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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April 27, 2010

[미래철학의 근본원칙] # 14 - Feuerbach, 1843


"오래된" 미래철학에 대한 테제 ;


[ 제 19 항 ]

근세철학의 완성이 헤겔철학이다. 새로운 철학의 역사적인 필연성과 정당성은 그러므로 주로 헤겔 비판과 결부된다.


[ 제 20 항 ]

새로운 철학은 그 역사적인 출발점에 비추어 지금까지의 철학이 신학에 대해서 가졌던 것과 똑같은 과제와 입장을 갖는다. 새로운 철학은 헤겔철학과 지금까지의 모든 철학을 실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실현은 동시에 부정이며 더욱 아무런 모순이 없게 부정하는 것이다.


[ 제 21 항 ]

근세철학 특히 범신론의 모순 즉 신학의 입장에 선 신학의 부정이라든가 신학을 부정하지만 스스로 다시 신학이 되어버리는 모순이 무엇보다도 헤겔철학을 특징지우고 있다.

근세철학에서와 마찬가지로 헤겔철학에서도 비물질적인 본질 즉 순수한 오성대상이나 오성보질과 같은 본질이 참다운 절대적인 본질 즉 신이다. 스피노자가 신적인 실체의 속성으로 생각한 물질까지도 하나의 형이상학적인 물질이고 순수한 오성본질이다. 왜냐하면 오성이나 사유활동과 구분되는 물질의 주요한 규정 즉 수동적인 본질이 되는 규정이 물질로부터 박탈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물질적인 본질에 대한 물질적이고 감성적인 본질의 관계를 다르게 규정한다는 점에서 헤겔은 그 이전의 철학과 구분된다. 헤겔 이전의 철학자들이나 신학자들은 참되고 신적인 본질을 자연이나 감성 혹은 물질로부터 벗어나고 해방된 본질로 생각했다. 그 자체로 감각적인 것에서 해방되는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 그들은 감성에서 해방하고 추상화하는 작업이나 노력을 자기 자신속으로만 옮겨놓았다. 그들은 이러한 자유존재 속에 신적 본질이라는 행복을 설정하고 이러한 해방속에서 인간적인 본질의 덕을 설정했다.

이에 반해 헤겔은 주관적인 활동성을 신적 본질의 자기 활동성으로 바꾸었다. 신 자신이 이런 노력을 해야 히고 이교도의 영웅처럼 덕을 통해서 스스로의 신성을 획득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만 물질로부터 절대자의 해방이 활동과 진리가 된다. 그렇지 않으면 다만 전제나 상상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물질로 부터 자기 해방은 신 속에 물질이 동시에 설정된 때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물질이 어떻게 신속으로 설정될 수 있는가? 다만 신 자신이 물질을 설정하는 것을 통해서이다. 그러나 신 속에는 신만 있다. 그러므로 결국 신 자신이 스스로를 물질로, 신 아닌 것으로, 타라로 설정하는 것을 통해서이다. 물질은 그러므로 자아나 정신에 불가사의한 방식으로 전제되어 있는 자아나 정신의 반대물이 아니다 ; 물질은 정신의 자기외화(自己外化)이다. 이렇게 해서 물질 자체가 정신과 오성의 성격을 얻게 되고 절대적 본질의 생명요소, 형성요소, 발전요소로서 절대적 본질 속에 수용된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外化 현상으로부터 벗어나는 즉 물질이나 감성을 제거하는 본질이 비로소 완성되고 참다운 모습과 형태의 본질이라 주장되기 때문에 물질은 다시 참되지 않고 아무것도 아닌 본질이 되어버린다. 자연적이고 물질적이며 감각적인 것 - 물론 일반적이고 도덕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형이상학적인 의미에서 감각적인 것 - 은 그러므로 신학에서 오염된 자연처럼 여기서도 부정되어야 될 어떤것이 되어버린다. 물론 이들은 이성이나 자아, 정신 속에 수용되지만 이성 속에 있는 비이성적인 것이고 자아속에 있는 비아(非我) 즉 자아의 부정에 불과하다. 그것은 마치 쉘링에서 신 속에 있는 자연이 신 속에 있는 비신적인 것이고 신 속에 있지만 신 밖에 있는 것과 같으며 데카르트의 철학에서 육체가 나의 정신고 결합되지만 나의 밖에 존재하고 나의 본질에 속하지 않으며 그러므로 육체가 나와 결합해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는 똑같은 의미를 갖는 것과 같다. 물질이 철학에 의해서 참다운 본질로 전제되는 본질과 모순 상태에 있다.

물질은 신 속으로 즉 신으로 설정되며 물질이 신으로 설정된다는 것은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과 같으며 결국 신학을 지양하고 유물론의 진리를 인정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아직 신학의 본질이라는 진리가 전제되어 있다. 그러므로 신학의 부정인 무신론이 다시 부정되고 철학을 통해서 신학이 다시 소생한다. 신이 신이 되는 것은 신의 부정인 물질을 극복하고 부정하는 것을 통해서일 뿐이다. 헤겔에 의하면 부정의 부정만이 참된 긍정이다.

그러므로 결국 우리는 우리가 출발한 곳 즉 기독교 신학의 품속으로 다시 되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헤겔철학의 최고 원리 속에서 우리는 벌써 철학은 신학의 독단을 지양하는 것이 아니고 신학의 합리론의 부정으로부터 부활시키고 재생하는 것에 불과한 헤겔 종교철학의 원리와 결과를 보게 된다. 헤겔 변증법의 비밀은 결국 그가 신학을 철학으로 부정했지만 다시 철학을 신학으로 부정하는데 있을 뿐이다. 처음과 끝을 이루는 것은 신학이고 중간에 긍정의 부정으로서 철학이 서 있으나 이 부정의 부정은 신학이다. 데카르트의 경우와 비슷하게 처음에는 모든 것이 전복되나 다시 옛 장소로 놓아진다.

헤겔철학은 몰락하고 소멸된 기독교를 철학으로 재건하려는 마지막 위대한 시도이며 여기서도 물론 근세일반에서 처럼 기독교의 부정이 기독교 자체와 일치되는 방법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정신과 물질, 무한자와 유한자,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의 사변적인 일치는 많이 칭찬되지만 결국 신앙과 무신앙, 신학과 철학, 종교와 무신론, 기독교와 이교도들을 형이상학의 정상이라는 최고의 정상에서 일치시키려는 근세의 불행한 모순에 불과할 뿐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러한 모순들이 헤겔의 통찰을 벗어나서 흐릿해지며 신의 부정인 무신론이 신의 객관적인 규정이 된다. 즉 신이 하나의 발전과정으로 그리고 무신론이 이 발전과정의 한 요소로 규정된다. 그러나 무신앙으로 부터 부활된 신앙이 항상 그 반대와 결부된 신앙이기 때문에 결코 참된 신앙이 될 수 없는 것 처럼 부정으로 부터 부활된 신도 결코 참다운 신이 아니며 오히려 스스로 모순되는 무신론적인 신에 불과하다.


* 혁명이란 바로 그러한 것이다 ; "처음에는 모든 것이 전복되나 다시 옛 장소로 놓아진다" - 비판은 전복이 아니라 그 궁극적 귀결은 "호교론"으로, 또는 '긍정적' 재 배치이다 -  나의 판으로 다시 짜는 것.

* 체제의 힘 ; "신의 부정인 무신론이 신의 객관적인 규정이 된다. 즉 신이 하나의 발전과정으로 그리고 무신론이 이 발전과정의 한 요소로 규정된다"  -   그것 처럼, 다양한 반-자본주의, 반-문화운동 들...은 결국 자본주의를 지탱하고 움직이며 지속가능하게 하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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