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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April 29, 2010

[미래철학의 근본원칙] # 20 - Feuerbach, 1843

"오래된" 미래철학에 대한 테제 ;


[ 제 29 항]

타자 - 사유의 타자는 그러나 존재다 -를 포괄하는 사유는 스스로의 자연한계를 넘어서는 사유다 사유가 그 반대를 포괄한다는 말은 사유가 사유에 속하지 않고 존재에 속하는 것을 되찾으려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존재에 속하는 것은 개별물과 개체이고 사유에 속하는 것은 보편성이다. 사유는 그러므로 개별성의 상환을 요구한다. – 보편성의 부정, 즉 감각의 근본형태인 개별성을 사유의 한 요소로 만든다. 이렇게 존재를 자기 밖에 가지고 있는 추상적 사유 혹은 추상적 개념은 구체적 개념이 된다.

그러나 인간은 어떻게 존재의 특성 속에 사유를 포함시킬 수 있는가? 신학을 통해서이다. 신 속에서 존재는 직접 본질이나 개념과 결부되고 개별성 즉 실존형식은 보편성과 결부된다. ‘구체적 개념’은 개념화된 신이다. 그러나 인간은 철학에서 신학으로 넘어가는 것처럼 어떻게 추상적인 사유에서 구체적 혹은 절대적인 사유로 나아갈 수 있는가?

고대 이교도 철학에서 소위 신(新) 플라톤 철학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역사자신이 이런 문제에 대한 해답을 주었다. 왜냐하면 고대철학이 단지 철학인데 반해 신플라톤 철학은 신학이라는 사실을 통해 양자는 구별되기 때문이다. 고대철학은 이성이나 이념을 그 원리로 하고 있으나 “이념(Idea)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서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고대철학은 사유 외에 어떤 것 즉 사유 속에 용해되지 않는 어떤 나머지를 존재하게 한다. 사유에 포함되지 않는 이러한 존재형상이 물질 즉 실재성의 기초이다. 이성은 물질에서 그 한계를 갖는다. 고대철학은 아직 사유와 존재의 구분 속에 존재했고 사유, 정신, 이념 등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말하자면 유일하고 배타적이고 절대적인 실재성은 아니었다.

고대 철학자들은 아직 현자(賢者) – 생리학자, 정치학자, 동물학자, 다시 말하면 신학자가 아니고 인간학자, 적어도 부분적으로만 신학자 – 였으며 바로 그것 때문에 또한 부분적이고 제한된 불완전한 인간학자였다. 이에 반해 신플라톤 철학자들에게는 물질 혹은 물질적이고 현실적인 세계일반이 결코 어떤 기준이나 실재성이 되지 못했다. 고대 전환기 철학이 아직 인간의 축복으로 생각한 것 즉 조국, 가정, 세속적 유대관계, 일반재화가 신 플라톤 철학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죽음을 육체적인 삶보다도 더 좋게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 육체를 본질에 속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고 행복을 모든 육체적인 다시 말하면 외부적인 사물과 분리시켜 단지 영혼 속으로 옮겨 놓았다. 그러나 인간이 자기 외에 어떤 것을 가지지 않았을 때 그는 모든 것을 자기 자신 속에서 찾고 발견하며 현실적인 세계 대신에 상상적이고 예지적인 세계를 설정한다. 여기서는 모든 현실적인 것이 추상적이고 상상적인 방식으로 존재한다.

신플라톤 철학자들에게서는 물질까지도 비물질적인 세계 속에 존재하고 이상적이며 사유되고 상상된 어떤 것이다. 인간이 자기밖에 어떤 본질도 인정하지 않을 때 그는 사유 속에 하나의 본질을 설정하는데 이 본질은 사유본질로서 동시에 현실적인 본질의 특성을 가지며, 비감각적인 동시에 감각적인 본질이며 이론적인 대상인 동시에 실천적인 대상이 된다. 이 본질이 신 즉 신플라톤 학자에게는 최고의 선이다. 인간은 본질 속에서만 만족한다. 현실적인 본질의 결핍을 그는 이상적인 본질로 대치한다. 즉 그는 이제 폐기되고 상실된 현실성의 본질을 상상과 생각 속에 갖다 놓는다. 상상은 이제 상상이 아니고 대상 자체이며 형상은 형상이 아니고 내용 자체이며 생각이나 이념이 현실 자체가 된다. 그는 객관으로 나타나는 현실 세계에 더 이상 주관으로 대응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대신 그의 상상들이 대상이나 본질, 정신, 신 등이 된다. 인간이 추상적이면 추상적이고 실제적인 감각에 대해서 부정적이면 부정적일수록 바로 추상 속에서 더욱 감각적이 된다. 모든 다양성과 구분되는 즉 감성으로부터 추상화된 최고의 목적과 본질인 신 혹은 일자(一者)가 접촉되고 직접 나타나면서 인식된다. 가장 낮은 것인 물질이나 가장 높은 것인 일자가 똑같이 미지 혹은 무지를 통해 의식된다. 다시 말하면 단지 사유되고 추상화된, 비감각적이고 초감각적인 본질이 동시에 실제로 존재하고 감각적인 본질이 된다.

인간이 육체를 벗어나고 주관성의 합리적인 제한인 육체를 부정할 때 환상적이고 초월적인 실천에 빠져 육체를 가진 신 혹은 혼령과 관계하고 상상과 직관 사이의 구분을 실천적으로 지양하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물질이 실재성이 되지 않고 따라서 사유하는 이성의 제한이 되지 못한다. 이성, 지적 본질, 무제한성 속의 주관성 일반의 본질이 유일하고 절대적인 본질이 되는 곳에 사유와 존재, 주관과 객관, 감성과 비감성 사이의 구분이 이론적으로 사라진다. 사유는 모든 것을 부정하나 다만 모든 것을 자기 자신 속에 설정하기 위해서다. 그는 자기 외에 어떤 것에서도 한계를 갖지 않는데 그러나 그것 때문에 자신은 스스로의 내재적이고 자연적인 한계를 벗어난다. 이런 방식으로 이성과 이념이 구체적이 된다. 즉 직관이 부여해야 할 것을 사유가 점유하고, 삶의 기능이나 감각의 내용이 되는 것이 사유의 기능과 내용이 되고 구체적인 것이 사유의 술어가 되고 존재가 단순한 사고규정성이 된다. 왜냐하면 개념은 구체적이다라는 명제는 존재는 사고규정성이다라는 명제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신플라톤주의자들에게서 상상이며 환상적인 것을 헤겔은 개념으로 전환하고 합리화했다. 헤겔은 ‘독일의 혹은 기독교의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니고 독일의 프로클루스(Proclus)이다. ‘절대철학’은 알렉산드리아 철학의 부활이다. 헤겔이 밝힌 규정에 따르면 기독교적인 그러나 이교도적인 요소와 혼합된 절대적인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나 일반적인 고대 이교도 철학이 아니라 알렉산드리아 철학인데 이 철학은 아직 구체적인 자의식에서 추상화된 요소안에 머물러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될 것은 신플라톤적인 신학이 특히 강조하는 것처럼 객관과 주관은 서로 상응하므로 신학의 대상은 주관과 인간의 대상화된 본질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신플라톤주의자들에게는 지고한 가능성을 지닌 신이 단순한 것, 一者, 전혀 규정되지 않은 것 그리고 구분이 없는 어떤 것이다. 본질이 아니고 본질을 넘어서 있다. 왜냐하면 본질은 그것이 본질이라는 사실을 통해서 규정되기 때문이다 ; 개념이나 오성이 아니고 오성을 갖지 않거나 오성을 넘어서 있다. 왜냐하면 오성은 그것이 오성이라는 사실을 통해서 규정되기 때문이다 ; 오성이 있는 곳에는 사유자와 사유된 것 사이의 구분과 분열이 있고 따라서 완전히 단순한 것 속에서는 그런 구분이 생겨날 수가 없다. 그러나 신 플라톤주의자에게는 객관적으로 최고 존재가 역시 주관적으로 최고 존재다.

이상이나 신 속에서 존재로 생각한 것을 그들은 스스로에서 활동과 노력으로 간주한다. 더 이상 구별이 없고 더 이상 오성이 없고 더 이상 자아가 없는 것이 신이라 불리워진다. 그러나 신플라톤주의자들은 신의 본질에 도달하려고 노력한다 – 그들의 활동 목표는 ‘스스로가 되고 오성과 이성이 되는 것’을 멈추는 일이다. 황홀과 환희가 신플라톤주의자들에게는 인간 최고의 심리 상태이다. 이 상태가 본질로서 대상화되면 신의 본질이다. 그러므로 신은 단지 인간으로부터 생겨나나 그 반대는 아니다. 즉 근본적으로 인간이 신으로부터 생겨나지 않는다. 이 사실은 종종 신플라톤주의자들에게서 언급되는 결핍이 없고 행복한 본질로서의 신의 규정에도 분명히 드러난다. 왜냐하면 이 고통이 없고 궁핍이 없는 존재가 그 근거나 근원을 인간의 고통이나 궁핍 외에 어디서 찾을 수 있단 말인가? 궁핍과 고통의 필요성과 더불어 행복의 상상과 느낌도 나타난다. 불행에 대한 반대로서만 행복은 실재성을 갖는다. 인간의 고통 속에서만 신은 탄생한다. 신은 단지 인간으로부터 그의 모든 규정을 얻는다.

신의 본질이란 인간이 원하고 되고자 하는 바로 그것에 불과 하다 – 현실적인 본질로 상상된 인간자신의 본질이고 인간 자신의 목표다. 이 점에서 신 플라톤주의자가 스토아 철학자나 에피쿠로스학파 혹은 회의론자와 구분된다 ; 무정열, 핵복, 불욕(不慾), 자유, 독립 등이 이 철학자들의 목표이다 ; 그러나 그 목표는 단지 인간의 덕으로만 존재한다. 즉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인간이 진리의 근거가 되며 자유와 행복은 이러한 근거에 대한 술어로 나타난다. 신플라톤주의자들에게는 그러나 비록 이교도의 덕이 진리가 되었지만- 그러므로 행복 및 인간의 완전성과 신성을 내세로 갖다 놓는 기독교 신학과 구분되는데 – 술어가 주어로, 인간의 형용사가 명사로, 실제적인 본질로 되었다. 그러나 바로 그것 때문에 현실적인 인간이 피와 살이 없이 단순한 추상물로, 신적 본질의 비유적인 형상으로 변했다. 적어도 그의 자서전적 서술에 따르면 플로틴은 그가 육체를 가진데 대해서 부끄러워 했다.


* "고대철학에서는 신보다는 아직 인간의 축복으로 생각한 것 : 즉 조국, 가정, 세속적 유대관계, 일반재화가 중요시 되었다" ; 대표적인 중국의 고대철학- 공자의 철학

* 신플라톤주의 : 그 철학은 원래 발생한 원산지가 아닌 변방을 에둘러서 발전하였는데 그 새로운 자궁은 아랍지역의 이슬람학자들 이었다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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