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의약품 개발은 일종의 레고 블럭과 유사한 방식이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생리학적으로 중요한 단백질과 결합하는 물질을 찾기 위해 화합물 구조에 산소를 연결하거나 탄소를 제거하고 적절하게 길이를 조절하며 유전자 서열을 조작하는 등 화합물 구조를 변경는 "합리적 설계"를 통해 신약을 개발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과학기술이 발전하지 않은 과거에는 대다수가 우연히 찾아낸 의약품이었고, 지금이라면 승인 되지 않았을 법한 실험을 통해, 부작용이 있음에도 특정 질병에 효과가 있다는 약들이 오랜 시간 사용되면서 사회에 자연스럽게 뿌리내린 사례가 많았다. 그러한 약이 개발, 발견된 '우연한 계기' 중 하나가 바로 "전쟁"이다. 저자는 전쟁과 질병, 전쟁과 약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의약품 개발의 재밌는 이야기들을 전해 준다.
저자는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전쟁과 질병, 의약품은 잘 맞춘 세 바퀴 물레방아처럼 엮여 있다. 제국주의 시절 아프리카 탐험가에게 지급된 기생충 약, 제2차 세계대전중 개발된 페니실린, 병사들의 전투력을 높이기 위해 사용된 마약류 각성제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모르핀은 남북전쟁 다시 진통제로 더 없이 소중한 약이었지만 정작 모르핀의 원료인 아편은 아편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기도 했다. 스페인 독감은 제1차 세계대전을 타고 전 세계로 퍼져 나갔으며, 역설적으로 제1차 세계대전을 종식하는데 일조하기도 하였다. 전쟁과 질병은 끊임없이 교류하여 인류를 괴롭혀 왔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질병의 역사이기도 하다"
전쟁과 질병, 그리고 질병에 대항하기 위한 의약품. 그 의약품을 찾고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책에서 저자가 이야기한 것 중에 개인적으로 인상 깊은 것은 다음의 세가지 사례이다.
1. 모기와 말라리아
모기로 인한 사망자가 매년 72만명 이상에 이른다는 점. 모기에 의한 사망자 숫자가 인간을 포함한 다른 어떤 동물에 의한 사망 원인 보다 앞선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일류의 무서운 천적 중 하나가 바로 모기라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특히 모기로 인한 사망 원인 중 말라리아 감염자는 2017년 기준 87개국에서 약 2억2, 000명에 이르렀고 그 중 43만명이 말라리아를 원인으로 사망했다. 한국은 말라리아에 대한 경각심이 낮은것 같은데, 사실 한국에서도 말라리아는 생각보다 우리 곁에 가까이 있다. 강화도나 파주시, 철원군 등이 종종 헌혈 제한지역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말라리아는 "학질"이라고 불리었는데, 조선시대 현종 임금이 학질로 사망하였다고 하니 생각과는 다르게 한국도 말라리아 청정지역이 아니다.
2. 러일전쟁과 비타민 전쟁 ; 괴혈병 vs. 각기병
1904년 시작된 러시아와의 일본의 전쟁은 러시아와 일본이라는 정치/군사적 대립전선 이외에, 러시아 vs. 괴혈병, 일본 vs. 각기병이라는 또 다른, 질병과의 전선들이 펼쳐진 전쟁이었다. 양국이 전선에서 총과 포탄, 육박전에 의한 직접적인 사망자수에 못지 않게 괴혈병과 각기병에 의한 전력 손실과 사망자 수가 엄청났다. 약 100만명의 일본군 중 25만명 정도가 각기병을 앓아야 했고, 러일전쟁 중 일본군 사망자 수 약 8만 4천여명 중 각기병으로 죽은 병력이 약 2만7천명 내외라는 사실을 본다라면 그 심각성을 알 수 있다. 러시아군도 마찬가지로 영양실조에 의한 괴혈병으로 고통을 받았다. 괴혈병과 각기병은 기본적으로 영양소 부족으로 인한 질병으로; 각기병은 비타민 B1, 괴혈병은 비타민 C의 부족으로 발생한 질병이다. 어찌보면 러일전쟁은 비타민 전쟁이라 부를 수 있다.
* 참고로 일본제국주의 시절, 일본이 만주와 시베리아로 나아갈 때 현지에서 설사병으로 고생하는 병사들을 위해 개발된 설사약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정로환 이라는 사실. 훗날 러일전쟁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征露丸(정로환, 러시아를 정복한 환)으로 명명했다가, 이후 征 자를 正 으로 바꾸어 정로환(正露丸) 이라는 상품으로 판매되고 있다.
3. 아스피린
① 식물 유래 해열제 : 독일에서 해열제로 버드나무 껍질을 사용하였는데, 버드나무 껍질에서 해열 효과를 내는 주성분 살리신 salicin을 추출하여 여기에 산과 열을 가해 가수분해하고 산화반응을 시켜 만들어 낸게 살리신산 salicylic acid 이다. 살리실산은 1838년 독일의 약물학자 라파엘 피리아 Raffaele Piria 가 추출하였다.
② 화학적 합성을 통해 개발된 해열제 : 1859년 독일의 화학자 헤르만 콜베 Hermann Kolbe 는 가격이 비쌌던 버드나무껍질에서 추츨해내던 살리실산 대신 페놀 Phenol 에 수산화나트름과 이산화탄소를 가하고 열을 가하는 방법을 발표하여 상대적으로 저가(약 1/10 수준)으로 살리실산 제조 공법 개발
③ 1897년 8월 10일 독일 바이엘(Bayer)사의 펠릭스 호프만 Felix Hoffmann 이 살리실산에 무수 아세트산 acetic anhydride 를 가하는 방식으로 아세틸 살리실산을 분리하는 의약품 생산 공정에 성공. 이렇게 만들어져 시판된 약이 바로 그 유명한 아스피린이다.
아스피린이 독극물(페놀과 여러 화학약품)으로 부터 개발된 역사와 현재까지 베스트 셀러로 팔리는 약이라는 것을 보면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독약동근(毒藥同根)이라...
** 기타, 마약류의 분류와 계보에 대한 잡학적 정리 **
1. 수면/진정/진통제
ⓐ 식물 유래 : 아편 Opium → 모르핀 Morphine → 헤로인 Heroin ; 모르핀에서 헤로인으로 전환한 사람이 독일 바이엘사의 펠릭스 호프만 Felix Hoffamnn, 바로 아스피린을 만든 장본인이다. 당시 아스피린의 인기 때문에 헤로인이 주력 상품에서 제외되었다는 일화.
ⓑ 합성 마약 : 1939년 독일에서 페치딘 pethidine 개발 → 1960년대 페치딘의 구조를 기반으로 강력한 효과의 펜타닐 fentanyl 개발
2. 각성제 : 대뇌에서 작용하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과 같은 합성물질인 메스암페타민 Methamphetamine, 1887년 독일에서 합성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1893년 일본의 약화학자인 나가이 나가요시 長井長義 가 생산을 시작하여 "필로폰 Philopon"으로 유명세를 떨치다.
1887년과 1897년의 독일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1887년 메스암페타민 합성, 1897년 헤로인과 아스피린 합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