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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November 05, 2013

[Scrap] 그들이 본 우리의 모습 : 물장수

1900년대 초 우리나라에 감리교 선교사로 와서 활동했던 미네르바 구타펠(Minerva L. Guthapfel)이 실제로 겪은 일을 토대로 잡지에 연재했던것을 책으로 다시 엮은 『조선의 소녀 옥분이』라는 책을 읽다보니,,, 나의 통념을 깨는 내용이 있다. 바로 조선시대에도 물을 사먹었다라는 사실.

물을 사먹는 다라는 것이 최근의 사건(!! 그렇다. 나에게는 80년대 후반 90년대 초 서울에 올라와서 물을 사먹는 것을 경험한 것은 하나의 사건이었다)으로 알고 있었는데, 옛날에는 도시에서도 물장수가 있어서 물을 사먹었다라는 사실. 그리고 물값이 상당히 비쌌다고...

"다음에는 수평으로 된 막대를 등에 지고 양쪽에 양동이를 매단 물장수를 볼 수 있어. 조선에서는 물을 구하기가 어려워. 오래된 미신이 아직도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어. 사람들은 자신들의 나라가 용의 등에 올라타고 있다고 상상해 왔고 만약에 물을 얻기 위해 우물을 파면 용이 노해서 지진과 무서운 재앙이 뒤따를 거라고 두려워 하고 있어. 그래서 물은 강에서 길어 오거나, 용의 분노를 무릅쓰고서라도 우물을 팔 만큼 용기있는 사람의 우물에서 가져와야만 돼. 그래서 집집마다 물을 사먹고 있어 매우 비싼 편이야."
- [경성에서 온 편지], 『The Happiest Girl in Korea & Other Stories From The Land of Morning Clam』 by Minerva L. Guthapfel, 1911, 『조선의 소녀 옥분이 - 선교사 구타펠이 만난 아름다운 영혼들』, 살림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당시에 외국인의 눈으로 보는 조선의 물장수에 대한 글들이 있다.

외국인이 본 ‘조선의 물장수’ ; 헐버트 선교사(Homer Bezaleel Hulbert, 1863-1949))가 ‘The Passing of Korea’에서 기술한 내용에는 물장수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그의 세심한 관찰력을 엿볼수 있어 흥미롭다. 아래는 H.B Hulbert가 [The Passing of Korea]에서 기술한 내용이다.
"한국에서 가장 눈에 잘 뜨이는 직업 중의 하나는 물장수이다. 시골에서는 아낙네들이 샘이나 우물에서 물동이에 물을 담아 머리에 이어서 나르지만 큰 都市에서는 이런 일을 하는 특수한 계층의 남성들이 있다.
서울사람은 이웃에 있는 초라한 우물물을 사용하는데 이에 관해서는 아예 언급을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한국인(韓國人)들은 우물의 바로 옆에서 흙묻은 옷을 빠는 것을 조금도 주저하지 않으니 그 꾸정물은 우물로 다시 흘러 들어간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우물 옆에서 채소나 그 밖의 여러 가지 물건들을 씻는다.
이리하여 우물은 위생(衛生)이라는 것과는 거리가 머니 우리들은 이같은 환경에서 때때로 일어나는 콜레라나 그 밖의 전염병(傳染病)의 원인을 찾지 않을 수밖에 없다. 이런 상태에서 대도시(大都市)에 물을 공급한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물장수들은 공인(公認)된 제도(制道)가 되었으며 강력한 길드(guild)를 조직하고 있다. 이 일은 성실해야 하고 매우 힘든 일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물값은 비쌀 수 밖에 없다. 이 비싼 물값은 힘든 일에 대한 보수인 것이다. 서울의 밀집지대(密集地帶)에서 물장수를 하려면 50-100달라의 권리금(權利金)을 지불하고 그 자리를 사야 한다. 물을 공급받는 각 가정은 매달 요금을 지불한다. ..."
 - 출처 : [북청(北靑) 물장수’와 ‘봉이 김선달’] by 낭만돌쇠 http://blog.daum.net/ds5aky/15589729
우물에서 물을 긷는 물장수들(Hulbert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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