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티즘의 역사 L'HISTOIRE DE L'EROTISME by Georges Bataille, 조한경 옮김, 민음사 posted at 12:19:21 2017/04/20
책에 찍힌 구매날짜를 보니 1999년 9월 04일. 책이 씌여진 시기는 1950년대초. 에로티즘의 역사라고 하지만,, "역사"는 없다. 총체성이니 뭐니하는 용어들과 추상적인 이야기들... posted at 12:2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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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티즘의 역사 L'HISTOIRE DE L'EROTISME』 by Georges Bataille,, 책에서 몇 구절 발췌 ; telegra.ph/%EC%97%90%EB%A… posted at 12:45:10 2017/04/20
인류는 겉보기에는 이웃이지만 기실 서로서로 낯선 세계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따금 그들 사이에는 엄청난 거리가 있다. 도둑의 세계와 수녀원의 세계는 하늘에 떠 있는 하나의 별과 다른 별 사이의 거리보다도 멀다고 할 수도 있다. 이 각각의 세계들은 서로를 모르며, 배척한다.
그러한 양립 불가능성은 한 개인에게서도 보인다. 가족 내에서 남자는 상냥하기가 천사같다. 그러나 밤이 오면 그는 타락의 세계를 뒹군다. 가장 놀라운 것은 각각의 세계는 다른 세계를 모르거나 적어도 모른 척하는 것이, 세계들의 규칙이라는 점이다. 어찌보면 아버지는 딸과 놀아줄 때는 자신이 중독된 돼지처럼 즐겨 찾던 못된 장소들을 잊는다. 딸과 어울리는 상황에서 일체의 까다로운 규칙들을 어기던 불결한 자신이 기억난다면 그것은 끔찍한 일이다.
비슷한 비교를 해 보자면, 집에서는 아이들을 무릎 위에 앉혀 놓고 어르는, 상냥하고 그저 평온해 보일 뿐인 농부들도 전쟁터에서는 방화하고 약탈하고 죽이고 고문한다. 그들이 그렇게 다르게 처신하는 그 두 세계는 서로 낯선 세계이다.
이 칸막이를 그렇게 견고하게 만드는, 즉 인간의 항구적인 이미지로서 일관된 "반성적 사유"는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를 형성한다. 일정한 반성적 형태를 갖는 인간들의 세계와 배척받는 세계는 아예 처음부터 전혀 관련이 없으며, 있더라도 아주 미미하다. 그 세계를 입에 담을 수 는 있지만 우리는 그것과 거리를 유지한다.
사유는 그것을 바깥에서, 높은 곳에서, 거만하게 굽어본다. 사유 측에서 볼 때, 그 세계는 마치 의사가 환자들을 다룰 때 그렇듯이, 엄밀히 말해, 자신은 게임에 말려들지 않는 채 바라볼 뿐인 대상인 것이다.
사유는 사유를 구성하는 이해 가능한 인간성의 영역과 저주의 영역을 결코 혼동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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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신(神)을 어떻게 하지 못한다면 아케론(Acheron) 강 이라도 옮겨 놓으리… Flectere si nequeo Superos, Acheron movebo…” 라는 비문의 일절이 주는 긴 여운을 어떻게 잊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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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간의 일관된 에너지 소모 체계의 결론을 도출해 내고 싶었다… 만약 우리가 소모를 활동의 원리로 삼지 않는다면, 우리에게는 끔찍한 무질서 -우리 안에 있는 에너지를 소모시킬 수 있게 해주는 무질서- 에 압사당하는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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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조만간 인간성은 파산하고 말 것이다. 그 파산은, 그렇다고,,, 인간 전체를 무너뜨리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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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세계는 오직 차이와 대립만이 있을 뿐이다…. 창녀, 성모, 탕자, 군자 등 온갖 부류의 사람들이 모여 한 세계를 이룬다… 민중의 소리가 하나의 목소리라면, 인간을 동일한 중성자로 환원시키는, 그래서 헌신과 대학살 앞에서 눈물을 흘리되 견고한 총체를 거부하는 학문적 사유의 소리는 다른 목소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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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연상 작용을 통해 대상, 존재, 장소, 시간 등 그 자체로는 전혀 성(性)적이지 않은 것, 오히려 성 행위와는 너무나 대립적인 것들에 성적 가치를 부여하려는 경향이 있다. 알몸, 근친상간의 금기 등이 거기에 속한다.
순결 자체가 에로티즘, 다시 말해 엄격한 의미에서 ‘인간의’ 성 행위가 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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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짓기와 거기에 사용되는 신체의 부분이 어찌나 추한지, 성 행위자들의 아름다운 얼굴과 장식, 그리고 뜨거운 충동이 없었다면 아마 자연은 인류를 잃고 말았을 것이다 - 레오나르도 다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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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된 사디스트를 품은 정상적인 인간과 그 곤경을 하나의 출구로 삼는 사딕한(Sadique) 인간 사이에 자신이 처한 상황의 진실과 논리를 보다 깊이 파악하고 있는 쪽은 후자이며, 심지어 그는 정상적인 인간이 스스로를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고, 그를 도와 모든 이해의 조건을 수정할 정도로 이해의 깊이가 깊다 - 모리스 블랑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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