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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January 24, 2010

『On Belief』 by Slvoj Zizek

비판의 칸트(Kant)적 형태 ? | 2007-10-10 01:05:46

서양철학(의 역사)가 기독교의 이론적 선봉대 (거기로부터 벗어나려는 탈영병들이 가끔 있긴 했지만)였다라는 주장.

한편으로 기독교라는 것이 하나의 복합적인 신화적 구성체라고 했을 때,
- 여기서 부디 신화라는 것이 단지 허구라는 의미이거나,
또는 개인적 리비도 혹은 집단적 무의식으로부터 비롯된,
합리적 이성의 위계질서상 낮은 위치를 차지하는
그 무엇이란 의미가 아님...-

이제 우리의 우아한 삼단논법(Elegantia syllogismi) 의거해 결국 철학은 신화(에 대한) ‘비판의 칸트(Kant)적 형태’일 뿐이다… 라고 감히 주장할 수 있다 ??

* * * * * * * * * *

니체가 이야기 하는 기독교적 심리학의 세가지 양상, 혹은 세 단계
* 원한_영혼의 배리(背理) : 그것은 네 잘못이다.
* 양심의 가책_세계의 모순(矛盾) : 그것은 나의 잘못이다.
* 금욕적 이상_이상의 신비화… : 그것들의 공통적인 열매 - 책임, 정당화, 구제
- 도덕의 계보학(On the genealogy of morals)

는 은밀한 기독교적 "심리학"의 삼위일체, 그 기독교적 이데올로기로서의 변증법이다.


각주(Foot Note) | 2007-10-20 06:42:52

슬라보예 지젝(Slavoj Zizek)이 [믿음에 대하여(On Belief)] 라는 책의 어느 한편 각주(본문이 아닌...)에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제 3장 '아버지여, 왜 저를 버리셨나이까? 의 첫번째 각주
들뢰즈/데리다/라캉의 3인은 또한 명백히 종교적 함축을 보여 주고 있지 않은가?
- 이교적인 들뢰즈(Deleuze)
- 유대인인 데리다(Derrida)
- 그리고 그리스도교도인 라캉(Lacan)

음... 각주에 대한 주석을 달기가 귀찮고도 어렵다

'논쟁적이고 재기 넘치는' 그의 논의는, 그노시스(Gnosis)적 영성 보다는 그리스도교적인 믿음으로의 복귀를 주장하는 호교론(護敎論) 으로 보아야 하나?


조금은, 삐딱하게 보기... | 2007-10-23 21:35:33

2004년 여름 무렵,  창원의 모 중공업 숙소 화장실에서 펼쳐 읽기 시작한 Slavoj Zizek의 "믿음에 대하여"(On Belief)"

게으르고, 두서없으며, 불성실한 독서의 결과 오늘에야 책을 덮는다

책을 덮으면서 다시 되돌아와 서문(序文)을 두어번 읽어 보다. 난삽한 독해, 읽으면 읽을 수록 <삐딱하게 보기>...

서문에서 "레닌(Lenin)의 외부성"과 "레닌으로의 복귀(정치본령의 복귀)"라는 거창하고도 급진적인(!) 언설을 통해 주장하려는 핵심이
"우리는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과 관련하여 행했던 일, 즉 범세계적 다문화 정책을 오늘날의 제국과 관련하여 수행하여야 한다" 라고 결론 내리고 말야야 하는 것인가?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과 관련하여 행했던 "그 독특한 순간"의 사건이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마치 레닌이 혁명을 통해 권력을 잡았듯이 그리스도교가 제국의 '공인된 종교'가 되면서 세속적 권력을 확보하고 선교적 팽창주의화된 그 사건을 일컫는가?

어려운 독해이다… 내 자신이 과연 제대로 읽었는지도 사실 의문이다.

기독교적 심리학은 부채와 변제-그것도 강요된-에 기반한다.

그리스도의 '희생'의 결과로, "우리는 영원히 그리스도에게 빚을 지며, 그가 우리에게 한 것에 대해 그에게 영원히 되 갚을 수 없다""희생"이란-지젝의 지적처럼-가장 기본적인 요소로서"교환" 관념에 의존한다

즉, 위의 언설을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내가 너희의 (그 알 수 없는 삶의 원)죄를 대속하여 기꺼이 죽음에 이르렀나니 오로지 나에게 귀의하고 회개함으로써만 구원(변제)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 구원(변제)는 영원히 지연된다.

어쩌면 이것은 그 근저에 교환논리에 기반한 상인의 멘탈러티(mentality)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지극히 비대칭적인, 교환의 상대편에게는 비자발적인 강압적인 교환논리라는 점이다

본유의 그리스도적 사랑 ; 자비를 넘어선 사랑,
그리스도교적 사랑의 궁극적 비밀은 아마도 타자의 불완전함에 애정으로 다가서는데 있다. 그리스도교가 가져온 '희소식'이 펼쳐질 공간은 타자속의 결핍이다.
그 사랑의 공간과 향유의 대상이 타자속의 결핍이라...
자기 몰입으로부터 타자에의 개입, 즉 타자의 몸에서 만족을 얻기로의 전환은 결코 '자연적'이지 않으며, 그것은 일련의 깊은 외상, 도약 내지 창조적 즉흥성을 포함한다
잉여향유 혹은 타인을 향한 강렬한 권력에의 의지가 어떤 '깊은 외상, 도약 내지 창조적 즉흥성'으로부터 비롯되었는지 친절하게 가르쳐 주면 좋았건만...

끝내 모호함 속에 책을 덮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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