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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August 03, 2010

『숲 속의 죽음(Death in the Woods)』

『숲 속의 죽음(Death in the Woods)』- 셔우드 앤더슨(Sherwood Anderson)
  -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2. 죽음의 미학】 살림, 1996 中

소년의 기억을 통해 서술된, 숲속에서 얼어 죽은 어느 한 노파의 이야기.

죽음에 대한 궁구(窮究)나 가치판단, 또는 노파의 삶에 대한 연민이 배제된, 맑고 차가운 겨울 달빛 아래서 한 무리 개들이 펼치는 죽음의 의식(儀式, Ritual)을 한 폭의 냉정한 자연주의적 그림처럼 묘사한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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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노파였다. 그리고 내가 살던 읍내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농가에서 살았다. 시골에서나 조그마한 읍에서 사람들은 그런 노파들을 흔히 본다. 그 노파는 아무것도 특별할 게 없는 여자였다.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그런 이름없는 사람들 중의 하나일 따름이었다. 

남편과 아들은 불량배였다. 아들은 스물한 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미 형무소 신세를 진 경력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녀의 남편이 말을 훔쳐서 딴 곳으로 빼돌린다고들 수근거렸다. 그들 부자는 이따금 서로 싸웠고 그들이 싸울 때면 그녀는 부들부들 떨며 옆에 서 있었다. 어쨌든 그녀는 침묵을 지키는 버릇이 생겼고, 그 버릇은 아주 굳어져 버렸다. 그녀가 늙어 보이기 시작할 무렵부터-아직 사십도 채 안 됐지만-남편과 아들이 말 장사를 하거나 술을 마시거나 사냥을 하거나 도적질을 하거나 하여튼 집을 비우고 없을 때면, 그녀는 이따금 집 주위와 농장 구내를 돌아다니면서 중얼중얼 혼자말을 하곤했다. 이 모든 것들을 어떻게 먹일 것인가-그것이 그녀의 문제였다. 

자신이 곡식부대에 넣어준 그 간 조각이나 고기 덩이가 달라붙어 있는 그 묵직한 뼈를 그 남편이나 아들이 먹으려 든다면 정말이지 그 따위 인간은 굶어 죽어 마땅하다고 정육점 주인은 말하는 것이었다. 굶어 죽다니? 아니지, 다들 먹여야지, 사람도 먹여야 하고, 쓸모는 없지만 팔아 치울 수 있을지 모르는 말들도 먹여야 하고, 석 달동안 젖 한 방울 짜내지 못하는 삐쩍 마른 불쌍한 젖소도 먹여야지. 말, 소, 돼지, 개, 사람들, 모두들 먹여야지. 

등에 짐을 진 채 그녀는 힘들여 들판을 가로질러, 깊이 쌓인 눈을 헤치며, 숲 속으로 들어 섰다. 오솔길이 있긴 했지만 길을 따라 걷기가 힘들었다. 언덕 꼭대기 바로 너머 삼림이 아주 울창한 곳에 조그만 공터 같은 것이 있었다. 노파는 그 공터에 이르자 잠시 쉬어 가려고 나무 밑에 주저 앉았다 .그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짐을 나무 밑둥에 기댄채 자리를 잡고 앉으니 참으로 좋긴했지만 어떻게 다시 일어설 것인가? 그녀는 얼마 동안 잠을 잤을 것이다. 몹시 추우면 그 이상 더 추위를 느끼지 않는 법이다. 오후가 되어 날이 좀 풀리면서 눈발이 더 굵어졌다. 그리고는 얼마 후 날이 개이고 달까지 나왔다. 

개들은 뭔가에 흥분해 있었다. 그 처럼 차고 맑고 달빛 가득한 밤은 개들에게 뭔가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다. 그들이 이리의 모습으로 겨울 밤에 떼지어 숲을 헤매고 다니던 그 태고적의 어떤 옛 본능이 그들 속에서 되살아 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공터에서 원을 그리고 달리면서 놀기 시작했다. 개들은 앞 개의 꼬리에 코를 바싹 대고 빙글빙글 계속 돌았다. 겨울 달빛이 내리비추는 눈을 잔뜩 인 나무아래 공터에서, 부드러운 눈을 단단히 다지며 원을 그리는, 그렇게 잠자코 원을 그리며 달리는 개들의 모습은 한폭의 기묘한 그림을 이루는 것이었다. 개들은 침묵 속에서 계속 원을 그리며 빙빙 돌았다. 

오직 그 숲 속의 광경을 나는 한 폭의 그림처럼 기억하고 있을 따름이다. 주위에 둘러 서 있던 사람들, 얼굴이 눈 속에 묻힌 소녀처럼 보이던 여인의 나체, 개들이 달려서 다져 만든 타원형의 자국, 그 위의 맑고 찬 겨울 밤 하늘, 흰 구름 조각들이 하늘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나무들 사이로 열린 조그만 공간을 가로질러 내달리면서.

| 2009-01-31 16: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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