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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October 05, 2026

책, 『우파니샤드: 인도비밀의서』by 김영

『우파니샤드: 인도비밀의서』. 저자, 김영은 말한다. 

인도 비밀의 書로 알려진 우파니샤드는 신비의 아우라를 두르고 있는 탓에 숱한 오해를 낳았다. 여느 경전처럼, 비밀의 가르침을 배우는 것이 계급의 특권으로 변질되고 이데올로기가 시대별로 층을 쌓아 올리면서 그 어느 누구도 우파니샤드에 이견을 달지 못하게 되었다. 치열하게 시대를 고민한 철학서는 신성함을 갑옷처럼 두른 불가침의 성전으로 탈바꿈하였다.

"Upanisad" 는 스승곁에 가까이(upa) 다가가(ni) 앉다(sad), 즉 스승으로 부터 전해 받는 가르침, 지혜이다. 인도의 위대한 철학자 샹카라는 어근 "sad" 를 파괴하다로 해석한다. 무지의 파괴를 강조하여 우파니샤드를 지혜의 가르침으로 부각하기 위해서이다. 우파니샤드는 단일한 텍스트가 아니다. 수 많은 시간 동안 수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일궈낸 텍스트들의 조합이다. 특정 저자 한 사람의 상상이나 망상의 산물이 아닌, 시대를 아우르며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낸 작품이라는 점에서 경전의 지위를 가질 수 있지 않았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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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아인 이라고 알려진 인도유럽인 일파가 인도 땅으로 들어섰을때 그들이 낭송하던 초기 『베다』 는 인도의 토착민 문화와 인더스문명의 영향 아래 『리그베다』, 『사마베다』, 『야주르베다』, 『아타르바베다』로 완성된다. 각 베다는 기도문인 『상히타』, 제식을 설명하는 『브라흐마나』, 철학서인 『아란야카』와 『우파니샤드』로 이루어져 있다. 베다의 앞부분, 상히타와 브라흐마나는 제사를 설명하기 때문에 제사편(karma ka'nda)이라고 하는 반면, 뒷부분 아란야카와 우파니샤드는 형이상학적이고 철학적인 논의를 담고 있기에 지혜편(jn'ana ka'nda)이라고 한다. 

200여개의 우파니샤드는 B.C 7세기부터 서기 직전까지 형성되었다. 우파니샤드는 아리아인의 전승 위에 인더스 문명(업, 윤회, 요가 등)과 드라비다 토착민 문화(주술, 주문, 대여신 숭배 등)가 혼용되어 만들어졌다. 특히 제사/희생제의 중심의 종교인 브라만교에 반발하여 나타난 자이나교와 불교와의 경쟁을 거치면서 발전하였다.

"사제에게 바치던 존경이 증오로 바뀐 예는 많다. 하지만 증오가 폭발하는 계기와 방식은 문화마다 다르다.인도에서는 증오가 불교와 자이나교의 종교혁명으로 터졌다. 우파니샤드가 브라만 엘리트 내부의 찻잔 속 혁명에 불과했다면 사문(Sramana, 沙門)의 종교가 일으킨 혁명은 종교의 무게중심을 바꾸었다. 이제 종교는 바깥에서 신을 찾지 않고 인간의 내면에서 찾게 되었다. 종교사적 의의를 따지자면 우파니샤드는 불교, 자이나교와 다르지 않다. 초월적 신을 인간내면으로 가져왔다는 점, 그리고 외적행위(제사) 보다 내적성찰(명상)으로 종교의 중심을 바꾸었다는 점이 그러하다. 불교의 창시자 붓다와 자이나교의 창시자 마하비라가 제도 밖의 출가자였기 때문에 사회혁명은 일어날 수 없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도에서는 모든 것이 종교안에서 발생한다. 인도의 사회혁명이 실패한 것은 불교, 자이나교가 흔든 계급질서를 힌두교로 서둘러 봉합했기 때문이다. 종교에서 시작해서 종교로 끝난 개혁의 한계이다" - 저자, 김영의 脚注 中.

제물을 불에 바치는 희생제의적 종교를 거부하고 깨달음을 위한 수행의 기운이 도입되었다. 인더스 문명으로 부터 기원한 업(karma), 윤회, 고행, 금욕, 해탈을 전하는 사문(沙門, Sramana)의 가르침이 우파니샤드의 핵심을 차지하게 되었다.이러한 사상적 흐름을 이끈 세력은 제사기술로 재물을 갈취하는 사제계급(브라만)에 염증을 느낀 크샤트리아와 바이샤 계급으로 부터 일어났다. 왕국과 도시의 성장 덕에 권력과 부를 거머쥔 왕과 거상들이 신사상의 든든한 후원자였다. 브라만교를 누르고 흥성한 불교와 자이나교는 크샤트리아(붓다와 마하비라를 보라)가 창시한 종교이다. 둘 다 인더스에 뿌리를 둔 사문 전통을 이어받아 종교의 부흥을 이끌었다. 결국 브라만 사제 계급들도 그러한 사상적 흐름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그 결과가 우파니샤드이다. 

우파니샤드는 수 세기 동안 여러 사람들과 종파들의 사상들이 혼합되어 있기 때문에 다채로운 우파니샤드를 하나로 통합하는 주제를 잡아내기 어렵다. 다수의 저자가 긴 세월동안 완성한 우파니샤드에 통일성을 부여하는 것은 무리한 시도이다. 형이상학적 논의라고 해서 우주의 궁극적 실체/본질만 다루지도 않는다. 우파니샤드는 브라만교의 제사 전통과 사문의 수행 전통 양쪽에서 받아들인 소재를 다양하게 선보인다. 제사로 얻을 수 있는 부, 권력, 건강, 장수 등을 열거하면서도 명상의 드높은 경지(삼매경)을 찬미하기도 한다. 우파니샤드는 영적 궁극(해탈)뿐만 아니라 현실적 추구도 중시한다. 현세와 내세, 세속과 탈속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여러 에피소드를 모은 우파니샤드에서 하나의 주제를 발견하기는 어렵지만, 큰 흐름에서 다음의 세가지 관점으로 정리할 수는 있다. 

 ■ 내면에 있는 초월 ;  개별적 아트만(Atman)과 초월적 브라흐만(Brahman). 나(아트만)과 세계(브라흐만)의 연결, Bandhu. 숨은 연결, 상응, 상동성

 ■ 불이(不二). 비이원론 ; 아트만과 브라하만은 다르지 않다는 범아일여(梵我一如)의 사상. "그가 나다"

 ■ 범재신론(汎在神論) ; 브라흐만은 내면과 외부세계 안에 모두 있지만, 그 둘에 속하지 않는다. 신을 세계 자체로 보는 범신론과는 다르다. 브라흐만은 신이 아니다. 신을 초월한다. 애매한(?) 무신론이다. 우파니샤드는 이신론 또한 취하지 않는다. 브라흐만은 신을 포함한 뭇 존재를 존재하게 하는 장(또는 망)이자, 에너지이자, 의식이다

"우파니샤드의 세계수(世界樹)는 천상에 뿌리를 두고 땅 위에 가지를 뻗는다" ; 영생 불멸뿐만 아니라 현세에 잘 먹고 잘 사는 문제를 논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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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라는 막막한 대양 위에 비슈누가 잠들어 있다. 신이 꿈꾸는 동안 그의 배꼽에서 연꽃이 자란다. 그 연꽃 속에서 태어난 창조신이 억겁의 세월 속에서 세상을 창조했다가 파괴하기를 반복한다. 창조신의 수명이 다하면 새 연꽃에서 새 창조신이 태어나 창조와 파괴를 계속한다. 시간은 신의 꿈이다. 무수한 세계가 존재하는 곳은 신의 꿈 속이다. 인간이 닿을 수 없는 실체의 대양위에 누워 신은 꿈을 꾼다. 그 꿈 속에서 우리는 현실 속 시간을 살아간다. 인간이 처한 현실은 꿈 속의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 삼매는 신에 이르는 연꽃 줄기이다. 그 좁은 통로를 타고 신에게 도달한다. 그리고 스스로가 신이며, 꿈의 창조주라는 것을 깨닫는다. 삼매로써 신에 이른 자는 꿈에서 깨어 자신이 신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신으로 스스로 깨어나지 않으면, 꿈속을 해매는 신의 의식 한 가닥으로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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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애벌래처럼 의미의 고치를 만든다. 그리고 그 안에 갇힌다. 고치를 찢고 나와야 나비가 될 수 있다. 자신만의 세계를 벗어나지 못하면 말라 죽는다. 밖에 있는 하늘을 갈망해야 우화를 견딘다. 애벌레로서는 닿을 수도 없는 하늘을 나는 것이 깨달음이다. 기어다니던 벌레가 문득 하늘을 나는 것. 하지만 자신의 세계를 전부 녹여 없애지 않으면, 날개를 빚을 수 없다. 우파니샤드는 우화를 견디는 소수를 위한 가르침이다" - 저자, 김영의 들어가는 글 中.

책, 『예술과 풍경 The Pursuit of Art』 by Martin Gayford

마틴 게이퍼드 Martin Gayford 의 『예술과 풍경 The Pursuit of Art』 은 열아홉번의 여정을 거치는 동안 미술에 대한 날카로운 이성으로 해부하는 방법론, 사회/문화/정치적 맥락과 호환되는 이론 등 미술비평을 미술비평으로 여겨지게 하는 특유희 난해한 수사나 뜬 구름 같은 비평용어 대신, 미술과 예술가에 얽힌 자신의 경험담을 최대한 충실히 묘사하면서 시대와 공간을 넘어 다닌다. 책을 읽다 보면 특정 작품에 한정된 '미술'이 아닌 경험과 관계의 확장으로 변화됨을 느낄 수 있다. 

고대 인도의 종교 의식과 함께 했던 유물, 퍼포먼스 예술가의 자학적 행위, 물을 담아 세운 기다란 여러개의 수조, 자신들이 스스로 조각품이라고 주장하는 유쾌한 허풍쟁이(?)들, 소위 작품으로 뒤덮인 시골 마을 혹은 섬 전체 등, 저자가 말하는 '미술'은 계속 변화하고 확장된다. 그래서 이 책에서 미술은 단 하나의 작품을 뜻하거나 한 명의 인간이 이룩한 시각적 세계 전부를 의미할 때도 있다. 또는 하나의 시공간에 모여 있는 어떤 '덩어리'를 칭하기도 하고, 미술품의 감상을 목표로 떠나는 여행에서 경험하게 되는 감각과 인식, 사유의 변화까지 아우르기도 한다. 

특히 저자가 중요시 하는 것은 "거기 있기"이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저자는 작품을 직접 경험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작품이 존재하는 그 곳에 애써 시간과 자원을 들여 가서 작품과 같은 시공간에 함께 있으면서 경험하는 것이 바로 예술적 행위의 완성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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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을 보는데도 이상하게 '몸소'라는 표현이 도드라졌다. 로코와 베니스 화파의 미술품에서 이 말은 거의 정확하다. 그들의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작품 앞에 직접 서야 한다. 그래야 그들이 그린 인물의 살갗에서 보이는 번들거림, 눈의 반짝임, 신체의 무게, 옷의 질감 등 육욕적 리얼리티를 느낄 수 있다. 이는 물리적 경험이다. 물감이 물리적 매체이기 때문이다. 빛을 반사하는 각종 유기/무기 화학물의 층이 빛이 바뀜에 따라 매 순간 변화한다. 그 곳에 있는 것 이외에는 대안이 없는 셈이다" - 로렌초 로토의 그림을 찾아 보기 위해 이탈리아로 떠난 여행 中

"겹겹이 쌓인 짙은 구름 사이로 작은 협곡이 보였다. 아침부터 모든 것을 가리고 있던 얼어붙은 듯한 안개가 서서히 사그라지더니 진귀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높이 솟은 곶, 삐죽한 절벽, 홀로 있는 섬이 모인 바위 해안가를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 물이 없었을 뿐이다. 이 바위 해안가에는 물 대신 수증기가 있었다. 매 순간 풍경의 새로운 면을 드러냈다가 덮어 버렸다. 마치 슬로우 모션을 촬영한 파도처럼 밀려들었다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단 몇 분이었지만 황산 봉우리 꼭대기에 펼쳐진 안개의 바다를 보았다. 이 모습은 중국 문화의 가장 원초적인 광경이다. 그리스인의 판테온, 이집트인의 피라미드와 같다. 어떤 면에서 이 광경은 중국 예술의 유일한 주제이다... 구불구불한 길을 걷는 것은 여러 그림 중 하나로 들어가는 것과 같았다. 우똑 솟은 거대한 바위가 존재했다가 내 눈앞에서 사라지고, 그렇게 빈 공간만 남았다"- 먹과 붓놀림으로 만들어낸 중국의 회화를 만나러 떠난 여행 中

"미국 아티스트 제임스 티렐은 언젠가 내게 멀리 떨어진 장소에 자신의 작품이 놓여 있는 게 좋다고 말했다. 그렇게 되면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노력을 들여야 하고, 그 여정에 들인 시간이 입장료라고 설명했다. 입장료를 지불하고 먼 곳까지 작품을 보러 갔으니, 더 오래도록 열심히 작품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반대로 미술관을 한 바퀴 도는 것은 책을 읽지 않고 표지만 힐끗 보는 것과 같다고 그는 말했다. 이는 종교 순례에 대한 생각과 비슷하다. 혼자 여행을 하면 특별한 마음가짐을 갖게 되며, 자신이 집중하는 데 중점을 두게 된다. 다른 장소에 가기만 해도 유사한 것 조차 다르게 감상하게 된다. 시공간의 거리는 인간의 마음가짐을 바꾼다" - 일본 나오시마섬을 찾아간 여행 中

"알루미늄 상자가 밀집해서 이룬 대열이 만드는 공간과 빛은 허구가 아니라 현실이다. 그리고 빛의 계속되는 변화로 인해 작품은 볼 때 마다 달라진다. 나는 정말 오랫동안 그 주변을 걸어 다니면서 놀라운 변주를 보았다. 자세히 보니 구성단위가 달랐고, 모든 것이 창을 투과해 비추는 햇빛의 변화에 따라 바뀌었다... 해 질 무렵이 되면, 상자는 금빛으로 물들어 눈부시게 빛난다. 도색을 하지 않은 금속으로 만들어졌지만 검은색, 흰색, 회색, 연한 금색과 은색, 텍사스 하늘의 푸른색, 바깥의 건조한 초목의 황토색 등 굉장히 다양한 색을 띈다"- 텍사스주 마파의 숭고한 미니멀리즘 中

"각기 다른 장소에서 우리는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각각의 장소와 다른 방식으로 관계를 맺죠. 그리고 그 장소들도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요... 당신과 이야기할 때와 다른 옆 사람과 이야기할 때, 저는 다른 사람이에요. 당연합니다. 상대방이 내게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에 따라 차이가 생기죠" - 로니 혼 Roni Ho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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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작품을 정확히 감상하려면 거의 항상 돌아다녀야한다. 가상의 경험이 아닌 실제 경험, 즉 실제 작품을 감상하고 실제 사람과 만나는 것이야 말로 가장 깊고 풍요로운 경험이다... 여행의 중독적인 측면 중 하나는 절대 끝나지 않는 것 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항상 새로운 장소와 작품, 예술가를 발굴할 수 있기 때문만이 아니다. 당신이 정말로 흥미로운 작품이나 장소를 찾으면 그 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당신이 끊임 없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작품과 장소도 끊임없이 변하거나, 또는 적어도 그렇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모험이 끝없고 불가능하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모든 것을 직접 경험하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한계들이 오히려 매혹적이다" - 저자의 序文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