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This Blog

Tuesday, October 27, 2020

[雜說] 무료하게 책을 읽다, 권태로워져 헛소리 한 줄 남기다

아침에 톡방에 올라온 어느 친구의 글 속에서 다시 글쓰기에의 충동을 느낀다라는 것을 읽었을 때 부러웠다. 그런 삶의 충동이...

"정열적인 인간은 마치 에이합 선장처럼 고래를 쫓다가 죽는 것과 같습니다. 그는 선(線)을 넘어갑니다. 궁극적으로, 죽음과 자살을 구분 못하게 만드는 일종의 가속(加速) 같은 것이 있는지…" 라고,, 누군가 어디에선가 이야기 한 적이 있다.

삶의 가속(加速)과도 같은 충동 혹은 정열. 또는 의무감... 그런 꿈틀거림이 없다면 얼마나 권태로울 것인가? 그런게 없으면 죽은 삶이라 할 수 있겠지...
.
.
꿈틀거림,, 이란 표현. 가장 인상 깊었던 글은 김승옥의 소설 속에서 였다. 1964년 겨울. 서울의 밤이 되면 거리에 나타나는, 얼어붙은 거리를 휩쓸며 차가운 바람이 펄럭거리게 하는 포장마차를 들치고 안에 들어가 술을 따르며 우연히 만난 세 사람,, 

“김형, 꿈틀거리는 것을 사랑하십니까?” 하고 안(安)이 내게 물었다.
“사랑하구말구요” 나는 갑자기 의기양양해져서 대답했다.

추억이란 그것이 슬픈 것이든지 기쁜 것이든지 그것을 생각하는 사람을 의기양양하게 한다. 슬픈 추억일 때는 고즈너기 의기양양해지고 기쁜 추억일 때는 소란스럽게 의기양양해진다.

“사관학교 시험에서 미역국을 먹고 나서도 얼마 동안, 나는 나처럼 대학 입학 시험에 실패한 친구 하나와 미아리에서 하숙하고 있었습니다. 서울엔 그때가 처음이었죠. 그 무렵 재미를 붙인게 아침의 만원된 버스칸이었습니다. 함께 있는 친구와 나는 하숙집의 아침 밥상을 밀어 놓기가 바쁘게 미아리 고개 위에 있는 버스정류장으로 달려 갑니다. 개처럼 숨을 헐떡거리면서 말입니다. 그 친구와 나는 출근 시간의 만원 버스 속을 쓰리꾼처럼 안으로 비집고 들어갑니다. 그리고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젊은 여자 앞에 섭니다. 나는 한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나서, 달려오느라 좀 멍해진 머리를 올리고 있는 손에 기댑니다. 그리고 내 앞에 앉아 있는 여자의 아랫배 쪽으로 천천히 시선을 보냅니다. 그러면 처음엔 얼른 눈에 뜨이지 않지만 시간이 조금 가고 내 시선이 투명해지면 서부터는 나는 그 여자의 아랫배가 조용히 오르내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나는 그 아침의 만원 버스칸 속에서 보는 젊은 여자 아랫배의 조용한 움직임을 보고 있으면 왜 그렇게 마음이 편해지고 맑아지는지 모르겠읍니다. 나는 그 움직임을 지독하게 사랑합니다.”

“안형은 어떤 꿈틀거림을 사랑합니까?” 
“어떤 꿈틀거림이 아닙니다. 그냥 꿈틀거리는 거죠. 그냥 말입니다. 예를 들면…. 데모도…”

우리의 대화는 또 끊어 졌다. 이번엔 침묵이 오래 계속되었다.
       .
       .
“오늘 낮에 제 아내가 죽었습니다.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하고 있었는데… 급성 뇌막염이라고 의사가 그랬습니다. 아내는 옛날에 급성 맹장염 수술을 받은 적도 있고, 급성 폐렴을 앓은 적도 있다고 했습니다만 모두 괜찮았었는데 이번의 급성엔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 아내와 재작년에 결혼했습니다. 우연히 알게 됐습니다. 친정이 대구근처에 있다는 얘기만 했지 한 번도 친정과는 내왕이 없었습니다. 난 처가집이 어딘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할 수 없었어요.”

“뭘 할 수 없었다는 말입니까?”

“아내의 시체를 병원에 팔았습니다. 할 수 없었습니다. 돈 사천원을 주더군요. 난 두 분을 만나기 얼마전까지도 세브란스 병원 울타리 곁에 있었습니다…. 기분 나쁜 얘길 해서 미안합니다. 다만 누구에게라도 얘기를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습니다. 한 가지만 의논해 보고 싶은데, 이 돈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저는 오늘 저녁에 다 써버리고 싶은데요.”

“쓰십시요” 안이 얼른 대답했다. 
“이 돈이 다 없어질 때까지 함께 있어 주시겠어요?... 함께 있어 주십시오.” 
우리는 승낙했다.

- 『서울∙1964년 겨울』, 김승옥, 1965 中 

할부 서적 외판원...
그 밤의 몸부림은 삶에의 충동이 아니라 그 끈을 놓으려는 꿈틀거림이었던가?

.
.
권태 놀이의 끝판왕 하면, 이상(李箱)을 능가할 사람이 없을 듯...

끝없는 권태가 사람을 엄습(掩襲) 하였을 때, 그의 동공(瞳孔)은 내부를 향하여 열리리라. 그리하여, 망쇄(忙殺)할 때보다도 몇 배나 더 자신의 내면을 성찰 할 수 있을 것이다.

불나비가 달려들어 불을 끈다. 불나비는 죽었든지 화상을 입었으리라. 그러나 불나비라는 놈은 사는 방법을 아는 놈이다. 불을 보면 뛰어들 줄도 알고… 평상(平常)에 불을 초조히 찾아 다닐 줄도 아는 정열의 생물이니 말이다.

그러나 여기 어디 불을 찾으려는 정열이 있으며, 뛰어들 불이 있느냐? 없다.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암흑은 암흑인 이상, 이 방 좁은 것이나 우주에 꽉찬 것이나 분량상 차이가 없으리라, 나는 이 대소(大小) 없는 암흑 가운데 누워서 숨쉴 것도, 어루만질 것도, 또 욕심나는 것도, 아무것도 없다. 다만 어디까지 가야 끝이 날지 모르는 내일, 그것이 또 창밖에 등대(等待)하고 있는 것을 느끼면서 오들오들 떨고 있을 뿐이다.

- 『권태』, 이상, 1936 中

창(窓)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내일'이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 참으로 권태(倦怠)의 궁극이리라… 그 권태속에서 정열을 불태우는 것 또한 얼마나 비극적인가?

이는... 그의 말 처럼,, "육체적 한산, 정신적 권태, 이것을 면할 수 없는 계급의 자의식 과잉의 절정"을 표현하는 놀이일뿐...
.
.
2011년 일본의 102살 할아버지가 자살하였단 뉴스가 있었다.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후쿠시마 근처에 살던 102살 할아버지가 대피명령으로 집을 떠나는게 두려워 자살하였다는 뉴스였다. 어찌보면, 그 자살의 원인은 꺼져버린 삶의 정열과 자기 삶의 연속으로부터의 단절감. 이었으라... 102세의 노인에게도 삶의 정열은 필요하다.


나른한 오후, 무료하게 책을 읽다,,
권태로움에 헛소리 한 줄 남긴다ㅎㅎ

[Book Scrap] 『침묵의 이면에 감추어진 역사 The Other Side of Silence』

『침묵의 이면에 감추어진 역사 The Other Side of Silence - 인도-파키스탄 분단으로 부터 듣는 여러 목소리』, Urvashi Butalia 著, 이광수 譯, 산지니, 2009년.

영국식민지로부터의 독립과 분단/분열, 종교-정치적인 폭력과 혼란속에서의 여성들이 겪었던 잔혹사 - 학살, 납치, 강간, 순교로 포장된 '명예' 살인 -... 종교가 민족이 되고 국가로 化하고, 종교間(힌두-시크-이슬람 등), 그리고 계급간의 잔혹과 살륙의 역사...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데, 한가지 아쉬운 점은,, 인도-파키스탄 "분단"의 아픔을 이야기 하는 부분. 국가주의적 관점에서 '하나의 단일국가'가 되었어야 하는데.. 라는 잘못된 전제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 그렇다고 (순수)공동체의 분열과 갈등이라는 용어로도 그것을 담기에 부족하고... 

(그리고 추가적으로 염두해 두어야 할 점 ; Urvashi BUtalia의 책은 서북부의 펀잡 Punjab 중심의 1947년 인도-파키스탄 분단에 Focus 되어 있다는 점. 인도-파키스탄 분단은 현재적 관점에서 이야기 한다면 동쪽 벵갈지역의 방글라데시를 포함한 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아 분단/분열임)

1.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과 그 기록과 기억의 주관성에 대해

"기억이라는 것이 절대 '순수' 하거나 '변형되지 않은'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연구가 상당히 나와 있다. 누가 기억하느냐에 딸려 있는 것 만큼 언제, 누구와, 누구에게 그리고 어떻게 기억하느냐에 달려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사람들이 어떤 하나의 사건, 하나의 역사를 기억해내는 방법이 적어도 소위 말하는 역사의 '사실' 이라고 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다만, 그것 또한 어떤 개인 혹은 또 다른 개인에 의해 기록되거나 기억된 해석이다. 

이에 관한 예를 하나 들어가면서 설명해보기로 하자. 내가 조사를 시작할 때 접하게 된 가장 공통적인 반응 가운데 하나는 사람들이 처음에는 말하기를 꺼려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내게 묻기를, 뭐 하러 잊혀진 과거를 기억해내려 합니까?라고 한다. 나는 이 질문을 접하지 않은 적이 없었고, 그래서 스스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기에 이르렀다. 도대체 왜 사람들은 그때를 기억해내는 걸 그토록 싫어할까? 그 싫어함 자체가 무언가를 가리키는 것임에 분명하다. 그것이 여러 사건이 가지고 있는 소름끼치는 성격하고만 관련 있는 것일까? 그런 사건의 성격은 역사책 페이지 안의 숫자와 통계 속에 지워져버렸는데, 아니면 적어도 몇 가지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역사속에서 사람들과 공범의 관계를 갖는 것일까? 인도-파키스탄 분단에서는 선한 사람도 악한 사람도 없었다. 실제로 모든 가족은 폭력에 있어서 피해자이기도 하고 가해자이기도 했다. 그것은 사람들이 왜 그렇게, 이 역사의 '추악한' 부분이 억눌려 있는 그들 가족 내부를 제외하고, 공개적으로 그것 기억하지 않으려 하는지에 대해 무언가를 분명하게 말해주었다... 인도-파키스탄 분단으로 인해 생성된 문헌과 기억 안에서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기억하지 않으려 한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알 수 있지 않을까.."

2. 목적과 의도에 따른 결과물, 그리고 제약조건들

"...말은 텍스트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잃을 수 밖에 없다. 예컨데, 말을 입으로 뱉는 경우, 그것이 나타내는 어떤 굴절 같은 것, 어떤 생각이나 말에 대해 주저하는 것, 심지어는 어떤 느낌 같은 것이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그리고 사실 인터뷰를 하는 사람이 인터뷰를 특정 '모양으로 만드는 일'도 마찬가지인데, 그것은 보통 인터뷰를 하는 사람과 인터뷰를 받는 사람 사이에 권력 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인터뷰가 가족들과 함께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여성이 타인과 이야기할 때 혼자 있는 일이 결코 허용되지 않는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인터뷰가 이루어진 시간은 대부분 짜투리 시간일 수 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집안일에 얽매여 있는 여성이 낼 수 있는 시간이 오직 그때뿐이기 때문이다. 남편이나 아들이 주변에 있으면 인터뷰에 끼어들려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또 반대로 침묵을 종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일은 흔한 일이다"

3. 까믈라벤은 다른 여성과 함께 자신의 책에서 언급한 그 수 많은 납치 여성을 찾아 구출하는 일을 했다. 그렇지만 그녀가 자기가 한 일에 대하여, 그리고 그 일을 하면서 느낀 점을 책으로 펴내기까지는 수십 년이 걸렸다. 도대체 왜? 나는 의아했다.

"내가 이 책을 좀더 일찍 쓰지 않은 이유는 내가 일을 하는 동안 보아온 것들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지요. 인간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마치 악마가 이 땅에 내려온 것 같았지요..."

4. 목소리는 일종의 위계를 가지고 있다. 다 함께 하는 인터뷰에서-분단은 '가족' 역사의 일부가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리고 가족들은 주위에 어른(보통 남성)이 없이 누군가가 말하도록 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항상 말을 하는 것은 남성이다. 오랜 기간 동안 사람들을 인터뷰하면서 여성의 목소리를 되찾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알게 되었다... 대부분 인터뷰를 하는 사람이 듣기를 원하거나 남성이 듣기를 원한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만 말한다. 

Kathryn Anderson과 Dana C. Jack은 어떤 논문에서 여성들이자기 인생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별도의 두가지 관점을 사용하는데 이 관점은 때로는 서로 상충되는 관점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지적한 바 있다. ; '하나는 문화 속에서 남성의 지배적 지위를 반영하는 개념과 가치 속에 짜여진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여성의 개인적 경험이라는 즉각적인 실체에 의해서 알게 된 것이다. 경험이 지배적 의미에 맞지 않는 곳에서는 대체적인 개념도 파악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여성은 자신의 삶을 기술할 때 그렇게 하려고 해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우연히, 사회에서 우세한 개념이나 관습을 표현하는, 익숙하고 공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용어를 쓰려고 하며, 그럴 때 보통 자기 자신의 생각과 느낌은 죽고 마는 것이다. 따라서 여성의 관점을 정확하게 듣기 위해서 우리는 스테레오로 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