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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November 29, 2013

[Scrap] 일제 식민지 시절의 신문기사/신문광고


I. 사진관 광고

천연당 사진관 광고. 대한매일신보. 1908/02/08. 사진사 김규진과 향원당의 공동명의로된 광고. 여성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여성 사진사 향원당을 전면에 내세웠다.
"본당에서 사진값을 특감하여 소본(小本)에 오십전, 중본(中本)에 일환,
대본(大本)에 사환으로 지졍하고 부인사진은 처소를 각별엄숙하고.."


II. 박열부부 괴사진/과문서 사건

아나키스트 박열(朴烈)부부 사건. 아나키스트 박열은 사상적 동지였던 일본인 아내 가네코후미코(金子文子, 조선이름 박문자)와 함께 대역사건(천황제를 거부한 사건)의 주인공으로 세간을 놀라게 했던 인물이었는데,,, 후미코와 함께 옥중에서 찍은 사진이 일본제국내에서 발칵 뒤집은 커다란 정치적인 사건이 되었던 사건.
"박열과 이미 옥중에서 자살한 그의 애처 박문자에 대하여 작년 7월 29일 이레 게재 금지로 되었던 괴문서 사건은... 해금하기를 정식으로 결정하였는데, 그 괴문서의 내용은 하나는 박열과 박문자가 서로 붓안고 있는 사진에 대하여 박열부부를 너무 우대하였다는 것이오, 또 하나는 경탄할 만한 다섯 가지의 '신괴문'이라고 한 문서로 첫째는 예심정에서 박열부부가 삼십분동안이나 타테마쓰(立松) 판사를 가운데 앉히고 같이 있는 것이오, 둘째는 그 후 재판이 확정된 다음에 박열부부가 박열의 독방에 두어 시간 동안이나 같이 있는 것이며, 셋째는 그 후 문자는 회임을 하여 당국은 선후책에 부심하였다는 것이오, 그 후 문자가 죽은 시체에는 이상스런 점이 있었다고 하여 여론을 일으키려던 것이더라"
- <법정에서 태연 포옹, 감방에서 양인 동거, 박열부처 괴사진 괴문서 내용, 가네코후미코(金子文子)의 사인도 불명>, 동아일보, 1927/01/21 


III. 동반 자살한, 동성애인 김용주와 홍옥임의 자살

"4월 8일 오후 4시 45분경 영등포역에서 오류동 쪽으로 2.1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인천을 떠나 영등포역으로 들어오는 제 428호 열차에 뛰어들어 자살한 20세 전후의 여자 두명이 발견되었다. 현장에는 유서 한 장 발견되지 않았으며 '둘이 다정하게 찍은 사진'만 놓여 있었다. 신원 조사 결과 한 명은 창성동에 사는 세전(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교수인 의사 홍석후의 장녀 홍혹임(19세)이었고, 다른 한 명은 종로 2정목에서 덕흥서림을 운영하던 김동진의 딸로 여고 재학 중에 연하의 심종익에게 시집간 김용주(21세)로 판명되었다. 쾌활한 성격의 홍옥임은 세전에 다니는 한 남학생과 사귀다가 실연한 후 허무주의에 빠지게 되었고, 김용주는 자신을 돌봐주지 않고 밖으로만 나돌아 다니는 남편에 대한 원한과 기혼자여서 다시 학교도 다닐 수없던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서로에게 의지하게 되었는데, 그러다가 하나뿐인 친구가 동성의 애인 관계로 발전했다. 둘은 결국 뜻을 합해 죽기를 결심하고 "인생의 생활은 헛됩니다. 헛된 인생의 그날그날이 시들합니다. 그리하여 여식은 이승의 길을 떠나 저승으로 영원한 죽음의 길을 떠나갑니다"라는 내용의 유서를 부모에게 남긴 채 자살을 결행한 것이었다" - 동아일보 1931/04/10



IV. 사진 결혼...

태평양을 격(隔)하여 사진으로 결혼 - 매일신보, 1915/03/06

[상의] 사진결혼을 하여도 좋을까요? - 조선일보, 1926/08/13

하와이 사진 신부들의 모습 
하와이 노동자들과 사진 결혼으로 하와이로 떠난 여인들..


V. 포르노그라피 광고

1920년 중반부터 포르노그래피 인쇄물들과 사진이 대량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신문지면에 광고문구도 다양화..

"여(女)의 나체미의 신연구",,, 
"풍만하고 염려(艶麗)한 세계의 나체 미인 사진들",,, 
"염려한 나체 미인 사진 분양"...

'비밀사진' 광고 - 동아일보, 1924/05/08

'미인 나체 사진' 광고 - 동아일보, 1930/03/11

'이백명의 일본 여학생 요금 받고 나체 촬영' - 조선일보 1927/05/14
일본에서 200명의 여학생이 시내 모 사진관에서 한번에 30원씩 받고 나체 사진을 찍었는데, 남성복을 입거나 나체, 여러 모양의 포즈로 촬영을 하여 풍기를 문란시켰다는 기사 
- 출처 : 『경성, 사진에 박히다』, 이경민, 산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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