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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December 22, 2012

[철학의 개혁에 관한 예비명제 Vorlaeufige Thesen zur Reform der Philosophie] #02

 
[철학의 개혁에 관한 예비명제 Vorlaeufige Thesen zur Reform der Philosophie] 
 - 1842, Ludwig Feuerbach, 이문출판사, 강대석 옮김, 1983년 - 


'절대정신'은 신학의 '사별死別한 정신'으로 헤겔철학에서 아직도 유령으로 배회하고 있다.

신학은 유령신앙이다. 속된 신학은 그들의 유령을 감각적인 상상력 속에, 사변신학은 비감각적인 추상 속에 갖고 있다.

추상화한다는 것은 자연의 본질을 자연 밖으로, 인간의 본질을 인간 밖으로, 사유의 본질을 사유활동 밖으로 밀어내는 것이다. 그 전체계가 이러한 추상활동 위에 기초된 헤겔철학은 인간을 자기로부터 소외시켰다. 그것은 물론 분리시킨 것을 다시 일치시키지만 스스로 다시 분리될 수 있는 간접적인 방법에서 일 뿐이다. 헤겔철학에는 직접적인 통일이나 직접적인 확신, 직접적인 진리가 결여되어 있다.

추사화로 외화外化된 인간의 본질이 인간 자신과 직접, 명약관화하게, 거짓없이, 일치되는 것은 헤겔철학을 긍정하는 방식으로가 아니라 헤겔철학 부정으로 자체에서 연역될 수 있으며 이러한 일치가 사변철학의 진리라 할지라도 그것의 총체적인 부정으로 파악될 때만 정당하게 파악되고 이해될 수 있다. 모든 것은 물론 헤겔철학 속에 숨겨져 있으나 동시에 항상 그 부정이나 반대와 연관된다.

절대적 정신이란 소위 유한하고 주관적인 정신이며 그러므로 전자가 후자에서 분리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된다는 명확한 증거는 예술이다. 예술은 현세의 삶이 참된 삶이고 유한한 것이 곧 무한한 것이라는 느낌에서 발생하며 일정한 실제적인 본질을 최고의 신성한 본질로 감동하는데서 비롯한다.

기독교적인 유일신론은 예술적이고 과학적인 도야의 원리를 내포하지 않는다. 다신론 즉 소위 말하는 물신숭배만이 예술과 과학의 원천이다. 희랍인이 조형예술의 완성에까지 다다른 것은 인간의 모습을 무조건, 별로 주저하지 않고 최고의 신성한 모습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기독교가 문학에 접한 것은 기독교 신학을 실천적으로 부정하고 여성적 본질을 신적 본질로 숭모하면서 부터이다. 기독교인들은 예술가와 시인들이 상상하고 의식의 대상으로 삼았던 종교의 본질과 모순 속에 빠졌다. 페트라르카는 종교적 이유때문에 그가 그의 연인 라후라를 신격화한 자기 시를 후회하였다. 왜 기독교인들은 이교도처럼 그들의 종교적인 상상에 적합한 예술 작품을 갖지 못하는가? 왜 완전히 그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예수상像이 없는가? 그것은 기독교의 종교예술이 의식과 진리 사이에 나타나는 파멸적인 모순 앞에 난파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종교의 본질은 실제로는 인간적인 것인데 기독교인의 의식속에는 인간적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이 들어 있다. 그리스도는 인간이고 동시에 인간이 아니어야 한다 ; 그는 하나의 이중성Amphibolie이다. 그러나 예술은 참되고 애매하지 않는 것만을 표현할 수 있다.

인간적인 것이 신적인 것이고 유한한 것이 무한한 것이라는 피와 살이 되어버린 확고한 의식은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힘이나 깊이나 정열에서 능가하는 새로운 예술과 문학의 근원이다. 내세에 대한 신앙은 절대로 비예술적인 신앙이다. 예술의 원천은 고통이다. 유한한 본질의 상실을 무한한 상실로 느끼는 자만이 시적 정열을 쏟을 수 있는 힘이 있다. 이미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추억의 고통스러운 자극만이 인간 속에 들어 있는 최초의 예술가이고 최초의 이상주의자이다. 그러나 내세에 대한 신앙은 모든 고통을 가상으로 참되지 않는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유한한 것을 무한한 것에서, 규정된 것을 규정되지 않는 것에서 도출하는 철학은 유한하고 일정한 것의 참된 이치를 파악하지 못한다. 유한한 것이 무한한 것에서 도출된다는 것은 다른말로 말하면 무한한 것, 규정되지 않는 것이 규정되고 부정된다는 뜻이다. 규정이 없는 즉 유한하지 않는 무한한 것은 무이고 그러므로 무한한 것의 실재성으로 유한한 것이 등장한다는 고백이다. 그러나 절대자라는 부정하는 괴물이 밑바닥에 숨어 있을 때, 등장한 유한성은 항상 다시 지양된다. 유한한 것은 무한한 것의 부정이고 무한한 것은 다시 유한한 것의 부정이다. 절대자의 철학은 하나의 모순이다.

신학에서 인간이 신의 진리이고 실재성인 것처럼 - 왜냐하면 신은 신으로서 실현시키고 신을 실제적인 존재로 만드는 전능, 지혜, 자비, 사랑, 유한한 것과의 구별을 전제로 하는 무한성, 인격성 등의 모든 빈사가 인간 속에서 그리고 인간과 더불어 비로소 나타나기 때문에 - 사변철학에서도 무한한 것의 진리는 유한한 것이다.

절대적인 철학에서는 유한한 것의 진리가 간접적이고 전도된 방식으로 표현된다. 무한한 것이 존재하고 그것이 규정될 때 즉 무한한 것으로서가 아니라 유한한 것으로서 나타날 때만 그것이 진리와 현실성을 얻는다면 유한한 것은 참으로 무한한 것이다.

참된 철학의 과제는 무한한 것을 유한한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고 유한한 것을 유한하지 않는 것, 무한한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유한한 것을 무한한 것 속에 함입시키는 것이 아니고 무한한 것을 유한한 것 속에 함입시키는 것이다.

철학의 출발은 신이나 절대자가 아니며 절대자나 이념의 술어로서 생각되는 존재도 아니다 - 철학의 출발은 유한한 것(각주 ; '유한하다'는 말을 나는 '절대적인' 철학의 의미로만 늘 사용한다. 여기서는 절대자의 입장에서 보면 실재적인 것, 현실적인 것이 비현실적인 것,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나타난다. 왜냐하면 비현실적인 것, 규정되지 않는 것이 실재적인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그러나 다른 한편 절대자가 무라는 입장에서 보면 이와 똑같이 유한한 것, 무가치한 것이 실재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모순은 특히 쉘링철학의 초기 저서에서 등장하고 헤겔철학의 기초를 이룬다), 규정된 것, 현실적인 것이다. 유한자 없이 무한자는 생각되어질 수 없다. 그대는 어떤 일정한 하나의 성질에 미루어 생각하지 않고 성질 자체를 생각하거나 규정할 수 있는가? 그러므로 먼저 오는 것은 규정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규정된 것이다. 왜냐하면 일정한(규정된) 성질이란 바로 실제적인 성질이고, 사유된 성질 이전에 이 실제적인 성질이 앞서기 때문이다.

철학의 주관적인 근원이나 발전은 또한 그 객관적인 근원이고 발전이다. 어떤 성질을 생각하기 이전에 인간은 그것을 느낀다. 사유에 앞서는 것은 느낌이다.

무한자는 유한자의 참된 본질이고 참된 유한자이다. 참된 사변이나 철학은 참된, 보편적인 경험에 불과하다.

종교와 철학의 무한자는 하나의 유한자 즉 규정된 것에 불과하나 다만 그것이 신비화 되었을 뿐이다. 즉 유한하고 규정된 것이 그와 다른 것이 되어야 된다는 요청이 나타난다. 사변철학은 신학과 마찬가지로 똑 같은 오류를 범했다. 즉 현실이나 유한자의 제 규정이 그들이 존재하고 그들 자체라고 할 수 있는 규정의 부정을 통해서 무한자의 규정, 술어로 변한다.

성실과 정직은 모든 것에 유용하다. 그것은 또한 철학에도 해당된다. 그러나 사변적인 무한성이란 유한성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할 때만 철학은 정직하고 성실하다. 그러므로 예를 들면 신속에 있는 자연의 비밀이란 인간적인 본성의 비밀에 불과하고 의식의 광명을 산출하기 위해서 신神속에 놓어둔 어두움이란 물질의 실재성과 불가결함에 대한 자신의 어둡고 충동적인 느낌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할 때만 철학은 정직하고 성실하다.

추상적인 것에서 구체적인 것으로 관념적인 것에서 실재적인 것으로 나아가는 지금까지의 사변철학의 진행은 전도轉倒된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는 참된 객관적인 실재성에 도달 할 수 없고 점점 더 스스로의 추상화를 실현하는데 불과하여 참된 정신의 자유에 이르지 못한다. 왜냐하면 사물이나 그 본질을 객관적인 현실성 속에서 직관할 때만 인간은 자유롭게 되고 모든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관념적인 것에서 실재적인 것으로 넘어가는 것은 실천철학에서만 가능하다.

철학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에 대한 인식이다. 사물과 본질을 있는 그대로 생각하고 인식하는 것 바로 그것이 철학의 최고의 법칙이고 최고의 과제이다.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그러므로 참된 것을 참되게 말하는 것은 피상적으로 보인다.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와 다르게 그러므로 참된 것을 참되지 않게 뒤바꾸어 말하는 것은 신중하게 보인다.

진실성, 소박성, 규정성이 실재적인 철학의 형식적인 핵심이다.

철학이 출발되는 존재는 의식과 의식은 존재와 구분될 수 없다. 지각의 실재성이 성질이고 반대로 지각이 성질의 실재성인 것처럼 존재도 의식의 실재성이고 또 반대로 의식은 존재의 실재성이다. 그러므로 의식이 비로소 참된 존재이다. 정신과 자연의 구체적인 통일은 의식뿐이다.

제규정, 제형식, 제범주 혹은 그 이름이야 어떻든 사변철학을 절대적인 것에서 떼어내어 유한한 것, 경험적인 것의 영역으로 밀어넣는 모든 것은 유한한 것의 참된 본질, 참된 무한성, 철학의 참된 마지막 신비를 내포하고 있다.

시간과 공간은 모든 본질의 존재형식이다. 시간과 공간속에 있는 존재만이 실존이다. 시간과 공간의 부정은 항상 그 제한성의 부정일 뿐이고, 그 본질의 부정은 아니다. 무시간적인 지각이나 무시간적인 의지, 무시간적인 사상이나 무시간적인 본질의 넌센스이다. 시간일반을 부정하는 사람은 의욕이나 사고로 나아가는 충동이나 시간을 갖지 못한다.

[철학의 개혁에 관한 예비명제 Vorlaeufige Thesen zur Reform der Philosophie] #01 
http://uquehan.blogspot.kr/2012/12/vorlaeufige-thesen-zur-reform-der.html


 [철학의 개혁에 관한 예비명제 Vorlaeufige Thesen zur Reform der Philosophie]  #03
http://uquehan.blogspot.kr/2012/12/vorlaeufige-thesen-zur-reform-der_696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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