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이야기>>는 덴노(천황)나 막부의 쇼군 중심의 일본사가 아닌, 각 권마다 주제어를 중심으로 일본 사회의 특징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1권 전쟁과 바다는 서유럽의 대항해 시대 이후 동북아시까지 이르런, 무력/폭력을 동반한 해상무역과 카톨릭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16~117세기의 일본을 들여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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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양을 개척하던 대항해 시대, 스페인, 포르투갈, 네델란드 등의 유럽국가들은 전 세계에서 군사력을 앞세워 무역을 전개하고 식민지를 건설하는데 거침이 없었다. 유럽 각국의 '동인도회사'들이 최신식 무기와 상업, 그리고 가톨릭이라는 종교를 앞세워 인도양을 휩쓸고 동남아시아를 지나 맞닦뜨린 것은 명청시대 중국과 일본이었다. 하지만 동남아시아에서는 거침없는 무력을 행사하며서 폭력과 학살로 학살로 지배하던 것과는 다르게, 당시 중국과 일본을 군사력으로 압도할 수준이 되지 못 하자 '조용히' 무역에만 종사하는 모습을 보인게 된다.
일본이 전국시대에서 에도막부시대로 넘가는 시기에 포르투갈, 네덜란드 등이 일본 규슈지역에 무역거점을 마련하면서 일본은 유럽 문명과 본격적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일본인들은 이를 통해 중화 문명 이외의 또 다른 거대하고 독립적인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며 일본이 선택할 수 있는 모델이 중화 문명 단 하나뿐인 시대에서 중화 문명과 유럽 문명 가운데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을 적절히 선택할 수 있는 상대주의 시대로 바뀌게 된것이다. 일본은 중화문명과 유럽문명의 경계에 놓이게 된 것이다.
16~17세기에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가운데 앞의 두 사람, 특히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유럽으로 부터 새로운 세계관과 군사기술을 배워 중화 문명을 뛰어 넘고 나아가 아시아를 정복하려는 야망을 가졌다. 그러한 해외 확장의 시도의 첫발이 바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다. 하지만 쉽게 생각하였던 대륙 정복 계획은 한반도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정치/경제/군사적 한계에 부딪쳤고 도요토미가 죽으면서 야망을 포기하게 된다.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거대한 배와 조총, 대포를 가지고 전세계를 식민지로 만들고 있는 유럽과의 교류를 차단하고 명나라, 조선과의 화해를 통해 정권의 안정을 보장받는 쪽을 선택하게 된다. 그러한 원인과 배경에는 새로 권력을 잡고 막부체계를 수립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일본 내부의 안정적인 지배를 위한 측면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유럽 문명과의 접촉으로 전파된 카돌릭의 위협도 하나의 요인이었다고 볼 수 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쇼군으로서 일본을 통치하던 시절에는 일본안의 덴노나 쇼군보다 바다 바깥 로마에 살고 있는 교황에게 충성하는 주민이 수십만(20~30만)이나 존재하고 있었다. 게다가 통제 바깥에 놓여 있는 동남아시아 지역의 일본인 마을에도 일본인 수십만명이 살고 있었던 상황이라, 당시 일본 국내 상황에 불만을 품은 피지배층이 유럽의 침략에 호응해서 내부로부터 봉기하거나, 동남아시아에 나가 있는 일본인들이 유럽 세력을 안내해 일본을 침략할 수도 있다라는 불안감, 그리고 일본지역 내부적으로 카톨릭 세력 vs. 불교/신도 세력간에 종교전쟁을 방불케 하는 갈등으로 인한 충격과 위기의식이 높아졌다. 그리고 당시 일본에는 유럽인들이 아프르카에서 노예로 잡은 흑인들도 와 있었고, 오늘날 멕시코에 해당하는 누에바에스파냐를 스페인이 식민지로 삼았다는 정보도 널리 퍼져 있었다. 이러한 배경하에 도쿠가와 막부는 해외에 나가 있는 일본인의 귀국을 금지하고 일본내의 외국인 카톨릭 신부/선교사들과 일본인 가톨릭 신자들을 추방 또는 처형하면서 일본에서 가톨릭을 지워나가게 된다. 또한 태평양과 대서양을 건너 로마까지 항해할 수 있는 유럽식 배 만드는 조선술을 폐기하는 등, 기술적 퇴보를 감수하면서 까지 일본인과 유럽 세력의 직접적인 접촉을 차단하였다.
참고로, 당시 일본내의 가톨릭 전파와 유럽 문명과의 교류를 보여주는 단편으로, 1582년 오무라 스미타다, 오토모 소린, 아리마 히루보두 세 가톨릭 다이묘가 후원하여 나가사키를 출발하여 로마에 까지 갔다가 1590년에 귀국한 네명의 소년사절단, '덴쇼소년사절단(天正少年使節)' 과 1613년 센다이를 출항하여 멕시코를 거쳐 스페인과 로마를 방문하고 다시 멕시코와 필리핀 마닐라를 거쳐 1620년에 귀국한 '하세쿠라 사절단'의 경우 처럼, 단지 유럽 카톨릭 신부나 선교사의 일본 왕래 뿐만 아니라 일본인이 직접 로마까지 방문하고 올 정도였다.
도쿠가와 막부는 유럽의 '종교'는 차단하였지만 '무역'은 분리하여 쓰시마를 통해서는 조선과, 나가사키를 통해서는 네덜란드와 청나라와, 사쓰마를 통해서는 류쿠(오키나와)왕국과, 홋카이도 마쓰마에를 통해서는 아이누 및 북방민족과 교역을 하는 네개의 창구 시스템을 운영하게 된다. 하지만 전국시대에 유럽 여러나라(에스파냐,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등) 사람들이 직접 일본으로 건너와서 동시대적으로 지식과 물자를 전해주며 자유롭게 교류하던 시절과는 다르게, 도쿠가와 이에야스 이후에는 일본이 교류하는 유럽 국가를 네덜란드 한 나라로 제한하고 교역도 나가사키의 데지마 상관으로 제한하는 한편 일본인이 네덜란드인을 직접 만나는 일도 제한하게 된다. 이러한 단절과 쇄국은 같은 시기 유럽을 중시으로 한 전 세계의 움직임과 비교했을때 동시대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일종의 퇴보였다라는게 저자의 평가이다.
<<일본인 이야기 1.전쟁과 바다>>는 도쿠가와 막부 초기까지 유럽과의 접촉이 가져온 영향과 일본의 대응을 '조총(무력)과 가톨릭' 라는 키워드로 살펴 보고 <<일본인 이야기 2.진보 혹은 퇴보의 시대>> 에서는 이후 에도막부 시대의 일본 백성, 그 중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했던 농민들의 삶과 그들을 치료해준 의료/의학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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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이야기 1. 전쟁과 바다>> 를 읽으면서 다시 한번 느낀 점은; 어느 나라의 역사를 현재의 국가/영토 개념틀안에서 국수주의적으로 볼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관점에서, 관련 세력간 다양한 교류의 관점에서 봐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나 해양세력을 중심으로하는 문명간, 지역간 교류/교역의 역사는 고대부터 그 범위가 상당히 넓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이러한 인식과 과거사에 대한 지식이 몹시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이러한 역사인식과 접근법은 페르낭 브로델이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에서 이야기하였던 내용과 부합한다라고 볼 수 있다. 16~17세기 일본의 역사도 '일본' 이라는 단일 국가의 역사로만 바라보았을 때는 전체적인 모습과 그 실상을 놓치기 쉽다. 당시 유럽 여러나라의 '동인도회사'들이 인도양과 동남아시아에서의 전개한 무력을 동반한 해상무역이 일본에 까지 이어지면서 펼쳐지는 상호 교류와 교역, 충돌과 전쟁의 역사는 일본만의 역사가 아닌 조선, 명나라, 대만, 류큐, 태국(아유타야), 동남아시아를 아우르며 펼쳐지는 역사였던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알게 된 몇 가지 내용 중 ;
당시 유럽세력, 특히 포르투칼 상인들이 주요하게 취급하던 상품은 일본인 노예였다라는 것은 충격적이었다. "히라도에서 포루투갈인들은 주로 일본일은 노예로 수출하는데 종사하였다... 히라도에서 수출되는 주요 상품은 은, 철, 조총, 도검류, 노예, 선원, 용병 등이었다... 일본인 노예는 (당시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멕시코 까지 수출되었고, 일본인 용병은 네덜란드가 동남아시에서 스페인과 싸우는데 동원되었다".
우리가 왜구라고 부르는 해적집단은 사실 중국(명나라)-일본-유럽인들로 구성된 무장해상집단, 밀무역집단 이었다라는 사실도 새롭다.
아유타야(현재의 태국)에 대한 이야기 중 '일본에서 태어나 동남앗아로 건너가 일본인 용병 대장으로 활동하면서 아유타야의 정치세계에 입문하여 오캬 세나피묵이라는 관직에 오른 야마다 나가마사라, 그리스 출신으로 야유타야 나라이왕 재임시절에 수상에 임명되었던 프랑스 외방선교회 예수회 신부 콘스탄틴 파울콘, 그리고 콘스탄틴 파울콘의 아내 마리아 구요마르 데 피나의 어머니는 일본에서 추방당한 카돌릭교도 일본인 여성이었고 아버지는 일본인과 포르투갈인의 혼혈이었다라는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16~17세기 일본과 동남아시아는 인종적 문화적으로 다양하게 얽힌 사회'였던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왕조 중심의, 왕들의 연대기 중심의 역사에서는 볼 수 없는 과거의 모습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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