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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July 13, 2010

오분간, 나희덕


이 꽃그늘 아래서
내 일생이 다 지나갈 것 같다.
기다리면서 서성거리면서
아니,
이미 다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아이를 기다리는 오분간
아카시아꽃 하얗게 흩날리는
이 그늘 아래서
어느새 나는
머리 희끗한 노파가 되고,
버스가 저 모퉁이를 돌아서
내 앞에 멈추면
여섯 살배기가 뛰어내려
안기는 게 아니라
훤칠한 청년 하나
내게로 걸어올 것만 같다.

내가 늙은 만큼 그는 자라서
서로의 삶을 맞바꾼 듯 마주보겠지.

기다림 하나라도 깜박 지나가 버릴 生.
내가 늘 기다렸던 이 자리에
그가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을 때쯤
너무 멀리 나가버린 그의 썰물을 향해
떨어지는 꽃잎.
또는 지나치는 버스를 향해
무어라 중얼거리면서 내 기다림을 완성하겠지.
중얼거리는 동안 꽃잎은 한 무더기 또 진다.

아, 저기 버스가 온다.
나는 훌쩍 날아 올라 꽃 그늘을 벗어난다.

2009년 정초 지리산 산자락에서 만난 시인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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