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용(洪大容)의 담헌서(湛軒書) > 외집 7권 연기(燕記) 中 아문제관(衙門諸官). 여기에도 쌍림이 등장함. db.itkc.or.kr/dir/nodeViewPo… posted at 14:51:06 2020/10/15
古云, 有錢可通鬼神。 posted at 15:01:39 2020/10/15
청나라 지배계급(왕족)들은 중국어(한어)와 몽고어 등 외국어를 배워야 했던 듯... :: “일찍이 사서(四書)와 시경(詩經)을 읽었습니다만, 황제께서 활쏘고 말달리기 및 몽고말과 중국말을 전심하여 익히게 하시어, 독서할 여가가 없었습니다.” 홍대용의 연기(燕記) 中 db.itkc.or.kr/dir/item?itemI… posted at 13:46:56 2020/10/16
"때는 이(利)와 불리(不利)가 있고, 명(命)엔 행과 불행이 있습니다.... 내가 염려하는 것은, 바로 유쾌하고 즐거울 때는 적고 근심하고 두려운 때는 많은 그것입니다" - 홍대용, 『담헌서(湛軒書)』, 외집 7권, 연기(燕記), 사하의 곽생(沙河 郭生) 中 posted at 10:29:23 2020/10/19
청심환. 연행(북경에 사신단으로 가는 일) 에는 필수품이었던 듯. 중국사람들도 사행단에게 청심환을 자주 요구하고.. 박지원의 글에도 청심환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홍대용의 연기에도 청심환을 요구하는 중국사람들이 많다ㅎ posted at 14:00:10 2020/10/19
"고려보(高麗堡)가 풍윤현의 서쪽 20리에 있다. 마을 앞에 논이 있는데, 비록 매우 거칠고 조잡했으나 역시 우리 나라 방식과 같았다. 관 안팎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다. 대추를 섞어 놓은 좁쌀떡이 있는데 역시 우리 나라 증편[蒸餠]과 같았다. 수십 년 전만 해도 보인(堡人)들이 우리 사행을 보면 극진히도 환영하여 술과 밥을 대접하면서 고려의 자손이라고 자칭하였었다는데, 근자에 이르러 역졸들이 술과 고기를 강제로 빼앗아 먹고 기구 같은 것을 속여서 편취하기도 하여 그 괴로움을 감내할 수 없기 때문에 드디어 막역하게 서로 접촉하지 않고, 혹 고려의 자손이 있느냐고 물으면, 모두 성을 내며 말하기를, 고려의 조상은 있었지만 고려의 자손은 없다고 한다는 것이다" - 홍대용, 『담헌서(湛軒書)』, 외집 8권, 연기(燕記), 연로기략(沿路記略) 中 posted at 09:00:13 2020/10/22
고국의 사신단으로 부터 얼마나 고통을 받았으면 "고려의 조상은 있었지만 고려의 자손은 없다"고 했을까... posted at 09:00:13 2020/10/22
역시 외국어는 실전에서 익혀야 제대로지ㅎㅎ. 홍대용이 북경 사행길에서 올라 연로에 북경어를 열심히 습득... 그래도 언어적 감각이 있었으니 말이라도 주고 받으며 뜻이 통했겠지... posted at 10:06:47 2020/10/22
청나라 북경의 하수도 및 급수에 대한 언급 ;;
"대궐 마당으로부터 골목의 여염집에 이르기까지 모두 하수도를 만들어 놓아, 비록 아무리 심한 비가 오더라도 개기만 하면 신이 빠질 진탕은 없다. 크고 작은 길의 양쪽 가에도 역시 하수도를 만든 까닭에 거마의 통행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 이른봄이면 군데군데 하수도를 파서 수리하는데, 그 깊이가 2길도 넘었으며 냄새가 나서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우물은 매우 많으나 물맛이 하나같이 나쁘다. 옥하(玉河)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강물을 마시는데, 온 성안의 하수도 물이 쏟아져 나오므로 더럽고 탁하여 가까이 갈 수 없는데, 그래도 우물물보다는 낫다고 했다." - 홍대용, 『담헌서(湛軒書)』, 외집 8권, 연기(燕記), 경성기략(京城記略) 中 posted at 10:25:11 020/10/22
청나라 북경의 공중화장실에 대한 기록 ;;
"길가에 군데군데 깨끗한 변소가 마련되어 있는데, 대부분이 단청을 하고 벽에는 채색으로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음란하게 희롱하는 모양이 많았다. 앞에 붉은 칠을 한 기구가 있는데, 누런 종이 조각을 주욱 꽂아 놓았다. 뒤지로 쓰기 위한 것이다. 혹 어떤 데는 장대를 세워놓고 깨끗한 변소라는 글자를 쓴 깃발 간판을 매달아 놓고 있기도 했다. 이 변소에 들어가 뒤를 보려는 사람은 반드시 동전 한 푼을 내야만 했는데, 변소 주인은 돈을 받아 쓸 뿐만 아니라, 또한 똥을 모아 전답에 거름을 하는 이익도 있었다" - 홍대용, 연기(燕記) 中 posted at 10:29:08 2020/10/22
당시 중국에서도 담배는 무지하게 피워댄듯..."부인들이나 10살 먹은 아이들까지도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이 없다. 몽고 사람이나 위구르 사람들도 역시 그러하였다. 다만 서양 사람들이 코담배를 피우는데, 중국 사람들이 또한 많이 흉내를 내고 있었다" - 홍대용, 『담헌서』, 연기(燕記) 中 posted at 10:43:46 2020/10/22
예나 지금이나 짝퉁 천국ㅎ ;; "대개, 옛날 서화들은 가짜가 많았다. 언젠가 〈소리하량별시(蘇李河梁別詩)〉 친필을 파는 사람이 있었는데, 아래에 왕헌지와 채옹ㆍ미불의 발문이 붙어 있었고, 종이와 먹이 벗겨지고 떨어져 한 천백 년은 묵은 고물 같았는데, 값이 은 80냥이라고 했다" posted at 13:41:27 2020/10/22
Covid-19 진정되고 국경문이 자유로우면 책문과 봉황산도 한번 둘러 봐야 하는데,,, ;; 홍대용, 『담헌서(湛軒書)』, 외집 9권, 연기(燕記), 봉황산(鳳凰山) db.itkc.or.kr/inLink?DCI=ITK… posted at 13:51:04 2020/10/23
청나라에 와 있던 서양의 선교사(신부)들,, 북경에서 포도를 재배하여 포도주를 만들어 마셨나 보군ㅎ;; 홍대용, 『담헌서(湛軒書)』, 외집 9권, 연기(燕記), 천상대(天象臺) db.itkc.or.kr/inLink?DCI=ITK… posted at 14:12:51 2020/10/23
당 동쪽에서 사람을 비집고 책시(冊市)로 들어가 보았다. 수천 질의 서적들이 순서를 찾아 종류별로 질서정연하게 층마다 칸마다 꽉꽉 들어차 있다. 서반(序班) 한 사람이 이미 먼저 와 있었다. 무얼 몰래 사 가는가 살피러 온 것이었다. 나를 보고 웃기에 나도 따라 웃으며 내 행장에 천금이 있어 여기 있는 천백 질 서적을 있는 대로 몰래 다 사가려는데 장차 나를 어떻게 하시겠소?” 했더니, 그의 말이, “나도 책을 팔기 위해 왔으니 그대의 원대로 사 가시오.” - 홍대용, 『담헌서(湛軒書)』, 외집 9권, 연기(燕記), 융복시(隆福市) 中 posted at 14:28:50 2020/10/23
서반(序班) ;; "서반은 본래 외국의 사신을 접대하는 일종의 접빈관(接賓官)으로서 서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청나라가 들어선 이후에야 서반은 서적 거래상으로서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서반은 조선의 사신들과 단독으로 서적 거래를 할 수 있었다. 서반은 이 권한을 이용해 가격을 마음대로 올려 폭리를 취하곤 했다. 또한 조선 사신들이 다른 경로로 서적을 구입하는 행위를 적극적으로 방해했다. 그러다가 18세기 중후반 북경 유리창의 등장은 조선의 중국 서적 유입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조선 사신들이 점차 자유롭게 관사 밖으로 드나 들게 되고 유리창이 번성하면서 서반의 통제는 한계를 갖게 되었다. 유리창에서의 서책 구매는 비교적 자유롭게 이루어졌으며 사신들은 원하는 책을 마음껏 살 수 있었다. 서반(序班) ;; dh.aks.ac.kr/sillokwiki/ind… posted at 14:28:51 2020/10/23
청나라 시대에도 시장이나 행사장에 비눗방울 놀이가 있었나 보군.. ;; "한 사람이 왼손에 큰 대접을 들었는데, 안에는 약간 불그스름한 흐린 물이 담겨져 있었다. 오른손에 든 대나무 숟갈로 그걸 떴다 놓았다 하더니 공중을 향해 뿌렸다. 갑자기 천백 개의 거품 방울이 위아래로 날아다니며 한동안 사그라지지 않았다. 햇빛이 비치매 온통 무지개가 이루어지는데, 짙고 옅은 가지가지 기이한 광채는 또 하나의 이상한 구경이 아닐 수 없었다" - 홍대용, 『담헌서(湛軒書)』, 외집 9권, 연기(燕記), 융복시(隆福市) 中 posted at 14:32:29 2020/10/23
홍대용이 북경의 유리창(琉璃廠)이라는 시장을 묘사하는 과정에 "길을 따라 서서히 걸어가면 마치 페르샤[波斯]의 보물시장에 들어간 것처럼.." 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페르시아의 보물시장"이라는 표현은,, 당시의 조선 지식인들이 직접 페르시아 시장을 본 것인지, 아니면 간접 경험(책이나 들어서)을 통해 만들어진 관념적 이미지의 비교 표현인지가 궁금해 진다. posted at 14:55:32 2020/10/23
홍대용, 『담헌서(湛軒書)』, 외집 9권, 연기(燕記), 유리창(琉璃廠) 中 "비록 누각과 난간의 호화나 사치는 다른 시장만 못하지만, 보배스럽고 괴상하고 기이하고 교묘한 물건들이 넘쳐흐르게 벌여 쌓여 있고, 시장의 위치 또한 고아(古雅)하였다. 길을 따라 서서히 걸어가면 마치 페르샤[波斯]의 보물 시장에 들어간 것처럼 그저 황홀하고 찬란하기만 해서 종일 다녀야 물건 하나 제대로 감상할 수 없었다" posted at 14:55:32 2020/10/23
또 검색해 보니, 이해응(李海應) 1803년의 연행 기록인 『계산기정 薊山紀程』에서 “유리창에 이르렀더니, 시루(市樓)는 벌여 섰고 금빛 은빛이 찬란하였다. 이는 바로 성 안팎의 큰 도회(都會)였다. 마치 파사시(波斯市)에 들어간 것 같아서 사람의 심목(心目)을 놀라게 하였다” 라는 표현이 등장함. posted at 14:55:33 2020/10/23
페르시아의 보물시장이라는 표현은, 당시의 조선 지식인들이 직접 페르시아 시장을 본 것인지, 아니면 간접 경험(책이나 들어서)을 통해 만들어진 관념적 이미지의 비교 표현인지가 자못 궁금해 진다. 직접경험이라면 어디에서 였을까?? posted at 15:03:57 2020/10/23
18세기 청나라 북경의 불꽃놀이 풍경 - 홍대용, 『담헌서(湛軒書)』, 외집 9권, 연기(燕記), 원소등포(元宵燈炮) db.itkc.or.kr/inLink?DCI=ITK… posted at 16:15:40 2020/10/26
이 양반들은, 도대체,, 겨울에 부채는 왜 들고 다녔을까?? :: "여름철이 아니면 부채를 갖질 않는다. 우리 나라 사람들의 겨울 부채를 보면 모두들 웃는다. 非夏節。不把扇。見我人冬扇皆笑)" - 홍대용, 『담헌서(湛軒書)』, 외집 10권, 연기(燕記), 건복(巾服) 中 db.itkc.or.kr/inLink?DCI=ITK… posted at 17:21:23 2020/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