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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February 27, 2013
[Scrap] 음식과 文人
"육류를 얇게 썰어서 식초로 버무린 것이 "회膾"이고, 야채를 소금에 절인 것을 "저沮"라고 하였다. 또한 불에 직접 굽는 것을 "번燔"이라고 하고, 꼬치에 굽는 것을 "적炙", 점토 등을 싸서 굽는 것을 "포炮"라고 하였다. 찌는 것을 "증蒸", 삶는 것을 "팽烹", 혹은 "자煮"라 하였고, 푹 삶는 것을 "외煨", 약한 불에서 오랫동안 달이는 것을 "민燜", 부글부글 끓이는 것을 "오熬"라고 하였다." - 음식과 文人
Thursday, February 21, 2013
[Scrap] I have nothing to admit...
Feb 2 2013 9:50 pm
"The history of philosophy plays a patently repressive role in philosophy, It’s philosophy’s own version of the Oedipus complex"
Feb 3 2013 11:33 pm
"I myself ‘did’ history of philosophy for a long time, read books on this or that author. but i compensated in various ways by concentrating, in the first place, on authors who challenged the rationalist tradition in this history and I see a secret link betweem Lucretius, Hume, Spinoza, and Nietzsche, constituted by their critique or negativity their cultivation of joy, the hatered of interiority, the externality of forces and relations, the denunciation of power…"
Feb 4 2013 11:29 pm
"What I most detested was Hegelianism and dialectics. my book on Kant’s different; I like it, I did it as a book about an enemy, a book about an enemy tries to show how his system works, how its various cogs-the tribunal of reason… but I suppose the main way I coped with it at the time was to see the history of philosophy as a sort of buggery or it comes to the same thing, immaculate conception. I saw myself as taking an author from behind taking an author from behind and giving him a child that would be his own offsprings, yet monstrous. It was really important for it to be his own child, cuz the author had to actually say all I had him saying, but the child was bound to be monstrous too, cuz it resulted from all sorts of shifting, slipping, dislocation and hidden emissions…"
Feb 13 2013 9:38 pm
"What one says comes from the depths of one’s ignorance, the depth of one’s own underdevelopment…."
Feb 13 2013 9:47 pm
[Difference & Repetition] & [The Logic of Sense] ; I know well enough that they’re still full of academic elements„, They’re heavy goings, but they’re an attempt to jolt, set in motion, something inside me, to treat writing as a flow, not a code as far as it went, but it was a beginning and then there was my meeting with Felix Guattari, the way we understood and complemented, depersonalized and singularised. In short, loved one another, out of that came Anti-Oedipus, and it takes things a step further.
I’ve wondered whether one general reason for some of the hostility toward the book is simply the fact that there are two writers. Because people want you to disagree about things, and take different positions. So they try to disentangle inseparable elements and identify who did what. But sind each of us, like anyonelse, is already various people, it gets rather crowded and we wouldn’t of course claim that Anti-Oedipus is completely free of any scholarly apparatus: it’s still pretty academic, fairly serious, and it’s not te pop philosophy or pop analysis we dreamed of.
Feb 20 2013 6:00 pm
"There are, you see, two ways of reading a book; you either see it as a box with somethig inside and start looking for what it signifies and then if you’re even more perverse or depraved you set off after signifiers. and you treat the next book like a book contained in the first or containing it. and you annotate and interpret an question, and write a book about the book or there’s the other way; you see the book as a little non-signifying machine, and the only question is “does it work, and how does it work? how deos it work for you. if it doesn’t work, if nothing comes through, you try another book". It’s just like plugging into an electric circuit…"
Feb 21 2013 6:00 am
"Writing is one flow among others with no special place that comes into relations of current, countercurrent, and eddy with other flows; flows of shit, sperm, words, action, eroticism, money, politics, and so on. Take bloom, writing in the sand with one hand and masterbating with the other: what’s the relation btwn those two flows? our outside, at least one of our outsides, was a particular mass of people who are fed up with psychoanalysis they are trapped, to use your expression, because they generally continue in analysis even after they’ve started to question psychoanalysis. What on earth are they doing on a couch?"
Feb 21 2013 12:00 pm
"You say or report people saying I’m doing nothing, that I’m impotent a big old sterile queen… You explain I’ve got a wife, and a daughter who plays with dolls and potters around the house and you think that in the light of Anti-Oedipus that is a huge joke. You might have added I’ve got a son who’s almost old enough to go into analysis. If you think it’s dolls that produce the Oedipus complex, or the mere fact of being married, that’s pretty weird. The Oedipus complex is nothing to do with dolls. It’s an internal secretion, a gland, and you can’t fight Oedipal secretions. Non-Oedipal love is pretty hard work. and you should know that it’s not enough just to be unmarried, not to have kids, not to be gay, or belong to this or that group, in order to get round the Oedipus complex-given all the group complexes, oedipal gays, oedipized women’s libbers, and so on."
Down Syndrome Child with Dog
Moving deeply„, So warm hearts ;
어떤면에선 사람보다 동물이 더 영적이고 아름다운 경우가 많은 것 같다.
Wednesday, February 20, 2013
Friday, February 15, 2013
Saturday, February 09, 2013
[Scrap] 오세철 교수의 법정 모두 진술
조금 시간 지난 기사이긴 한데,,, 오세철교수님. 살아 있네~!! t.co/uTfsyq15 posted at 20:37:06 2013/02/08
"맑스주의 사상과 실천을 법의 잣대로 재단하려는 시대착오적 행태를 끝장내는 역사적 재판이기를 바란다" -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재판오세철교수 모두진술. 2010년 5월31일 posted at 21:12:58 2013/02/08
"만일 남한 노동자뿐만 아니라 북한의 노동자, 나아가 세계의 노동자를 적으로 규정한다면 당연히 사노련은 이적단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재판오세철교수 모두진술. 2010년 5월31일 posted at 21:18:56 2013/02/08
"사회를 구성하는 다수인 노동자를 적으로 규정하고 그들과 함께 하는 운동과 그 세력을 법으로 다스리는 사회가 21세기 대명천지에 존재한다면 그러한 사회와 그를 유지하려는 법은 존재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세철교수 법정진술. 2010년 5월31일 posted at 21:20:35 2013/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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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Scrap] : 국가보안법 재판 오세철 교수의 법정 모두 진술
오세철(사노련 전 운영위원장. 연세대 명예교수) 2010.06.05
이른바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재판은 우리나라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역사적 재판과 법정투쟁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몇 년 후면 맑스가 태어난 지 200년이 되는데 맑스주의 사상과 실천이 2010년에 동아시아의 한 나라, 그것도 OECD의 선진국 가운데 하나라고 스스로 자랑하는 대한민국에서 법정 피의자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은 참으로 부끄럽고 통탄할 일입니다.
「사회주의 탄압법」이 사라진지 백 몇 십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국가보안법이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있습니다. 학문, 사상의 자유, 정치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양심의 자유를 억압하는 희대의 악법인 「국가보안법」으로 맑스주의 사상과 실천을 가로막는 우리의 현실에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를 멈출 수 없습니다.
더구나 공안 검경의 구태의연한 긴급체포와 구속에 대해 법원이 두 번에 걸쳐 영장을 기각했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당연히 불기소해야 할 「사노련」사건을 촛불집회와 쌍용자동차 노동자 투쟁의 배후로 지목하는 정치적 각본으로 다시 기소하였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회주의 정치 활동을 자유롭게 실천하면서도 모처럼 검찰이 우리에게 준 공개적이고 대중적인 법정투쟁의 기회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이 재판을 통해 사회주의, 다시 말해 맑스주의 사상의 자유와 그 실천의 자유를 쟁취하고 희대의 악법인 국가보안법이 폐지되도록 사상투쟁의 마당으로 삼겠습니다.
저의 발언은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이라는 한 사건을 넘어서서 맑스주의와 사회주의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위한 것임을 밝힙니다. 이는 40여 년 동안 한국 맑스주의 운동의 산 증인으로서, 역사적 증언이기도 합니다.
먼저 첫 부분에서 맑스주의 이론과 실천의 역사를 통해 사회주의 운동의 정당성을 구체적으로 말하고, 그 다음 부분에서는 검찰의 공소 내용을 근본적으로 비판 하겠습니다.
용어에 대한 이야기부터 하겠습니다. 사회주의라는 용어보다 맑스주의라고 말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맑스 이전에도 이상향이나 꿈으로 표현하는 사회주의 사상이 있었고, 맑스가 살았던 시대에도, 그리고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이 사회주의를 말합니다. 대표적 보기로 스탈린주의를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로 이해하고 있고. 지금의 북한이나 중국, 베네주엘라의 차베스의 ‘21세기 사회주의’도 스스로 사회주의라고 부릅니다. 맑스는 1848년 과학적 사회주의로서의 맑스주의 (공산주의) 운동과 그 밖의 다양한 사회주의를 구별하고 『공산주의자 선언』이라는 유명한 책을 썼습니다.
유물론적 역사관, 계급투쟁의 역사관, 변증유물론의 세계관 등은 맑스주의 사상과 실천의 핵심이며, 이와 전혀 관련이 없는 사상과 실천이 ‘사회주의’라는 탈을 쓰고 역사적으로 존재했습니다. 러시아 혁명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이었으나 세계혁명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일국 사회주의 혁명으로 퇴행하였고, 1920년대 말 스탈린이 집권하면서 노동자권력은 당 독재로, 경제사회체제는 국가자본주의 퇴행한 것이 이 모든 혼란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 이후 소련을 포함한 세계의 이른바 사회주의는 맑스주의와 무관한 모습을 띠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하나의 생산양식으로서의 자본주의가 그 내재적 모순 때문에 쇠퇴하게 된다는 과학적인 분석에 기초하여 새로운 생산양식으로 발전한다는 총체적 역사인식이 맑스주의입니다. 따라서 맑스주의에서 자본주의 분석이 그 이론의 핵심이 됩니다. 여기서 이를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자본주의 위기가 주기적으로 공황으로 나타나지만 1차 세계대전 이후 쇠퇴기에 접어들었고 1945년 이후 25년간의 단기적 호황국면을 제외하고는 그 위기가 심화되고 있으며, 1997년 IMF 위기 이후 현재까지 점점 악화되고 있음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가난과 질병, 생태 위기가 심화되는 현 상황은 맑스주의 이론의 타당성을 입증하고도 남습니다.
유럽에서는 맑스주의 핵심개념인 계급투쟁, 혁명, 역사유물론 같은 말이 모든 사람들의 삶에서 일상적 용어가 된지 오래되었고 스탈린주의가 왜 반혁명적이고 반노동자적인지를 폭넓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정부는 반공 이데올로기를 앞세워 한국전쟁, 분단을 경험한 국민들에게 공포를 심어주고 대중운동을 탄압했으며 학문, 정치사상의 자유를 압살해왔습니다. 맑스주의와 관련 없는 스탈린주의의 한 유형인 북한을 “공산주의”로 규정하고 기본적인 표현의 자유와 건전한 민족주의 감정도 빨갱이 사냥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1987년 민주항쟁이 있은 뒤에야 민주적 권리가 일부 보장되었지만, 맑스주의 운동에 대한 이해는 여전히 부족합니다. 맑스주의 역사관과 세계관을 가지고 자본주의를 분석하고 비판하며 노동자와 인간이 해방되는 대안 사회를 모색하는 일은 당연하고 자연스런 일입니다. 인류문명을 더욱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끄는 일은 맑스주의자의 역사적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맑스주의 사상과 이론은 법이 판단할 대상이 아니라 위기의 시대를 사는 모든 사람들의 지혜와 상식입니다.
두 번째로 맑스주의 실천에 대해 이야기 하겠습니다. 우리는 맑스주의 연구자와 맑스주의를 구분합니다. 물론 학문적으로만 맑스와 그 사상이론을 연구하고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그것도 좁은 의미의 실천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맑스주의자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가장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노동자가 생산과 권력과 역사의 주체가 되도록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그래서 맑스주의 운동은 노동자 운동과 결코 분리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절대 다수의 노동자가 고통 없이 행복하게 사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당연한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맑스를 포함해서 그 이후의 전 세계의 맑스주의자들은 이론적 연구를 심화 발전시키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고 노동자들의 투쟁과 함께 해 왔습니다. 지금도 세계 각국의 맑스주의자들은 이러한 실천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그동안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로 불렀던 국가들은 오히려 노동자들을 소외시키고 대상화시켜 그들을 착취하고 억압해왔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맑스주의자로 보지도 않고 맑스주의 실천으로 보지도 않습니다. 사회주의를 참칭하면서 자신들의 권력을 보존하기 위해 온갖 악행을 저질러온 역사를 우리는 너무 잘 압니다.
우리나라도 맑스주의 사상의 원칙이 제대로 세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지난 30여 년 동안 공개적이건 비공개적이건 간에 사회주의적 실천이 있어 왔지만 세계 맑스주의 운동의 흐름과 고립된 상황에서「국가보안법」과 반공 이데올로기 아래에서 힘겹게 그 명맥을 유지해 왔었습니다. 이제 비로소 맑스주의 사상이론에 대한 섭렵과 이론적 연구가 시작되면서 좀 더 공개적이고 대중적으로 사회주의 실천을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사회주의노동자연합」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사회주의노동자연합」과 같은 조직은 전 세계에 수천 개가 있습니다. 그들은 「사노련」과 똑같이 자신의 웹사이트가 있고 공개적으로 맑스주의를 표현하고 구체적으로 노동자 투쟁에 결합하고 있습니다.
이제 검찰이 공소한 내용을 비판해보겠습니다.
첫째, 이적단체 구성에 대한 문제입니다. 여기서 「적」에 대한 규정이 핵심입니다. 소련과 동구의 몰락 이후 우리는 오직 북한만을 적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적」은 북한을 이롭게 하는 모든 행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밝힌 것처럼 「사노련」을 비롯한 대한민국의 맑스주의 운동 조직은 대부분 북한을 국가자본주의 국가로 보고 있고, 주체사상을 맑스주의 사상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노동자를 억압하고 착취하는 체제로 보기 때문에 국가자본주의 체제인 북한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체제인 북한을 적으로 보는 입장도 시대착오적이고 세계자본주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에 폐기해야한다고 생각하지만, 설령 아직 북한을「적」으로 규정한다고 하더라도 사노련 같은 맑스주의 운동 조직을 이적단체로 규정한다면 세계적인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만일 남한 노동자뿐만 아니라 북한의 노동자, 나아가 세계의 노동자를 적으로 규정한다면 당연히 사노련은 이적단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노동자들이 삶의 고통으로부터 해방되고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투쟁과 운동에 함께 하고 그를 위해 조직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사회를 구성하는 다수인 노동자를 적으로 규정하고 그들과 함께 하는 운동과 그 세력을 법으로 다스리는 사회가 21세기 대명천지에 존재한다면 그러한 사회와 그를 유지하려는 법은 존재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국가변란」 선전 선동 단체라는 모호한 규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본주의 근본적 모순과 문제를 파헤치고 그를 해결하는 변혁의 방향을 제시하며 가장 고통 받는 다수의 노동자들의 해방을 위한 운동에 함께 하는 맑스주의자들의 실천이「국가변란」이라면 사노련은 국가변란 선전선동 단체에 해당됩니다. 그러나 앞에서 밝힌 것처럼 이와 같은 활동을 하는 단체는 전 세계에 수천 개가 있고 앞으로 더욱 더 늘어날 것입니다. 제가 아는 바로는 이 가운데 그 어떤 단체도 법의 제재를 받았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기본권으로 보장하는 사상 표현의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이적 표현물 제작 배포에 대한 문제입니다. 이 문제는 첫 번째 이적단체 구성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더 자세하게 지적할 필요도 없습니다. 단지 문제 삼는 글 「우리의 입장」과 이론지인 「사회주의자」와 구체적 실천과 관련된 「대중행동강령」과 「가자! 노동해방」이라는 정치신문에 대한 설명을 하겠습니다. 「우리의 입장」은 세계 맑스주의 운동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맑스주의 기본원칙을 재정립해보려는 조그만 시도로 쓴 글이고 아직 미완의 형태로 남아 있는 글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평가와 진단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의 모든 맑스주의자들이 짊어져야 할 몫이며, 스탈린주의 같은 반혁명적 흐름이 왜 존재했는가에 대한 뼈저린 반성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입장」과 같은 글은 세계의 맑스주의 운동 단체들의 웹사이트에 비슷한 내용으로 실려 있습니다. 「사회주의자」라는 이론지에 실린 글들도 이와 유사한 내용이며 맑스주의 단체들은 모두 그들의 이론지를 발간하고 있습니다.
「대중행동강령」은 대중 행동의 실천적 요구를 정리한 것으로 당면한 시기에 구체적으로 한국의 노동자들의 요구를 내걸고 투쟁을 벌여나갈 지향점이었습니다.
「강령」이라는 표현보다는 「요구」라는 표현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격주로 발간되는 「가자! 노동해방」에 실린 글들은 개별 필자들의 이름으로 실린 글이며 이 글도 노동현장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의 삶의 영역에서 벌어지는 투쟁의 의미를 해석하고 알리는 기사들입니다.
따라서 글의 일부분을 발췌하거나 특정한 문구의 표현을 부각시켜 이적표현물로 규정하는 것은 자의적 해석이 될 가능성이 많고 역사적 맥락과 정치 사회적 맥락을 놓친 표피적 해독일 수 있습니다.
만일 이들 문건이나 글이 이적표현물로 규정된다면 현재 공개된 맑스주의 운동단체나 학술단체들이 발간한 책, 소책자, 논문 등의 글들은 모두 이적표현물에 해당될 것입니다.
셋째, 촛불과 관련된 집회와 시위의 문제점입니다. 검경은 사노련 회원들이 촛불집회와 시위에 참여한 것을 적극 채증해서 제출하고 있습니다. 물론 사노련의 회원들은 열심히 촛불집회라는 대중운동에 참여했고, 특보도 배포하고, 촛불 대중과 함께 거리행진을 했습니다. 밑으로부터 일어나는 자발적인 대중운동과 함께하는 것은 맑스주의자들의 당연한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검경은 사노련을 촛불의 배후라고 지목했지만 사노련은 광우병 대책위에도 들어가 있지 않았으며, 사노련은 연인원 수백만의 촛불시민과 함께 투쟁했을 뿐입니다.
만일 집시법이나 일반도로교통법 위반으로 따진다면 촛불집회 시위에 참여한 모든 촛불시민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노련은 집회와 시위에 관련한 법 규정이 전면적으로 개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러한 싸움에 모든 민주 시민 그리고 노동자와 함께 할 것입니다.
결론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사노련 재판이 우리나라 재판의 역사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이기를 바랍니다. 맑스주의 사상과 실천을 법의 잣대로 재단하려는 시대착오적 행태를 끝장내는 역사적 재판이기를 바랍니다.
국가보안법상 무죄가 쟁취되면서 실질적으로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를 바랍니다. 학문, 정치사상의 자유가 쟁취되면서 공개적이고 대중적인 맑스주의, 사회주의 활동이 활발하게 펼쳐지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집회와 시위 관련법이 민주적으로 개정되어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보장되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 세 번째 사노련 사건이 다시 만들어지지 않기를 바라지만, 계속 이런 사건이 일어나더라도 맑스주의 운동, 사회주의 운동은 그 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2010년 5월31일
Wednesday, February 06, 2013
[Scrap] “Que Sera Sera"의 올바른 사용 예
A good example of “Que Sera Sera"
- Doctor: I regret to say that your mother-in-law did not survive the surgery.
- Guy: (attempting to suppress a smile) Oh well. Que sera sera.
* Que Sera, Sera : Spanish for “what will be, will be." This is something you say when you are stuck in a hopelessly unchangeable situation, but have come to accept, or even embrace the unchangability of it all.
- Source : Urban Dictionary http://www.urbandictionary.com/define.php?term=que%20sera%20sera
Monday, February 04, 2013
Storybook : 나도 병나고 싶어.. 인텔리겐챠 고양이 가족^^
인텔리겐챠 고양이 가족^^ ; Intelligentsia Cat Family. Papa’s reading Das Kapital an Mama’s reading The New York Review of Books… #storybook
Sunday, February 03, 2013
Saturday, February 02, 2013
Repetition changes nothing in the object perceived,,,
“Repetition changes nothing in the object perceived, but it does change something in the mind which contemplates it.” — Gilles Deleuze on Hume’s Thesis, Difference and Repetition *
Atom Heart - Abstract miniatures in Memoriam Gilles Deleuze
from Various / In Memoriam Gilles Deleuze [Mille Plateaux, 1996]
this one’s for rery [just found torrent here]
thank you thank you billyjane!
“Repetition changes nothing in the object perceived, but it does change something in the mind which contemplates it.” !!
(via a4rizm)
It’s so horrible to see your own confusion and understand it
nefariouscinephile:
“It’s so horrible to see your own confusion and understand it.”February 02,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