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철학에 대한 테제 ;
[ 제 31 항]
현실성의 빛을 추상이라는 어둠속에서 인정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그것은 현실적인 것을 그 부정에서 긍정하는 것이 된다. 구체적인 추상속에서가 아니라 구체성 속에서, 현실적인 것을 현실속에서 (즉 현실적인 것의 본질에 합당한 방식으로) 진리로 인정하고 철학의 원리와 대상으로 높이는 새로운 철학만이 그러므로 헤겔철학의 진리이고 근대철학 일반의 진리이다.
새로운 철학이 옛 철학에서 발생하는 역사적인 필연성이 더 구체적으로 제시된다. 구체적인 개념이나 이념이 헤겔에 의하면 우선 추상적인 사유의 요소 안에만 들어 있다. 그것은 세계 창조 이전의 오성화된 신학적 신이다. 그러나 신이 표현되고 제시되고 세계화되고 현실화되는 것처럼 이념도 실현된다. 헤겔은 하나의 논리적 발전으로 바뀐 신학의 역사이다. 우리가 일단 이념의 실현과 더불어 사실주의 영역에 들어서고 이념이란 현실적이며 실존한다는 이념의 진리를 확신하면 우리는 실존을 진리의 기준으로 삼는다. 즉 현실적인 것만이 참된 것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다만 무엇이 현실적인 것인가? 사유된 것만이 현실적인가? 사유와 오성의 대상이 되는 것만이 현실적인가? 이다. 그러나 그런 방식으로 우리는 추상적인 이념으로부터 벗어날 수 가 없다. 플라톤적인 이데아도 역시 사유의 대상이다 ; 천상의 내세도 역시 내면적인 대상이며 믿음과 사상의 대상이다. 사유의 실재성이 사유된것으로서의 실재성이라면 사유의실재성 자체가 다시 사유일 뿐이고 우리는 사유가 그 자체와 동일하게 되는 관념론 속에 머물 뿐이다. - 이 관념론은 모든 현실성의 내용을 포괄해서 하나의 사유규정성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주관적인 관념론과 구분된다. 그러므로 사유나 이념의 실재성을 참으로 진지하게 추구하려면 사유 그 자체 이상의 어떤 것이 첨가되어야 한다. 즉 실현된 사유로서의 사유는 실현되지 않는 단순한 사유 이상의 어떤 것이 되어야 한다. 즉 사유 뿐만아니라 비사유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사유가 현실화된다는 것은 사유가 스스로를 부정한다는 것이고 단순한 생각이 되는 것을 멈춘다는 말이다. 그러면 이러한 비 사유 즉 사유와 구분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감각적인 것이다. 사유가 실현된다는 말은 그러므로 감각의 대상이 된다는 말이다 이념의 실재성은 감성이며 이념의 진리는 실재성이다 - 그러므로 비로서 감성이 이념의 진리가 된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감성을 다만 술어로 이념이나 사유를 주어로 생각한다. 그러면 도대체 이념이 왜 감성화되는가?
그것은 실재적이 아닐 때 즉 감성적이 아닐 때는 참되지 못하는가? 그렇게 되면 이념의 진리가 감성에 의존하게 되어 버리지 않는가? 이념의 실재성이 되는 외에 감성 그 자체에 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아닌가? 감성이 그 자체로 아무 것도 아니라면 왜 이념은 감성을 필요로 하는가? 이념이 비로소 감성에게 가치와 내용을 준다면 감성이란 사치이고 아무 쓸모없는 것이며 생각이 만들어낸 환상일 뿐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사유에는 항상 그것이 실현되어야 하고 감성화 되어야 하는 요구가 나타난다. 왜냐하면 사유에는 실재성 즉 사유와 독립해 있는 감성이 진리로서 무의식적으로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유는 감성을 통해서 지탱된다 ; 무의식적으로 감성이 진리로 인정되지 않는다면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그러나 늘 의식적으로 사유의 진리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감성의 진리가 나중에 말해지고 감성이 이념의 한 속성으로 되어 버리는데 그러나 그것은 모순이다. 왜냐하면 감성은 속성에 불과한다해도 사유에서 비로서 진리를 준다. 그렇기 때문에 핵심인 동시에 부연이며 본질인 동시에 속성이다. 실제적인 것, 감각적인 것을 그 자체의 주어로 만들 때만 또한 그것이 독자적이고, 신적이고, 기초적이고, 이념에 의해서 도출되지 않는 의미를 부여할 때만 이러한 모순으로부터 우리는 해방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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