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19세기말까지도 부부사이에도 경제적 소유권의 구분이 확실했었다고...
"조병덕가의 경제생활에는 내외의 구분이 있었다. 그는 농지현황을 말하면서 '너의 어머니가 개인적으로 산 논'이라고 하며 부인 이씨의 돈으로 산 논은 부인의 재산으로 구분해 놓고 있다. 그리고 경상적 가계비 지출은 주로 이씨가 하고, 조병덕은 주로 문방구, 육촉(기름촛불), 부채, 역(歷), 통신, 여행 등의 경비를 지출했다. 그가 빚에 시달리면서도 '안에 손을 내밀 수 없다'고 하는 것을 보면, 경제생활의 안팎 구분은 뚜렷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조병덕의 편지로는 조병덕가의 안살림은 알 수 없다. 대략이나마 파악할 수 있는 것은 대부분 조병덕의 경제생활이다."
- [양반의 사생활 - 조병덕의 편지 1,700통으로 19세기 조선을 엿보다], 하영휘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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