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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April 04, 2025

책, 『잃어버린 것들의 목록』

Judith Schalansky 의 『잃어버린 것들의 목록』 상실과 기억에 관한 책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상실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한 인간의 갑작스런 부재와 동시에 남겨진 시신과 주인 잃은 소유물들을 어떻게 다룰지의 문제가 세월이 흐르면서 답변을 요구하고 행동을 유발하였으며 현존하는 것 보다 잃은 것들에 더 가치를 두는 인류의 행동양식은 다양한 방식으로 상실과 부재를 채우려 한다. 

상실과 부재를 채우는 다양한 방식들; 망각, 공허, 상상, 상징, 의례, 기념물 등...

그렇게 기억하고 보존하려는 방편으로서의 아카이브, 박물관, 도서관, 동물원과 자연보호구역들은 어찌보면 관리되는 공동묘지에 지나지 않는 것들이다. 

작가는 대상의 부재로 인해 생겨나는 갑작스러운 공백과 그 남겨진 유산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사적인 경험뿐만 아니라 인류의 과거와 다양한 문화속에서 폭넓게 관찰한다.

침몰한 것으로 추정되는 태평양의 투아나키 섬, 멸종된 카스피해 호랑이, 신화속의 유니콘, 살아 생전 단 한 채의 건물도 짓지 않고 폐허에만 매달렸던 건축가 피라네시, 복원 불가능한 무르나우의 영화와 유령처럼 맨하튼을 떠도는 그레타 가르보, 단편적 조각만으로만 남아 있는 사포의 싯구들, 포메라니아의 불타버린 성, 마니교의 창시자인 마니의 사라진 교리서들, 한때 그라이프스발트 항구를 교역의 중심지로 만들어 주었찌만 이제는 말라버린 리크 강, 숲속에 자신만의 백과사전을 설치한 외톨박이 남자, 철거된 동독의 공화국궁전, 달과 사랑에 빠져 먼 미래에 달에 살아가고 있는 월면학자의 이야기들은. 작가를 만나 생생한 목소리를 얻고. 각각 한편의 몽타주처럼 어렴풋이 완성된 얼굴을 갖게 된다. 

『잃어버린 것들의 목록』 이라는 책 역시 뭔가를 보존하고, 과거를 눈 앞에 되살리고, 잊힌 것을 불러내고, 침묵하는 것을 말하게 하고, 그 상실을 애도하고자 하는 열망에서 시작되었다라는, 그리고 이 책 역시 언젠가는 소멸이 불가피하리라는 작가의 말을 기억하자. 

잃어버린 것들의 목록에는 많은 공백과 생략이 존재한다. 사포의 詩에 대한 작가의 언급처럼, 그 공백과 생략들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환상을 시뮬레이션 하며. "모든 텍스트에,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나 기존의 단어에 투항하지 않는 감정들에, 규정되지 않은 거대한 감정의 왕국을 열어준다".

책,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

책의 내용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열쇠장이가 주는 교훈"의 이야기 이다. 

어떤 사람이 열쇠를 챙기지 않은 채 문을 잠가버린 탓에 집에 들어 갈 수가 없었다. 그는 여기 저기 수소문한 끝에 정식 허가를 받은 열쇠공을 불러왔다, 그 열쇠공은 그 사람이 그렇게 열려고 애써도 열지 못한 문을 불과 몇 초 만에 쉽게 열어 주었다. 

"어떻게 이렇게 빠르고 쉽게 문을 여는지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그가 깜짝 놀라며 감탄을 하자, 열쇠공은 자물쇠는 정직한 사람들을 정직한 상태로 계속 남아 있게 하려고 달아 놓은 장치일 뿐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세상 사람들 중 1퍼센트는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로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지요. 또 1퍼센트는 어떻게든 자물쇠를 열어 남의 것을 훔치려 합니다. 나머지 98 퍼센트는 조건이 제대로 갖춰져 있는 동안에만 정직한 사람을 남습니다. 이 사람들은 강한 유혹을 느끼면 얼마든지 정직하지 않은 사람 쪽으로 옮겨 갑니다. 당신이 아무리 자물쇠로 문을 꽁꽁 걸어 잠가도 도둑이 털려고 마음 먹는다면 얼마든지 당신 집에 침입할 수 있습니다. 자물쇠는 문이 잠겨 있지 않았을 때 유혹을 느낄 수 있는, 대체로 정직한 사람들의 침입을 막아줄 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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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상식 밖의 경제학 Predictably Irrational』 이란 책에서 언급했던 내용 중의 하나 인 "본인의 사소한 부정행위에 관대한 심리"에 대한 심화된 책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행동경제학적 관점에서, 인간은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존재가 아니라 불완전하고 비합리적인 존재라는 사실에 초점을 맞춘 일련의 심리학 실험들을 통해, 인간 심리와 행동의 비합리성을 확인시켜주는 책이다. 

모든 인간은 욕망을 추구하며 따라서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타인의 이익에 반하거나 사회적 공정의 관점에서 어긋나는 부정행위는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부정행위에 대한 저자의 결론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어떻게 하면 부정행위의 수준을 낮출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도덕적 건강을 개선할 수 있을지 탐구하고, 또 그에 대한 희망적 대안을 찾고자 노력한다. 대안을 찾기 위해서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 안에 그리고 사회 도처에 자리 잡고 있는 부정직함의 실체를 정확하게 바라볼 때 현실적인 해법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사회적 이슈가 된 기업이나 거물급 인사들의 커다란 부정행위 보다는 보통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저지르는 사소한 부정행위에 주목한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부정행위를 저지르지만 특정 경계를 벗어나지 않는 사소한 수준내에서는 부정행위들; 가령, 사무실에 비치된 사무용품을 개인적인 용도로 쓰기 위해 집에 가져간다 라든지, 야근 수당을 더 받기 위해 시간을 부풀린다 라든지, 회사에 청구하는 비용 중에 개인적 용도로 쓴 영수증을 첨부 한다 라든지 하는 행위들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 실험과 사례를 들어 들려 준다. 

사람들이 이러한 사소한(?)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심리의 바탕에는 대부분 자신은 꽤 착한 사람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아주 조금씩 부정행위를 저지름으로써 이득을 보면서도 동시에 자기 자신을 합리화 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규모로 부정행위를 저지르지 않는다. 스스로가 나쁜사람으로 보이는 것에 대한 저항감 때문이다. 사소한 부정행위를 저지르되 본인이 생각하는 특정 경계, 기준점을 넘지 않는 수준에서는 언제나 스스로에게 너그럽다. 

이러한 개인적 내면의 윤리적 기준은 그 기준점이 모호하다. 그러므로 사회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주관적인 기준이 아닌 사회적 규범과 윤리적 기준이 요구된다. 개인의 도덕적 각성 장치 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 장치란 무엇인가? 열쇠장이가 주는 교훈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볼 필요가 있다.


관련글 : 『상식 밖의 경제학 Predictably Irrational』 https://uquehan.blogspot.com/2025/02/predictably-irrational.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