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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March 18, 2024

[서평] 애나 번스의 『밀크맨』

애나 번스의 『밀크맨』 은 1970년대 북아일랜드 독립투쟁 동안 북아일랜드의 한 지역에서 일어난 18살 젊은 여성이 겪은 일을 그리고 있다. '물건너' 영국으로 부터 독립하려는 북아이랜드 독립운동 세력, IRA가 활동하던 시절. 종교(개신교 vs. 카톨릭)와 정치(연합주의 vs. 독립주의) 이데올로기가 대립하던 그 때 그 상황속을 살아가는 사람들. 정치와 이데올로기가 대립하고, 모두가 모두를 의심하며, 심리적/정서적으로 칼날위에 선 듯한, 보이지 않은 억압구조의 그물망이 촘촘히 지배하는 사회. 이 소설은 현재 시점에서 과거에 있었던 일을 회상하면서 쓴 글이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억압과 폭력의 그림자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현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소설의 배경은 마치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의 첫 장을 떠올리는 그러한 상황이다. 단어나 말로는 언뜻 대립어를 나열하여 쉽게 나눌 수 있으나 현실에서는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분간하기 어려운 시대. 그러한 시공간속에서는 작가가 이야기 하듯 "사람마다 민감한 정도가 다르고 공동체의 역사를 함께 겪어왔다 하더라도 개인적인 삶의 이력은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어떤 사람에게는 도화선이 되는 일이 다른 사람은 알아차리지 못하는 상대적이고 순간적인 지평에서 날 것인 삶과 그 삶에 대한 불완전한 정신반응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러한 상황은 개인적 수준뿐만 아니라 공동체 차원에서도 일어난다. 소설속에서 화자가 공동체로 부터 커다란 비난과 질타는 받는, 공동체의 '상도'를 벗어난 행위로 지목된 "걸어가면서 책읽기"; 그런 행위는 소름끼치고 변태적이고 지독하게 고집스러운 일이며, 자기보호 본능에도 어긋나며 타인을 불편하게 만드는 비정상적이며 공공정신에도 위배되는 행위로 규정된다. 

왜 그럴까? 폭력과 상호 감시 체계 속에서는 공동체의 상도라는 것도 '상도'가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모순적이고 희극적인 공동체의 '상도'에 걸맞는 수 있는 상황이 소설속의 한 묘사를 통해서 그려지기도 한다; 

"국가 반대자들이 검은 옷에 복면을 쓰고 권총을 들고 들어와서 불량배나 미성년자가 있는지 확인했다. 술집에는 보통 불량배나 미성년자가 많지만 반대자가 누구를 밖으로 끌어내거나 쫓아내는 것은 못 보았다. 그냥 시늉만 하는 것이다. 이게 힘을 과시하기 위한 시늉이고 매주 꼭 해야 하는 연극이라는 걸 누구나 알았다. 반대자들이 성큼성큼 들어와 위압적으로 둘러보고 무기를 번쩍이며 한바퀴 돌고 나가면, 잠시 뒤에 다른 무리가 들어와 또 한차례 시늉을 했다. 이들은 외국군 그러니까 '물 건너' 나라의 점령군 이었다. 이들도 군장과 군복 군모 무기를 갖추고 몇초 전에 떠난 반대자들을 찾는다고 술집으로 들이닥쳤다. 가끔은 만약 두 무리가 동시에 들어오면 어떤 피바다가 펼쳐질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몇년 동안 금요일 밤마다 같은 일이 반복되었는데도 한번도 그런 일은 안 일어 났다. 우연히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니 두 집단이 무의식적으로 연결되어 연동하는게 아닐까 싶었다. '금요일 밤이네', 한쪽의 잠재의식이 다른 쪽의 잠재의식에 말을 거는 것이다. '간단하게 가자고. 너희들이 먼저 들어갔다가 나간 다음에 우리가 가면 어때? 다음 주에는 우리가 먼저 들어갔다 나간 다음 너희들이 들어가고' 이런 식이 아니라면 매번 간발의 차로 서로 어긋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한두번이 아니라 수백번도 넘게 그런 일이 있어났으니까" 

그러한 시대 그러한 공동체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이 감내하거나 헤쳐나가야 하는 그 촘촘하고 억압적인 분위기와 폭력의 위험은 결코 녹녹하지 않다. 

소설의 도입부에서 화자는 "나"와 "밀크맨" 이라는 북아일랜드 독립주의 반군의 리더(? 밀크맨의 실체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언명되지는 않는다)와의 불륜의 소문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하지만 화자는 그러한 소문에 적극 대응하거나 반박하지 않고 고집스럽게 침묵을 유지하며 무시한다. 그러면서 그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폐쇄되고 뒤틀린 공동체내에서 증폭되며 확산된다. 그건 어쩌면 일상적인 폭력과 감시에 항의하는 화자만의 방어기제이다. 마치 책속에서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당하는 - '상도를 벗어난', 길을 걸으면서 책을 읽는 행위처럼... 자신 주변의 삶에 무감함으로 보호막을 치고 감정을 억누르면서 인식의 한 측면을 의도적으로 뭉개버리려는 방어기제. 현실을 직시하는 객관적 비판적 인식이 아닌 선택적 기억상실과도 같은... 그러나 18세 젊은 여성의 걸으면서 책읽기, 그리고 "밀크맨"과의 불륜 소문은 공동체내에서 '정치적'인 사건이 되어간다. 

그 곳에서는 살인도 '정치적 살인'만 일어날 뿐이다. 평범한 살인은 섬뜩하고 불가해한 것이고 그것을 어떻게 분류해야할지 모르던 그런 시공간이었다. 

이야기 속에는 두명의 밀크맨이 등장한다. 한 명은 진짜 우유배달부이자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수식어가 붙은 밀크맨. 그리고 또 한 명은 화자와의 불륜소문이 퍼진 독립반군 소속의 진짜 이름이 '밀크맨"인 밀크맨. 두 밀크맨은 '물건너' 나라 영국의 관계기관으로 부터 저격을 당하여 한명은 살아나고 한명은 죽게 된다. 아무튼 그 사건의 결과로 화자와 화자의 가족 주변을 둘러싼 엉키고 뒤틀린 하나의 매듭이 끊어진다. 폭력과 죽음속에서도 또 삶은 이어져 간다. 그리고 화자는 "나는 빛을 다시 내 쉬었고 그 순간, 나는 거의 웃었다"라며 숨을 크게 내쉰다.

Thursday, March 14, 2024

[서평] 마이클 샌들 『공정하다는 착각. The Tyranny of Merit』 에 대한 짧은 생각

마이클 샌들은 현대 미국 사회의 지배적인 정치/이데올로기 프레임웍을 규정하는 능력주의적 정치기획에 대한 재 검토를 요청한다.

능력주의의 신화와 그 위기 ; 전 세계적 차원에서의 부의 양극화. 과거에는 신분이 세습되었지만 이제는 부와 학력이 세습화 되는 사회; 승자의 오만함과 패자들의 굴욕감. 그들 사이에서의 팽팽한 긴장감... 인간사회의 계급구조, 계급적 불평등, 계급간의 갈등. 이러한 현상이 현재 미국이라는 나라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어찌 보면 인류 역사와 함께 진행되어 오고 있고 인류가 존속하는 한 영원히 해결 되지 못할 문제 일 수 있다. 

마이클 샌들이 제시하는 문제에 대한 해법 또는 보완책은 다음과 같다; "기회의 평등은 부정의를 교정하는 교정 원칙이지 좋은 사회를 만드는 적절한 이상이 아니다. 문제는 기회의 평등을 넘어 조건의 평등을 제공, 보장하는 것 , 그리고 겸손과 겸양의 미덕.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시민적 덕성이자, 모욕의 감정과 분열을 치유할 수 있는 공동선(Common Good)이다" 라고...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겸손이 필요하다. 자본의 무소불위의 권력에 대한 통제가 아닌, 엘리트 지배계층의 내면의 심리적 해법.. 이는 전형적인 미국 자유주의자(American Liberalist)적인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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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문제에 대한 분석, 인식과 해법에 대한 샌들의 입장은 케이스로 토마 피케티의 그것과 비교해 볼 만하다. 샌들이 제시하는 다양한 불평등의 사례와 계급간의 격차에 대한 근거나 내용은 브랑코 미라노비치의 "코끼리곡선" 사례나 『세계불평등보고서 - 2018 불평등의 수량적 분석』 등에서 충분히 드러내 보이고 있다. 

그러나 기본적인 문제와 대안에 대한 인식틀은 약간 다르다. 피케티의 인식틀과 해법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모든 나라는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다 불평등한데, 각각의 불평등 체제는 실제 지배계급의 구성도 다르고, 지배계급의 수탈 방식도 다르며, 불평등을 설명하고 합리화 하는 방식도 다르다. 나름대로 그 불평등을 합리화하는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다. 샌들이 지적하는 미국사회의 "학력주의/능력주의"도 그러한 사회/정치/경제적 불평등을 합리화 시키는 이데올로기인 것이다. 

피케티는 이러한 신자유주의 자본의 무소불위 권력을 통제하기 위해서 "복지국가, 누진소득세강화, 글로벌자본세. 참여사회주의(노동자참가)" 등의 대안을 제시한다. 물론 그 실현가능성이나 효과에 대해서는 미지수 이다.

하지만 샌들이 제시하는 지배계급의 심리적 도덕률(겸손과 겸양)의 고양이라는 주장과 비교해 보면, 사회제도나 정책을 통해 사회/계급적 불평등을 조금이나마 개선하려는 노력이 더 중요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