long ago blasted off from material reality, reaching escape velocity, and then orbiting the world as star-like high finance satellites -- purely virtual satellites which have no real meaning for the rest of us as long as they stay in space as part of the alienated, recursive loops of advanced capitalism. But when the meltdown suddenly happens, when that immense weight of over-indebtedness and toxic mortgages and credit derivates plunge back into the gravitational weight of real politics and real economy, we finally know what it is to live within trajectories of the catastrophic… - From “City of Transformation” by Arthur and Marilouise Kroker. www.ctheory.net
12년 전의 쟝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 글을 다시 찾아 본다.
“Global Debt and Parallel Universe” by Jean Baudrillard (www.ctheory.net/articles.aspx?id=164)
- Exported from naver blog... written 2008-12-05 17:43:44
- Updated 2011-10-07 14:3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