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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June 20, 2025

책, 『이탈리아 기행 』中 몇 가지 Scrap

기독교의 마리아 숭배문화

 "틴토레토의 일명 「천국」이 그것이다. 마리아가 여러 손님들, 즉 족장, 예언자, 사도, 성자, 천사 등의 입회하에 천국의 여왕으로서 대관식을 올리는 장면을 그리고 있는데, 정말로 보기 드문 천재 화가의 재능이 유감없이 발휘된 계기였던 것이다...필치의 경묘함, 기백, 표현의 다양성, 이 모든 것에 감탄하면서 감상하려면 작품 자체를 소유하고 한평생 그것을 눈앞에 두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화가의 손길은 한없는 애정으로 화폭을 어루만져, 영광 속에 사라져가는 천사의 머리 하나하나에도 성격이 잘 나타나게 하고 있다... 가장 큰 인물은 높이가 1피트에 달할 것이고, 마리아와 그녀에게 관을 씌우는 그리스도는 약 4인치 크기로 그려져 있다. 이 그림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은 이브이며 예나 지금이나 상당히 요염하다" 

괴테가 파도바에서 베네치아로 가는 여정에서 만난 순례자에 대한 이야기

"내가 순례자를 가까이에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들은 이 합승선을 무임으로 타고 갈 권리가 있다. 그러나 다른 승객들이 그들 가까이 있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같이 지붕이 있는 장소에 머무르지 않고, 뒤쪽의 조타석 옆에 앉아 있었다. 요즘 세상에는 희귀한 현상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놀라운 눈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거기다가 예전에는 이런 복장을 하고 돌아다니는 부랑자가 많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전혀 경의를 표하지도 않는다. 그들이 독일 사람이고 외국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다고 하기에 나는 그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어울렸으며, 그들이 파델보른 출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두 사람은 이미 쉰을 넘긴 남자들로 음울하기는 하지만 마음씨는 좋을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들은 처음에 쾰른의 세 동방박사를 참배하고 이어서 독일 땅을 두[로마에서 괴테가 괴테가 아닌 것으로 판정되다?]루 순례하고 왔는데, 이제부터 같이 로마까지 갔다가 북부 이탈리아로 돌아가려 하고 있었다. 그런 다음에 한 사람은 다시 베스트팔렌으로 향하고, 다른 한 사람은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에 가서 성 야고보를 참배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의 복장은 우리가 모두 잘 알고 있는 그런 순례복이었지만 끝을 걷어 올렸기 때문에, 독일의 가장무도회 등에서 순례자를 흉내 낼 때 흔히 입는 기다란 호박직(琥珀織) 옷보다는 훨씬 나아 보였다. 커다란 옷깃, 둥근 모자, 지팡이, 그리고 가장 유치하게 보였던 물그릇으로 사용하는 조개껍질, 이 모든 것이 각각 의미와 직접적 효용을 가지고 있었다. 양철 상자에는 여행 허가서가 들어 있었다...

순례자는 조그마한 부적을 꺼냈는데 거기에는 3인의 동방박사가 예배용 라틴어 기도문과 함께 그려져 있었다. 이 마음씨 좋은 순례자들은 그것을 모여 있던 몇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부적의 공덕을 모두에게 설명해 달라고 나에게 부탁했다"

로마에서 괴테가 괴테가 아닌 것으로 판정되다?

“대단히 재미있는 일이 있습니다. 당신이 여기 와 있다는 소문이 벌써 퍼져서 예술가들은 유일한 낯선 여행자인 당신이 아무래도 괴테인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예술가들 중 한 사람이 자기는 괴테하고 사귄 적이 있으며 그것도 친구로서 교제했었다고 이전부터 주장해 왔습니다. 우리들은 그걸 참말이라고 쉽게 믿으려 하지 않았는데 이번에 이 사람이 당신과 만나서 당신이 괴테인지 아닌지 판단하도록 요청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당신은 괴테가 아니며 전혀 다른 인물이라고 간단하게 잘라 말했답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잠행은 지금으로서는 발각되지 않고 있습니다. 나중에는 웃음거리가 되겠지요.”

베르테르의 망령

"당시 나는 몬티 사제가 써서 근간 상연될 예정인 비극 「아리스토데모」에 관해 벌써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작자가 그걸 내 앞에서 낭독하고 의견을 듣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거절하지 않고 내버려 두었는데, 마침내 어떤 기회에 후작 집에서 그 시인과 그의 친구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작품이 낭독되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다들 알다시피 스파르타의 국왕으로서, 여러 가지 양심의 가책으로 고민하다가 자살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몬티 사제는 정중한 태도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작가가 이 작품 속에 그의 뛰어난 소설 중 몇 군데가 인용되어 있는 것을 보아도 나쁘게 생각지 않았으면 한다며 양해를 구했다. 이러한 사정으로 나는 스파르타의 성벽 안에서조차 저 불행한 청년 베르테르의 망령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었다"...

"내가 독일인이라는 것을 듣고 그는 에르푸르트에 관해 이야기해 줄 수 없는지, 자기는 그곳에서 잠시 동안 매우 유쾌한 날을 보낸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허뢰덴 가문과 달베르크 주교의 근황을 물었고, 내가 충분한 정보를 주자 무척 흡족해하면서 튀링겐에 대해서도 질문했다... “그 사람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하고 그가 물었다. “내가 독일에 있을 때, 젊고 기운이 넘치며 사람들을 슬프게도 즐겁게도 만들던 분이 있었습니다. 이름은 잊어버렸습니다만, 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저자 말입니다.” 나는 주저하듯 좀 시간을 두고서 대답했다. “당신이 말씀하시는 사나이는 바로 접니다.” 그는 놀라운 표정을 역력히 나타내고 한 발 뒤로 물러서면서 외쳤다. “그럼 무척 많이 변했군요!” “그럼요.” 나는 대답했다. “바이마르와 팔레르모 사이에서 나는 매우 많이 변했습니다.”

이탈리아 여행이 괴테에게 가지는 의미

"지극히 평범한 인간도 이곳에 오면 상당한 인물이 되고, 설사 그것이 그의 본질에까지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적어도 어떤 비범한 개념을 획득하게 된다. 

나를 속속들이 개조하려는 재생의 움직임은 끊임없이 나에게 작용하고 있다. 여기서 무언가 버젓한 것을 배우리라는 것은 내가 상상했던 바지만, 이렇게까지 처음으로 되돌아가서 지금까지 했던 것을 모조리 던져버리고 새로 시작해야 한다는 건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다. 그러나 지금 나는 확신을 가지고 전념하고 있다. 그리고 자기를 부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그건 더욱 기쁜 일이 된다. 나는 흡사 탑을 세우려고 하면서 불확실한 기초공사를 해놓은 건축기사와 같다. 그러나 다행히도 빨리 그걸 깨닫고서 이미 땅속에 축조해 놓은 것을 미련 없이 깨부수고, 기초를 확대하고 개량하고, 토대를 더욱 튼튼하게 하려고 노력하며, 미래의 건물이 보다 견고한 것이 되리라는 믿음을 미리부터 즐거움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구교, 카돌릭에 대한 괴테의 느낌/생각

성탄절 휴가 첫째 날 나는 산피에트로 대성당에서 교황과 성직자들을 보았다. 교황은 왕좌 앞 또는 위에서 대미사를 집전했다. 그것은 정말로 화려하고 장엄한 광경이었다. 그러나 나는 신교도적인 디오게네스 사상 아래서 자랐기 때문에 이런 장려한 의식이 나에게 주는 것보다는 빼앗는 것이 더 많다. 나 또한 경건한 선배 디오게네스처럼 이들 종교적인 세계 정복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제발 고원한 예술과 순수한 인간성의 태양을 가리지 말아주시오.”

로마에서 공부하는 범세계적 신학생들

예수 공현축일, 즉 이교도들에게 은총이 고지된 것을 기념하는 축일에 우리는 포교성성(布敎聖省)에 갔다. 먼저 3명의 추기경과 많은 참석자들이 모인 앞에서 강연이 있었다. 마리아가 동방박사 3인을 영접했던 곳은 어디인가, 마구간 안인가 아니면 다른 곳인가 하는 논제였다. 그러고 나서 비슷한 논제에 의한 두세 개의 라틴어 시가 낭송된 뒤에, 30명의 신학생이 차례로 나와서 각자의 모국어로 된 짧은 시를 읽었다. 말라바르어, 알바니아어, 튀르크어, 몰다우어, 에렌어, 페르시아어, 콜키스어, 히브리어, 아랍어, 시리아어, 곱트어, 사라센어, 아르메니아어, 아일랜드어, 마다가스카르어, 아이슬란드어, 보헤미아어, 이집트어, 그리스어, 이사우리아어, 에티오피아어 등등. 그 밖에 내가 모르는 나라 말도 몇 개 있었다. 시는 대체로 그 나라의 운율로 쓰여서 낭송도 나름의 방법으로 하는 모양이었다.

엉겅퀴 속대 먹을 수 있는거 였구나...

우리가 식사를 했던 여관에 어떤 소송사건 때문에 이 지방을 횡단해서 팔레르모로 간다는 시칠리아의 귀족 두 사람이 도착했다. 성실하게 보이는 그 두 사람이 예리한 나이프를 손에 들고 엉겅퀴 수풀 앞에 서서, 잘 자란 이 들풀의 제일 윗부분을 잘라내는 것을 보고 우리는 미심쩍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이 가시 돋친 수확물을 손끝으로 잡고 줄기의 껍질을 벗겨서 맛있게 먹었다. 우리가 물을 타지 않은 포도주와 고급 빵으로 기운을 차리는 동안, 그들은 긴 시간 이렇게 엉겅퀴를 벗겨 먹고 있었다. 마부는 같은 줄기의 속대를 우리에게도 만들어주면서 몸에 좋은 시원한 음식이라고 했지만, 먹어보니까 세제스타의 특수재배 양배추처럼 별로 맛이 없었다

나폴리에서 돌아온 괴테에게 나폴리로 떠나간 티슈바인이 보내온 편지의 내용 中

한 목동이 해변으로 염소를 몰고 왔습니다. 염소들이 물속으로 들어가 몸을 식혔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돼지를 모는 목동이 합류했습니다. 염소 떼와 돼지 떼들이 파도를 타며 더위를 식히는 동안, 두 목동은 그늘에 앉아 음악을 연주했습니다. 돼지 목동은 플루트를 불고, 염소 목동은 백파이프를 연주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른만 한 체구의 소년이 발가벗은 채로 말을 타고 나타났습니다. 물속으로 자꾸 깊이 들어가니 말이 그를 태운 채 헤엄을 쳤습니다. 해변 쪽으로 가까이 왔을 때는 그의 전신이 보이다가 갑자기 되돌아서 바다로 들어가니 헤엄치는 말의 머리와 그의 어깨만 드러났습니다. 볼만한 광경이었습니다.

"예술 작품은 보라고 있는 것이지, 그것에 관해 말하라고 있지 않다"

1787년 7월 29일, 일요일 : "앙겔리카와 론다니니 궁전에 갔다. 내가 로마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보낸 편지에 언급한 메두사를 기억하리라 생각한다. 그때도 매우 마음에 들었는데 이젠 최상의 즐거움이 되었다. 이런 작품이 세상에 있다는 사실, 또 이런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생각만 해도 내 마음은 말할 수 없이 흡족해진다. 그런 작품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어떤 한 부분만 언급한다는 것 자체가 공허한 바람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예술 작품은 보라고 있는 것이지, 그것에 관해 말하라고 있지 않다. 작품을 앞에 두고 이야기한다면 모를까. 과거에 내가 예술 작품에 대해 늘어놓았던 너절한 이야기들이 부끄럽기 짝이 없다

외국 여행지에서는 가능한 동향인을 피하고 싶은 마음. 이해한다ㅎ

내 자신이 1년 전부터 북구인의 어두운 사고방식과 상상에서 벗어나 푸른 하늘 아래서 좀 더 자유롭게 관찰하고 숨 쉬는데 익숙해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동안 독일에서 온 여행자들은 내게 몹시 불편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잊어버려야 할 것을 찾을 뿐, 그렇게 오랫동안 염원했던 것이 그들 눈앞에 있는데도 알아보지 못했다. 나 자신도 내가 옳다고 인식하고 결정한 길을 생각하면서 행동에 옮기는 일이 항상 쉽지는 않았다. 낯선 독일인들은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절친한 사이, 혹은 존경하거나 사랑하는 사람들은 오류와 설익은 지식을 가지고 나를 방해하거나 심지어는 나의 사고방식을 간섭함으로써 나를 괴롭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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