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권태가 사람을 엄습(掩襲) 하였을 때, 그의 동공(瞳孔)은 내부를 향하여 열리리라. 그리하여, 망쇄(忙殺)할 때보다도 몇 배나 더 자신의 내면을 성찰 할 수 있을 것이다.
불나비가 달려들어 불을 끈다. 불나비는 죽었든지 화상을 입었으리라. 그러나 불나비라는 놈은 사는 방법을 아는 놈이다. 불을 보면 뛰어들 줄도 알고… 평상(平常)에 불을 초조히 찾아 다닐 줄도 아는 정열의 생물이니 말이다.
그러나 여기 어디 불을 찾으려는 정열이 있으며, 뛰어들 불이 있느냐? 없다.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암흑은 암흑인 이상, 이 방 좁은 것이나 우주에 꽉찬 것이나 분량상 차이가 없으리라, 나는 이 대소(大小) 없는 암흑 가운데 누워서 숨쉴 것도, 어루만질 것도, 또 욕심나는 것도, 아무것도 없다. 다만 어디까지 가야 끝이 날지 모르는 내일, 그것이 또 창밖에 등대(等待)하고 있는 것을 느끼면서 오들오들 떨고 있을 뿐이다.
- 『권태』, 이상, 1936 中 -
창(窓)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내일'이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
참으로 권태(倦怠)의 궁극이리라…
그 권태속에서 정열을 태우는 것 또한 얼마나 비극적인가를 보여준다.
| 2009-03-05 23: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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