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This Blog

Tuesday, April 23, 2024

[Book Scrap] 김상욱의 양자 공부

마치 동문서답, 선문답 같은 Q&A ; 

 Q : 원자는 어디 있나요?
 A : 모릅니다. 질문이 들렸어요.
 Q : 양자역학은 뭐 하는 학문인가요?
 A : 원자를 설명하죠
 Q : 그럼 원자는 어디 있나요?
 A : 모른다니까요!
 Q : 원자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데 원자를 설명한다고요?
 A : 질문이 틀렸다니까요!

이 문답을 이해한다라면 책에서 작가가 이야기 하는 양자 이야기의 핵심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나오는 불연속성, 불확정성, 확율 파동 함수... 도대체가 모호하고,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 수록 미궁속으로 빠지는 듯 하다. 모든 내용을 100%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우주의 모든 것은 원자로 되어 있고, 양자역학은 원자를 설명하는 과학이라 한다. 결국 양자역학이 제대로 밝혀지고 정립되면 우주 삼라만상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는 말이나 다름 없다. 과연 양자역학이 우주를 지배하는 물리법칙이란 말인가? 우리가 원자 세계의 운동과 현상을 완벽하게 안다고 해서 우주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을까? 우주를 지배하는 물리법칙은 과연 하나일까? 

엄밀하게 이야기 하자면, 객관적 물리법칙이 우주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이해하고 해석한 이론(법칙)으로 우주를 해석할 뿐이지 않는가? 세포가 인간을 이루는 기본요소이지만 세포의 특성과 운동, 그 메커니즘을 완벽하게 밝혀냈다고 해도 그것이 곧 인간 그 자체, 인간의 심리, 정신, 사회구조, 관계, 역사를 규정하는 법칙이 아니듯...

그렇다고 양자역학이 무용하다는 말은 아닐터... 마치 마르크스가 [자본 The Capital] 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해부와 해석의 시발점으로 자본의 원자라고 할 수 있는 '상품' 분석으로 부터 자본주의 경제구조와 자본의 운동을 설명하였듯이, 양자역학이 원자 세계의 구조와 운동에 대한 해석을 기반으로 우주의 구조와 운동에 대한 인간의 해석과 지식을 한층 더 풍부해주는 이론/방법론/학문분야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 . . . . 

양자역학이란? : 원자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설명하는 과학이다. 그렇다면 원자란 무엇인가? : 원자는 우주만물을 구성하는 최소 기본단위로, 핵과 전자로 구성되어 있다. 즉, '양자역학'이란 원자라는 물질의 핵과 전자(들)의 존재방식, 물리, 화학, 전기적 특성과 운동을 설명하는 과학이라 정의될 수 있다.

그 중에서 중요한 것은 전자이다. 전자의 특성과 운동방식에 대한 해석과 이해가 양자역학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양자역학에 대한 설명은 전자의 특성에 대한 이야기로 부터 전개된다. 전자의 존재와 운동 특성 즉, 전자의 "입자"이면서 "파동"이라는 특성. 여기에서 부터 시작하여 이중슬롯 실험, 쉬뢰딩거의 고양이 비유, 결어긋남, 관측의 문제, 코펜하겐 해석, 불연속성, 불확정성, Quantum Leap, 확률해석, 카오스, 다중/다세계해석, 다중우주 등에 대한 이야기들... 이야기의 스펙트럼은 물질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 단위인 원자, 그리고 그 원자를 구성하는 "전자"로 부터 시작하여 분자, 세포, 생명, 그리고 우주까지 확대된다. 

양자역학에 대한 구체적인 개별 이론이나 법칙을 완전히 이해하기는 힘들지만, 결국 논쟁의 핵심은 전자의 특성과 운동에 대한 "해석"의 문제이므로, 그 중 양자역학의 정통(?)이론이라는 코펜하겐 해석에 따르면; 

양자세계는 입자이면서 파동의 성질을 가지는 전자는 그 자체로 여러 가능성을 동시에 갖는 중첩상태에 있다. 그러한 여러 가능태의 존재는 외부의 실험자의 "측정"/"관측"에 의해 간섭을 받아 그 중첩상태가 깨지면서 하나의 상태/결과로만 보여지게 된다. 비유하자면 여러 확률 가능성이 존재하고 있지만, 주사위가 던져졌을때에는 하나의 결과만 나타나는 것과 같다. 하나의 주사위를 던졌을때 나올 경우의 수는 6가지로 존재하지만, 던져지기 전에 그 결과가 무엇일지는 미리 정해지거나 알 수 없고, 오직 던져진 행위, 사건의 결과로서 1이나 2 등의 하나의 결과만 보여질 뿐이며, 그 결과값인 1 이나 2는 서로 불연속적이라는 것이다. 즉 전자는 그 자체로 확정된 실재라기 보다는 측정 행위의 결과로서만 보여진다는 것, 측정/관측/실험은 그 과정중에 필연적으로 대상을 교란하고 측정을 통해 얻어낸 결과가 전자가 원래 가지고 있던 성질/본질을 규정하는것은 아니다. 좀더 이론적으로 정리하자면, 전자는 불확정성의 원리에 따라 그 대상 물리량이 어느 하나의 상태로 존재하지 못하고 여러 상태의 확률 파동 함수로서 분포된다. 여기에 측정을 가하면 파동함수가 붕괴되고 물리량은 하나의 상태로 특정된다. 

이것이 '코펜하겐 해석'에서 이야기 하는 양자역학(전자운동)의 불연속성, 불확정성, 확률해석의 내용이다. 이 해석에 따르면 우리는 전자가 어디 있는지(그 위치나 궤도)를 알 수 없고 오직 상태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양자역학이 불가지론이나 전혀 무용한 허무맹랑한 이야기란 말인가? 그건 아니다. 양자역학으로 우주의 물리 현상을 설명할 수 있고 또 정확도 99.999999999....(유효숫자 15자리까지) 측정할 수 있다.

[Book Scrap] 유현준의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유현준은 건축을 단순히 용도나 대상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공간'이라는 관점에서 건축을 바라보고 그 속에서 사회와 역사라는 인간 관계를 보고 있다. 건축물에 대한 유현준의 정의를 한마디로 이야기 한다라면 '공간이 만든 공간' 이라고 하지 않을까?

"건축물만이 가지고 있는 특이한 전달 매체가 있다. 그것은 비어 있는 Void 공간이다. 공간은 우주가 빅뱅으로 시작되었을 때부터 시간과 함께 있었던 존재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다. 공간이 없다면 빛도  존재할 수 없다. 공간이 없다면 우리는 시간을 느끼지도 못할 것이다. 건축은 이러한 공간을 조절해서 사람과 이야기한다. 이러한 보이드(Void) 공간은 건축의 도움을 통해서 느끼게 된다. 우리 눈으로 캄캄한 우주 공간을 쳐다보면 그 광활한 공간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일상의 공간도 마찬가지이다. 건축물이 만들어지기 전의 공간은 막연하다. 하지만 벽을 세우게 되면 막연해서 느껴지지 않던 공간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처마가 만들어지면 비로소 처마 팀의 공간이 우리에게 편안한 안식을 준다"

위의 문장이 건축(물)에 대한 유현준의 관점과 정의를 그대로 드러내 준다라고 생각된다. 여기에 덧대어 '정보로서의 공간'이라는 개념도 추가된다. 

"과연 어떤 정보들이 우리의 공간을 구성하는가? 개인적으로 Void, Symbol, Activity 라는 세 종류의 정보로 만들어 진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보이드 Void는 물리적인 양이다. 정량적으로 측정 가능한, 실제 비어있는  공간의 볼륨이다. 시대와 문화를 떠나서 객관적인 정보이다. Symbol 정보는 간판, 조각품, 그림 같은 상징적인 정보이다. 개인에 따라서 정보 해석의 차이가 있다. 마지막인 액티비티 정보는 사람들의 행동에 의한 정보이다. 그 공간에서 일어나는 행위가 무엇 인지가 공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 세가지 종류의 정보가 하나의 공간을 만든다"

건축 구조에 인간의 인식과 활동이 추가됨으로써 그 공간은 사회적인 건축물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건축물, 건축물의 집합체라 할 수 있는 도시 공간이라는 것은 하나의 고착되거나 불변의 대상이 아니라 유기체적으로 변화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물질로 구성된 도시가 어떻게 살아 있는 유기체적인 특징을 갖게 된 것일까? 물론 대부분의 도시 구성의 변화는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 진다. 그 변화들은 인간에 의해서 디자인되어진 대로 변화되는 것이라기 보다는 불특정 다수의 인간이 만들어낸 변화들이 모여서 예측 불가능한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며 이 불특정 다수인 인간은 유기체 생명이기 때문에 도시가 유기체의 특성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유기체 생명인 인간은 모여서 사회라는 조직을 형성하고 이 조직은 우리가 파악하거나 컨트롤 할 수 없는 또 다른 유기체를 만들어 낸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같은 유기적인 인간 사회가 만들어 내는 것이 도시이다"

공간, 정보, 그리고 인간의 Activity가 어울어 지면서 변화하는 유기체로서의 건축, 도시가 우리와 함께 존재하게 된다.

. . . . . 

건축과 도시에 대한 유현준의 글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롭고 재밌었던 부분은 공간구조와 종교활동의 상호관계에 대한 장이었다. 건축물이라는게 환경과 인간 사회활동의 혼합적 결과물이지만, 그 중 특히나 '종교'적인 관점에서의 건축물의 변화에 대한 내용은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부분을 잘 설명해 주었다.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종교가 분화 발전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종교 건축물의 구조 변화 동인을 '예배행위'의 변화라는 측면에서 설명한 것이다. '제사 vs. 설교' 라는 종교 행위의 차이가 가져온 건축물 구조의 변화.

구약시대(유대교)에는 주요한 종교적 행위가 제사에 있었다. 그리고 그 제사는 제사장이 드리도록 되어 있었다. 유대교의 초기 예배 형식은 구약시대의 모세라는 인물이 틀을 만들었다. 구약성경을 보면 모세가 하나님으로 부터 지시를 받고 설계했다고 전해지는 교회의 첫 번째 유형인 모세의 장막이 나온다. 모세는 이동하면서도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예배당을 디자인하였는데, 그 구조는 장막을 이용해서 담장을 치고 그 안에 텐트를 치고 또 다시 그 안에 커튼을 쳐서 공간을 마당, 성소, 지성소라는 세가지로 구분한 것이었다 . 마당은 담당과 텐트사이의 공간으로 이 공간에는 물두멍이라고 제사장이 손을 씻을 수 있는 커다란 물동이가 있었다. 그다음 공간인 텐트안의 성소는 제사장들만 들어갈 수 있었고, 그 보다 더 안쪽에 위치한 성궤가 있는 지성소는 여호와 하나님이 거하시는 공간으로서 1년에 한번 대속죄일에 대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었다. 하나님의 성소는 희생물의 피를 흩뿌리는 제사 공간과 하나님이 거하는 텅 빈 공간으로 분리 구성된 것이다. 

이렇듯 유대교의 교회라는 것은 소수의 제사장들이 제사를 드리던 것이 예전의 공간이었기에 대규모로 집회를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 과거 모세의 성막이다. 

기독교 교회 건축 양식이 크게 변화한 것은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이후이다. 신약시대(기독교)에 와서 가장 큰 변화는 제사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예수가 희생양이 되어서 한 번의 십자가형으로 제사를 대신하게 되었고 그 사실을 믿기만 하면 되는 기독교가 된 것이다. 이는 건축에서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온다. 예수가 전 인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는 제사를 다 수행했기 때문에 기존의 제사 행위가 필요 없게 된 것이다. 대신에 그 자리에는 제사를 대신하는 예수의 업적과 교리, 스토리들이 전파되어지는 설교가 대신하게 되었다. 

프로그램이 바뀌게 되면 건축의 외형도 바뀌는 법이다. 제사에서 설교로..대형집회를 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런 필요에 따라 교회 건축은 더욱더 대형 건축물화 되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