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의 세계 Transformations of Myth Through Time』
by Joseph Campbell, 과학세대, 까치.
1982년~1984년사이에 진행된 캠벨의 강연을 책으로 묶은 것.
"1930년대에 평균적인 나바호Navaho 가족은 한명의 아버지, 한명의 어머니, 한명의 자식,
그리고 두명의 문화인류학자로 구성된다고 말해지곤 했다"
기독교에서의 부채와 변제, 부채의식이란 것...
기원전 4000년 무렵의 이집트 여신상
"우리는 신을 하나의 사실로서 받아 들인다. 신 관념은 하나의 상징이다.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 형상으로 여겨지는 것은 모두 상징이다. 세상만물은 상징으로 이루어져 있다. 괴테의 말을 빌리자면, '모든 변화하는 것들은 거울에 비친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거울 앞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 실체는 공空 이다. 공이라 부르는 까닭은, 어떤 사고로도 거기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상징은 본래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것을 가르킨다. 그것들은 투명해질 필요가 있으며, 열려있지 않으면 안된다."
시바Siva/Shiva의 도시. 바라나시(베나레스). 갠지즈 강.
"희생은 신들보다 강하다. 브라만(사제)는 희생을 통해서 신들을 조종한다"
희생제의.. 희생을 통한 신들의 구속; "브라만은 희생을 통해 신들을 조정한다" -Joseph Campbell vs.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 그리스도는 인간의 눈으로 볼 때 그의 아버지를 구속하기 위해 죽는다" -Slavoj Zizek
불교 예술의 최초 수 세기 동안에는 결코 부처 자신이 그려진 적은 없었다.
부처는 이미 그 육체로 부터 해탈했기 때문이다.
(아래 사진에서의) 부처는 한 그루의 나무로 나타난다. 그
의 몸은 그곳에 있지만, 그의 존재는 이미 가라앉은 태양처럼
자신의 육체를 떠나버렸다.
그는 그곳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500년 뒤에 불상이 나타난다.
그것은 최초의 불교와는 다른 불교가 출현했음을 의미한다.
현세에 있는 부처.
지상에 앉아 있는 부처.
우리의 종교 전체가 우상숭배의 체계.
Enantiodromia. 서로 상반되는, 또는 반대편에 있는 것들간의 반발과 상호 의존성.
민중이 (神이라는 것에서) 찾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건강, 부, 자식이다.
신의 이름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 따라서 그것이 하나뿐인 종교,
세계 어디에서나 발견되는 민중종교이며,
신의 이름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승려나 사제의 직무, 역사적으로 존재해온 사원/교회 과업은 그들의 신의 이름과
그것을 결합시키는 것이다. 그러면 미친듯이 돈이 쏟아진다.
보리 깜부기; 강력한 환각제.
"엘레우시스 제전은 (깜부기가 든) 보리음료를 마신 사람들의 황홀상태와
신의 출현으로서 표현되는 극적인 행동을 제의적으로 조화시키는 과정..",,,
한마디로 마약파티,,,
'우주적 의미'들은 절대로 그 자체로 순수한 상태에서 경험될 수 없고,
(지역적, 종족적, 분파적 혹은 역사적 국면 등의) 한계를 통해서만,
개인적 특이성을 통해서만 추상해낼 수 밖에 없다라는,,,
조지프 캠벨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