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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December 28, 2017

『선악의 저편, 도덕의 계보(Beyond Good and Evil, Genealogy of Moral)』

『선악의 저편, 도덕의 계보(Beyond Good and Evil, Genealogy of Moral)』. 이런 재미없는 책을,, 크리스마스 오후에, 젊은 연인들이 키스하며 데이트 하고 있는 카페에 앉아,, 할일 없이 뒤적이고 있다.


창조자 자신이 십자가에 스스로 못 박고,, 굴욕을 느끼게 하는 또 다른 “도덕”이란 무엇인가?

도덕적으로 판단하고 판결을 내린다는 것은 정신적으로 편협한 사람들이 덜 편협한 사람들에게 즐겨 쓰는 복수이고, 또한 그들이 자연에서 재능을 받지 못한 데 대한 일종의 손해배상...

“신을 위해 인간을 사랑한다” 라는 기묘한 발명품. 종교적 신경증.

바다 한가운데서 갈증이 나서 죽는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그런데 그대들은 자신의 진리가 한 번도 갈증을 해소 시킬 수 없을 정도로,, 그것을,, 꼭 소금에 절여야만 하는가?

플라톤의 말은 플라톤 자신의 말로 반박가능하다.

처음에는 두 개의 피부 사이에 펼쳐진 것처럼 얇았던 내면세계(영혼이라고 불리는 것) 전체가 인간 밖으로 발산하는 것이 저지됨에 따라 안으로 더 분화되고 팽창되어 깊이와 높이를 얻게 되었다.

그 결과, 인류가 오늘날까지 치유하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크고도 무시무시한 병, 즉 인간의 인간에 대한, 자기 자신에 대한 고통이라는 병-‘양심의 가책’ 이라는 심각한 병을 가지게 되었다.

‘양심의 가책’으로 부터 ‘신에 대한 죄책감’으로 연결시키는 사막의 종교, 그리스도교의 천재성; ‘신 스스로가 인간의 죄 때문에 자기를 희생한다. 신 스스로가 자신을 자기 자신에게 지불한다. 채권자가 채무자에 대한 사랑으로 자신을 희생한다’. 그럼으로써 내면에서 더욱 강화되는 부채의식.

반면, 그리스인들은 ‘양심의 가책’을 자신에게서 떼어놓고 그들의 영혼의 자유를 즐길 수 있게 오랫동안 자신의 신들을 이용했다; “아마도 신이 그를 우롱했음이 틀림없어...”라는 위안처럼,, 신을 악의 원인으로,,, 나쁜 일로 부터 인간을 변호하는데 신을 이용하였다.

“원전”이 다양한 해석들 속으로 완전히 사라질때 까지,,,

Wednesday, December 27, 2017

[Thus Spoke Zarathustra], 짜라투스트라

[Thus Spoke Zarathustra], 짜라투스트라,, 책이 오래되어 누렇게 변색된걸 넘어 황갈색으로 변했다.


고독이 끝나는 곳에서 시장의 소음이 시작된다. 그리고 시장의 시끌벅쩍함이 끝나면 다시 고독으로,,,

순수한 사상가 들은 아무것도 쓰지 않는(않았)다. "말씀"만이 있었다. 짜라투스트라,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

“짜라투스트라, 너는 여자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했지, 하지만 우리들에게 여자에 ‘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어.  나에게 여자에 관해 말해봐..” 라고 어느 여인이 추궁하니,, 짜라투스트라는 여자에게 상처받은 이야기만 늘어 놓더라.

이건, 니체 Nietzsche 가 그 보다 우월한 여성인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Lou Andreas-Salomé)” 로 부터 받은 상처/열등감의 결과 때문이라고 본다. 찌질한 인간.

짜라투스트라가 교차로=십자가에 도착하여, “이제 부터는 나 혼자 하겠노라” 하며, “다시 한번 이야기 하노니, 부디 나를 잊고 너희 자신을 찾아라. 너희 모두가 나를 부정/부인 할 때서야 그때 내가 다시 돌아 오겠노라” 하였다.


니체가 반기독교적 사상가로 이야기 되는데,, 내가 보기엔 겉보기만 그런.. 교회와 호교론에 비판을 가한 것은 맞지만, 기독교 자체를 뿌리채 부정한건 아니다. [Thus Spoke Zarathustra] 도 제목이나 표현 방식이 그래서 그랬지, 내게는 모두 예수의 이야기로 읽힌다.

짜라투스트라의 다음과 같은 말;  “Better to be angry than make ashamed! And when you are cursed, I do not like it that you then want to bless. Rather curse back a little!” 은,,, “이 독사의 자식들아” 라고 일갈하던, 예수의 목소리가 들린다.

Of the Adder’s Bite 라는 장에서 자신을 문 독사에게 웃으며 한 말, “용이 독사의 독에 물려 죽은적이 있더냐? 너의 독을 다시 가져 가거라. 너는 그것을 내게 줄 만큼 부자가 아니지 않느냐”

제자들이 묻길, 이 이야기의 교훈/도덕은 무엇입니까?  “나는 도덕의 파괴자이다. 적에게서 선함을 구하지 마라. 수치를 당하느니 차라리 화를 내거라. 너에게 저주를 퍼부으면 그를 가여이 여겨 축복을 주지말고, 그 저주를 되돌려 주거라”

냉혹한 정의 보다는 복수가 더 인간적이다... “I do not like your cold justice,, A little revenge is more human than no revenge at all.. Shared injustice is half justice” ; 공유되지 못하는 정의라면 악덕만 못하느니,, 그런데 그 “정의”란 무엇인가?

“Of Voluntary Death”; Zarathustra 曰, 그는 너무 일찍 죽었다. 하지만 그의 목적과 상속자들에게 가장 적합하고 유리한 시점에.. 마치 해질녁에 타오르는 석양처럼 그 정신과 덕은 여전히 빛나야 한다. 그의 죽음 속에서,, 죽음 안에서의 자유.. 예수를 추모 하다.

대다수의 성직자들은 스스로 너무 고통을 받은 지라, 다른 사람들도 그 만큼 고통 받기를 원한다, 고통 받게 한다.. 그들은 십자가에 사람을 못 박는 것 이외에는 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모른다.

“He jump over his own shadow”; 뛰어 봤자 그림자 위다. 넌 그림자를 벗어나 못한다...

지구의 질병으로서의 인간; “The earth has a skin and this skin has diseases, One of these diseases, for example, is called ‘Man’” 라고 짜라투스트라가 말씀하셨다. 많이 들었던 이야기..

우리는 잡다한 허수아비들을 구름위에 올려 놓고 그것을 신, 또는 초인이라 부른다,, 라고 짜라투스트라가 이야기 하자, 그의 제자/사도들이 화를 내며 뒤돌아 앉아 침묵 속으로 잦아들었다.

Every honest man’s step speak out: but the cat steals along over the ground. Behold, the moon comes along catlike and without honesty. You of pure knowledge.

Friday, December 22, 2017

[잡다한 것을 주워담다] 도시이야기, 주거문화, 고시원의 미래...



도시이야기,,, [The Right to the City : A Verso Report]
https://twitter.com/nomadic_crow/status/936139401175773184


[시론] 왜 고시원은 타워팰리스보다 비싼가?
https://twitter.com/ObserverofCity/status/943756618625413120


UN이 제시한 기준으로 본다면 고시원 거주자도 홈리스, 즉 노숙자의 개념에 들어간다
https://twitter.com/PasteCat/status/932284409905999873

Wednesday, December 13, 2017

[Scrap] 『믿음에 대하여 On Belief』, 슬라보예 지젝 Slavoj Zizek

다시, 『믿음에 대하여 On Belief』,  슬라보예 지젝 Slavoj Zizek

철학의 신화(종교)에 대한 지속적인 투쟁; 신화는 Logos 의 실체이며 제거되지도 않고 그 안에 완전히 자리잡지도 못하는 외래 침입자…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계몽의 변증법』에서 밝혔듯이 계몽(이성) 자체가 신화,,

자신의 의지와는 반해서 그를 사로잡은 기생적인 외부침입자에 의해 식민화된 존재로서의 주체에 의해 경험된다.

자본주의 자체의 본유의 환상으로서 자본주의의 유토피아로서 “공산주의”?

악의 평범성/진부함; 한나 아렌트가 강조 하였듯이 아우슈비츠의 인내하기 어려운 공포는, 가해자들이 밀턴의 사탄 처럼 “악이 나의 선이 될지어다”라고 말한 바이런적인 인물들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있다. 놀랄만한 진짜 이유는 자행된 공포와 가해자들의 ‘인간적인, 너무나도 인간적인’ 특성간의 극복할 수 없는 간극에 있다” → 한국의 광주에서 시민을 학살하는데 참여한 그 많은 참여자들(군인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리라…

나도 누군가에게는 악인이다.

더 이상의 희망이 없을 때는 추종해야할 원칙들만이 남는다.

서구 철학의 시발점에 대해 하이데거는 소크라테스를 가장 순수한 사상가로 지칭하는데, 그것은 소크라테스가 아무것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도 붓다도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단지 말씀이 있었을 뿐이다…

믿는다는 것. 믿음(Belief)과 신앙(Faith)

-  믿음  : “사람은 x 의 존재를 믿지 않고도 x를 믿을 수 있다. 또는 사람은 x의 존재를 믿고도 x를 믿지 않을 수 있다”

- 신앙 : 약정이나 맹약. 신과의 언약, 계약

오늘날 지배 이데올로기가 새로운 자유를 위한 기회로써 복지국가의 철수에 의해 야기된 불안정을 제공하면서,,,  “우리는 장기적인 고용의 안정 대신에 단기 계약에 의존하여 매번 직업을 바꾸어야 한다. 왜 그것을 고정된 직업의 제약(속박)으로 부터 자유롭게 된 것으로, 계속해서 스스로를 재 창조하고 숨겨진 잠재력을 계발하며 실현할 기회로 보지 않는가?” 라고 꾸짖고 있다.

Monday, December 11, 2017

현실로의 도피,,,


[꿈으로 부터 현실로의 도피],  “현실은 꿈을 지탱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것’ 이라는 말에 잠시 멈춰 섰다. 뭔가 역설적인 이야기. 그 꿈이라는게, “성공의 목표” 뭐 그런게 아니라 Freud적 의미의 꿈이며, 현실이라는 것도 환상의 구성물이라고,,, 혼란하고 불투명한 현실에 일관성을 부여해주는 것이 “환상”이며,, 결국 “현실”이라는건 환상 구성물일 뿐이라는...

“현실=꿈으로 부터의 도피=환상의 구성물”의 등가식...

-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 The Sublime Object of Ideology』,  Slavoj Zizek

다시, 가라타니고진(柄谷行人) 을 읽고...

가라타니 고진 柄谷行人의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 『일본근대문학의 기원』, 『윤리21』를 다시 한번 일독 하면서 몇 가지 책에서 발췌하여 간단하게 메모를 남겨 본다.  


I. 쓰기와 읽기에 대하여,,,


예술가(작가)와 타자(독자); “이 두사람의 내부에 각각 무슨 일이 일어 났는가 그것을 엄밀하게 비교하기 위한 방법 따위는 절대로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뿐만 아닙니다. 만약 어느 한쪽의 내부에서 일어난 일이 다른 쪽에게 직접 전달된다고 한다면, 예술 전체가 붕괴될 것이고 예술이 지닌 힘 전체가 소멸될 것입니다”  - Paul Valery


작품을 둘러싸고 양쪽의 과정이 서로 분리되어 있고 불투과적이라는 점.


‘쓰는’ 일은 단지 사건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다. 문자가 등장하기 전 사회에서는 “사건”은 단지 기억만 되면 충분하였다. 그것은 그들이 기억력이 좋아서도 사건이 적어서도 아니고, 사건이 끊임없이 신화적 구도로 환원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쓰는 일은 사건을 기록하기 위하여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쓰는 일에 의해서 이 분열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 여기서 “분열”이란 무엇인가? 사건을 경험하는(기록하는) 자의 자가 구조적 분열?


‘언어는 저자의 의도를 배반하며 원래와 다른 것을 의미하고 만다’


말이 음성이든 문자든, 어떤 외재성으로서 타자를 향하고 있다.  따라서 그 “의미”는 타자에게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맹목성, 또는 외부성.  “의미”를 어떤 대상물이나 심상에서, 또는 그 어떤  개념이나 이데아(내적원인, 심층원인)로 부터 끌어 내려는 난감함.


읽는 다는 것; 단편으로서의 텍스트, 결코 투명한 의미체계로 환원되지 않는 텍스트를 발견(읽는) 것. 즉, 아직 사유되지 않은 것을 읽는 것…


II. 마르크스, 그 가능성..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 1985년 문고판 후기 ; “상품의 가치는 처음부터 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후적’으로 교환된 결과로서 주어진다. 사전에 내재하는 가치가 교환에 의해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바꾸어 말하면,,,”
여기서 두 가지 포인트를 생각하게 된다;


  1. 결과는 원인을 소급한다. 또는, 무수히 많은 원인들 중, 특정한 “원인”을 호출한다.
  2. 고전파 경제학의 “노동 가치설”에 대한 비판 ; 생산물이 교환되지 않아도 노동에 의해 만들어진 만큼의 “(내재된)가치”를 지닌다는 생각에 대한 비판


자본에게 중요한 것은 가치생산 곧 차이/차이화이지 생산의 내용(노동가치)이 아니다. 가치 생산적인가 아닌가는 무엇을 생산하는가가 아니라, “차이”를 생산할 수 있는가 없는가에 달려 있다.


마르크스의 독특함은 어떤 철학을 수립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를 보는 그의 태도에 있고, 또 그것을 일관되게 유지한데 있다. 『자본 Das Kapital』 이란 고전경제학 텍스트에 대한 마르크스의 독해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고전경제학 텍스트에 대한 비판적 독해방법이야 말로 마르크스의 사상이다.   『자본』 이외의 다른 곳에서  Marx의 사상을 찾는 것은 잘못이다.


노동력이 상품이다라는 명제의 난감함 ; 상품의 가치는 그 생산에 필요한 사회적 노동시간이고 노동력이라는 상품의 가치도 마찬가지지다. 그렇다면 노동력의 (재)생산에 필요한 사회적 노동시간은 어떻게 측정되어야 하는가? 다른 상품으로 표현되는, 즉 다른 상품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사회적 노동시간의 합? 또는 화폐형태로 표현? 그 화폐형태라는 실체는 무엇인가?


III. Ideology


“철학자들은 이제까지 세계를 다양하게 해석해온데 불과하며,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 마르크스가 끊임없이 비판했던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는 “해석”이다. 진리라고 믿는 의식체계, 이데올로기.


이데올로기Ideology : “허위의식”이 아니라, 내적인 의미, 규칙에서 출발하는 것, 자신의 생각, 믿음이 “진리”라는 믿음. “진리의식” → 이 부분은 지젝Zizek의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 The Sublime Object of Ideology』와 맞물려 다시 한번 살펴 봐야겠다.


IV. 내면 - 풍경 - 고백 -병


기독교의 고백이라는 제도;  문제는 무엇을 어떻게 고백할 것인지가 아니라,,, 감춰야할 무언가가 있어서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고백이라는 의무가 감춰야할 무언가를, 혹은 내면을 창조한다.


내면의 창조/발견 = 풍경의 발견 ;  내면 - 풍경 - 고백 -병의 순환고리...


왜 항상 패배자(피지배자) 만 고백하고 지배자는 고백하지 않는가? 그것은 고백이 왜곡된 또 하나의 권력의지 이기 때문이다. 고백은 결코 참회가 아니다. 고백은 나약해 보이는 몸짓 속에서 주체로서 존재할 것, 즉 지배할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구원을 위해서는 병을 필요로 한다;  니체가 말했듯이 “기독교는 병을 필요로 한다”.. 기독교가 파고 들어가는 지점은 무력감과 원한으로 가득찬 마음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주인임을 포기하고 신에게 완전히 복종Subject 함으로써 주체Subject를 획득하였다.


하나의 원인을 확정지으려는 사상이야 말로 신학, 형이상학적인 것이다. 가령, 인간과 미생물의 투쟁이라는 이미지는 철저히 신학적인 이미지이다. 그 이미지 속에서는 세균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산재되어 있는 "악"인 것이다.

뭔가 어떤 “원형”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듯한 관념, 미혹을 경계하라.


프로이트가 무의식이라 칭했던 것은 무언가 “심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의식의 원근법적 배치속에서 무의미하고 부조리 한것으로 배제 되어 있던 것의 강조이다. 역설적인 사실은,, Freud의 새로움은 “심층”의 거부에 있음에도, 그가 심층의 발견자로 간주된 것이다.



V. 바깥쪽에서 보기...


“의심”의 근원/장소… 데카르트는 그 자신의 의지가 아닌 “계시”로부터 찾고 있다. 그것은 소크라테스가 의심을 신탁에서 찾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의심의 장소는 역사적인 공간으로서가 아니라, 사상체계의 경계성, 차이성으로 존재하는 공간/장소이다. 사이, 경계, 바깥쪽에서 보기…


“바깥쪽”에서 본다 ;  바깥쪽이란 객관적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장소가 아니라, 객관성 자체가 지역적인 공동 주관성에 지나지 않음을 아는 장소.


어떤 면에서 이 외부성이라는 것은, 지젝Zizek이 지적한 “레닌의 외부성” 과도 닿아 있다.


VI. 자유와 책임의 문제


칸트Kant 가 이야기한, “자유로워지라”라는 지상명령.. 동시에 타자도 자유로운 주체로 취급라라는 지상명령 → 자유로운 “주체”는 윤리적 차원에서 타자에 대한 응답 response = 책임 responsibility 에서만 나타난다. 자유는 “자유로워지라”는 명령(의무)에만 존재 한다.


자유自由;  스스로 그러함, 스스로 말미암음. 자기원인. 그리고 타자(물자체 Thing Itself) 자유로써 인정


전후 일본의 무책임의 체계; 전후(일본패전) 최초의 수상이 ‘일억총참회’를 주장했는데, 그것은 전쟁의 책임을 일부 지도자(천황)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 전국민이 평등하게 짊어지고 ‘반성’하자는 것이었다.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최고 지도자의 책임을 전혀 묻지 않은 상태에서 국민 전체에게 책임을 전가해 버리는… 결국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는, 모두가 피해자가 되어 버리는,, 무책임의 체계..


‘무지’에 책임이 있는가? 나는 몰랐다 또는 시켜서 했다라는 핑계; 인식적 무지는 책임을 져야 한다


원인을 묻는 한 책임은 나오지 않는다.  원인에 대한 책임은 불가능하다.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책임은 (종교적) 속죄로써 대신 할 수 없다. 해서는 안된다


VII. 기타
사마천이 분노와 수치 때문에 세계의 기록을 완성하려고 했을까? 오히려 세계의 기록을 완성하려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분노나 치욕이 따라 다닌다. 그러한 이유는, 중국의 역사가는 잠재적 ‘성직자’ 계급으로 사후의 세계를 지배하는 권력이었다. 레비스트로스; “사회의 작동은 잠재적 에너지의 차이를 이용하는 것. 그 차이는 사회계급의 다양한 형태에 의해 실현되고 있다” 페르소나; 사회적 가면… 가면은 그냥 말 그대로의 거짓얼굴이 아니라 바로 그 사람 자체이다. 동화는 근본적으로는 어린아이가 부재하는 문학이었다. 어린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일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근본적으로 동화란 어린이의 문학이 아니라, 어른의 문학이다. 공격성/적대성은 비이성적인 것이 아니라 이성에서 유래한다. “뭐든 오십보백보인데, 난 오십보와 백보는 굉장히 다르다고 생각해. 굉장히는 아닐지 모르지만, 어쨌든 오십보 만큼은 다르지. 그리고 그 다름이라든지 차이라는게 나한테는 결국 절대라는 것으로 생각된다. 나는 선택할 뿐이다” 죽은자는 항상 산자의 ‘방편’으로 이용된다. 기독교의 창시자 바울(Paul) - 예수의 죽음을 재 해석한 사람 마르크스주의의 창시자 엥겔스(Engels) - 마르크스 최초의 독자이자 해석가 오리엔탈리즘; 서양의 <기대지평>, 그 입맛에 맞춰서 자신들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모든 사람이 가족을 ‘자연’으로(자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 ‘가족’ 이라는 것도 그 어떤 자의성 속에 노출되어 있다라는 것… “그것은 갑작스럽게 피어난 꽃이고, 따라서 씨를 남기지도 않았다” 역사란 단선적인, 확실한 혈통 으로서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닌,,, 다시 짜기가 가능한 것으로 보지 않으면 안된다. “이론으로서는 진부할 지언정, 실천으로서는 신선한 말",,, 우리 사회에도 많다. 한번도 실현된 적이 없이 ‘이론으로만 소비되고 소멸되어버린 것’에 대한 조사弔辭. 진실의 가면,, 진실 자체를 이용해서 타자를 속인다. 자연(풍경)에 민족성을 부여…

Monday, February 27, 2017

『신화의 세계 Transformations of Myth Through Time』


『신화의 세계 Transformations of Myth Through Time』 
by Joseph Campbell, 과학세대, 까치. 

1982년~1984년사이에 진행된 캠벨의 강연을 책으로 묶은 것.

"1930년대에 평균적인 나바호Navaho 가족은 한명의 아버지, 한명의 어머니, 한명의 자식, 
그리고 두명의 문화인류학자로 구성된다고 말해지곤 했다"

기독교에서의 부채와 변제, 부채의식이란 것...

기원전 4000년 무렵의 이집트 여신상

"우리는 신을 하나의 사실로서 받아 들인다. 신 관념은 하나의 상징이다.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 형상으로 여겨지는 것은 모두 상징이다. 세상만물은 상징으로 이루어져 있다. 괴테의 말을 빌리자면, '모든 변화하는 것들은 거울에 비친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거울 앞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 실체는 공空 이다. 공이라 부르는 까닭은, 어떤 사고로도 거기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상징은 본래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것을 가르킨다. 그것들은 투명해질 필요가 있으며, 열려있지 않으면 안된다."

시바Siva/Shiva의 도시. 바라나시(베나레스). 갠지즈 강.

"희생은 신들보다 강하다. 브라만(사제)는 희생을 통해서 신들을 조종한다"

희생제의.. 희생을 통한 신들의 구속; "브라만은 희생을 통해 신들을 조정한다" -Joseph Campbell vs.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 그리스도는 인간의 눈으로 볼 때 그의 아버지를 구속하기 위해 죽는다" -Slavoj Zizek

불교 예술의 최초 수 세기 동안에는 결코 부처 자신이 그려진 적은 없었다. 
부처는 이미 그 육체로 부터 해탈했기 때문이다.

(아래 사진에서의) 부처는 한 그루의 나무로 나타난다. 그
의 몸은 그곳에 있지만, 그의 존재는 이미 가라앉은 태양처럼 
자신의 육체를 떠나버렸다. 
그는 그곳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500년 뒤에 불상이 나타난다. 
그것은 최초의 불교와는 다른 불교가 출현했음을 의미한다.

현세에 있는 부처. 
지상에 앉아 있는 부처.

우리의 종교 전체가 우상숭배의 체계.

Enantiodromia. 서로 상반되는, 또는 반대편에 있는 것들간의 반발과 상호 의존성.

민중이 (神이라는 것에서) 찾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건강, 부, 자식이다. 
신의 이름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 따라서 그것이 하나뿐인 종교, 
세계 어디에서나 발견되는 민중종교이며, 
신의 이름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승려나 사제의 직무, 역사적으로 존재해온 사원/교회 과업은 그들의 신의 이름과 
그것을 결합시키는 것이다. 그러면 미친듯이 돈이 쏟아진다.

보리 깜부기; 강력한 환각제. 
"엘레우시스 제전은 (깜부기가 든) 보리음료를 마신 사람들의 황홀상태와 
신의 출현으로서 표현되는 극적인 행동을 제의적으로 조화시키는 과정..",,, 
한마디로 마약파티,,,

'우주적 의미'들은 절대로 그 자체로 순수한 상태에서 경험될 수 없고, 
(지역적, 종족적, 분파적 혹은 역사적 국면 등의) 한계를 통해서만, 
개인적 특이성을 통해서만 추상해낼 수 밖에 없다라는,,, 
조지프 캠벨의 이야기.

Sunday, February 19, 2017

A day,,, 2017/02/19

​느즈막히 일어나 점심을 먹고, 특별히 갈 곳도 할 일도 없어 도서관으로 향했다. 뭐 특별히 읽을 책이 있는건 아니고, 그냥 시간을 보내러,, 음,, '시간을 보낸다' 라는 표현, 시간을 죽인다, 시간을 소비한다 라는 표현보다는 훨씬 시적이지 않은가!

뭘 읽을까 하다, [황금가지]를 골라 뽑았다. [황금가지 The Golden Bough] by James George Frazer, 1994년 Oxford Univ.에서 발행한 축약본, 한겨레신문사

예전에 건성으로 읽었던거 같은데,,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 오늘도 그냥 책만 펴놓고 창문밖만 바라다 본다. 아까는 햇살이 밝았는데, 지금은 흐릿 우중충하다.

어린 아이가 도서관내의 미로에서 길을 잃었다. 함께 온 가족으로부터 잠시 떨어져 창문밖을 바라 보던 아이가 사라져 버린 가족을 찾아, "아빠~, 아빠~" 부르며 미로를 헤매이다,, 어린 누나를 만나자 기어이 안심의 울음을 터트렸다.

창밖에는 비가 나린다. 오늘이 우수(雨水)라고 하더니,, 눈이 비가 되어 내리고 얼음이 녹아서 물이 되는 절기라 하더니,, 봄비인가 보다.

저녁 여섯시넘어, 저녁을 챙겨 먹을까하고 한술 뜨는데 조카가 전화해서 같이 저녁 먹자고,, 동생들과 외식하는데 가족이니 함께 참석하라고ㅎ

둘째 조카가 막내 생일 겸해서 같이 저녁 먹자 해서,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저녁먹고 간단한 쇼핑 후 아홉시 못되어 헤어짐. 이제는 다 커서 월급 탔다고 저녁도 대접 받고ㅎㅎ,,,

큰조카가 저녁먹다 이야기했다. 학교에 가족사진, 아빠랑 찍은 사진 가져오라고 했는데,, 아빠하고 찍은 사진이 없어서 삼촌이랑 찍은 사진을 가져간 적이 있다고...

. . . . .

[황금가지 The Golden Bough] by James George Frazer,
1994년 Oxford Univ.에서 발행한 축약본, 한겨레신문사

"우리는 마치 밑에서 잠자던 지하의 힘이 깨어나면 언제라도 부서질 수 있는 얇은 껍질 위를 돌아다니는 것과도 같다. 때때로 땅 밑에서 들리는 공허한 울음소리나 갑자기 공중으로 치솟는 불길은 우리 발 밑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말해준다"

그러고 보면,, 로마교회/교단의 "교황"이라는 것도, 왕은 곧 신의 대리인(사제)라는 고대 전통의 화석화된 유물.

브라흐마, 비슈누, 시바 위대한 삼위일체의 신이 주문mantra에 복종한다. 신들이 마법사(사제)에게 복종한다. 전 우주는 신들에게 복종하고, 신들은 주문(mantra, 기도문)에 복종하며, 주문은 브라만 계급(사제)에 복종한다. 고로 사제가 우리의 신이다.

종교와 터부. 종교가 터부의 주제라는 사실, 희생제의. "터부는 문화를 둘러싼 울타리이자 지방색의 표지이며 소유물과 영토에 대한 규정"

기독교 테두리안에서 기독교의 금기, 터부를 이야기하다.

"인류학은 '과학'의 지위를 지향할 수 있겠으나, 좋든 싫든 그것은 불가피하게 문학의 한 갈래이다"

"사실의 문학"과 "사실감의 문학"에 대하여, [Appreciations], 1888, Walter Pater


논쟁의 가장 강력한 무기, "사탄의 음모/소행",,,
신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기독교도와 아티스교도 간의 논쟁.

Saturday, February 18, 2017

A day... 2017/02/18

고향집. 작은방 한켠에 있는 고추못자리에서 작고 연한 고추 새싹이 살포시 올라 오고 있다.
다가오는 새 봄 농사를 준비하는...

아침을 먹고 떠날 준비. 어머니는 자식들 챙겨주기 위해 이것 저것 바리 바리 싸느라 바쁘게 움직이신다. 반찬, 배추, 무, 떡, 유과, 고추튀각, 감자튀김 등등.. 마당을 나서는데 액맥이 부적까지 챙겨 주신다.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덕유산에 한번 들러보자 하는 요량으로 안성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기온은 조금 쌀쌀하지만, 햇살이 좋다.

안성탐방지원센터에서 칠연폭포 삼거리까지, 그늘진 음지라서 그런지, 
길이 온통 빙판길이다. 위험하다.

칠연폭포. 폭포라고 하기엔 좀 그런거 같고 용소. 온통 얼음계곡.

동엽령 오르는 길. 음달은 꽁꽁 얼어 붙은 빙판길이나, 
반면 양달에서는 겨울 햇살에 얼음이 녹아 진창길이 된 곳도 있다.

12시30분 동엽령을 600m 앞둔 지점에서 빙벽/빙판에 막혀 더 이상의 발걸음을 포기했다. 오늘은 산山이 나를 허許 하지 않는가 보다.

오늘은 산행 준비를 하고 온게 아니라 장비/아이젠도 없고,,, 
오르는 거야 기어서라도 오른다손 치더라도,내려오는 길이 솔차니 위험.

흔치않은 나무를 보았다. 두 그루의, 서로 다른 종種의 나무가 서로 엉켜서 한쌍을 이룬,,

안성탐방지원센터에서 나와 안성쪽으로 나가는데, 초입마을에서 허리굽은 할머니가 히치하이킹을 하신다. 차를 세워 목적지를 물으니 외손자가 감기들어 안성장에 약사러 간다고. 마침 나도 마트에서 막걸리나 사러 가는 길이니 타시라고 해서 안성면 소재지까지 같이 타고 왔다.

오는 도중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날씨 이야기, 사는 곳, 버스를 기다리다 추위에 떤 이야기, 겨울엔 마을회관에 모여 공동취식하는 이야기,,,

Friday, February 03, 2017

[Scrap] 한국민중구술 열전47. 별책 [스기야마 토미]


식민지 조선에서 "일본"인으로 태어나 자라고 초등교사로 살다 종전후 내지(일본)로 돌아간 사람의 이야기 - 한국민중구술 열전47. 별책 [스기야마 토미] pic.twitter.com/Tr7W4OVIhX posted at 17:08:10


'일본'이 아닌 '조선'이라고 하는 공간에서 태어난 일본인이라는 자각은 전혀 없었다... "조선인"과는 분리된 공간에서, 일본인만이 존재하는 "일본 땅"에서 산 것... pic.twitter.com/5VNbMJfZ4c posted at 17:15:29


만주 수학여행 중에 들른, 심양의 동선당(同善堂) 이라는,, 갓난 아기를 버리던 곳에 대한 이야기. pic.twitter.com/HCPZhu0zuU posted at 11:51:40


"전후, 제가(스기야마 토미) 한국에 갔을 때가 소화 오십일년(1976)입니다. 그때 달성국민학교의 재적생수가 초등학교인데도 불구하고 오천삼백 명이었습니다..." posted at 12:37:20

식민지 시대, 학교에서의 규율과 통제,, 치마의 주름수까지 규정. pic.twitter.com/KfRhrTDuVe posted at 12:45:30


제식훈련,,, pic.twitter.com/hytIneVTcl posted at 12:46:21


학생은 버스 통학 금지. 학교가 멀어도 걸어서 가야한다. pic.twitter.com/OhPMneVT6T posted at 12:49:28



Monday, January 09, 2017

[Scrap] Land of the Firebird - The Beauty of Old Russia by Suzanne Mass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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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y-made houses" sold at Moscow in the 16th & 17th centu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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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건시대의 농노와 자본주의 사회의 임금노동자 사이에 별반 차이를 못 느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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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대에 자연으로 돌아가자 라는 운동이 있었다는 사실이 좀 낯설?? 이런 경향이 1960년대 아메리카 북반부에서 히피로 발현되기도 했고,,,


Saturday, January 07, 2017

Trail : Almaden Quicksilver Park, San Jose, California

Jan 05, 2017

애는 출근, 아니, 학교 갔고,, 오늘도 특별히 할일 없는 백수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공원 산책길로 나선다. posted at 01:52:33

아직도 날이 흐리고 구름이 낮게 드리워져 빗방울을 하나둘 떨어뜨리고 있다 posted at 02:03:34

Almaden Quicksilver Park,, 예전엔 광산지대였나 보다. 얼떨결에 찾아온 곳인데, 옛날에 수은을 캐서 제련하던 곳이라고.. pic.twitter.com/4p3ttIqLzc  posted at 08:29:49


Quicksilver가 수은(Mercury)의 다른 말,, 사진이 Cinnabar, 용의 피(Dragon's blood)라는 광석. 여기와서 처음 알았다. pic.twitter.com/xzAELZdUof  posted at 08:33:07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에 약 5시간을 걸었네. 신발은 비에 젖어 축축하고... posted at 08:35:03

여기가 캘리포니아에서 처음 광산이 시작된 곳. Site of first mining in California,,, pic.twitter.com/QafRphnJs9 posted at 08:39:27


예정된 픽업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내려와,, 비내리는 주차장 개활지에서 차가 오길 기다리고 있다. posted at 08:41:19

1886년 Almaden Quicksilver 광산촌 English Camp 학교 학생들의 모습. 비스듬히 누운 아이, 나무위에 올라간 아이, 친구의 모자를 슬쩍(?) 누르고 있는 아이,,,ㅎㅎ pic.twitter.com/T4Ag9BHDlW posted at 12:22:34


"Mexican Camp Girl - A little girl named Amelia,, stood beside me & told me the Spanish words for rock, sky & picture..." pic.twitter.com/9oOCHkGeSd  posted at 13:3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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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06, 2017

오늘은 날이 화창하게 개었다. 조금 쌀쌀하긴 하지만... posted at 02:07:32

오후 1245. 오늘도 해정주(아마도 주해정)씨가 이름 석자 남기고 간 English Camp 옛터의 벤치에서 점심을 먹고 내려왔다. pic.twitter.com/poGePJGQi5 posted at 06:57:02


산에 이런 것들이 간혹 보여서 뭘까 했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 자전거 거치대. 뒤에 있는 건 말을 묶어 두는 곳... 人馬車公用 Trail 이다 보니,, pic.twitter.com/I3QaBD8whr posted at 06:58:15


말이나 노루 등 산짐승 목마를 때 마시라고 우물까지 챙겨 놓고,,, pic.twitter.com/2wwV7FPAZc posted at 06:59:39


나무 뿌리가,,, 언뜻 보기엔 크라켄처럼 보였다ㅎㅎ pic.twitter.com/1PfJOEMHM5 posted at 07:00:55


사고가 나서 방치된 것이었는지, 아니면 무슨 조형예술인지 모르겠지만,, 흠... pic.twitter.com/kdQ6n2wOk5 posted at 07:03:45


산책길에서,,, pic.twitter.com/rZTXKvxq6V posted at 07:09:29


산책길에,,, San Jose 시내 풍경 pic.twitter.com/XjIfWJ0iUY posted at 07:11:22


수은 광산이 흥하던 시절 Santa Isabel Shaft 가 있던 자리,, 옛 사진과 현재의 잔재 pic.twitter.com/iqW8dgutpK posted at 07:14:42





■ Almaden Quicksilver Park Trail Log (I) telegra.ph/Almaden-Quicks…

■ Almaden Quicksilver Park Trail Log (II). Spanish Town,,,  telegra.ph/Almaden-Quicks… 

■ Almaden Quicksilver Park Trail Log (III) telegra.ph/Almaden-Quic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