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빨치산이자 어수룩한 농삿꾼인 아버지, 치매기가 있던 아버지가 길을 걷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는 죽었다(곧 바로 죽은 건 아니고, 그 여파로 빠른 시간내에..)
"근엄, 진지, 혁명가의 비장함"이라는 단어로 이야깃속 주인공인 딸이 묘사한 빨치산 부모님의 삶. 평생을 사회주의자 빨치산 이념에 매달리며 서툰 농삿꾼으로 살던 아버지의 죽음을 맞아 하나뿐인 딸이 상주로써 아버지의 장례를 치루면서 맞게 되는 가족, 친지, 그리고 다양한 조문객들. 그들의 사정과 이야기를 통해 재구성되는 아버지의 삶. 그를 통해 우리 근현대사의 갈등, 분열, 폭력, 상처, 분노, 죄책감, 이해와 용서의 이야기를 엮어 나간다.
빨치산 출신인 아버지와 어머니의 평탄치 않은 만남과 재혼. 가장 가까우면서도 그 관계로 인해 가장 큰 상처를 갖게 되는 가족친지들간의 -특히나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와의- 그 기나긴 상처와 고통의 이야기. 좌우대립과 한국전쟁 중에서 겪게 되는 돌이킬 수 없는 폭력과 치유될 수 없는 상처. 장기투옥, 자기 신념체계의 공고화, 또는 변절. 살아 남은 자들의 슬픔/죄책감, 상대나 타인에 대한 분노, 전쟁 이후 다시 이어가는 사회와 공동체에서의 새로운 관계들...
아버지의 죽음과 장례식을 통해 딸이 몰랐던 아버지의 삶의 다양한 모습 중 일부가 재구성되고 아버지에 대한 이해의 폭을 더 넓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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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치산의 딸로서 살아온 삶. 오롯이 '나'로서가 아닌 '누구누구의 딸'로서 살아간다라는 것은 멍에일 뿐이다. 그 삶은 부모가 죽었다 하더라도 자신의 삶이 끝날때 까지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살아가면서 부모와의 관계설정은 여러 경로를 거치고, 또 그러한 부모에 대한 감정이나 부모의 삶에 대한 이해도 다양하게 변화하게 된다.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와는 다르게 돌아가시고 나면 그러한 부모와의 관계와 그 삶에 대해 다시 한번 곱씹게 되며, 그러면서 부정적인 측면이 강화되거나 긍정적인 측면이 강화되기도 하고... 어찌보면 죽음 이후에는 좀더 관대해지고 아련해지는 경향이 있다.
이야깃속 주인공의 자세 또한 그러하다. 전봇대에 머리를 부딪혀 돌아가신 전직 빨치산이자 농삿꾼 아버지의 삶에 대한 기억과 추모; 한 인간의 삶이라는게 다양한 굴곡과 사회적 관계속에서 어우르며 지내온 것이라, 주인공인 딸이 알던 아버지의 삶이라는 것도 전체를 구성하는 아버지의 다양한 삶의 모습 중 한 단면이었을 뿐이다. 아버지의 죽음과 장례식을 계기로 주인공이 알지 못했던 아버지의 다른 시간, 다른 관계속에 있던 삶 중 일부를 재구성하고 아버지를 더 이해하게 된다. 그러면서 장례식이 단지 죽음을 추도하는 공간만이 아닌 만남과 화해, 그리고 시끌벅적 울고 웃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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