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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August 12, 2025

김훈의 望八

김훈의 望八 을 받아 읽어 보았다. 신의 냉랭한 품속에서 바라보는 냉랭한 메두사의 응시와도 같은,,, "가벼운 죽음을 무거운 삶의 무게로 지탱하라" 혹은,, 죽음의 가벼움으로 삶의 무게를 버텨라... posted at 10:05:26 2025/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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望八(팔십을 바라 보게)되니까  (글_소설가 김훈)

오랫동안 소식이 없던 벗들한테서 소식이 오는데, 죽었다는 소식이다.살아 있다는 소식은 오지 않으니까, 소식이 없으면 살아 있는 것이다. ​

지난달에도 형뻘 되는 벗이 죽어서 장사를 치르느라고 화장장에 갔었다. 화장장 정문에서부터 영구차와 버스들이 밀려 있었다.​ 관이 전기 화로 속으로 내려가면 고인의 이름 밑에 '소각 중'이라는 문자등이 켜지고, 40분쯤 지나니까 '소각 완료', 또 10분쯤 지나니까 '냉각 중'이라는 글자가 켜졌다. 10년쯤 전에는 소각에서 냉각까지 100분 정도 걸렸는데, 이제는 50분으로 줄었다. 기술이 크게 진보했고, 의전을 관리하는 절차도 세련되었다. '냉각 완료' 되면 흰 뼛가루가 줄줄이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서 나오는데, 성인 한 사람 분이 한 되 반 정도였다. 직원이 뼛가루를 봉투에 담아서 유족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유족들은 미리 준비한 옹기에 뼛가루를 담아서 목에 걸고 돌아갔다. ​원통하게 비명 횡사한 경우가 아니면 요즘에는 유족들도 별로 울지 않는다. 부모를 따라서 화장장에 온 청소년들은 대기실에 모여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제 입으로 "우리는 호상(喪)입니다"라며 문상객을 맞는 상주도 있었다.​

그날 세 살 난 아기가 소각되었다. 종이로 만든 작은 관이 내려갈 때, 젊은 엄마는 돌아서서 울었다.아기의 뼛가루는 서너 홉쯤 되었을 터이다.​뼛가루는 흰 분말에 흐린 기운이 스며서 안개 색깔이었다.입자가 고와서 먼지처럼 보였다. 아무런 질량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물체의 먼 흔적이나 그림자였다. ​명사라기보다는 '흐린'이라는 형용사에 가까웠다.​뼛가루의 침묵은 완강 했고, 범접할 수 없는 적막 속에서 세상과 작별하고 있었다.​금방 있던 사람이 금방 없어졌는데, 뼛가루는 남은 사람들의 슬픔이나 애도와는 사소한 관련도 없었고,​ 이 언어도단은 인간 생명의 종말로서 합당하고 편안해 보였다.​

죽으면 말길이 끊어져서 죽은 자는 산 자에게 죽음의 내용을 전할 수 없고, 죽은 자는 죽었기 때문에 죽음을 인지할 수 없다.​ 인간은 그저 죽을 뿐, 죽음을 경험할 수는 없다.​화장장에 다녀온 날 저녁마다 삶의 무거움과 죽음의 가벼움을 생각했다.​죽음이 저토록 가벼우므로 나는 남은 삶의 하중을 버티어낼 수 있다.​뼛가루 한 되 반은 인간 육체의 마지막 잔해로서 많지도 적지도 않고, 적당해 보였다.​ 죽음은 날이 저물고,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것과 같은 자연현상으로, 애도할 만한 사태가 아니었다.​뼛가루를 들여다보니까, 일상생활하듯이, 세수를 하고 면도를 하듯이, 그렇게 가볍게 죽어야겠구나, 라는생각이 들었다.​

돈 들이지 말고 죽자,​건강보험 재정 축내지 말고 죽자,주변 사람을 힘들게 하지 말고 가자, 질척거리지 말고 가자,​지저분한 것들을 남기지 말고 가자, ​빌려 온 것 있으면 다 갚고 가자,​ 남은 것 있으면 다 주고 가자,​ 입던 옷 깨끗이 빨아 입고 가자, ​관은 중저가가 좋겠지.​ 가면서 사람 불러 모으지 말자,​ 빈소에서는 고스톱을 금한다고 미리 말해두자….​ 가볍게 죽기 위해서는 미리 정리해 놓을 일이 있다.​내 작업실의 서랍과 수납장, 책장을 들여다 보았더니 지금까지 지니고 있었던 것의 거의 전부가 쓰레기였다.​이 쓰레기더미 속에서 한 생애가 지나갔다.​똥을 백자 항아리에 담아서 냉장고에 넣어둔 꼴이었다.​ 나는 매일 조금씩, 표가 안 나게 이 쓰레기들을 내다 버린다. ​드나들 때마다 조금씩 쇼핑백에 넣어서 끌어낸다.​ 나는 이제 높은 산에 오르지 못한다.​등산 장비 중에서 쓸 만한 것들은 모두 젊은이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나머지는 버렸다.책은 버리기 쉬운데,헌 신발이나 낡은 등산화를 버리기는 슬프다.​뒤축이 닳고 찌그러진 신발은 내 몸뚱이를 싣고 이 세상의 거리를 쏘다닌, 나의 분신이며 동반자이다.​헌 신발은 연민할 수밖에 없는 표정을 지니고 있다.​헌 신발은 불쌍하다. 그래도 나는 내다 버렸다.​

뼛가루에게 무슨 연민이 있겠는가.​ 유언을 하기는 쑥스럽지만 꼭 해야 한다면 아주 쉽고 일상적인 걸로 하고 싶다.​딸아, 잘생긴 건달 놈들을 조심해라.​아들아, 혀를 너무 빨리 놀리지 마라 이 정도면 어떨까 싶다.​오래전에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는 스스로 '광야를 달리는 말(!)'을 자칭했다.​ 아버지는 집 밖으로 나돌면서 평생을 사셨는데,돌아가실 때 유언으로 미안허다. 를 남기셨다.한 생애가 4음절로 선명히 요약되었다.​ 더 이상 짧을 수는 없었다.후회와 반성의 진정성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이것은 좋은 유언이 아니다.​이미 돌이킬 수 없이 늦었고, 대책 없이 슬프고허허로워서 어쩌자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퇴계 선생님은 죽음이 임박하자​ 조화를 따라서 사라짐이여 다시 또 무엇을 바라겠는가?​라는 시문을 남겼고, 임종의 자리에서는 매화에 물 줘라.​ 하고 말씀하셨다고 제자들이 기록했다.​아름답고 격조 높은 유언이지만 생활의 구체성이 모자란다.​ 

내 친구 김용택 시인의 아버지는섬진강 상류의 산골 마을에서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사셨다.​김용택의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김용택을 불러놓고 유언을 하셨는데​ 네 어머니가 방마다 아궁이에 불 때느라고 고생을 많이 했다.​부디 연탄보일러를 놓아드려라. 라고 말씀하셨다.(나는 이 이야기를 김용택의 어머니 박덕성 여사님한테서 직접 들었다. 몇 년 후에 김용택의 시골집에 가봤더니 그때까지도 연탄보일러를 놓지 못하고 있었다.)​

나의 아버지, 퇴계 선생님, 김용택의 아버지, 이 세 분의 유언 중에서 나는 김용택 아버지의 유언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이 유언은 건실하고 씩씩하고 속이 꽉 차 있다.​ 김용택 아버지는 참으로 죽음을 별것 아닌 것으로, 아침마다 소를 몰고 밭으로 나가듯이 가볍게 받아들이셨다. 그리고 숨을 거두는 순간에도 인생의 당면 문제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이 정도 유언이 나오려면, 깊은 내공과 오래고 성실한 노동의 세월이 필요하다.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삶은 무겁고 죽음은 가볍다.​ 죽음과 싸워서 이기는 것이 의술의 목표라면 의술은 백전백패한다.​의술의 목표는 생명이고, 죽음이 아니다.​ 

이국종처럼, 깨어진 육체를 맞추고 꿰매서 살려내는 의사가 있어야 하지만,​ 충분히 다 살고 죽으려는 사람들의 마지막 길을 품위있게 인도해주는 의사도 있어야 한다.​ 죽음은 쓰다듬어서 맞아들여야지, 싸워서 이겨야 할 대상이 아니다.​ 다 살았으므로 가야 하는 사람의 마지막 시간을 파이프를 꽂아서 붙잡아 놓고서 못 가게 하는 의술은 무의미하다.​ 

​가볍게 죽고, 가는 사람을 서늘하게 보내자.​단순한 장례 절차에서도 정중한 애도를 실현할 수 있다.​가는 사람도 보내는 사람도, 의술도 모두 가벼움으로 돌아가자.​뼛가루를 들여다보면 다 알 수 있다.​

이 가벼움으로 삶의 무거움을 버티어낼 수 있다.​

결국은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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