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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July 21, 2013

2013/07/19~07/21 고향풍경, 고향에서,,



[2013/07/19]

애벌레 한마리가 토마토 하나를 장악하고 있다. pic.twitter.com/V0KxY2ngum
posted at 16:37:21

누렁이와 아이스뱃도 열심히 뻥튀기를 먹는.. pic.twitter.com/Vs0CDCeVmn
posted at 17:05:20

산과 구름... pic.twitter.com/Cuvr5PAg3a
posted at 17:40:12

오후 7시경에 본 무지개 pic.twitter.com/X8HFIAmUpA
posted at 20:03:01



[2013/07/20]

깊은 산속 깊은 계곡... pic.twitter.com/ZsccFEecg1
posted at 12:33:00

푸른하늘 하얀 구름. 장수방화동계곡... pic.twitter.com/kbjAvgzh4m
posted at 14:25:06

바람에,,, 강아지풀 꽃과 그 위에 앉은 조그마한 나비도 함께 춤을 추네 pic.twitter.com/GUHc251LQe
posted at 14:38:06

다리밑에서 통기타를 켜며 합창을 부르는 아줌마 아저씨들의 화음이, 계곡 물소리를 잠재우는구나...
posted at 14:40:41

골바람 솔솔 맞으며 누워 바라다본 하늘. pic.twitter.com/sOL4qTYQ1D
posted at 14:44:29

누워서 구름 움직이는거 가만 보고 있으면,,, 구름들도 시시각각 변화무쌍. 엄청 바쁘게 사는 듯...
posted at 14:48:19



[2013/07/21]

[고향의 풍경] 커다란 복합농기계위에서 자라고 있는 풀, 생명력이란,,, pic.twitter.com/osyuxAlchj
posted at 19:24:13

박정희 정권 시절 얼렁뚱땅 통과된 영해법과 현재의 NLL 논쟁

RT @kim124700: "@ahndragon: [프레시안] "서해 5도 제외시킨 건 박정희…NLL 논란의 불씨" - ln.is/bit.ly/o81S 새누리는 이제 뭐라 말할까???" posted at 21:43:26 July 18, 2013

몰랐다,, 법적으로 서북 5도의 인근 수역은 지금도 법적으로 남한(대한민국)의 영해가 아니라는 걸... posted at 21:45:01 July 18, 2013

대한민국의 영해법에는 충남 태안반도 소령도 이북해역을 영해로 선포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영해의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라고 하네... posted at 21:46:07 July 18, 2013

"우리가 서북해역을 우리나라의 영해로 표기하려면 세 가지 절차가 필요.. 첫 번째는 영해법에 명시해야 되고, 두 번째는 국제사회에 이를 공표해야 하며, 세 번째는 유엔사무총장에게 그 사실을 기탁해야 한다" - 김종대 posted at 21:46:54 July 18, 2013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 시절, 2008년 유엔사무총장에게 기탁한 우리나라 영해직선기선도 역시 기존 영해법과 동일하게 서북 5도가 빠져있다. 지금도 우리나라 영해 직선기선도를 보면 경기도에는 영해가 없다. 태안반도 앞 소령도에서 직선기선이 끝난다" posted at 21:47:33 July 18, 2013

"한중어업협정에 서해 5도 바깥 수역이 공해로 설정되어있기 때문에 중국 어선들이 와서 고기를 다 잡아가고 있다. 반면 남북한의 어선은 영해 논쟁 때문에 제대로 들어가지도 못한다.. 우리가 지금 마주하고 있는 논란은 사실 실체가 없는 논란이다" posted at 21:49:39 July 18, 2013

"영해 논란은 원래 국제법 논란이고 국제법에 기초한 분쟁해결 절차를 준용하거나 유엔 해양협약에 따르면 된다. 그렇게 영해 논란을 부추기려면 소모적인 정쟁을 하지 말고 국제사법재판소로 이 문제를 제소라도 하라" posted at 21:50:10 July 18, 2013

국제정치에서는 '영해' 대신에 '우리가 관할해온 수역'이라는 정의가 있다. 이는 남북기본합의서에 나와 있다. '서로가 각자 관할해온' 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다. 이것은 남북 간의 합의에 최대치이다. 그리고 그 개념이 훌륭하다.." posted at 21:51:01 July 18, 2013

"NLL이 무엇이냐. 정전협정 직후에 유엔사령관이 분쟁을 막기 위해... 북한에는 비밀로 하고 우리 내부적으로 극소수만 이 선의 존재를 공유했기 때문이다. 이 선 이상으로 올라가면 남북한이 서로 충돌할 우려가 크니 이 선을 넘어 북상하지 말라는 것" posted at 21:52:17 July 18, 2013

"다시 말해 분쟁과 교전을 막자는 취지로 만든 선이 바로 NLL이다. 그런데 이것이 지금은 분쟁을 유발하고 있다. 이 역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posted at 21:52:37 July 18, 2013

"NLL을 바꿔야 한다는 말은 지금처럼 군대가 서로 대치하는 하나의 선이 아니라 공동 어로구역을 하는 기준선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군대가 아닌 경찰이 이를 관리해야 한다는 말이다..." posted at 22:02:17 July 18, 2013

"군대가 아닌 경찰이 이를 관리해야 한다는 말이다. 군대와 경찰의 차이가 무엇인지 아는가? 경찰은 평시의 법을 적용받고 군대는 전시법을 적용받는다. 그런데 거기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경찰은 적을 상정하지 않고 군대는 적을 상정한다는 것이다" posted at 22:14:19 July 18, 2013

"많은 사람들이 NLL을 지킨다고 하면 바다에 보이지 않는 선이 있고 그 선을 따라 함정들이 쭉 늘어서서 계속 지키는 것이라고 착각을 한다.그 선을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면을 통제하는 개념이다" posted at 22:14:30 July 18, 2013

"여기에서 우리는 두 가지 의문에 봉착한다. 북한은 성능이 낮은 수상함에 의한 도발이 자신들에게 절대 불리한 줄 알면서도 왜 자꾸 경비정으로 NLL을 침범하는 무모한 도발을 한 것인가?" posted at 22:15:09 July 18, 2013

"(북한이) 정말 NLL을 무력화하려면 지상의 해안포나 지대함 미사일을 동원했으면 훨씬 자신들의 안전을 도모하면서 우리 함정을 위협할 수 있었는데 말이다" posted at 22:15:32 July 18, 2013

"남한은 왜 NLL 선상에 대형 함정을 죽 늘어서게 만드는 이상한 전술을 고집했을까? 우리 함정의 전투원들의 생명이 위험해지는데 말이다. 이 두 가지 의문을 놓고 보면 NLL에서 남북 대치는 군사적 원칙에 충실한 합리적 행동들이 아니었다" posted at 22:15:54 July 18, 2013

"제2연평해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2함대사령부가 우리 함정과 적과의 3km 거리를 유지하도록 했는데, 합참이 중간에 개입해서 "근접 차단기동을 하라"고 지시했다. 그 당시 합참 작전본부장이 바로 이명박 정부 초대 국방장관인 이상희 중장이다" posted at 22:16:35 July 18, 2013

"당시 합참 작전본부장은 "2함대사령관을 징계해야 한다"며 명백한 해군의 잘못이라고 했고, 연합사부사령관인 남재준 대장도 당시 국정상황실 요원을 만나 "해군이 잘못 기동했다가 다친 것"이라고 말했다. 그 인물이 바로 현재 국정원장이다" posted at 22:16:51 July 18, 2013

NLL이 국토선? 인천 앞바다도 우리 '영해' 아니다. 태안반도 소령도 이북 빠진 '영해법'과 서해 분쟁 www.ohmynews.com/NWS_Web/View/a… posted at 22:17:47 July 18, 2013

박정희 정권 시절 얼렁뚱땅 통과된 '영해법', 서해 5도는 미포함. NLL 논쟁은 박정희 정권 시절 만든 영해법부터 시작, 이명박 정권에서도 서해5도는 미포함해서 유엔에 제출했다고. posted at 22:19:43 July 18, 2013

태안반도 소령도 이북해역, '영해' 선포 안 해. 국제적 권한 없어.www.ohmynews.com/NWS_Web/View/a… pic.twitter.com/1Erxl2vZ5M posted at 22:22:02 July 18, 2013

Saturday, July 20, 2013

Tweet Archives_들뢰즈(Deleuze) 라는 Keyword로 검색한 파편들,,,


Deleuze and Guattari@DeleuzeGuattari
This is because the differences are not objective. Woah!  10:44 AM - 31 May 2013

sz@sz_duras
from the other-side: Deleuze was right to say that technology is always already social (to paraphase) which is to say the same thing...  6:44 PM - 7 Dec 2012

"정열적인 인간은 마치 에이합 선장처럼 고래를 쫓다가 죽는 것과 같습니다. 그는 선(線)을 넘어갑니다. 궁극적으로, 죽음과 자살을 구분 못하게 만드는 일종의 가속(加速) 같은 것이 있는지…" - Deleuze  5:49 PM - 7 Aug 2012

Hollman Lozano@hollmanlozano
#Deleuze pic.twitter.com/obhCbG1N 9:59 PM - 9 Jun 2012

Deleuze가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할때의 마지막 심정은 무엇이었을까? 마지막 순간까지 마음속의 가시가 그를 충동했을까? 아님, Ahab 선장처럼,,, 하나의 線, 궁극적인 선을 넘고 싶었을까?  12:46 AM - 16 May 2012

The scene of a yuppie on the Paris underground reading Deleuze and Guattari's "What Is Philosophy?" ; 이게 실소를 자아내는 풍경이란 말인가? 아마도... 8:25 PM - 27 Jan 2012

"Right wing reading of Deleuze..." Interesting...!!  6:26 PM - 25 Jan 2012

Catherine Malabou put it... "Deleuze:Hegel=Ahab:White Whale"  5:50 PM - 16 Jan 2012

Deleuze; Schizo-arnachist... by Zizek's definition !  5:49 PM - 16 Jan 2012

The triad of Spinoza-Kant-Hegel, Paganism-Judaism-Christianity or Deleuze-Derrida-Lacan… and more !! http://www.lacan.com/zizphilosophy1.htm  12:59 PM - 16 Jan 2012

들뢰즈봇@gdeleuze_bot
니체는 진리에 대한 허위의 열망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 자체, 즉 이상으로서의 진리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다. 니체의 방법에 따르자면, 진리 개념을 비극화해야만 한다.  11:54 PM - 10 Jan 2012

[Scrap] Deleuze's notion of Becoming and Repetition - The ontological opposition between Being & Becoming... http://uquehan.tumblr.com/post/13292959587  5:47 PM - 25 Nov 2011

"Deleuze's notion of the VIRTUAL is a radical one in that its ultimate reference is becoming without being... a becoming-it-self" - Žižek  4:14 PM - 25 Nov 2011

Deleuze and Guattari@DeleuzeGuattari
A color will "answer to" a sound. 9:30 AM - 11 Nov 2011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을 반복해 들으며 맥주. 사실 그의 사후에 그를 알았다. 그가 자살로 삶을 마감했을때, 난 동송읍 오지리에서 제대를 준비했다; 군복무하며 부음을 통해 처음 알게된 두 사람. 김광석, 그리고 Deleuze  8:50 PM - 28 Oct 2011

“@beatthedust: 'Be in the middle of things, but be in the centre of nothing.' - Deleuze” ; 中庸,,, It's like a b'lade-runner'.  9:29 PM - 16 Jul 2011

“@khaoid: 'Herein, perhaps, lies the secret: to bring into existence and not to judge.' deleuze”  11:08 PM - 4 Jul 2011

Foot note [5] ; The abstract machine is a diagrammatic plane of piloting that according to Deleuze and... http://uquehan.tumblr.com/post/4207217040  8:56 PM - 30 Mar 2011

So "Belief" does exist as exit ! RT @ajnabee "Does God exist? Is existence an attribute? Not certain." -Deleuze  2:46 AM - 26 Mar 2011

Gilles Deleuze's notes to Michel Foulcault, 1977 - Desire & Pleaseure Gilles Deleuze (trans. Melissa McMahon... http://uquehan.tumblr.com/post/1269318265  11:24 PM - 8 Oct 2010

Watch @ajnabee post ; Deleuze’s Postscript on the Societies of Control, By Gary Hall, Clare Bichall and Peter Woodbridge http://goo.gl/Sgpj  9:56 PM - 4 Oct 2010

Thanks for your link... RT @mattermorph: “November 4, 1995: Deleuze’s death as an event” http://bit.ly/cIdIvh A.P. Colombat  10:44 AM - 17 Aug 2010

Death always comes from the outside(#Deleuze) or rendez-vous/encounter(#Baudrillard) not the internal impulse of insect or objective destiny 10:46 AM - 17 Aug 2010

“@ajnabee: "It seems that concepts have their own existence. They are alive, like invisible creatures." -Gilles Deleuze” >> 개념의 유충들...  12:11 PM - 13 Aug 2010

"권력들이 외적인 것으로 머물지 않고 우리 각자의 내부로 침투하는 것인 만큼, 바로 우리 각자가 스스로와 싸움을 벌이고 협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끊임없이..." #Deleuze 어쩌면 영원히 지속되는 유격전과 협상...  11:22 PM - 12 Aug 2010

주사위 던지기; 순진무구한 우연에 대한 긍정. 한번 던저진 주사위는 "우연"의 긍정이며, 그 던저짐 위에서 이루어지는 조합은 "필연"의 긍정이다. 필연은 정확히 존재가 생성을 긍정하며, 하나는 다수를 긍정한다는 의미에서 우연을 긍정한다 #Deleuze  11:31 PM - 12 Aug 2010

"철학은 권력이 아니어서, 철학은 권력자들과 전투를 시작할 수가 없다. 그렇지만 철학은 그들에 대항하여 전투없는 전쟁, 유격전을 이끈다. 철학은 그들과 대화하지 못한다. 아무 할말도 없고 전해줄 것도 없다. 그저 협상을 이끌 뿐이다" #Deleuze 11:21 PM - 12 Aug 2010

"A schizophrenic out for a walk is a better model than a neurotic lying on the analyst's couch"(#Deleuze); 오늘 나의 정신분열증 현상이 심한듯...Good night 12:35 AM - 12 Aug 2010

@ajnabee as #deleuze said "If money's old moles are the animals you get in places of confinement, then control societies have their snakes"  1:08 AM - 11 Aug 2010

STING; "The sacred geometry of chance" vs. #Deleuze; Dice Throwing... 주사위 던지기는 우연과 필연의 조우/교차... 던져진 우연은 필연으로 전환되고 그 필연은 또 다른 우연으로 연결된다.  2:29 AM - 25 Jul 2010

'The sacred geometry of chance'; 한번 던져진 주사위는 우연의 긍정이며,그 던저짐 위에서 이루어지는 조합은 필연의 긍정이다. 필연은 존재가 생성을 긍정하며, 하나는 다수를 긍정한다는 의미에서 우연을 긍정한다 #Deleuze  2:30 AM - 25 Jul 2010

[Blade-runner]"線과 대면하고 그 선에 올라타는...이렇게되면 아마도 죽음-자살로 향하게 되겠지만,자살은 전 인생을 사로잡는 하나의 예술이 되는 것이지요" #Deleuze 자살예찬론이라기 보단 궁극적으로 자신에게 책임감있는 행위인가의 문제! 5:21 PM - 30 Jun 2010

"Philosophers have traditionally been employees of the State" #Deleuze 국가에의해 징발되었다기 보단 지식인 스스로 찾아나선다.  7:11 PM - 18 Jun 2010

Orthodox reading of #Deleuze ?? Agree with you @impleri ; "To create an orthodoxy seems to miss the unorthodox nature of Deleuze" 11:10 AM - 8 Apr 2010

개화된 현대에도 폭압은 계속되지만,,, 통제사회가 뱀의 이미지라는 들뢰즈의 말처럼,,, 사악한 뱀의 이미지가 만연하구나. 이러땐 뱀의 머리를 과감하게 낫으로 잘라버려야 하는데.  12:37 AM - 2 Jun 2013

"不知周之夢爲胡蝶, 胡蝶之夢爲周與? 周與胡蝶則必有分矣, 此之謂物化" ; 장주와 나비는 필히 구분이 있을 수 밖에 없고, 타자와의 관계속에서 物化 가령, 들뢰즈적 생성(becoming)이... 9:55 AM - 1 May 2013

Photo: 더욱이 들뢰즈/데리다/라캉의 3인은 또한 명백히 종교적 함축 - 이교적인 들뢰즈, 유대인인 데리다, 그리고 그리스도교도인 라캉 - 을 보여 주지 않는가? Furthermore,... http://uquehan.tumblr.com/post/21072503357  3:58 PM - 14 Apr 2012

혹은, 들뢰즈적 언어로 이야기하자면, "What is~" 의 문제가 아니라, "Which (one) is~" 가 중요하다. 7:55 PM - 24 Jan 2012

지젝(Zizek)이 보는 들뢰즈 - In deleuze, Life is still answer to “Why is there Something and Not Nothing?” whereas... http://uquehan.tumblr.com/post/15939707617 5:52 PM - 16 Jan 2012

들뢰즈봇@gdeleuze_bot
니체는 진리에 대한 허위의 열망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 자체, 즉 이상으로서의 진리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다. 니체의 방법에 따르자면, 진리 개념을 비극화해야만 한다.  11:54 PM - 10 Jan 2012

"이교적인 들뢰즈(Deleuze)/유대인인 데리다(Derrida)/그리고 그리스도교도인 라캉(Lacan)" -Slavoj Zizek, [On Belief] 라는 책의 어느 한편 각주에서... 음, 각주에 대한 주석을 달기가 귀찮고도 어렵다  11:37 PM - 29 Apr 2011

본질/필연성/보편성/총체성/이성/추상성/실재성/존재/실존... 난무하는 철학의 개념과 용어들; 하지만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들뢰즈(#Delueze)가 말듯이 철학(적 논쟁들)은 "그저 웃자고 하는 이야기"일 뿐...  11:23 PM - 12 Aug 2010

Thursday, July 18, 2013

시리아...

RT @AJEnglish: Bridge to nowhere: #Syrian refugees in #Greece: aje.me/14dNTDC posted at 23:45:08 July 17, 2013

전 세계적으로 힘든 사람들은 민초들 뿐. 시리아의 내전을 피해 해외로 망명(혹은 어쩔수 없는 도피)한 한때 잘나가던 48살의 변호사로 살던 중산층가 어렵고도 어려운 그리스로 망명하여 힘든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란,,, 맘이 아프다. posted at 23:48:01 July 17, 2013

이 얼마나 절망적인 말인가? "Bridge to nowhere..." posted at 23:48:42 July 17, 2013

2천4백만원가량을 지불해 아테네에 도착했지만,,, 공원과 길거리에서의 노숙생활,,, 심지어 임시보호소에 들어가려 해도 거기에 들어가는 조건으로 암암리에 14살 어린딸을 매춘으로 강제하려는 유혹. posted at 23:55:12 July 17, 2013

"The most difficult day for me in Greece was when we were homeless and all my children were crying because they were hungry..." posted at 23:56:46 July 17, 2013

"고국"에서 소수민족으로 핍박 받고 살다가 해외를 떠돌아도 마찬가지.... posted at 23:57:46 July 17, 2013

시리아; "시리아는 1963년 이후 국가비상사태 하에 있는 국가로, 헌법의 국민 부호는 사실상 중단되었다. 시리아 정부는 이스라엘과의 전쟁을 핑계로 비상사태 선언을 정당화하고 있었다" posted at 00:01:54 July 18, 2013

"1963년 바트당 쿠데타이후 시리아는 바트당의 통치 아래에 있다. 1966년 쿠데타와 1970년 쿠데타 등으로 지배 구조가 변화 했음에도 불구하고, 바트당은 현재까지도 독점적인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 ; 이건 한국에서도 마찬가지,,,, posted at 00:03:52 July 18, 2013

시리아;"1970년 쿠데타 이후 하페즈 알아사드 대통령은 30년 가까이 시리아를 통치해왔다.하페즈 알아사드의 아들인 바샤르 알아사드가 대통령이 될 수 있는 나이 규정인 40세를, 당시 그의 나이인 34세로 인하하도록 헌법을 수정한 후 후계자가 되었다" posted at 00:07:21 July 18, 2013

“'개도 국경을 넘어야만 짖는다'는 시리아에서 시위는 놀라울 정도로 이례적인 현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리아 아사드 정권은 국민 150명 당 1명의 비밀경찰을 곳곳에 심어 국민들을 철저히 감시하면서 권력을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posted at 00:09:39 July 18, 2013

"무려 반세기 동안 지속되어 온 아사드 집안의 철권통치에 대한 국민 불만이 튀니지발 중동민주화 바람에 편승하면서 일어났다. 현 대통령의 아버지 하페즈 알 아사드는 집권 기간 동안 반정부 시위를 무자비하게 진압.." posted at 00:10:52 July 18, 2013

시리아; "1982년 2월 ‘하마 학살’. 당시 무슬림 형제단이 반정부 항쟁에 나서자 하페즈는 정부군을 동원하여 3주간 하마 시를 봉쇄하고 전면 공격을 퍼부었는데, 이 때 약 3만 명의 시민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광주가 생각나는,, posted at 00:12:12 July 18, 2013

어떤 나라든 내부의 복잡한 사회/종교/계급적 문제가 얽혀있는데, 특히나 식민지배를 받던 나라들은 더욱 그 갈등관계가 심한듯. 시리아도 프랑스의 식민지였다. 마치 현재의 대한민국이 일본의 식민지였든... 그게 현재까지 갈등의 한 축이듯.. posted at 00:15:58 July 18, 2013

"시리아 내전은 내전이 아니라 중동 헤게모니를 둘러싸고 이스라엘,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이란, 미국과 서방, 러시아와 중국 등 역내·외 국가들이 벌이는 치열한 국제전이다" posted at 00:26:01 July 18, 2013

시리아 내전에 대한 소위  서방(미국)의 입장; "반세기 동안 시리아에는 아사드 집안과 알라위 외의 다른 지도층이 존재할 수 없었다... 여기에는 이슬람 정치를 지향하는 세력이 정권을 잡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도 한 몫 거들었다..." posted at 00:26:33 July 18, 2013

"현재 시리아 정부군 편에는 러시아, 이란, 헤즈볼라, 팔레스타인 인민해방전선, 팔레스타인 해방군, 이라크 시아 민병대 등" posted at 00:28:03 July 18, 2013

한편 시리아 반군은 서로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다른,,, 시리아 국민연합(Syrian National Coalition), 무자헤딘(Mujahideen), 쿠르드 최고 위원회(Kurdish Supreme Committee) 등... posted at 00:28:37 July 18, 2013

중동의 국가의 역사와 현재 상황을 보면,,, 한반도의 역사가 보인다. posted at 00:29:11 July 18, 2013

또 다시 출현한 "북한의 소행"

"6.25 사이버 공격과 3.20 사이버 테러를 북한 소행으로 결론"... 참,,, 이젠 귀가 따갑다. 똑같은 이야기. 강도를 당했는데, 강도의 소행이라는 수준의 이야기. posted at 22:59:03 July 16, 2013

도대체 대한민국 사이버보안부대는 뭐하고 지금까지 맨날 "북한의 소행"에 당하는데? 이것도 노크귀순이냐? 북한이 노크하고 들어와야 아는? 진짜 북한의 소행이라면 관련기관과 책임자의 목을 잘라야... posted at 23:00:34 July 16, 2013

한두번도 아니고 매번 똑같은 일을 당하고도 그저 "북한의 소행"이라고 뻔뻔한 변명을 한다라는건 무능의 극치. 그래서 어쩌라고? 니들이 그거 막으라고 월급주고 활동비 주는거 아니냐고? 근데,,, "북한의 소행"이 무슨 면죄부냐고? posted at 23:01:39

대한민국에선 "북한의 소행"이 무슨 천국행 면죄부로 일반화되는 듯... 그런 시나리오라면 차라리 "미국의 소행"이라고 배뽀있게 나오던지. 미국이 광범위하게 통신/인터넷 감청. 검열, 해킹공격하고 있잖아? 그건 차마 이야기 못하겠지? posted at 23:03:43

“6.25 사이버공격도 북한소행”이 100% 확실하다 해도 관련기관/책임자는 이번에는 북한소행이라는 변명뒤에 숨지 말고 앞에 나서서 자신의 무능을 책임지고 대책을 세워서 국민앞에서 떳떳히 밝혀라. 경계에 실패한 군인은 곧 죽음이다. 비겁한 변명말고. posted at 23:06:35

그래도 쪽팔렸는지,,, 전길수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침해사고대응단장 ; "대전정부통합전산센터 등 국가기간망(내부DB)이 아니라 국가기관의 인터넷망이 공격당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해명 posted at 23:10:49

해킹은 인터넷망이 아니라 보안이 엄격한 내부시스템-일반적으로 인터넷 연결로 접근 가능한게 아닌 인터넷 망으로부터 분리된- 을 파고드는게 Hacking 이다. 국가기간망에 연결된 인터넷 접속 제한하는 DDos 같은게 해킹이 아니다. posted at 23:13:51

디도스공격과 내부시스템 접속해 정보를 빼내는 것을 뭉퉁그려 사기치는 수법은 이제 그만했으면.. "부팅영역(MBR) 파괴, 복구가 불가능 하도록 파일을 삭제하는 등의 기능 등"은 해킹이 아니고 그저 개별 시스템 기능 무력화, 서비스 방해이지. posted at 23:16:52

중요한 것은 웹 서버등의 접속제한, 해당 서버/PC의 기능장애, 파일삭제가 아니라 시스템에서 중요정보를 빼내는 것인데,,, 이 놈들은 DDos가 큰 일인것처럼 포장하고 정작 중요한 기밀정보 훼손이나 유출에 대해선 함구... posted at 23:19:23

인터넷망과 분리된 대전정부통합전산센터 등 국가전산망, 폐쇄망을 공격했다는 점은 단순 DDos 차원의 접근이 아닌 따른 접근이 필요한데... 만일 이게 해킹이나 악성코드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면,,, 국가전산망 관리기관/책임자는 당장 옷을 벗어야. posted at 23:22:21

어쨌든,,, 민관군 합동대응팀의 전길수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침해사고대응단장은 대전정부통합전산센터 등 폐쇄망을 공격에 대해서는 제대로 이야기 하지 않고 "기간망이 아니라 국가기관의 인터넷망이 공격당한 것으로 봐야 한다"라고 슬~ 넘어가는... posted at 23:26:30

우리나라 사이버보안부대는 북한이 없으면 어쨌을까 몰라,,, 물론 그런 상황에선 다른 상습 혐의자를 만들어내긴 하겠지... posted at 23:27:43 July 16, 2013

Sunday, July 14, 2013

19세기 조선 하층민 여성들의 가슴을 드러낸 패션...

지금은 가슴을 드러낸, 더욱이 엄격한 "유교적" 문화의 조선에서 설마 이런 패션이 정말 가능했었나? 라고  - 물론 동시대의 사진들을 보면 양반가의 처자들은 대체로 장옷을 둘러싸고 다녔다 - 의아해 하겠지만,,, 많은 문헌을 보면 조선의 19세기 일하는 하층 여성들 혹은 젖을 먹이는 여성들의 패션은 대체로 가슴 윗부분까지만 덮는 짧은 윗 저고리를 걸치고, 치마는 가슴 아래께까지 올려서 묶은, 가슴은 드러난 패션이 자주 언급된다.

[가슴을 드러낸 여인]
Angus Hamilton이 1904년에 발간한 
『한국 Korea』에 실려 있는 사진. 
- 출처 : 『이방인이 본 우리』, 국사편찬위원회, 두산동아, 2009

[빨래를 이고 가는 여성]
- 출처 : 『이방인이 본 우리』, 국사편찬위원회, 두산동아, 2009

이것이 오래된 우리의 일반적인 풍속이었는지, 혹은 특정 사회적 기간 동안의 패션이었는지, 혹은 아주 제한된 지역이나 계급 여성의 흔치 않은 특수한 '사건'이 이방인의 눈길에 포착되어 사진으로 남긴건지는 알 수 없다.

암튼 "우리의 과거"라는 것도 우리가 불완전하고 제한적으로 인식한 범위를 넘어서는 측면들이 많다. 뭐,,, 지금이나 그때나 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이니까.

2013/07/14 비내리는 인사동을 거닐다

맛 있게 담배를 피는 여인,,,
니들이 담배맛을 알아?

산양 두마리.

옷 입혀주는 여자,,, 가 있었으면...

장독대 @경인미술관



나무껍질 느낌의 철 조각품

길거리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 수초,
내리는 빗 물을 만끽하고 있다.

인사동 어느 골목길의 모습
- 이 골목에 들어가 막걸리 한 사발 걸치다



똥빵!!

도도한 그녀,,,

화장실안의 벽화 @쌈지길
"help me~! I'm Serious~~"

Saturday, July 06, 2013

[Scrap] 이집트 무슬림 형제단의 정체는?

트윗과 뉴스를 통해 접한 이집트의 군사쿠데타와 민중혁명, 이 두가지가 함께 얽인 것에 대해서는 짧은 지식과 이해로는 참,,, 어렵다.

1952년 나세르를 중심으로 한 군부내 비밀조직인 자유장교단의 쿠데타로부터 시작한 이집트의 오래된 군부 및 군부출신의 독재정권(나세르, 사다트, 무바라크)의 친미군부정권의 역사와 무슬림형제단의 관계도 애매하고,,,  군부와 무슬림형제단, 결국 같은 무리들끼리의 권력투쟁인건지, 뭐,,, 구체적인 지식과 이집트 현대사에 대한 이해가 없으니 이해하기 쉽지 않다. 하기사 한국에 살면서 한국의 현재 상황도 이해불가인데,,,

인터넷 구글링하다가 나온 이야기/글 들,,,
"이집트 무슬림형제단 지도부의 구성원 마져도 성공한 장사치나 기업가 고위관료 군장성등으로 대체되며 미 CIA나 영 M16 같은 스파이 조직들이 개입한 정황들은 곳곳에서 발견"  
"즉 타락한 이슬람근본주의 정치단체와 제국주의의 이해가 맞아 이집트가 반제 반서방 자주국가로 혁명화 되는것을 두려워한 제국들의 정치적 음모적 꼼수..."  
"이집트 군부의 입장과 개입여부,,, 문제는 이집트 군부의 주요인사들이 무슬림 형제단 소속이라는 것. 그러나 아무리 군부실세라 하여도 거대한 파도와 같은 이집트 민중들의 힘을 결코 무시할수 없어 전세 역전을 위해 민중혁명에 잠시 가담.."  
무르시, "미국정부의 비호아래 최고군사위원회와의 '은밀한 거래'로 정권을 획위했으나, 결국, 무바라크 전대통령이 남겨놓은 문제들로 인해 무바라크 정권을 몰아낸 '무슬만 형제'는 마찬가지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미궁속을 헤매고 있었다..." 
"역사적으로 이집트는 무슬림형제단이 지배해왔고 쿠데타로 물러난 무르시는 이슬람 형제단 출신이며 친 서방노선을 고집,,, 이집트 민중은 이슬람 형제단의 정치개입을 반대하는것이며, 또한 매국매판적 부르조아세력의 정치지배를 반대.."  
한국 이집트 대사관앞에서 시위를 하던 "이집트인 두 명은 자신의 옷에 아랍어로 ‘나는 무슬림이지만 무슬림형제단이 이슬람의 이름으로 지배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글귀를 써왔다. 그들은 “종교가 아니라 무슬림형제단이 문제”라고.. 
"무르시와 무슬림형제단은 혁명을 배신했다. 정권이 위기에 처하자 기독교, 시아파 무슬림과 정부에 반대하는 사람은 모두 이교도라며 종교 갈등을 부추겼다"
문제는 이번 쿠데타를 일으킨 같은 "무슬림형제단"인 군부의 의중. 무슬림형제단이 제국주의와 밀담을 통해 일단 무르시를 실각시키고 다시 군부/무슬림형제단 출신을 내세우면,,, 이건 진짜 친위쿠데타. 이집트나 한국이나,, 미제국과 강대국의 영향력에서 인민들이 고통 받기는 마찬가지...

인터넷 글을 검색하다 보니 이집트 무슬림형제단에 대한 나름 깊이 있는 기사를 발견. 아래는 기사 전문이다.

이집트 무슬림 형제단의 정체는?
[기고] 이집트 혁명의 주역들, 그리고 무슬림 형제단, 김애화(새세상연구소 연구위원)
입력 2011-03-19 14:37:00 l 수정 2011-03-19 15:12:33
http://www.vop.co.kr/A00000374223.html


이집트 혁명 기간 중 대중적 정치세력으로 가장 크게 부상한 것이 무슬림 형제단이다. 미국 오바마 정부를 비롯한 서방은 계속 무슬림 형제단에 대한 노골적인 두려움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무슬림 형제단의 정치적 성격에 대한 해외 언론의 보도 내용은 스펙트럼이 다양한 듯하다. 반미적 이슬람주의부터 세속적 이슬람주의, 중도적 정치세력까지 보는 시각이 엇갈린다. 병원, 보육원 등에서 자선활동을 하는 모습을 통해 헌신적인 대중조직의 모습을 부각하는 내용도 있다.

와중에 이집트 혁명을 이끈 주역들 사이에서 무바라크 퇴진 후 무슬림 형제단의 정치 행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비판의 초점은 무바라크 정당인 NDP(국민민주당)와의 정치적 타협 속에서 개헌 국민투표를 서두르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투표는 19일 진행될 예정이다. 이집트 혁명에 참가한 정치세력들은 이번 국민투표에 부쳐지는 개헌을 반대하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무슬림 형제단의 실제 정치적 성격은 무엇일까. 이들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하고 있는 해외 언론의 내용을 정리해 본다.

이집트 혁명의 주역들 

이집트 혁명의 주역으로 네 가지 정치세력을 들 수 있다. 

그 첫번째가 청년층이다. 이들에 의해 시위가 시작됐고 이들은 1백만 명 이상을 조직했다. 청년층은 사회.경제적 시스템에 대립하며 사회적 부정의와 점증하는 불평등에 반대해왔다. 따라서 이들이 '반자본주의'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이들은 좋은 측면에서의 민족주의자이자 반제국주의자이다. 이들은 미국의 헤게모니에 이집트가 종속되는 것을 바라지 않으며,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식민지화를 용인하는 평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들은 민주적이며, 내부 리더십은 중앙집중적이지 않다.

두번째 정치세력은 급진적 좌파세력으로 이들의 전통은 공산주의다. 청년층은 반공산주의자가 아니지만 위계적인 정당 구조에 속하길 원치 않는다. 그러나 청년층은 좌파세력과 관계가 나쁘지 않다. 이 두 세력은 지도 관계가 아니라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맺으며 혁명 과정에서 함께 행동해왔다.

세번째 정치세력은 중산층 민주시민이다. 이들이 혁명에 참가한 것은 이집트 체제가 극도의 경찰국가 체제이자 마피아국가였다는 점을 보여준다. 중소 기업가를 포함한 많은 시민들이 이러한 체제 하에서 생존하기 위해 국가로부터 시련을 받아왔다. 

물론 이들은 좌파가 아니며 자본주의, 기업, 시장을 인정한다. 완전히 반미는 아니며, 이스라엘을 좋아하지 않으나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관계를 인정하고 있다. 이들 또한 민주주의자들이다. 군부, 경찰, 마피아 갱의 집중에 반대하고 있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엘바라데이(Mohamed ElBaradei)가 이 세력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엘베라데이는 미국인이 민주적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나이브하다는 평을 받는다.

네번째 주역이 바로 무슬림 형제단이다. 무슬림 형제단은 민주화 시위 기간 동안 많은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실제 시위 과정을 보면 시위는 청년층에 의해 시작됐고 이어 급진적 좌파가 참여했다. 시위 둘째날부터 부르주아 민주주의자들이 참여했다. 무슬림 형제단은 시위 발생 초기 4일 동안은 시위를 거부했었다. 이들은 시위가 경찰 탄압에 의해 실패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운동이 오히려 확산되는 것을 보고 이들 지도자들이 시위 참가를 결정했다.

체제와 무슬림 형제단의 협력과 긴장관계

현재까지 이집트의 체제와 무슬림 형제단은 외형상 대립적으로 보여왔지만 사실상은 연맹 관계다. 

체제와 무슬림 형제단의 협력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공식적으로 무슬림 형제단은 1928년에 창립되었다. 그 당시 슬로건은 "코란은 우리의 헌법이다"였다. 이는 이슬람을 재구축한다는 이들의 의도를 담고 있는 것이었다. 이들은 이슬람에 대한 초정통파(ultra-orthodox)의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1930년대에 창립자인 바나는 비밀기구를 만들었다. 지하 경찰과 군사조직이었다. 형제단은 이집트 왕조 시절 막대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높은 수준의 정치력을 발휘하고, 종종 파르크 왕에 협조해 왕의 정적에 대항하기도 했다. 이들의 정적은 좌파, 공산주의자, 민족주의자 와프드 정당을 포함한다. 

형제단은 이슬람에 기반한 반 제국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지만, 이들은 지배세력과 때때로 공통의 정치적 동기를 가져왔다. 무슬림 형제단은 지난 50년 동안, 민족주의자와 공산주의자에 대항하는 전투적인 공격수로 체제에 봉사하곤 했다. 형제단은 좌파와 민족주의 그룹에 침투하는 스파이 역할을 하기도 했다. 제국 영국의 보호를 받고 이들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협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대단히 독립적이어서 종종 지배권력과 강하게 대립했다. 지배층의 고위급 인사를 암살하곤 했다. 나세르에 대한 암살 기도를 하기도 했다.

1970년 나세르의 사망 후 권좌에 오른 안와르 사다트 정권은 나세르주의자 또는 급진적 좌파에 대한 반대세력으로 무슬림 형제단을 이용하고, 지위를 높여주었다. 무슬림 형제단은 사다트 정권의 경제적 자유화 정책에 완전히 동의했다. 사다트는 나세르의 유산(국유화)을 모두 해체했다. 이는 무슬림 형제단 내에 신흥 부르주아의 힘을 키웠다. 

무슬림 형제단은 보수적인 종교 정치운동을 하였다. 주요 관심은 여전히 이집트의 정치적 문화적 기구를 이슬람주의화하는 것이었다. 또 입법의 기본으로서 샤리아(sharia)를 촉진하는 것이었다. 

사다트는 민족주의자 반대파를 억압하고 그의 권력을 이념적으로 합법화하려고 종교 카드를 사용했다. 1979년 이란혁명이 일어난 후 6주도 채 안 돼서 이스라엘과 평화협약을 맺었다. 또 무슬림 형제단의 이탈을 막기 위해, 이집트에 상당수의 기독교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1980년 이집트 헌법을 바꾸어 모든 법의 근본은 샤리아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이러한 개헌은 평화협약을 위해 무슬림 형제단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 부족했다. 이로써 사다트와 무슬림 형제단의 협조는 막을 내렸고, 사다트는 무슬림 형제단에 대한 탄압을 시작하는가 하면 지도부를 구속하기 시작했다.

무바라크 집권 후 이들은 곧 석방됐다. 무바라크는 초기 사다트의 열정적인 스타일과 달리 무슬림 형제단에 대해 견제하면서 온건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무바라크 또한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 무슬림 형제단과 협력을 할 수밖에 없었다. 

무바라크 정권은 무슬림 형제단이 교육기관, 사법제, TV 미디어를 운영하게 했다. 이를 이용해 무슬림 형제단은 학교에서 소녀들에게 처음으로 베일을 씌웠고 이슬람법을 사회에 소개했다. 미디어를 통해 이들은 공공 여론에 영향력을 가지게 됐다. 

무슬림 형제단은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재정 지원을 받는다. 이는 미국으로부터 지원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다. 또 이들은 교사, 의사, 변호사 등 전문가 집단에 대한 영향력이 크다. 동시에 그들로부터 용병을 고용할 수 있는 재정 지원을 받고 있다. 이집트 카이로에만 절대적인 빈곤층이 5백만 명이다. 무슬림 형제단은 정치적 의식이 낮은 가난한 이들 중에서 용병을 조직한다. 

90년대까지 무바라크 체제의 탄압을 받으면서 무슬림 형제단은 새로운 활동 방식으로 전환을 시도하고 이미지를 바꾸기 시작했다. 폭력적인 과거를 청산하고 지역 사회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 이들은 지역의 병원, 은행 등을 운영하고 구제활동 등을 펼쳤다. 이러한 활동의 영향으로 무슬림 형제단은 2005년 총선에서 88석의 의석을 확보, 전체 의석의 20%를 차지했다.

미국과의 관계를 보면 무바라크 집권 기간 동안 부시 행정부는 무슬림 형제단과 관계를 맺으려 노력했다. 그러나 무바라크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이를 시도하지 못했다고 미국 관리가 밝힌 바 있다. 그 후 미국과 무슬림 사이에는 공식적인 접촉이 거의 없었다. 오바마 행정부도 이들과 관계를 맺으려는 의지를 표명했었다. 무슬림 형제단은 이집트군과의 어떤 협상에든 자신들의 참여가 보장돼야 한다는 신호를 보냈다.

무슬림 형제단의 성격 

무슬림 형제단은 정치적으로 중도파인 것처럼 행동하지만 종교 이데올로기 뿐 아니라 사회적 배경에 있어 보수적이다. 이들은 공개적으로 2007~2008년 파업 당시 정부와 함께 노동자들의 파업에 반대했고, 노동자들이 시장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이들은 토지개혁에 반대한다.

일부 학자들은 무슬림 형제단이 근본주의적 뿌리를 가지고 있지만 변화 가능성이 있고 이집트를 더 좋게 만들려는 것 뿐이며, 이들은 이집트를 완전히 전통적인 이슬람 법체제로 전환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무슬림 형제단은 이집트의 법이 이슬람 법과 일치하길 바란다. 2007년 이들은 정치프로그램 안을 발표했었는데, 이 안에 몇 가지 문제가 되는 내용들이 포함돼 있었다. 이슬람 학자들로 이뤄진 비선출위원회가 이집트 정부를 감독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코란에 위배되는 국가의 법을 감시하고 이슬람 법에 정치적 통치가 합치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뿐 아니라 많은 무슬림 형제단 관리들은 여성의 역할과 비무슬림 소수자의 처리에 대해 논쟁적인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향후 이집트 정국과 이집트 혁명의 주역들 

무슬림 형제단의 지도부는 영리하다. 이들은 항복하지 않았다. 하지만 체제의 협상 원칙을 받아들였다. 시위 대중이 무바라크가 과도정부 수반으로 지명한 오마르 술레이만에 대해 반대 의사를 표하고 있을 때 무슬림 형제단은 술레이만의 협상 제안에 동의했다. 

또 무바라크가 결국 물러났을 때 이들은 비상계엄 해제와 투옥된 사람들의 석방을 요구하면서 군부를 칭찬했다. 이들은 합법 정당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현재 과도정부의 여러 정치일정 결정 과정에 무슬림 형제단 대표가 참가하고 있다. 반면 혁명의 주역인 청년층과 좌파세력은 소외되고 있다. 무슬림 형제단은 지금 19일 개헌에 동의하면서 이집트 시위 시작 때부터 미국이 주장해왔던 "질서 있는 권력 이양"에 기여하고 있다.

청년층과 좌파세력이 과도정부에 요구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국회의 즉각적인 해산과 비상령 해제, 자유로운 시위의 허용이다. 또 새로운 헌법을 만들기 위한 과정을 시작하는 것이다. 즉각적이고 빠른 선거가 아니라 긴 시간의 자유를 허용하라는 것이다. 만일 즉각적으로 선거가 진행되면 많은 면에서 무슬림 형제단이 유리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조직돼 있기 때문이다. 또 미디어를 가지고 있다. 반면 좌파와 청년층은 그 후에나 스스로를 조직할 수 있을 것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청년층과 좌파세력은 행동 능력을 가진 대다수 세력이다. 그러나 '나쁜 시나리오'도 예상하는 것이 가능하다. 우파와 무슬림 형제단이 청년층을 분열시키려 노력하는 것이고, 무슬림 형제단이 이들을 공격할 가능성이다. 이에 대한 루머도 나온다. 시위 기간 중 1만7천명의 수감자가 감옥에서 도망쳤는데, 탈옥 후 이들에게 친-무슬림 형제단의 무기와 자금, 뱃지가 주어졌으며 감옥에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보장을 받았다는 것이다. 

2009년 버락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한 후 카이로에서 그는 중동지역 민주화를 지지하는 연설을 했었다. 이는 이집트 야당 세력에게 힘을 주었다. 엘바라데이가 주축이 돼 2010년 2월 자유주의 성격의 정치연합 '변화를 위한 연합(the National Association for Change)'이 결성됐다. 무슬림 형제단은 일정 기간 주저한 끝에 이 연합에 가입했다. 

몇 개월 후 형제단은 자유주의자들이 총선을 보이콧해야 한다는 요구를 거절했다. 형제단은 첫 총선에 참가해 의회에서 많은 의석을 얻길 바랐다. 그러나 집권당의 부정선거로 인해 형제단도 결국 결선을 보이콧하게 됐다.

이처럼 무슬림 형제단의 성향은 개혁주의 성향의 자유주의자들조차 좇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같은 정치 행보는 19일 국민투표를 통한 개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19일 투표에 부쳐지는 개헌안에 반대표를 던질 것이라며 새 헌법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우리가 이미 실패로 끝난 헌법을 되돌리기로 결정한다면 이는 우리가 성취한 혁명을 모욕하는 것"이라면서 새 헌법, 새 대통령선거와 의회선거를 요구했다.

향후 정국에서 무슬림 형제단과 현 집권세력의 결합이 공고해지며 무슬림 형제단은 정당을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넓혀나갈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면서 이집트 혁명 기간 드러났던 다른 정치세력과의 갈등은 더 커질 것이다. 서방의 관심사이기도 한, 이들이 집권세력과 샤리아법을 둘러싸고 갈등을 일으킬지 아니면 집권세력과 협조해 샤리아법을 수용할 것인지는 이집트 혁명의 주역들과 힘의 관계 속에서 찾아질 것이다.

*참조한 해외언론 
http://newsclick.in/node/2012
http://motherjones.com/politics/2011/02/what-is-the-muslim-brotherhood?page=1
http://axisoflogic.com/artman/publish/Article_62279.shtml
http://www.indypendent.org/2011/03/08/the-muslim-brothers-in-egypt%E2%80%99s-orderly-transition/

꿈틀거림...

1964년 겨울. 서울의 밤이 되면 거리에 나타나는, 얼어붙은 거리를 휩쓸며 차가운 바람이 펄럭거리게 하는 포장마차를 들치고 안에 들어가 술을 따르며 우연히 만난 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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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 꿈틀거리는 것을 사랑하십니까?” 하고 안(安)이 내게 물었다. 
“사랑하구말구요” 나는 갑자기 의기양양해져서 대답했다.

추억이란 그것이 슬픈 것이든지 기쁜 것이든지 그것을 생각하는 사람을 의기양양하게 한다. 슬픈 추억일 때는 고즈너기 의기양양해지고 기쁜 추억일 때는 소란스럽게 의기양양해진다.

“사관학교 시험에서 미역국을 먹고 나서도 얼마 동안, 나는 나처럼 대학 입학 시험에 실패한 친구 하나와 미아리에서 하숙하고 있었습니다. 서울엔 그때가 처음이었죠. 그 무렵 재미를 붙인게 아침의 만원된 버스칸이었습니다. 함께 있는 친구와 나는 하숙집의 아침 밥상을 밀어 놓기가 바쁘게 미아리 고개 위에 있는 버스정류장으로 달려 갑니다. 개처럼 숨을 헐떡거리면서 말입니다. 그 친구와 나는 출근 시간의 만원 버스 속을 쓰리꾼처럼 안으로 비집고 들어갑니다. 그리고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젊은 여자 앞에 섭니다. 나는 한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나서, 달려오느라 좀 멍해진 머리를 올리고 있는 손에 기댑니다. 그리고 내 앞에 앉아 있는 여자의 아랫배 쪽으로 천천히 시선을 보냅니다. 그러면 처음엔 얼른 눈에 뜨이지 않지만 시간이 조금 가고 내 시선이 투명해지면 서부터는 나는 그 여자의 아랫배가 조용히 오르내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나는 그 아침의 만원 버스칸 속에서 보는 젊은 여자 아랫배의 조용한 움직임을 보고 있으면 왜 그렇게 마음이 편해지고 맑아지는지 모르겠읍니다. 나는 그 움직임을 지독하게 사랑합니다.”

“안형은 어떤 꿈틀거림을 사랑합니까?” 
“어떤 꿈틀거림이 아닙니다. 그냥 꿈틀거리는 거죠. 그냥 말입니다. 예를 들면…. 데모도…”

우리의 대화는 또 끊어 졌다. 이번엔 침묵이 오래 계속되었다.
       .
       .
       .
“오늘 낮에 제 아내가 죽었습니다.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하고 있었는데… 급성 뇌막염이라고 의사가 그랬습니다. 아내는 옛날에 급성 맹장염 수술을 받은 적도 있고, 급성 폐렴을 앓은 적도 있다고 했습니다만 모두 괜찮았었는데 이번의 급성엔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 아내와 재작년에 결혼했습니다. 우연히 알게 됐습니다. 친정이 대구근처에 있다는 얘기만 했지 한 번도 친정과는 내왕이 없었습니다. 난 처가집이 어딘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할 수 없었어요.”

“뭘 할 수 없었다는 말입니까?”

“아내의 시체를 병원에 팔았습니다. 할 수 없었습니다. 돈 사천원을 주더군요. 난 두 분을 만나기 얼마전까지도 세브란스 병원 울타리 곁에 있었습니다…. 기분 나쁜 얘길 해서 미안합니다. 다만 누구에게라도 얘기를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습니다. 한 가지만 의논해 보고 싶은데, 이 돈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저는 오늘 저녁에 다 써버리고 싶은데요.”

“쓰십시요” 안이 얼른 대답했다. 
“이 돈이 다 없어질 때까지 함께 있어 주시겠어요?... 함께 있어 주십시오.” 
우리는 승낙했다.

- 『서울∙1964년 겨울』, 김승옥, 1965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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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부 서적 외판원...
그 밤의 몸부림은 삶에의 충동이 아니라 그 끈을 놓으려는 꿈틀거림이었던가?

| 2009-02-10 22:04:26

『역사속의 매춘부들』 Whores in History by Nickie Roberts

사회적 필요악으로서의 매춘.
성에 대한 혐오감과 금욕의 주창자들인 기독교의 교부들...

* 성 아우구스티누스 : "매춘을 억압하면 변덕스러운 욕정이 사회를 전복할 것이다"
* 성 토마스 아퀴나스 : "도시에서 매춘은 왕궁의 시궁창과 같다. 시궁창을 없애버리면 궁에는 더럽고 역겨운 냄새가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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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교부들은, 이렇듯 욕정에 찬 남자들이 내 아내와 딸을 둘러싸고 있는 비극을 해결하기 위한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결론으로 사회적 필요악으로 규정한 것이다.  "성(性)"이 신의 수준으로 격상되는 것을 가로막는 성적 배설물을 흡수하기 위해 존재하는 시궁창과 같은 존재로 매춘부를 자리매김한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역사적인 직업에 대해 기독교 교회법에서는 종교적, 도덕적 매도 대신에 보다 현실적이고 도전적인 정책을 취하게 된다. 바로 성(性) 산업/노동으로 부터 비롯되는 "이윤"의 문제이다. 자본주의적인 (직업)윤리가 적용되어야 한다라는 것이다.

13세기 Thomas de Chobham은,
"매춘부는 노동자로 분류되어야 한다. 자기 몸을 임대하는 형태로 노동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다른 직업 종사자나 노동자와 동일하다. 이는 합법적인 직업이고 창녀가 세속적인 기준으로 정당한 화대를 받으면 문제될게 없다. 만일 그들이 회개한다면 자선의 목적으로 매춘에서 계속 이윤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쾌락을 위해 윤락을 하고 즐거움을 얻기 위해 몸을 파는 것이라면 그것은 노동이 아니므로 그 댓가로 임금을 받는일은 그 행위 만큼이나 수치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성병에 걸린 교황 식스투스 4세가 1471년 도입한 매춘부의 면허와 직접과세에 의한 세금이 로마의 성베드로 성당 건립에 필요한 재원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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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고뇌하는 그들에게는,
삶 자체가 하나의 엄청난 오류이다.

| 2006-03-29 22:51

Thursday, July 04, 2013

라이프니츠라는 어느 한 '미치광이'에 대한 발견??


[Scrap] 움베르토 에코, [문학의 광인들], 『미네르바 성냥갑』

한 달쯤 전에 나는 어느 유명한 수학자와 이야기하게 되었는데,
그는 놀란 표정으로 라이프니츠가 미치광이었다는 사실을 나에게 폭로하였다.
"세상에, 내가 발견했는데 말이야,
 수학과 논리학에 대해 정말로 천재적인 글을 쓴 이 사람이
 정신착란과도 같은 상상력으로 단자(單子)와 예정조화에 대한
 작은 저술들도 했더군!"

Transferred from NAVER Blog | 2007.07.15 22:34


Our electrically-configured whirl.. Surfing...

[The Medium is the Massage] by Marshall McLuhan, 1967 
Anyway...this is strongly reminiscent of G. Deleuze's words..

"All the new sports-surfing, windsurfing, 
hang-gliding-take the form of entering into an existing wave. 
There's no longer an origin as starting point, 
but a sort of putting-into-orbit. 
The key thing is how to get taken up in the motion of a big wave, 
a column of rising air, to "get into something" i
nstead of being the origin of an effort" 
- G. Deleze,

"이미 존재하는 파동 위로 개입 하는 것. 
출발점으로서의 기원이 있는 것이 아니라, 
궤도 진입방식이 있을 뿐이다. 
거대한 파도나 상승기류의 운동 속에 어떻게 스스로를 밀어 넣는가,
 힘쓰기의 기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이에 들어가는가' 하는 것이 중요.." 
- 들뢰즈(G. Deleuze)

죽음은 정해진 운명이 아니라 만남, 마주침이다


 Death is a rendez-vous, not an objective destiny…. 
At the same time, Death is an innocent player in the game.
This is what gives the story its secret irony,
whose resolution appears as a stroke of wit,
and provides us with such sublime pleasure -
and distinguishes it from a moral fable or a vulgar tale about the death instinct.

죽음은 정해진 운명이 아니라 만남, 마주침이다.
랑데뷰(rendez vous).. 회합, 약속된 만남… 
혹은 조우(遭遇)

- 쟝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의 『유혹(Seduction)』 중

Monday, July 01, 2013

2013/07/01 Twitter 프로필 변경

[Before]
“내가 신(神)을 어떻게 하지 못한다면 아케론(Acheron) 강 이라도 옮겨 놓으리...
Flectere si nequeo Superos, Acheron movebo…”
라는 비문(碑文)의 일절(一節)이 주는 긴 여운을 어찌 잊을 것인가 !!

[After]
"A schizophrenic out for a walk is a better model than a neurotic laying on the analyst’s couch...
A breath of fresh air, a relationship with the outside world"

사실 변경 후의 문장은 예전에 프로필로 쓰던, 내가 좋아하는 들뢰즈의 글귀 중의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