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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November 23, 2013

[Scrap] 가족의 죽음에 대한 옛 선조들의 슬픔을 담은 글


죽은 아내를 그리워 하며 - 추사 김정희
이 글의 원제는 부인예안이씨애서문(夫人禮安李氏哀逝文)으로, 추사 김정희가 55세인 헌종 6년(1840년) 가을부터 제주도 대정현에서 귀양살이를 하였는데, 추사가 유배지에 있던 1841년 11월에 병약한 부인이 먼저 세상을 떠났고, 부인의 부고는 다음달이 되어서야 추사에게 전달되었다. 귀양살이 때문에 아내의 죽음을 지켜보지 못하고 장례를 치르지 못한 추사가 통곡하는 마음으로 아래의 제문을 지어 집으로 보냈다. 

아아, 나는 차꼬(죄인의 발목에 채우는 형구)가 앞에 있고 옥에 갇히고 섬으로 귀양을 왔으나 아직 내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아내의 죽음에 놀라 가슴이 무너져서 마음을 잡을 수 없으니 이 어쩐 까닭인가.

아아, 대체로 사람마다 모두 죽음이 있거늘 홀로 부인만 죽임이 있지 않을 수 있으리오. 다만 죽을 수 없는데 죽었기 때문에 죽어서 지극한 슬픔을 품었을 것이고 기막한 원한을 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것이 장차 뿜어지면 무지개가 되고 맺히면 우박이 될 것이다. 그러면 능히 공자의 마음도 움직일 수 있으리니, 그 원한이 나의 귀양살이의 고통보다 더 심하지 않아서이겠는가?


슬픔이 커서 뿜어지면 무지개가 되고 맺히면 우박이 될 것이다라는 표현이 가슴에 와닿는다..


사랑하는 딸을 보내며 - 김인후(金麟厚 1510~1560)
시집가서 젊은 나이에 죽은 딸을 눈물로 통곡하며 보내는 아버지의 마음을 절절히 나타내는 제문이다. 

1550년(명종 5년) 십일월 경인삭(庚寅朔) 기해일(己亥日)에 아비는 슬픔을 머금고 병을 안은채 상중(이때 김인후는 또다른 거상중居喪中이었다)에 있으면서 떡과 술을 갖추어 멀리 양씨 집에 출가한 내 딸의 영전(靈前)에 보내노라...

네가 병이 들었을 때, 내가 손수 어루만져 주지 못한 것은 상중에 있는 몸이라 네 어린 아이에게 혹시 무슨 탈이 있을까 염려한 탓이다. 그러나 네 병이 위태로워질 때는 이미 때가 늦었단다...

봄볕같이 따스하고 빙옥(氷玉)처럼 맑은 네가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간단 말이냐. 가슴에 가득한 슬픈 설움이 진실로 마음의 병을 격하게 해도, 눈물을 참고 울분을 삼키는 것은 어찌 다른 까닭이 있어서였겠느냐. 상중에 있는 몸인데다가 자친(慈親, 어머니)마저 노쇠하여 병중에 계시니, 정에 치우쳐 산 목숨을 경솔히 하는 것도 감히 못할 짓이다. 이제 또 날이 차고 길조차 멀어 친히 가서 살펴보고 영결(永訣)을 못하게 되니, 아아 슬프구나...

길게 부르짖으며 슬프게 보내는데, 내 정이 어찌 다할소냐. 아아 슬프구나.

- 출처 : 『선비의 소리를 엿듣다』, 정병헌/이지영 엮음, 사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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