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지프 히스(Joseph Heath) & 앤드류 포터(Andrew Potter), 윤미경 옮김, 마티, 2006년
2006년 장시간의 비행시간에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인천공항 간이서점에서 구입한 책이다.
최근에 다시 한번 읽어 보니 또 재미있다.
400페이지가 넘는 조금은 두꺼운 책이지만 골치 아플 내용 없이 죽 읽어 나갈 수 있는 그런 책.
뭐라할까 일종의 좌파에 대한 비판서? 나와 같은 얼치기 쌀롱좌파에게는 그래도 유쾌한 책이다. 비판의 대상은 소위 자파라고 칭하는 반문화(Counter-culture) 주의자를 대상으로 하는데 뭐 굳이 거기에 한정하지 않고 통칭 좌파의 언저리에 있는 다양한 ~주의자, ~론에 대한 비판.. 그렇다고 답이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유쾌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60년대 미국 좌파정치를 지배한 반문화 운동, 반문화 정치에 대한 비판으로 서문을 시작한다. 잠깐 서문의 이야기를 짜집기 해 보면..
>> (60년대 이후 좌파정치를 지배한) 이런 유형의 반문화 정치는 혁명적인 독트린이 아니라 지난 40년 동안 소비 자본주의를 추진해온 주요 동력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한 반문화적 사고(히피, 문화훼방, 공정무역, 윤리마케팅, 윤리적소비 등등...의 운동)는 현재 자본주의의 진정한 정신이며 지금까지도 그러했다. 바디샵과 스타벅스가 이와 같은 사업모델로 이미 크게 성공을 거두었지 않나!
히피가 여피가 되었다. 중요한 점은 (소문과는 달리) 히피들이 배반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히피 이데올로기와 여피 이데올로기는 하나이며 동일하다. 60년대의 반란을 특징짓는 반문화 사상과 자본주의 체제의 이데올로기적 요건 사이에는 어떤 긴장도 없었다. 반문화의 가치들과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기능적 요건 사이에는 어떤 긴장도 없었다. 반문화는 애초부터 지극히 기업가적이었다. [애드버스터]가 그렇듯이 반문화는 자본주의의 가장 진정한 정신을 반영했다.
영화 [매트릭스]의 핵심적 개념 - 우리가 사는 세상이 정교하게 만들어 놓은 환영일지 모르며, 기계들이 우리의 뇌에 감각을 입력시켜 마치 우리가 실제로 존재하며 물리적 세계와 서로 교류한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 은 "당신이 꿈을 꾸고 있지 않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라는 르네 데카르트의 회의론적 사고 실험의 업데이트 버전으로 이야기 되는데 이는 잘못된 해석이다.
[매트릭스]는 존재론적 딜레마의 재현을 의도한 영화가 아니라 60년대에 근원을 둔 정치사상, 상황주의자 인터내셔날(Situationist International)의 비공식 지도자인 기 드보르와 그의 사도인 쟝 보드리야드의 작품에서 최고조로 표현된 사상에 대한 은유이다(네오가 흰 토끼를 보게 되는 장면에서 네오가 친구에게 건넨 책이 쟝 보드리야드의 "시뮬라크라와 시뮬레이션" 이다)
모피어스가 매트릭스를 설명하는 대목은 반문화 사상의 완벽한 요약본이다.
"매트릭스는 시스템이야, 네오. 시스템은 우리의 적이지. 시스템 내부에 있을 때 주위를 돌아보면 무엇이 보이지? 사업가, 교사, 변호사, 목수들이지. 우리가 구하려는 게 이 사람들의 정신이야. 하지만 그러기 까지 이 사람들은 여전히 시스템의 일부이고 그래서 우리의 적이지. 이 사람들 대부분이 접속을 끊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그리고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길들여져 있고 너무도 무력하게 시스템이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시스템을 보호하기 위해 싸울 걸세" <<
이러한 환영 혹은 사회전체의 백일몽 - 나비의 꿈(장주), 시뮬라크라(쟝 보드리야드), 스펙터클(기 드보르), 환영의 동굴(플라톤), 악령의 기만(데카르트), 또는 이데올로기(마르크스) 등으로 칭해지는... - 으로 부터 깨어나기 위해서는 "빨간약(계몽/의식화)"을 먹어야 한다. (아 계몽주의의 유령이여....) 이러한 속박에서 깨어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정치활동은 쓸모없고 -그건 매트릭스 안에서 정치 제도를 개혁하려 애쓰는 것과 같다 - '인식적 불협화음'을 만들어내고 체제에 대한 근원적이고 총체적 거부를 통해서만 해방될 수 있다.
하지만 저자들의 주장은 이렇다; 반문화 사상이 기대는 사회이론은 허위이다. 우리는 매트릭스에 살지 않으며 스펙터클 속에서 살지도 않는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거대한 음모도, 거대한 문화 혹은 체제/시스템도 없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사실 훨씬 더 단조롭다. 있다면 명백히 불공정한 다양한 유형의 사회적 제도들이 있을 뿐이다. 진보좌파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정의의 문제에 대한 관심을 반문화에서 분리시킨뒤, 민주적 정치행동이라는 힘겨운 과정을 통해 - 논쟁하고, 조사하고, 연합하고, 법률을 통해 변화를 도모하여 - 신중한 개혁을 통해 이루는 것이다.
어떤 책이든 위와 같이 몇 줄 혹은 성급한 결론만 요약해버리면 싱겁다. 하지만 책속의 다양한 이야기거리와 생각거리를 천천히 즐기는 것이 책읽는 즐거움 아니겠는가?
Transferred from NAVER Blog | 2010-05-18 22:4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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