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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April 30, 2010
[미래철학의 근본원칙] # 34 - Feuerbach, 1843
"오래된" 미래철학에 대한 테제 ;
[ 제 48 항]
현실적인 것은 사유 속에서 완전히 표현되지 않고 단편적으로만 표현된다. 현실과 사유의 이러한 차이는 정상적이며 사유의 본성에 의한 것이다. 즉 사유의 본질은 보편성이고 이에 반해 현실의 본질은 개체성이다. 그러나 이 차이가 사유된 것과 현실적인 것의 명백한 모순으로 나아가지 않는 것은 사유가 일직선으로 스스로와 일치되어 진전하지 않고 감성적인 직관에 의해 중단되기 때문이다. 직관적인 감성에 의해 규정되고 수정되는 사유만이 실재적이고 객관적인 사유이며 객관적인 진리를 가져오는 사유이다.
절대적인 그러므로 고립되고 감성에서 유리된 사유는 자체와의 일치라는 형식적인 동일성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므로 사유나 개념이 곧장 상반적 규정들의 통일이라고 규정되지만 이러한 규정 자체가 다시 추상화나 사유규정이 될 뿐이다. 즉 사유가 스스로와 일치하게 되고 동일성이 반복되며 이것이 절대적인 진리의 출발점으로 생각된다. 이념이 대면해 있는 타자는 이념에 의해서 설정된 것으로 참되지 않으며 실재적으로 이념과 구분되지 않으며 이념 밖으로 이탈할 수가 없고 기껏해야 형식상으로 이탈되는 것처럼 생각되어 이념의 관용성을 전시할 뿐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이념의 타자 자체가 다시 이념이 되고 아직 이념의 형식으로는 설정되지 않지만 이념으로서 실현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사유 전체는 단독으로 스스로와 실제로 구분되고 상반되는 것에 도달하지 못하며 그렇게 때문에 사유가 설정하는 진리의 척도란 이런것이 이념이나 사유에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 밖에 없다. 즉 사유된 진리가 참된 진리인가 아닌가를 결정할 수 있는 형식적이고 주관적인 척도 밖에 갖지 못한다. 이것을 내용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척도는 직관뿐이다. 다른편에도 귀를 기울일지어다! 그러나 바로 감성적 직관이 사유의 반대편이다.
직관은 사물을 광의로 받아 들이고 사유는 혐의로 받아들인다. 직관은 사물에 무한한 자유를 허용하고 사유는 사물에 법칙을 주지만 때로 너무 독단적이다. 직관은 두뇌를 계몽하지만 규정하거나 결정하지 않으며 사유는 결정을 하고 종종 두뇌까지도 국한시킨다. 직관은 스스로에 대해 상반성이 없고 사유는 스스로에 대해 생명이 없다. 규칙은 사유의 본분이고 규칙으로부터의 예외는 직관의 본분이다. 그러므로 사유에 의해서 규정된 직관이 참된 직관인것 처럼 반대로 직관에 의해서 확충되고 개방되는 사유만이 참된 사유이고 현실의 본질에 합당한 사유이다.
스스로와 일치되고 영속적인 사유는 현실성과 모순되기 때문에 세계를 하나의 중심을 향해 원(圓) 운동을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운동이 동일한 형태가 아니라는 것을 관찰하는 직관의 변칙으로 간섭받는 사유는 이러한 원운동을 사실과 맞게 타원운동으로 바꾼다. 원은 스스로에 의거하는 사변철학의 심벌이고 문장(紋章)이다. 유성에 관해서는 경험을 토대로 원 운동의 궤도가 "완전히 동일한 형태의 운동은 아니다"라고 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헤겔철학 역시 주지하듯 원중(圓中)의 원(圓)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타원은 직관에 의거하는 사유를 내세우는 감성철학의 심벌이고 문장(紋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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