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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July 06, 2013

꿈틀거림...

1964년 겨울. 서울의 밤이 되면 거리에 나타나는, 얼어붙은 거리를 휩쓸며 차가운 바람이 펄럭거리게 하는 포장마차를 들치고 안에 들어가 술을 따르며 우연히 만난 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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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 꿈틀거리는 것을 사랑하십니까?” 하고 안(安)이 내게 물었다. 
“사랑하구말구요” 나는 갑자기 의기양양해져서 대답했다.

추억이란 그것이 슬픈 것이든지 기쁜 것이든지 그것을 생각하는 사람을 의기양양하게 한다. 슬픈 추억일 때는 고즈너기 의기양양해지고 기쁜 추억일 때는 소란스럽게 의기양양해진다.

“사관학교 시험에서 미역국을 먹고 나서도 얼마 동안, 나는 나처럼 대학 입학 시험에 실패한 친구 하나와 미아리에서 하숙하고 있었습니다. 서울엔 그때가 처음이었죠. 그 무렵 재미를 붙인게 아침의 만원된 버스칸이었습니다. 함께 있는 친구와 나는 하숙집의 아침 밥상을 밀어 놓기가 바쁘게 미아리 고개 위에 있는 버스정류장으로 달려 갑니다. 개처럼 숨을 헐떡거리면서 말입니다. 그 친구와 나는 출근 시간의 만원 버스 속을 쓰리꾼처럼 안으로 비집고 들어갑니다. 그리고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젊은 여자 앞에 섭니다. 나는 한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나서, 달려오느라 좀 멍해진 머리를 올리고 있는 손에 기댑니다. 그리고 내 앞에 앉아 있는 여자의 아랫배 쪽으로 천천히 시선을 보냅니다. 그러면 처음엔 얼른 눈에 뜨이지 않지만 시간이 조금 가고 내 시선이 투명해지면 서부터는 나는 그 여자의 아랫배가 조용히 오르내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나는 그 아침의 만원 버스칸 속에서 보는 젊은 여자 아랫배의 조용한 움직임을 보고 있으면 왜 그렇게 마음이 편해지고 맑아지는지 모르겠읍니다. 나는 그 움직임을 지독하게 사랑합니다.”

“안형은 어떤 꿈틀거림을 사랑합니까?” 
“어떤 꿈틀거림이 아닙니다. 그냥 꿈틀거리는 거죠. 그냥 말입니다. 예를 들면…. 데모도…”

우리의 대화는 또 끊어 졌다. 이번엔 침묵이 오래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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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낮에 제 아내가 죽었습니다.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하고 있었는데… 급성 뇌막염이라고 의사가 그랬습니다. 아내는 옛날에 급성 맹장염 수술을 받은 적도 있고, 급성 폐렴을 앓은 적도 있다고 했습니다만 모두 괜찮았었는데 이번의 급성엔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 아내와 재작년에 결혼했습니다. 우연히 알게 됐습니다. 친정이 대구근처에 있다는 얘기만 했지 한 번도 친정과는 내왕이 없었습니다. 난 처가집이 어딘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할 수 없었어요.”

“뭘 할 수 없었다는 말입니까?”

“아내의 시체를 병원에 팔았습니다. 할 수 없었습니다. 돈 사천원을 주더군요. 난 두 분을 만나기 얼마전까지도 세브란스 병원 울타리 곁에 있었습니다…. 기분 나쁜 얘길 해서 미안합니다. 다만 누구에게라도 얘기를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습니다. 한 가지만 의논해 보고 싶은데, 이 돈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저는 오늘 저녁에 다 써버리고 싶은데요.”

“쓰십시요” 안이 얼른 대답했다. 
“이 돈이 다 없어질 때까지 함께 있어 주시겠어요?... 함께 있어 주십시오.” 
우리는 승낙했다.

- 『서울∙1964년 겨울』, 김승옥, 1965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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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부 서적 외판원...
그 밤의 몸부림은 삶에의 충동이 아니라 그 끈을 놓으려는 꿈틀거림이었던가?

| 2009-02-10 22: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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