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치아노의 그림에서도 그 여인이 모피를 이렇게 걸치고 있더군. 농담은 그만두고. 애처로운 표정은 이제 그만 둬, 나도 괜히 슬퍼지니까. 지금까지는 하인 역할을 아주 잘 했어, 그러나 아직 계약서에 서명을 안 했으니 아직까지는 자유야,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구.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주어서 아주 만족스러워. 그런데 이제 지겹지 않은가? 그 동안 내가 싫어지지는 않았나? 자, 말해 봐. 명령이야."
"솔직히 말해도 될까요?"
"그래, 솔직하게 말해 봐."
"오히려 전보다 더 사랑합니다. 저의 헌신적인 사랑을 몰라 보셔도 더 열정적으로 숭배하겠습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저를 더 괴롭혀 주실수록 제 가슴에 더욱 더 세찬 불꽃이 타오를 수록."
나는 여인을 끌여당겨 촉촉한 그 입술에 키스했다.
"당신은 정말 대단한 여인입니다!" 열정에 휩싸인 나는 여인의 어깨의 모피를 찢어내고는 하얗게 드러난 여인의 목에 입을 맞추었다.
"결국 내 잔인성을 사랑한다는 뜻이로군." 여인이 말했다.
"저리 꺼져 ! 이제 그 소리도 지겨워, 알겠어?" 여인은 세차게 따귀를 갈겼다. 어찌나 세었는지 한 동안 귀가 멍멍할 정도였다.
"어서 모피를 주워."
나는 얼른 모피를 주워 건네주었다.
"빨리 빨리 못 하겠어?" 말이 떨어지자마자 또 다시 따귀를 때렸다. 뺨이 화끈거렸다.
- 『모피를 입은 비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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