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게이퍼드 Martin Gayford 의 『예술과 풍경 The Pursuit of Art』 은 열아홉번의 여정을 거치는 동안 미술에 대한 날카로운 이성으로 해부하는 방법론, 사회/문화/정치적 맥락과 호환되는 이론 등 미술비평을 미술비평으로 여겨지게 하는 특유희 난해한 수사나 뜬 구름 같은 비평용어 대신, 미술과 예술가에 얽힌 자신의 경험담을 최대한 충실히 묘사하면서 시대와 공간을 넘어 다닌다. 책을 읽다 보면 특정 작품에 한정된 '미술'이 아닌 경험과 관계의 확장으로 변화됨을 느낄 수 있다.
고대 인도의 종교 의식과 함께 했던 유물, 퍼포먼스 예술가의 자학적 행위, 물을 담아 세운 기다란 여러개의 수조, 자신들이 스스로 조각품이라고 주장하는 유쾌한 허풍쟁이(?)들, 소위 작품으로 뒤덮인 시골 마을 혹은 섬 전체 등, 저자가 말하는 '미술'은 계속 변화하고 확장된다. 그래서 이 책에서 미술은 단 하나의 작품을 뜻하거나 한 명의 인간이 이룩한 시각적 세계 전부를 의미할 때도 있다. 또는 하나의 시공간에 모여 있는 어떤 '덩어리'를 칭하기도 하고, 미술품의 감상을 목표로 떠나는 여행에서 경험하게 되는 감각과 인식, 사유의 변화까지 아우르기도 한다.
특히 저자가 중요시 하는 것은 "거기 있기"이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저자는 작품을 직접 경험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작품이 존재하는 그 곳에 애써 시간과 자원을 들여 가서 작품과 같은 시공간에 함께 있으면서 경험하는 것이 바로 예술적 행위의 완성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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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을 보는데도 이상하게 '몸소'라는 표현이 도드라졌다. 로코와 베니스 화파의 미술품에서 이 말은 거의 정확하다. 그들의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작품 앞에 직접 서야 한다. 그래야 그들이 그린 인물의 살갗에서 보이는 번들거림, 눈의 반짝임, 신체의 무게, 옷의 질감 등 육욕적 리얼리티를 느낄 수 있다. 이는 물리적 경험이다. 물감이 물리적 매체이기 때문이다. 빛을 반사하는 각종 유기/무기 화학물의 층이 빛이 바뀜에 따라 매 순간 변화한다. 그 곳에 있는 것 이외에는 대안이 없는 셈이다" - 로렌초 로토의 그림을 찾아 보기 위해 이탈리아로 떠난 여행 中
"겹겹이 쌓인 짙은 구름 사이로 작은 협곡이 보였다. 아침부터 모든 것을 가리고 있던 얼어붙은 듯한 안개가 서서히 사그라지더니 진귀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높이 솟은 곶, 삐죽한 절벽, 홀로 있는 섬이 모인 바위 해안가를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 물이 없었을 뿐이다. 이 바위 해안가에는 물 대신 수증기가 있었다. 매 순간 풍경의 새로운 면을 드러냈다가 덮어 버렸다. 마치 슬로우 모션을 촬영한 파도처럼 밀려들었다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단 몇 분이었지만 황산 봉우리 꼭대기에 펼쳐진 안개의 바다를 보았다. 이 모습은 중국 문화의 가장 원초적인 광경이다. 그리스인의 판테온, 이집트인의 피라미드와 같다. 어떤 면에서 이 광경은 중국 예술의 유일한 주제이다... 구불구불한 길을 걷는 것은 여러 그림 중 하나로 들어가는 것과 같았다. 우똑 솟은 거대한 바위가 존재했다가 내 눈앞에서 사라지고, 그렇게 빈 공간만 남았다"- 먹과 붓놀림으로 만들어낸 중국의 회화를 만나러 떠난 여행 中
"미국 아티스트 제임스 티렐은 언젠가 내게 멀리 떨어진 장소에 자신의 작품이 놓여 있는 게 좋다고 말했다. 그렇게 되면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노력을 들여야 하고, 그 여정에 들인 시간이 입장료라고 설명했다. 입장료를 지불하고 먼 곳까지 작품을 보러 갔으니, 더 오래도록 열심히 작품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반대로 미술관을 한 바퀴 도는 것은 책을 읽지 않고 표지만 힐끗 보는 것과 같다고 그는 말했다. 이는 종교 순례에 대한 생각과 비슷하다. 혼자 여행을 하면 특별한 마음가짐을 갖게 되며, 자신이 집중하는 데 중점을 두게 된다. 다른 장소에 가기만 해도 유사한 것 조차 다르게 감상하게 된다. 시공간의 거리는 인간의 마음가짐을 바꾼다" - 일본 나오시마섬을 찾아간 여행 中
"알루미늄 상자가 밀집해서 이룬 대열이 만드는 공간과 빛은 허구가 아니라 현실이다. 그리고 빛의 계속되는 변화로 인해 작품은 볼 때 마다 달라진다. 나는 정말 오랫동안 그 주변을 걸어 다니면서 놀라운 변주를 보았다. 자세히 보니 구성단위가 달랐고, 모든 것이 창을 투과해 비추는 햇빛의 변화에 따라 바뀌었다... 해 질 무렵이 되면, 상자는 금빛으로 물들어 눈부시게 빛난다. 도색을 하지 않은 금속으로 만들어졌지만 검은색, 흰색, 회색, 연한 금색과 은색, 텍사스 하늘의 푸른색, 바깥의 건조한 초목의 황토색 등 굉장히 다양한 색을 띈다"- 텍사스주 마파의 숭고한 미니멀리즘 中
"각기 다른 장소에서 우리는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각각의 장소와 다른 방식으로 관계를 맺죠. 그리고 그 장소들도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요... 당신과 이야기할 때와 다른 옆 사람과 이야기할 때, 저는 다른 사람이에요. 당연합니다. 상대방이 내게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에 따라 차이가 생기죠" - 로니 혼 Roni Ho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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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작품을 정확히 감상하려면 거의 항상 돌아다녀야한다. 가상의 경험이 아닌 실제 경험, 즉 실제 작품을 감상하고 실제 사람과 만나는 것이야 말로 가장 깊고 풍요로운 경험이다... 여행의 중독적인 측면 중 하나는 절대 끝나지 않는 것 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항상 새로운 장소와 작품, 예술가를 발굴할 수 있기 때문만이 아니다. 당신이 정말로 흥미로운 작품이나 장소를 찾으면 그 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당신이 끊임 없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작품과 장소도 끊임없이 변하거나, 또는 적어도 그렇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모험이 끝없고 불가능하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모든 것을 직접 경험하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한계들이 오히려 매혹적이다" - 저자의 序文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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