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맨 몸으로 오르기 힘든 바위산 꼭대기에,,
1500여년전에 신라 진흥왕이 영토순방을 기념하여 비문을 세웠다라는게 참,,,,
이 비석이 진흥왕순수비임을 밝혀낸게 추사 김정희라는...
1500여년전에 신라 진흥왕이 영토순방을 기념하여 비문을 세웠다라는게 참,,,,
이 비석이 진흥왕순수비임을 밝혀낸게 추사 김정희라는...
[북한산 진흥왕순수비]
이 비는 신라 진흥왕(540~576)이 새로이 확보한 영토의 국경을 직접 둘러본 사실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것으로.... 이러한 비를 순수비(巡狩碑)라 부르는데, 진흥황 순수비가 세워진 곳은 현재 경상남도 창녕, 함경남도 이원(利原)의 마운령(磨蕓嶺)과 길주(吉州)의 황초령(黃草嶺) 그리고 경기도 북한산 비봉(碑峯) 등 4곳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비문은 글자가 마멸되어 전체 내용을 알 수 없으나 진흥왕의 영토확장과 지역순시를 칭송한 것으로 추정되며 여기에 나오는 인명, 지명, 관직명 등은 당시의 역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원래 이 비는 오랜 세월이 흘러 세상 사람들에게 잊혀지고 글자도 읽기 힘들게 되어 조선시대에 무학대사가 조선왕조의 도읍지를 찾아 다닐때 이 비봉을 올라와 보니 "무학이 잘못 찾아 여기에 왔나(無學誤尋到此)'라고 쓰여 있어 급히 내려갔다는 전설이 전해져 진흥왕순수비라는 사실 자체를 모르게 되고 무학대사비로 잘못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1816년, 당대의 금석학자인 추사 김정희는 이 비를 직접 찾아보고 비문을 탁본하여 연구한 결과 모두 68자를 읽어 냈고 바로 이 비가 진흥왕순수비임을 밝혔다. 이듬해 김정희는 다시 이 비를 찾아와 비석 옆면에 자신이 이 비를 찾은 날짜와 이 비가 바로 신라 진흥왕순수비임을 확인하였다는 사실을 새겨 놓았다.
이 비의 건립연대는 진흥왕 26년(568년)에 세워진 마운령,황초령비와 비슷한 시기로 추정된다. 원래 비석 윗부부분에는 덮개돌이 씌워져 있었으나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다.
비석은 풍화가 심하여 1972년 이곳으로 부터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전하여 전시, 보존되어 오고 있으며 2006년 10월에는 원래의 자리에 현재의 복제비석을 세워 역사적 현장을 보존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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