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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August 22, 2024

책, 『기사단장 죽이기』, 무라카미 하루키

■ 총평 ■

이야기의 핵심은 "얼굴없는 사람의 초상화" 그리기라 할 수 있다. 

사람의 얼굴을 그림으로 나타내는 것. 그것은 철학적 개념을 들어 이해 하자면 '표상(Vorstellung)', '재현(Representation)'의 작업이라 할 수 있다. 표상이라는 말의 독일어 표현으로는 "Vorstellung" 이 있다. 이는 (주체) 앞에 내세우다라는 의미로, 여기에는 대상을 바라보는 주체가 대상과 관계 맺는 방식을 스스로 설정한다는 함의가 있다.

작품속 화자의 말처럼, 어떤 사람의 초상화를 그린다는 것은 그 사람을 해석하고 자기가 파악한 대상의 한 국면을 재구성하여 그림으로 표상(Vorstellung) 하는 작업이다. 그 재구성이라는 것은 화가/작가의 인식틀에서 그 대상의 실체/본질(또는 플라톤적 '이데아')을 개별적이고 차별적으로 그림이라는 방식으로 표현해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는 그 대상의 본질(이데아)을 다시 re- 현재화 presentation 하는 활동으로 이야기 할 수도 있다. 마치 플라톤이 이야기 하였던 이데아의 상기(想起)라는 개념처럼...

그렇다면, 작품속에서 이야기 하는 "얼굴없는 남자"와 같은 존재의 초상화를 그린다는게 가능할까? 

이야기 속의 화자인 초상화가인 나는 얼굴 없는 사람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다 ;  

"그가 얼굴을 반쯤 가린 검은 모자를 벗었다. 얼굴이 있어야 할 자리에 얼굴은 없고, 유백색 안개가 천천히 휘돌고 있었다...(중략)... 더욱이 무(無)를 둘러싼 유백색 안개는 쉼 없이 모습을 바꾸었다...(중략)... 그저 짧은 꿈 같기도 했다. 하지만 꿈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만일 그게 꿈이라면 내가 사는 이 세계가 모조리 꿈이라는 뜻일 테니까"

그 대상의 확실성이 담보되지 않고, 유백색 안개 같이 끊임 없이 얼굴이 변하는 사람(대상)을 그린다는 것은 실로 난해하고 곤혹스러운 작업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화자는 소설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얼굴없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 주면서, 작품에  언급되는 그 인물들의 실제적 모습과 사건들의 진위 여부에 대해서는 애매모호하고 혼란스럽게 이야기 하고 있다. 도대체가 이 모든게 현실의 이야기인지, 아니면 꿈 또는 망상인지... 

그 불확실성, 애매모호함,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 할 수 없고, 국면의 불가지론적 특성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화자(작가)는 "시간" 이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얼굴없는 남자의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서는, 또는 알 수 없는 사건을 해석하고 재구성하는데는 '시간' 이 필요하다라고, 시간을 내편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전 우주적 꿈꾸는 神 비슈누(Vishnu) 에게는 그의 꿈이 곧 전우적 시공간이겠지만, 한낱 불완전하고 티끌같은 인간의 개인적 존재에게 시간은 과연 그의 편이 되어 줄 수 있을까? 


■ 도서 내용 요약 ■

소설의 내용을 요약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어 주요 등장인물에 대한 개인적 단상으로 대체 한다.

▣ 화자인 초상화 화가 : 미대를 졸업하고 생계를 위해 초상화를 그리는 일을 직업으로 가진 사내. 나름 초상화 업계에서 알아주는 실력자로 성장함. 아내의 갑작스런 이별/이혼 통보로 홀로 여행을 하다, 미대 동기인 야마다 마사히코의 소개로 마사히코의 아버지이자 저명한 일본화 화가인 야마다 도모히코의 산속 집에 홀로 살게 된다. 그 집의 천정 다락에서 야마다 도모히코가 그린 <기사단장 죽이기> 라는 그림을 우연히 찾아 맞딱뜨리게 되면서 소설속에서 전개되는 이상한 사건을 경험하게 된다. 성격이나 라이프 스타일이 소설의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적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인물(전형적인 하루키식 주인공)

▣ 화가의 아내 유즈 : 독자인 나에게는 특별히 이렇다할 인상이 별로 없고 존재감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주인공에게 갑자기 이혼하자고 통보하고, 헤어진 상태에서 다른 남자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임신하고, 임신한 상태에서 다시 주인공과 결합하여 함께 살자고 하는, 주인공을 밀쳤다가 다시 끌어 안을 정도로 이야기속 초상화가인 화자에게는 존재감이 상당히 큰 중요한 인물.

▣ 야마다 도모히코 :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기사단장 죽이기>라는 그림을 그린 저명한 일본화 화가. 고령으로 치매에 걸려 요양원에 들어가 살게되어 작중 화자가 도모히코의 집에 잠시 살게 되면서 도모히코가 천정 다락에 숨겨둔 <기사단장 죽이기> 라는 그림을 발견하게 된다. 도모히코가 젊은 시절 오스트리아 빈에서 유학하면서 휘말린 사건을 계기로 이후 일본으로 귀국하면서 서양화를 포기하고 일본화 화가로 전향하게 되었다라고 하는데 과거사와 관련된 부분, 그리고 왜 <기사단장 죽이기> 라는 그림을 그려놓고 세상에 발표하지 않고 숨겨 놓았는지, 그리고 그 그림이 의도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지 등 모든 면에서 인물 자체와 그와 관련된 사건들은 상당히 모호하고 미스터리어스하다. 결국 진실은 저 너머에...

▣ 야마다 마사히코 : 저명한 일본화 화가 야마다 도모히코의 아들이자 작품속 주인공인 나의 미대 동기이자 친구. 주인공인 나에게 아버지가 살던 집을 소개시켜 주며 주인공이 특이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그리고 주인공과 주인공의 아내 유즈와의 관계에서 마음의 빚을 가지고 있는 친구. 

그의 입을 빌려 이야기한, 하나의 사람에 다른 인격이 존재한다라는 말은, 어찌보면 소설의 주요한 테마를 언급한게 아닌가 한다 ;    

"그게 말이지 여자의 얼굴은 좌우가 다르거든. 그거 알았어?...(중략)... 두달쯤 전 일인데, 요즘 만나는 여자친구 사진을 찍었어. 디지털카메라로 얼굴 정면을 클로즈업해서. 그리고 업무용 컴퓨터의 대형 모니터에 띄워 봤어. 그리고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얼굴을 한가운데서 잘라 반쪽씩 봤어...(중략)...  얼굴을 반으로 나눈 뒤에 한쪽을 반전해서 붙이는 식으로. 오른쪽만으로 얼굴하나를 만들고 왼쪽만으로 또 얼굴 하나를 만드는 거야. 그랬더니 완전히 다른 인격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은 두명의 여자가 만들어 진거야. 놀랐어. 요컨데 한 사람 안에 실은 두명이 도사리고 있던거라고..." 

▣ 백발의 중년 남성 멘시키 : 소설에서는 여러가지 면에서 멘시키라는 인물에 대해 자세하고 명백하게 묘사되고 있지만, 어찌보면 한 측면에서는 작품속에 등장하는 '얼굴 없는 남자'와도 같은 특징을 가진 인물. 소설속 이야기에서 주인공인 화자와 함께 사건의 전 과정에 관여한다.

▣ 아키가와 마리에 :  백발의 중년 멘시키가 자신의 딸일지도 모른다고 믿고 있는 10대 중학생 소녀.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작품속 주인공의 Mirror Image, 화자의 분신과과 같은 인물로 느껴진다. 미스터리한 성격에 화자와 같은 사건의 경험을 공유한다. 

▣ 현현하는 이데아 : 야마다 도모히코가 그린 <기사단장 죽이기> 라는 그림속에 표현된 기사단장의 모습으로 나타난 정체불명의 존재. 불멸의 이데아임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소멸 맞이 해야만 하는 모순적이고 불완전한 존재.

▣ 전이하는 메타포 : 야마다 도모히코가 그린 <기사단장 죽이기> 라는 그림속에 표현된 '긴 얼굴'의 특징을 가진, 이데아와 마친가지의 정체불명의 존재. 작품속 주인공이 이공간을 지나 다시 자신의 세상으로 돌아오는데 비자발적 도움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