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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August 03, 2010

『중세는 정말 암흑기였나』 이경재, 살림, 2003

중세 1천여 년의 역사를 암흑으로 매도해 버리는 것, 검은색으로 덧칠해 버리는 것의 부당함에 대한 중세철학 전공자로서의 항변... 통째로 싸잡아 폄하하는 부당함에 대한 조금은 부당한 언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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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를 암흑시대라는 하나의 이미지로 묶어 표상하도록 하는 효과적인 끈이자, 1천년 이상의 기나긴 세월을 하나로 묶어줄 내적 통일성은 그리스도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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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는 『제정론, De Monarchia』에서 Duo Ultima를 주장한다.
내용인즉, 황제의 세속적 정치권력은 교황권을 매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神으로 부터 직접 유래한다는 것….

정치권력과 종교권력이라는 두 개의 권력이 병립함을 주장함.
황제권과 교황권의 기나긴 권력투쟁과정에서의 타협이라고 할 수 있지 않나...

한편,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과 철학이라는 Duo Ultima를 주장한다.
즉 정교분립의 원칙이 진리의 영역에서도 적용된다.

계시된 진리 vs. 이성의 진리

계시된 진리는 신앙, 믿음의 대상으로 그 진리에 대한 증명을 제시할 수 없으며 증명된 진리는 신앙의 대상이 아니다 .
믿는 것과 아는 것의 동시 불가능성; "동일한 사람이 동일한 대상에 대해 동시에 알기도 하고 믿기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믿는 것(계시된 진리)와 아는 것(이성의 진리)는 별개의 대상에 대해 병립 가능하다. 마치 권력의 신성권력과 세속권력의 분립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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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걸기…
문외한이 철학자의 글에 딴지를 거는 것이 가소롭겠지만 좀 거슬리는 부분이 있다

묻는다. 담론의 영역에서 신을 배제하는 것이 과연 불확실하고 부당한 전제의 제거인가? 라는 인간 이성의 '합리성'에 대한 의문의 제기. 그렇다면… 역으로 담론의 영역에서 신을 전제하는 것이 과연 확실하고 정당한 기반을 보장하는 것인가?

중세가 부당하게 신을 전제로 한 시대였다라고 비판하는 것은 중세 교부철학자들의 사유전개의 합리성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중세인들의 사상이 '철학'이 아니라 '신학'이기에 엄밀한 합리성을 발견할 수 없다라고 볼멘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신(그리스도교 신)을 전제로 한 권력과
종교의 현실에서의 폭력과 전제(專制)를 비판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유교적 조선을 비판하는 것 중의 하나는 유학 자체의 고도의 합리성의 문제가 아니라 그 실천적 전략, 현실적 Ideology, 권력투쟁의 결과이다.

하나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에 전제된 세계관이 무엇인가를 알 필요가 있지만, 그 사상의 철학적 유효성 자체가 전제된 세계관이 무엇인가에 따라 판가름 되지 않는다.

【천사에게 배꼽이 있는가】라는 논쟁에도 가만 따져 보면 그 자체로 치열한 논리성과 합리성, 그리고 철학적 신학적 논거가 있다.

작가 자체에게도 적용되는 합리성의 역습이다.
합리성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으나 벗어나지는 못했다. 철학자라는 직업적 습성의 한계인가?

중세가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이며 광기에 휩싸인 어둠의 시대가 아닌 '토마스 아퀴나스적'으로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도덕적, 논리적이었다라는 반거(反據)는 근대 합리성에 대한 비판이 결국은 중세의 합리성에 대한 옹호로 귀결되어 버렸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중세는 중세로 끝난 것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까지도 그 기독교적 세계관이 담론을 지배하고 있으니 근대 이성의 계몽주의적 역설은 역사의 단절이 아닌 완곡한 전승일지도 모른다.

| 2009-05-09 00: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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