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야경에서 무엇보다도 눈에 띄는 것은 십자가들 이다. 영혼을 구원하는 붉은색 계통의 십자가와 육체를 구원하는 녹색 계통의 십자가... 어두운 밤이면 그런 십자가들이 시야을 가득 채운다. 서울 하늘아래 십자가들이 어찌도 이리 많은지... 구원받고 구제받아야 할 불쌍한 죄인과 영혼이 지구촌 그 어느곳 보다도 많은 것인가 이곳 서울이라는 곳은?...
십자가란 본디 죽음의 상징이 아닌가? 신마저 죽임을 당했던 그 십자가...
인간에 대한 사랑을 들고 나타난 아들-신인(神人)은 "십자가에 못 박힌 신/고난받는 신의 모습"으로 표상된다. 고난을 통한 사랑의 확인/인간을 향한 고뇌/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열정... 그를 통한 구제.
율법으로서의 신은 인간을 "죄인"화하고 복종시키는 반면, 성육신(成肉身)- 인간화된 아들은 "사랑"으로 다가온다 (Feuerbach)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나를 통하지 않고 아버지께 올 자가 아무도 없느니라"(Jesus); 아버지 신에게는 아주 곤란한 언명이다. 유일자로서의 신이 분열될 수 밖에 없는 구조... 결국 "내가 내이다"라고 주장 할 수 밖에 없는데..
자기분열, 정신분열적 현상으로서의 종교/神... 인간의 삶이 공허하면 공허할 수록 신은 풍요로우며 더 구체적이 된다(Feuerbach)
추상抽象에서 구체具體,구체에서 추상으로의 숨가뿐 운동은 가히 절대정신의 생존을 위한 필사적인 투쟁이라 할 수 있겠다.
"신은 (원리로서) 추상성속에 존재한다" vs. "신은 구체성속에 존재한다" 그렇듯 신은 구체와 추상 사이를 숨가쁘게 뛰어다녀야 했다
"신의 죽음" 이라는 니체의 선언 중에는, "유대적 신(야훼)에 의한 이교도 신들의 구축(驅逐)과 타살" 도 그 한 자리를 차지한다.
인간은 지상의 인간적인 사물보다도 천상의 신적인 사물과 훨씬 더 오래 관계한다. 즉 원래의 있는 그대로의 사물 보다도 사유 속으로 전환된 사물과 훨씬 더 잘 그리고 오래 관계한다(Feuerbach)
어찌보면, 삶은 신의 환영, 또는 "삶은 악령의 기만" (플라톤/데카르트) 이라는 언명. 'Cogito ergo sum'라는 황량한 소리 보다는, '나의 존재는 신의 사유이다' 라는 위안이 오히려 정신 건강에 좋을 수도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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