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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April 27, 2010

[미래철학의 근본원칙] # 09 - Feuerbach, 1843


"오래된" 미래철학에 대한 테제 ;



[ 제 14 항 ]

사변철학은 신의 실현으로서 신의 긍정이고 동시에 신의 부정 혹은 지양이며 유신론이고 동시에 무신론이다. 왜냐하면 신학의 의미에서의 신은 인간 및 자연의 본질과 구분되는 독자적인 본질로 상상될 때에만 신이기 때문이다. 신의 긍정이고 동시에 부정인 혹은 반대로 신의 부정이고 동시에 긍정인 유신론은 범신론이라 할 수 있다. 원래의 신학적인 유신론은 그러나 상상적인 범신론에 불과하고 상상적인 범신론은 실제의 참된 유신론에 불과하다.

유신론과 범신론을 구분지우는 것은 신을 하나의 인격적인 존재로 상상한다는 것 뿐이다. 신에 대한 모든 규정은 - 신은 필연적으로 규정된다. 그렇지 않으면 신은 무(無)이고 상상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 자연 혹은 인간의 현실성에 대한 규정이거나 양자에 공통되는 범신론적 규정이다. 왜냐하면 신을 자연이나 인간의 본질과 구분하지 않는 것이 범신론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은 그 규정이나 본질에 따라서가 아니라 인력이나 실존에 따라서 자연과 인간의 총체인 세계와 구분되며 신이 하나의 다른 본질로 상상될 뿐 실제로는 결코 다른 본질이 아니다. 유신론은 가상과 본질, 상상과 실제 사이의 모순이고 범신론은 양자의 통일이다. 즉 범신론은 밖으로 드러난 유신론(각주 2)의 진리이다. 유신론의 모든 상상들이 통찰되고 신중하게 고려되고, 관철되고, 실현되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범신론으로 나아간다. 범신론은 철저한 유신론이다.

유신론은 신을 원인으로 즉 살아 있고 인격적인 원인, 세계의 창조자로 생각했다 ; 신은 그의 의지에 따라 신을 창조했다. 그러나 의지만으로서는 충분하지 않았다. 의지가 있는 곳에 오성도 있어야 된다. 의지하는 것은 오성의 일일뿐이다.  오성이 없이는 대상도 없다. 신이 창조한 사물들은 그러므로 창조되기 전에는 신 속의 오성의 대상으로, 오성의 본질로 들어 있었다. 신의 오성은 모든 사물과 본질의 총체이다라고 신학에서 말해진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無 이외의 다른 어떤 곳에서 발생되겠는가? 그대가 이러한 無를 그대의 상상속에서 독립된 것으로 상상하든 신 속으로 옮겨 놓든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모든 것은 신 속에 내포되든가 이상적이고 상상적인 방식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이러한 이상적인 범신론은 그러나 필연적으로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범신론으로 나아간다. 왜냐하면 신의 본질까지는 먼 거리가 아니며 신의 본질로 부터 신의 실현까지도 그리 멀지 않기 때문이다.

어떻게 오성이 본질로부터, 본질이 신의 현실이나 실존으로부터 분리될 수 있는가? 사물이 신의 오성 속에 있다면 어떻게 그들이 신의 본질 밖에 존재할 수 있는가? 그들이 오성의 결과라면 왜 본질의 결과가 아닌가? 신 속에서 신의 본질이 직접 그의 실현과 일치되고 신의 개념으로 부터 신의 실존이 분리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사물에 대한 신의 개념 속에서 사물의 개념과 현실적인 사물이 분리될 수 있는가, 어떻게 신 속에서 유한하고 비(非)신적인 오성의 본질만이 구성할 수 있는 구분 즉 상상속의 사물과 상상밖의 사물 사이의 구분이 이루어질 수 있는가? 신의 오성 밖에서 사물이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면 결국 신의 본질 밖에서 그리고 마침내는 신의 실존 밖에서 사물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며 모든 사물은 상상에서 뿐만 아니라 활동이나 실제에서 신 속에 들어있다는 말이 된다. 왜냐하면 사물이 신이나 인간의 상상속에만 즉 신 속에 관념적, 상상적으로 존재한다고 할때에 그들은 동시에 상상 밖에서 어떤 사물이나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세계 밖에서 어떤 신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 이상적이고상상된 신 뿐만아니라 실재적인 본질로서의 신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한마디로 우리는 스피노자 철학이나 범신론에 도달하게 된다.

유신론은 신을 순수한 비물질적 본질로 상상한다. 그러나 신을 비물질적인 것으로 규정하는 것은 물질을 비물질로 즉 하나의 유령으로 규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신만이 현실적인 것의 척도이고 신만이 존재이고 진리이고 본질이기 때문이다. 신에 의해서 그리고 신 속에서 타당한 것만이 존재하며 신에 의해서 부정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질을 신으로 부터 연역한다는 것은 그러므로 물질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통해서 물질의 존재를 규명하려는 것과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연역이란 근거나 이유를 진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은 물질을 창조했다. 그러나 어떻게, 왜, 무엇으로부터 창조했는가? 이에 대해 유신론은 해답을 하지 못한다. 물질은 유신론에서 순수하게 규명될 수 없는 존재이므로 신학의 한계이고 종말이며 신학은 삶이나 사유에서와 똑같이 물질 때문에 난파한다. 그러므로 신학 자체를 부정하지 않고 어떻게 신학으로부터 신학의 종말과 그 부정인 물질을 연역할 수 있단 말인가? 오성이 출발하는 곳에서 어떻게 물질의 해명근거와 출처를 찾을 수 있는가? 신학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물질과 세계의 부정으로 부터 어떻게 물질의 긍정, 즉 물질을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명제로부터 물질은 존재한다라는 명제를 신학의 신을 거역하면서 추출해낼 수 있는가? 단순한 허구외에 다른 어떤 방법이 있는가? 신 자체가 물질적인 본질로 규정될 때만 물질이 신으로부터 연력될 수 있다. 이렇게 될 때만 신이 단순히 상상되고 표상되어진 원인으로부터 세계의 실제적인 원인으로 나아간다. 구두를 만드는데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자가 구두장이가 되고 구두장이라 불리우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한스 작스는 물론 구두장이이고 동시에 시인이었다. 그러나 그의 구두들은 손의 작품이었고 시들은 두뇌의 작품이었다. 작용과 원인은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물질은 신이 아니고 오히려 유한자, 非神的인 것, 신을 부정하는 것이다. 물질을 무조건 숭모하고 따르는 자들은 무신론자들이다. 범신론은 그러므로 유신론과 무신론을 결합하고 신과 신의 부정을 결합한다. 즉 여기서 신은 물질적인 존재이고 스피노자의 말을 빌리면 연장(延長)을 가진 존재이다.


각주 2) 그들의 최종적인 구분요소로 분석하면 물론 범신론과 유신론의 관계는 서로 다르게 규정된다. 즉 그 규정은 본인이 이미 다른 곳에서 내린 것과 같다.


* "신은 필연적으로 규정된다. 규정되지 않은 신은 무이다"
   어린왕자와 여우와의 대화 ; "길들인다... 관계를 만든다는 것"
   은 규정하는 것이다.  관계속에의 '정의(definition)'를 통해서 존재하고 인식되는 것이다.

* 사변철학-유신론의 귀결은 스피노자 철학-범신론... 그리고 범신론은 필연적으로 관념론으로 나아간다.
  유신론-범신론-관념론의 자기참조적 무한 순환구조.

*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나를 통하지 않고 아버지께 올 자가 아무도 없느니라..." 아버지 신에게는 아주 곤란한 언명이다.
  유일자로서의 신이 분열될 수 밖에 없는 구조는 피해야 한다. 결국 "내가 내이다"라고 주장 할 수 밖에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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