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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April 27, 2010

[미래철학의 근본원칙] # 10 - Feuerbach, 1843

"오래된" 미래철학에 대한 테제 ;


[ 제 15 항 ]

범신론은 신학적 무신론이고 신학적 유물론이며 스스로 신학의 입장에서 선 신학의 부정이다. 왜냐하면 범신론은 신의 부정인 물질을 신적 본질의 술어 혹은 속성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질을 신의 속성으로 만드는 자는 물질을 바로 신적 본질로 규명하는 것과 같다. 신의실현은 일반적으로 신성 즉 현실적인 것의 진리와 본질을 전제로 한다. 현실적이고 물질적으로 존재하는 것 - 유물론, 경험론, 실재론 - 의 신화 즉 신학의 부정이 그러나 근세의 특질을 이룬다. 그러므로 범신론은 신적 본질과 종교철학적인 원리로 고조된 근세의 본질에 불과하다.

일반적으로 소위 말하는 실재과학 특히 자연과학이 속해 있는 것으로 이해되는 경험론이나 실제론은 신학을 부정하지만 이론적으로가 아니라 실천적으로 즉 활동을 통해서이다.

실재론자들은 신의 부정 혹은 적어도 신과 연관되지 않은 것을 삶의 근본적인 요소로, 활동의 근본적인 대상으로 삼는다. 정신과 마음을 물질적인 것, 감각적인 것에만 집중하는 사람은 초감각적인 것으로부터 실제로 박탈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실재적이고 현실적인 활동의 대상이 되는 것만이 인간에게는 적어도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내가 모르는 것은 나를 화내게 만들지 않는다" 감각을 초월한 것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는 말은 하나의 변명일 뿐이다. 신이나 신적인 사물에 관해서 아무것도 알려고 하지 않을 때만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다.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것을 신에 관해서, 악마에 관해서, 천사에 관해서 알았던가! 이러한 초감성적인 본질들이 실제로 신앙의 대상이 되는한 그렇다. 사람들은 관심을 갖는것에 대해 그것을 제어할 능력도 갖는다.

중세 신비주의나 스콜라 철학자들은 자연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자연과학을 발전 시킬 수 있는 힘이나 수완이 없었다. 의미가 있는 곳에 항상 감관이나 기관이 있다.

마음에 알려지는 것은 오성에 대해서도 결코 비밀이 아니다. 그러므로 근세의 인간들이 초감성적인 세계와 그 비밀에 대한 기관을 상실한 것은 그에 대한 믿음과 더불어 의미를 상실했기 때문에 그들의 주요한 경향이 반기독교적이고 반신학적인 즉 인간학적이고 우주적이며 실재론적이고 유물론적이었기 때문이다(각주 3) 신은 연장이 있고 물질적인 본질이다 라는 역설적인 명제와 더불어 스피노자는 그러므로 정곡을 찔렀다고 할 수 있다. 그는 근세의 유물론적 경향에 대한 참된 철학적인 표현을 적어도 자기 시대에서 찾았다. 그는 이러한 경향을 정당화하고 재가 했다. 즉 "신 자신이 유물론자이다"라는 표현이다.

스피노자의 철학은 종교였고 스피노자 자신이 그러한 하나의 특색을 가졌다. 다른 많은 사람과는 달리 그에게는 유물론이 비물질적이고 반물질적인 신의 표상(表像)과 모순되지 않는다. (이러한 신은 철저하게 반물질적이고 내세적인 경향과 업무를 인간에게 의무화시킨다) 왜냐하면 신은 인간의 원형이고 모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신의 본질과 방식대로 되려고 하며 적어도 어느 땐가 그렇게 되리라 요망한다. 그러나 이론이 실천을 거부하지 않고 실천이 이론을 거부하지 않는 곳에서만 인격과 진리와 종교가 있다. 스피노자는 근대 자유주의정신주의자와 유물론자의 모세이다.

각주 3) 유물론, 경험론, 실재론, 휴머니즘 사이의 구분은 물론 여기 이 저서에서는 별로 큰 차이가 없다.


*  "의미가 있는 곳에 항상 감관이나 기관이 있다... 내가 모르는 것은 나를 화내게 만들지 않는다"
   - 아는 것이 병이고 아는 만큼 느낀다. 그리고 아는 만큼 의지한다.

* 모세의 기적은 절박함의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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