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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April 30, 2010

[미래철학의 근본원칙] # 24 - Feuerbach, 1843


"오래된" 미래철학에 대한 테제 ;


[ 제 33 항]

새로운 철학은 사유자이며 동시에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주체로서의 우리 앞에 나타나는 존재를 그대로 관찰하고 고려한다. 즉 존재를 존재의 대상으로, 자기자신의 대상으로 관찰한다. 존재의 대상으로서의 존재는 감각, 직관, 지각, 사랑의 존재이며 이러한 존재만이 비로소 존재이고 존재라는 이름을 붙일만한 가치가 있다. 존재는 그러므로 직관과 지각과 사랑의 비밀이다.

지각과 사랑 속에서만 이 사랑, 이 것 등에서의 '이-' 즉 개별자는 절대적인 가치를 가지며 유한한 것이 무한한 것이고 여기에 유일하게 사랑의 무한한 깊이와 신성과 진리가 있다. 사랑 속에서만 머리털을 하나하나 세는 신, 진리, 실재성이 있다. 기독교 신 자체가 인간적인 사랑의 한 추상이고 현상일 뿐이다. 그러나 바로 '이-' 가 사랑속에서만 절대적 가치를 가지므로 추상적 사유 속에서가 아니라 사랑 속에서만 존재의 비밀이 열린다. 사랑은 정열이고 정열만이 실존의 참된 표시이다. 현실적이든 가능한 것이든 정열이 대상이 되는 것만이 존재한다. 지각이 없고 정열이 없는 추상적인 사유는 존재와 무 사이의 구분을 해결하지 못하며 사유에서 불가능한 이러한 구분이 사랑에서 실재성으로 나타난다.

사랑이란 바로 이러한 구분을 확신하는 것에 불과하다.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 대상이야 어떻든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완전히 무관심이다. 그러나 사랑을 통해서만, 지각을 통해서만 일반적으로 존재가 무와 구분되는 것처럼 하나의 대상도 사랑을 통해서만 나와 구분되어진다. 고통은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의 일치에 대한 소리높은 항변이다. 사랑의 고통은 상상속에 있는 것이 현실속에는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상속에서는 주관적인 것이 객관적인 것이 되고 표상이 대상이 된다. 그러나 그렇게 되어서는 안되고 그것은 하나의 모순이며 비진리이고 불행이다. 그러므로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이 일치하지 않는 참된 관계의 부활이 요구된다. 동물적인 고통까지도 분명히 이러한 차이를 나타낸다. 굶주림의 고통은 위 속에 어떤 대상적인 것이 들어 있지 않다는 것, 위(胃)의 대상은 바로 위 자체라는 것, 텅빈 위벽들이 하나의 음식물에 대해서가 아니라 자기들 끼리 서로 마찰하고 있다는 사실에 기인할 뿐이다. 인간적인 지각은 그러므로 고대 초월철학의 의미에서와 같은 경험적이고 인간학적인 의미가 아니라 존재론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의미를 갖는다 ; 지각 즉 일상적인 지각 속에 가장 심오하고 지고한 진리가 숨어 있다. 그러므로 사랑은 우리의 두뇌 밖에 있는 한 대상의 존재에 대한 참다운 존재론적 증명이 되는 셈이고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사랑과 지각 외에 아무것도 없다. 그대가 즐거움을 느끼고 그것이 없을 때 고통을 느끼는 바로 그것만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객관과 주관, 존재와 무 사이의 구분은 즐거움을 주느냐 고통을 주느냐의 구분이다.


* 종교에서 율법(신앙)과 사랑의 모순성 ; [기독교의 본질]의 제 4장과 제 10장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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