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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September 03, 2026

책, 『사탄탱고』by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1. 우루보스 - 끔직한 영원회귀

"어느 시월의 아침 끝없이 내릴 가을비의 첫 방울이 마을 서쪽의 갈라지고 소금기 먹은 땅으로 떨어질 즈음(이제 첫 서리가 내릴 때까지는 온통 악취 나는 진흙 바다가 펼쳐져 들길로 다니기도, 도시로 가기도 어려울 터이다), 후터키는 종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소리가 들려올 가까운 데라곤 남서쪽으로 4킬로미터 떨어진 호흐마이스 지대의 외진 소성당 하나뿐인데, 거기엔 종이 없는 데다 종탑은 전쟁 중에 무너졌으며, 멀리 있는 도시의 소리가 여기까지 와 닿을 리도 없었다. 게다기 어쩐지 의기 양양하게 울리는 종소리는 멀리서 들려오는 것 같지 않고 오히려 아주 가까운 곳으로부터('아마도 방앗간에서...') 바람에 실려 오는 것 같았다. 후터키는 쥐구멍만 한 부엌 창으로 밖을 내다보기 위해 몸을 일으켜 앉았지만, 더께 얹은 창유리 너머에는 종소리가 점점 희미해지는 가운데 새벽의 푸름에 감싸여 기척없이 적막한 마을만 있을 뿐이었다. 다만 멀찍이 흩어져 있는 점들 가운데서 의사의 집, 가려진 창문에서만 한 가닥 빛이 틈으로 새어 나왔는데 그나마도 의사가 어두운 곳에서는 잠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후터키는 스러져가는 종소리의 미약한 울림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했고, 숨을 죽인 채 사태의 진상을 알아내려고 했다('후터기, 넌 아직도 꿈을 꾸는 거야')... 홀연 그는 환영처럼 아카시아 가지 위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마치 시간이 움직임 없는 영원의 원 안에서 유희를 벌이고 혼돈의 와중에 귀신이 재주를 피우듯 기상천외한 망상을 진짜로 믿게 하려는 것 같았다... 그는 마을 동쪽으로 시선을 향해 한때는 삶의 소음으로 부산했으나 지금은 버려진 채 무너져가는 건물들과 붉게 부푼 해의 첫 햇살이 부서진 농가의 기와 없는 지붕 틈새로 떨어져 내리는 것을 비통한 심정으로 바라 보았다. '결단을 내려야 해. 여기서는 더 이상 살 수가 없어.' 그는 도로 따뜻한 침대로 기어들어 팔베개를 하고 누웠지만 눈이 감기지는 않았다. 유령 같은 종소리보다 그를 더 놀라게 한 건 갑작스런 정적, 위협적인 침묵이었다."

머리가 꼬리를 무는 것인지? 꼬리가 머리를 무는 것인지? 여섯 발자국 앞으로 나아갔다 다시 여섯 발자국 뒤로 빠지는 탱고처럼 소설의 마지막 부분은 다시 소설의 첫 도입부로 반복된다. 

80년대 탈사회주의 헝가리의 집단농장 붕괴이후 황폐화된 마을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뱀이 자신의 꼬리를 물고 원형을 이루는 우르보스의 이미지처럼 삶과 죽음, 시작과 끝이 닫힌 교착상태, 탈출구 없는 악몽과도 같은 영원회귀 Eternal Recurrence 와도 같다. 

2. 거미줄 - 감시와 통제의 그물망

사람들이 모여 술마시고 춤을 추는 술집. 그곳은 온통 거미줄이 지배하는 공간이다. 

"거미들은 술병과 유리잔, 찻잔과 재떨이에 느슨하게 거미줄을 드리웠고, 테이블 다리와 의자 다리를 가느다란 실로 은밀히 연결했다. 마치 눈에 띄지 않게 그물망을 쳐서 미세한 움직임과 소리라도 즉각 감지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것처럼. 거미들은 잠자는 사람들의 얼굴과 다리 그리고 손에도 거미줄을 쳤고, 그런 뒤에 번개같이 은신처로 퇴각하여 거미줄이 미세하게라도 흔들릴때를 기다리다가, 그러다 시시 거미줄을 칠 채비를 했다." 

정보조직의 끄나풀 이리미아시 뿐만 아니라, 소설속 군상들은 서로가 서로를 관찰하고 감시한다. 거미줄 같은 감시와 통제의 보이지 않는 미세한 그물망.

거미줄 투성이 술집에서 그들은 '탱고'를 춘다. 마치 거미줄과 밤으로부터 피신하여 기운 없이 빛나는 불빛 속에서 끊임 없이 8자를 그리며 날아다니는 말파리들 처럼... 

3. 질서와 통제 - 진동하는 악취

"그는 일상생활의 동선을 정교하게 반영하여 의자의 위치를 정했고 그럼으로써 창가의 감시대를 떠나는 횟수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었다.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쉬운 작업은 아니었다. 먹고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일기를 쓰고 독서하기에 용이하도록 사소하게 손이 가는 물건들을 모아 가능한 한 편리하게 배열하는 일은 결코 간단지 않았으며, 그 과정에서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관대하게 넘기는 일은 스스로 용납할 수가 없었다. 자신을 벌주지 않으면 나중에 그 자신이 손해를 보게 되는 이치였다. 산만함이나 부주의로 저지른 실수는 일의 위험성을 높여 예상보다 심각한 결과를 불러왔다. 불필요한 동작 너머에는 불안정함이 숨어 있지 않은가? 성냥갑이나 독주 잔이 그릇된 위치에 놓여 있다는 건 기억력 쇠퇴의 치명적 증표일뿐더러, 연쇄적 변화를 불가피하게 만든다. 그로 말미암아 담배와 공책, 칼과 연필의 위치까지 바뀌고 결국엔 최적의 동작이 이루어 지는 전체 시스템이 무너짐으로써 완전한 혼돈에 빠져버린다... 첫 시기의 불안정함과 때때로 찾아오는 의심이 야기한 혼란이 지나간 다음에는 더 이상 자신이 개별적인 동작들을 통제할 필요가 없는 단계로 들어섰다"

완벽한 질서와 통제. 하지만 겉으로 번듯하게 보이는 질서의 이면 속에는 견디기 힘든 악취가 진동한다. 

"못 견뎌요. 정말이지 냄새가 끔찍해서! 어떻게 그런 악취 속에서 사는지 모르겠어요. 공부도 많이 했다는 분이 대체...", "그녀가 말하기를 집에 들어가면 시큼한 악취가 난다고 했다. 그 냄새가 옷에 배고, 그녀의 주장으로 피부에까지 스며들어 의사의 집에 다녀온 뒤에는 두번이나 몸을 씼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이었다." 

4. 관찰자/기록자/보고자 - 마을 의사

"그가 몰두한 것은 주변의 외적인 몰락에 맞서 자신의 기억력을 지켜내는 일이었다. 농장 해체가 통고되고 그를 정직 처분한 위원회의 결정이 철회되기를 기다리며 그곳에 남겠다고 결심한 이래로, 또 농장이 사망 선고를 받고 형편없이 몰락하자 사람들이 소란스레 짐차에 짐을 싣고 고함을 쳐대며 우왕좌왕하다 차를 타고 떠는 광경을 호르고시네 맏딸과 방앗간에서 지켜본 이래로 그는 자신은 무력하며, 점령해오는 몰락을 혼자서는 절대로 저지할 수 없다고 느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모든 것 -집들과 담장들, 나무와 들판, 공중에서 하강하며 나는 새들, 배회하는 짐승들, 육신을 가진 인간들, 욕망과 소망들-을 파괴하고 소멸시키는 힘에 맞설 수는 없었다. 그는 인간의 삶에 대한 위협적인 공격에 헛된 저항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돌이킬 수 없는 음험한 몰락에 자신의 기억으로 맞서는 것이었다... 그는 모든 것을 주도면밀하게 관찰하고 기록하기로 마음 먹었다. 아무리 하찮은 세부라도 놓쳐선 안되었다.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고 간과하는 것은 몰락과 질서 사이에 놓인 흔들거리는 다리 위에 아무런 대책없이 서 있다고 고백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담배 부스러기나 야생 거위가 날아간 방향이나 별 뜻 없어 보이는 사람들의 행동 같은 것들도 그 연결을 집요하게 추적하고 관찰해야 했다"

하지만 그 글쓰기는 몰락과 세월의 파괴력에 저항하여 기억으로 맞서는 힘겨운 노력이라기 보다는, 관료주의 관청조직 서기들의 보고서 글쓰기처럼, 자신의 글에 힘이 있다는 망상으로 이어진다. 

"그는 모든 것이 글에 쓴 그대로 고스란이 일어나고 있음을 직감했을 뿐만 아니라 이제부터는 자기가 쓰는 일이 실제로 일어날 것임을 깊이 확신했다. 수 년 동안 고통스럽고 끈질기게 이어온 작업이 결실을 맺고 있다는 생각이 점차 강해졌다. 그는 이제 유일무이한 능력의 소유자가 되었다... 정말로 내가 정신을 어느 정도 집중하기만 하면 마을에서 일어날 일을 결정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쓰기만 하면 그 일이 일어난다니..."  

5. 의사를 괴롭히고, 후터키의 잠을 깨운 종소리. 그 종소리는 구원의 종소리, 메시아의 종소리, 천국의 종소리가 아니었다. '의심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바'... 일종의 경고이다. 구원은 없다. 고도는 오지 않는다.

"난 떠날 거야.. 떠나야만 해".. 그러나 그 같은 희망은 보상받지 못한다. 기회는 없으며 희망은 사람들을 배반한다. 진창같은 감옥에 갇혀있을 뿐이다. 오직 소멸과 몰락만이 있으며, 그 소멸과 몰락조차 완결되지 않고 끊임없이 지속되는 중이다. 

Eagles의 노래 가사가 머릿속에서 맴돈다. "We are all just prisoners here, of our own device... I was running for the door, had to find the passage back to the place I was before. 'Relax', said the night man, we are programmed to receive, you can check out any time you like, but you can never leave" - Eagles, Hotel California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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