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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April 30, 2010

[미래철학의 근본원칙] # 32 - Feuerbach, 1843


"오래된" 미래철학에 대한 테제 ;


[ 제 44 항]

시간과 공간은 단순한 현상형식이 아니다 - 그들은 사유나 존재의 본질조건이고 이성형식이고 법칙들이다.

현존이 최초의 존재이고 최초의 규정된 존재이다. 여기 내가 있다 - 이것이 현실적이고 살아있는 본질에 대한 최초의 표식이다. 가리키는 손가락은 무와 유를 구분하는 이정표이다. 여기에 최초의 한계선 즉 최초의 구분이 있다. 나는 여기 있고 너는 저기 있다 ; 우리는 서로 달리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를 침해하지 않는 둘이 될 수 있다. 자리는 충분하다. 태양은 수성이 있는 곳에 있지 않고 수성은 금성이 있는 곳에 있지 않으며 눈은 귀가 있는 곳에 있지 않다. 공간이 없는 곳에는 어떤 체제도 자리잡을 수 없다. 위치규정이 모든 다른 규정이 발붙일 수 있는 최초의 이성적인 규정이다. 다양한 위치로 분배하는 것 - 다양한 위치는 공간과 직접 연관된다 - 과 더불어 유기적인 자연이 시작된다. 공간속에서만 이성이 방향을 얻게 된다. '나는 어디에 있는가?' 라는 질문은 의식이 눈뜨기 시작하는 질문 즉 삶의 지혜에 대한 최초의 질문이다. 시간과 공간 속의 한정이 최초의 덕(德)이고 위치의 구분이 우리가 어린애나 미숙한 인간에게 붙여주는 미숙련과 숙련 사이의 최초의 구분이다. 미숙한 인간에게는 위치가 상관없고 아무 구별없이 모든 장소에서 모든 것을 행한다 ; 바보와 같다. 그러므로 바보들은 다시 시간과 공간에 부착됨으로써 이성적이 된다. 다양한 것을 다양한 장소에 놓을 수 있고 질적으로 다른것을 공간적으로 구분하는 것이 모든 경제학의 조건이며 정신적인 것의 조건도 된다. 주(註)에 해당하는 것을 본문에 넣지 않고 끝에 와야 될 것을 처음에다 붙이지 않는 즉 공간적으로 구분하고 한계를 지우는 일이 역시 작가의 지혜에 속한다.

여기서 항상 일정한 장소가 언급되지만 고려되는 것은 장소의 규정에 불과하다. 현실적인공간을 파악하려고 할 대 나는 공간으로부터 장소를 분리할 수 없다. '어느 곳'이라는 말과 더불어 공간이라는 개념이 발생한다. '어디에?' 라는 물음은 일반적이며 모든 장소에 구분없이 해당된다. 그러나 '어느 곳'은 일정하다. '이 곳'과 더불어 '저 곳'이, 장소의 규정과 더불어 그러므로 동시에 공간의 일반성이 성립된다.

그러나 바로 그것 때문에 공간이라는 일반적인 개념은 장소의 규정성과 결부될 때만 실재적이고 구체적인 개념이 된다. 헤겔은 자연일반에 대해서 처럼 공간에 대해서 단지 부정적인 규정만을 부여한다. 단지 '여기의 존재'만이 긍정적이다. 나는 여기에 있으므로 저기에 있지 않다 - 이러한 '저기에 있지 않음'은그러므로 단지 긍정적이고 명확한 '여기에 있음'의 결과이다. 여기가 저기가 아니고 어떤 것이 다른 것의 밖에 있다는 사실은 인간의 표상에 대한 제한일 뿐이고 제한 자체는 아니다. 존재해야 되고 이성에 모순되지 않으며 합당한 것은 '서로 서로 다르게 있는 것'이다. 그러나 헤겔에 있어서 이러한 '서로 서로 다르게 있는 것'은 하나의 부정적인 규정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서로서로 달리 있어서는 안되는 어떤 것의 '달리 있음'이기 때문이다. 또한 스스로와 절대적으로 일치하는 논리적 개념이 진리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또한 공간이 바로 이념과 이성의 부정이며 단지 그것이 재차 부정됨으로써만 다시 이성이 들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간이 이성의 부정이라는 사실을 제쳐 놓고라도 이념이나 이성이 설 자리는 단지 공간에서 이며 공간은 이성의 제 1영역이다. 공간적인 '서로 다름'이 없을 때는 역시 논리적인 '서로 다름'도 없다. 혹은 반대로 - 우리가 헤겔처럼 논리로부터 출발해서 공간으로 나아가려 한다면 - 구분이 없는 곳에는 역시 공간도 없다. 사유 속의 구분은 구분되는 것들로 실현되어야 한다. 그러나 구분되는 것은 공간적으로 서로 분리해서 나타난다. 공간적인 '서로 다르게 있음'이 그러므로 비로소 논리적인 구분의 진리이다. 그러나 서로 다르게 있는 것은 역시 시간적으로 서로 차이가 있는 것으로 생각도어질 수가 있다. 실제적인 사유는 공간과 시간 속의 사유이다. 공간과 시간(시간의 길이)의 부정은 항상 공간과 시간 자체 안에서 이루어 진다. 공간과 시간을 얻기 위해서는 공간과 시간을 절약하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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