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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June 24, 2024

책, 『아버지의 해방일지』

전직 빨치산이자 어수룩한 농삿꾼인 아버지, 치매기가 있던 아버지가 길을 걷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는 죽었다(곧 바로 죽은 건 아니고, 그 여파로 빠른 시간내에..) 

"근엄, 진지, 혁명가의 비장함"이라는 단어로 이야깃속 주인공인 딸이 묘사한 빨치산 부모님의 삶. 평생을 사회주의자 빨치산 이념에 매달리며 서툰 농삿꾼으로 살던 아버지의 죽음을 맞아 하나뿐인 딸이 상주로써 아버지의 장례를 치루면서 맞게 되는 가족, 친지, 그리고 다양한 조문객들. 그들의 사정과 이야기를 통해 재구성되는 아버지의 삶. 그를 통해 우리 근현대사의 갈등, 분열, 폭력, 상처, 분노, 죄책감, 이해와 용서의 이야기를 엮어 나간다.

빨치산 출신인 아버지와 어머니의 평탄치 않은 만남과 재혼. 가장 가까우면서도 그 관계로 인해 가장 큰 상처를 갖게 되는 가족친지들간의 -특히나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와의- 그 기나긴 상처와 고통의 이야기. 좌우대립과 한국전쟁 중에서 겪게 되는 돌이킬 수 없는 폭력과 치유될 수 없는 상처. 장기투옥, 자기 신념체계의 공고화, 또는 변절. 살아 남은 자들의 슬픔/죄책감, 상대나 타인에 대한 분노, 전쟁 이후 다시 이어가는 사회와 공동체에서의 새로운 관계들... 

아버지의 죽음과 장례식을 통해 딸이 몰랐던 아버지의 삶의 다양한 모습 중 일부가 재구성되고 아버지에 대한 이해의 폭을 더 넓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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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치산의 딸로서 살아온 삶. 오롯이 '나'로서가 아닌 '누구누구의 딸'로서 살아간다라는 것은 멍에일 뿐이다. 그 삶은 부모가 죽었다 하더라도 자신의 삶이 끝날때 까지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살아가면서 부모와의 관계설정은 여러 경로를 거치고, 또 그러한 부모에 대한 감정이나 부모의 삶에 대한 이해도 다양하게 변화하게 된다.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와는 다르게 돌아가시고 나면 그러한 부모와의 관계와 그 삶에 대해 다시 한번 곱씹게 되며, 그러면서 부정적인 측면이 강화되거나 긍정적인 측면이 강화되기도 하고... 어찌보면 죽음 이후에는 좀더 관대해지고 아련해지는 경향이 있다.

이야깃속 주인공의 자세 또한 그러하다. 전봇대에 머리를 부딪혀 돌아가신 전직 빨치산이자 농삿꾼 아버지의 삶에 대한 기억과 추모; 한 인간의 삶이라는게 다양한 굴곡과 사회적 관계속에서 어우르며 지내온 것이라, 주인공인 딸이 알던 아버지의 삶이라는 것도 전체를 구성하는 아버지의 다양한 삶의 모습 중 한 단면이었을 뿐이다. 아버지의 죽음과 장례식을 계기로 주인공이 알지 못했던 아버지의 다른 시간, 다른 관계속에 있던 삶 중 일부를 재구성하고 아버지를 더 이해하게 된다. 그러면서 장례식이 단지 죽음을 추도하는 공간만이 아닌 만남과 화해, 그리고 시끌벅적 울고 웃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책, 『군중심리』

귀스타브 르 봉은 인간이 개인으로서 존재할때와 집단으로 존재할때의 차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대비 한다. 

개인으로서의 존재 : 의식, 합리, 이성 
  vs. 
집단/군중의로서의 존재 :  무의식, 비합리, 광기, 폭력..

군중이 되었을때, 군중은 각 개인이 가진 지식과 이성의 합이 아니라 "각 개인의 지적 능력, 즉 그들의 개체성은 집단의 정신상태속에서 사라진다. 이질성은 동질성 속에 섞이고 무의식적 자질들이 우위를 차지한다". 즉 개인으로서의 존재 보다 더 낮은, 열등한, 퇴행적인 정신/의식상태와 행동양태를 보인다는 것이다. 

군중/집단에서 나타나는 의식, 심리구조에 대한 분석을 통해 귀스타브 르 봉은 이성 혹은 합리적인 논리가 인간의 행동을 주재하는 전능한 힘이 아니며, 인간을 지배하는 것은 감정, 관습, 신념(믿음)체계 등이라고 본다. 이성은 거의 대부분 다른 본능적, 감정적, 생물학적, 집단적 논리들이 우리에게 범하라고 부추킨 행위를 사후에 정당화 하기 위한 존재일 뿐이다. "역사를 살펴볼때 인간들이 물질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보다는 사상/믿음을 위해 죽음을 선택한 경우가 훨씬 많다는 사실"... 

귀스타브 르 봉은 이러한 관점하에서 그가 살었던 프랑스의 프랑스혁명과 파리꼬뮌의 격랑속에서 폭발적으로 등장했던 세로운 정치세력, '군중'에 대한 분석을 진행해 나간다.

인간의 비합리성, 광기, 맹신, 폭력의 역사에 대한 책들과 연구가 많은데, 귀스타브 르 봉의 『군중심리』 는 이러한 연구의 고전이라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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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스타브 르 봉의 『군중심리』 는 산업혁명과 프랑스혁명, 파리꼬뮌의 격랑속에서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했던 "군중"에 대한 충격으로 부터 시작된다. 

군중(群衆)이라는 집단이나 집합적 무리가 그때 그당시에 처음 생겨난 것은 아니겠지만, 산업화와 근대혁명을 거치면서 등장한 새로운 정치집단으로서의 "군중"의 존재는 과거와는 다른 세력이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군주나 귀족, 지식계급이 세상을 지배하고 이끌었다면 (귀스타브 르 봉이 살았던 프랑스의 경험으로 보면) 프랑스 혁명과 파리꼬뮌의 격랑속에서 등장했던 군중은 전혀 새로운 존재로 비춰지게 된 것이다. 

"정치생활에 군중이라는 계급이 진출했다는 사실, 그러니까 실제로 그들이 지배계급으로 서서히 변화해가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사는 이 과도기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다"

그렇다면 그러한 '세로운 세력', 군중의 정체란 무엇인가?

"오늘날 군중의 요구는 점점 더 분명해져 가고 있는데, 현재 사회를 철저히 파괴한 다음 문명의 여명기 이전에 모든 인간집단이 영위하던 정상적 생활방식인 원시공산사회로 돌아가게 하겠다는 것이다. 노동시간을 제한하고, 생산과 철도, 공장, 토지를 수용할 것. 모든 생산물을 평등하게 분배하고 민중계급의 이익을 위해 모든 상류계급을 타도할 것. 이것이 바로 그들의 요구사항이다"

귀스타브 르 봉이 이야기 하는 그 "군중"이라는 집단은 주로 노동자계급과 부르주와 계급 일부를 일컫는, 정치적으로는 사회주의 정치세력이라 볼 수 있다. 

『군중심리』 가 출판된 1895년은 프랑스혁명과 파리꼬뮌의 충격이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은 때라 귀족이나 부르주아, 지식인 들의 그러한 군중의 이미지가 매우 강렬하고 부정적으로 남아 있다. 

군중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 적대감 ; 그들은 과거와 같은 지배와 통치의 대상으로서의 "백성"이 아닌, 통제되지 않은 미지의 세력, 즉 왕권과 귀족지배를 뒤엎을 혁명세력이었던 것이다. 

귀스타브 르 봉의 책도 이러한 배경으로 부터 "군중"에 대한 이해와 연구의 작업들이 시작되었다 할 수 있다. 

귀스타브 르 봉이 정의하고 분석하는 군중이란 "심리적" 군중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수 많은 개인이 결합한다고 해서 군중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 관점에서 군중을 정의한다. 

"이렇게 심리적 관점에서 보면 군중이라는 표현은 전혀 다른 의미를 띤다. 어떤 일정한 여건에서 그리고 오직 이건 여건에서만 인간들의 집합체는 이 집합체를 구성하는 개인들의 특성과는 크게 다른 특성이 있다. 의식을 가진 개성은 자취를 감추고 그 집합체를 이루는 모든 단위의 감정과 생각은 같은 방향으로 향한다. 그리고 의심의 여지 없이 일시적이지만 대단히 명확한 특징을 드러내는 집단적 정신상태가 형성 된다. 이런 집단을 '조직된 군중', 혹은 '심리적 군중' 이라 부를 것이다.....심리적 군중은 일시적인 존재로서, 마치 어떤 생명체를 구성하는 세포들이 결합에 의해 각자가 가지고 있는 것과는 매우 다른 특성을 드러내는 새로운 생명체를 생성하는 것 처럼 잠시 동안 결합한 이질적 요소로 이루어 진다"

이러한 군중이 가진 특성과 심리구조에 대한 분석이 이어진다. 개인의로서의 존재와 집단/군중으로서의 존재할때의 차이. 아무리 훌륭한 지식과 판단력, 이성을 가진 개인이라도 집단/군중의 일부로 존재할때 나타나는 '퇴행적'인 -개인으로 존재할때 보다는 열등하고 낮은 수준의- 정신/의식상태와 행동양태를 보인다고 진단한다. 퇴행적인 군중의식/정신상태라는 진단으로 부터 군중의 여러 특성(충동성, 폭력성, 변덕스러움, 과민성, 피암시성, 상상력, 맹신, 비관용성, 보수성 등)을 나열하고 분석한다. 이러한 특성 덕에 군중은 '설득, 선동, 조작, 통제가 가능한 대상'으로 이해되고, 군중을 통제하고 이용하는 리더나 지배자들의 수단이나 기술(이미지, 단어, 확언/반복/감염/위엄)에 대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그리고 3부에서는 군중의 분류와 몇몇 군중 집단에 대해 분석을 진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