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10 2011 1:49 pm
"진정한 삶은 여기에 부재한다. 그러나 우리는 세계 안에 있다. 이런 알리바이 속에서 형이상학은 생겨나고 유지된다.” 레비나스(Emmanuel Levinas)의 대표작 전체성과 무한 1장은 ‘형이상학’의 탄생에 대한 이 문장과 더불어 시작한다…
이 세계에 진정한 삶은 부재한다. 진정한 삶은 없지만, 속절없이 우리는 세계 안에, 진정한 삶이 없는 곳에서 살아간다.
진정한 삶이 세계 안에 없으니 “형이상학은 ‘다른 곳’을, 그리고 ‘다르게’를, 또 ‘타자’를 향하고 있다.”
형이상학(Meta-physics)은 문자 그대로의 뜻대로 가시적이며 손에 쥘 수 있는 사물들의 세계, 즉 물리(physics)의 배후(meta)를 넘겨다보는 학문이지 않은가? 이 세계 저편에 대한 인간의 그리움의 표현이 바로 형이상학이 아닌가?
형이상학이 건너다보는 저편의 세계, 나의 것과 다른 타자의 세계에서 우리는 진정한 삶을 만날 수 있을까? 혹시 그것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지 않을지?…
[타자의 얼굴 앞에선 주체] - 서동욱 / 서강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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